2017년 01월 통권 제1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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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밑줄 긋는 시간]
역사의 중심부로 귀환한 책

어유선 | 2017년 01월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는 청소년이 읽기에 알맞은 책이다. 바다를 다르게 볼 수 있게 해 주고 세상과 사물에 대해 마음을 품을 수 있게 해 주기에 더욱 그렇다. 유년기에 겪은 바다도 놀랍고 신비로웠다. 그 신비로움이 더해져서 청소년이 되어 들여다보는 바다는 너무나 넓고 깊었다. 바다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이 세상과 세계에 대해 내가 아는 모든 것까지 돌아보고 다시 보게 해 준다.

고등학교 마지막 겨울 방학, 친구와 섬으로 여행을 떠났다. 가려던 건 섬이었는데 바다를 만났다. 바다는 자산 정약전의 바다처럼 넓고 검푸르렀다. 정약전이 『자산어보』 서문에 쓴 것처럼 파랗다 못해 검어서 무서웠다. 가던 날은 부드러운 솜 같은 눈이 조금씩 떨어졌는데 바다에서는 떨어진 눈이 흔적조차 없었다. 하루 한 번 간다는 조그만 배를 타고 섬으로 가면서 넓은 바다에 점만도 못한 자신을 느꼈다. 여름이 지나간 겨울 바다에는 여름의 흔적을 지닌 깡통들과 쓰레기들로 쓸쓸하고 을씨년스러웠으나 하얀 파도로 부서지며 멀리 수평선을 펼치던 바다는 묵묵하고 아름다웠다. 기약했던 일주일이 영원처럼 느껴지고 멈춘 것만 같은 시간에 바다로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정약전도 그랬으리라. 기나긴 유배 생활, 다시 돌아갈 기약 없는 세월, 만날 수 없는 사람들. 그러나 절망을 넘어 살아야 했기에 바다를 보았고, 바다를 만났고, 바다에서 사람을 만났다. 내가 그 바다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를 가져가서 읽고 싶다. 자산어보 서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자산은 흑산이다. 나는 흑산에 유배되어 있어서 흑산이란 이름이 무서웠다. 집안 사람들의 편지에는 흑산을 번번히 자산이라 쓰고 있었다. 자(玆)는 흑(黑)자와 같다.

자산 정약전은 개혁 군주 정조가 승하한 1801년 정적들의 질시와 탄압으로 갖은 옥고를 치른다. 결국 1801년 신유박해 때문에 신지도로 유배를 가게 된다. 아우인 정약용 역시 장기로 유배되었으며 형제는 기약 없는 이별을 했다. 1807년 우이도에서 흑산도로 거주를 옮긴 정약전은 서당 복성재를 건립하고 『자산어보』 저술을 시작한다. 1814년 『자산어보』를 완성한 자산은 정약용이 해배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우이도로 돌아왔으나 안타깝게 형제의 만남은 이뤄지지 못했고 결국 정약전은 1816년 우이도에서 명을 달리했다.

20여 년에 가까운 유배의 생활, 지금 목포에서 가도 두 시간 이상이 걸리는 흑산도에서 10여 년의 시간을 『자산어보』 저술에 몰두했다. 그는 『자산어보』를 쓴 이유를 다음과 같이 알린다. “자산의 해중 어족은 매우 풍부하지만, 그 이름이 알려진 것은 적다. 마땅히 박물학자들은 살펴보아야 할 곳이다.”

마땅히 살펴보아야 할 곳, 알려지지 않은 흑산도의 물고기들을 하나하나 살피고 뼈의 수를 세고 바다의 흐름과 물고기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물고기뿐만 아니라 흑산도의 특산물인 홍어, 홍합 그리고 새와 바다의 풀들까지 관찰하여 흑산도의 바다를 살피고 있다. 이렇게 흑산도의 바다를 살피는 그의 마음은 그가 만나던 사람들에게로 향해 있다. 오랜 세월 유배의 시간을 보내야 했음에도 백성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은 오히려 더욱 따뜻해졌다.

자산 정약전은 서문에 바다에서 만난 아이, 장덕순, 즉 창대를 언급한다. 그리고 이 책이 장덕순의 연구와 관찰에 기대었음을 밝힌다. 위대한 바다, 자연을 온몸으로 보여 주는 바다에 두려움을 느끼던 자산은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귀양과 유배의 땅에서 느꼈을 서러움과 외로움을 잊고 물고기를 함께 연구하며 비로소 바다를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섬사람들을 널리 만나 보았다. 그 목적은 어보를 만들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사람마다 그 말이 다르므로 어느 말을 믿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섬 안에 장덕순, 즉 창대라는 소년이 있었다. 두문불출하고 손을 거절하면서까지 열심히 고서를 탐독하고 있었다. (중략)

성격이 조용하고 정밀하여, 대체로 초목과 물고기와 물새 가운데 들리는 것과 보이는 것을 모두 세밀하게 관찰하고 깊이 생각하여 그 성질을 이해하고 있었다. (중략)

나는 드디어 이 소년을 맞아 함께 묵으면서 물고기의 연구를 계속했다.

서문에 소년에 대한 고마움과 소년이 한 일을 밝혔던 자산 정약전은 진정한 의미의 학자였다.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를 쓴 시인 손택수는 서문에서 바다를 떠나왔을 때 비로소 바다에 고마움을 느끼고 『자산어보』를 읽었다고 한다. 『자산어보』는 그런 책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고 그들이 자신에게 준 고마움을 새겨 볼 수 있게 한다.

서문의 말미에서 자산은 어떻게 『자산어보』를 엮었는지를 밝히며 훗날 사람들의 참고자료가 되기를 간곡히 바란다. 철저히 묻혀 살아야 하는 삶 속에서 그는 묻히지도 잊혀지지도 않았다. 『자산어보』를 엮으며 후세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후세의 선비가 이 책을 읽게 되면 물음에 답하는 자료가 될 것이며 시인들도 이제까지 미치지 못했던 사물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의 의미를 알고 있었으며 그래서 무엇보다 물고기의 이름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를 고민했다. 정약전은 이름을 듣지 못하거나 자료에서 찾을 수 없는 이름은 속칭, 즉 섬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으로 적고, 수수께끼 같아서 그 이름을 생각해 낼 수 없는 것은 감히 그 이름을 지어냈다고 한다.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에서 바다를 품어 낸 자산의 마음을 물 흐르듯 써 내려간 시인 손택수의 글도 좋지만 바다 생물의 이름들을 하나하나 풀어내 현대의 이름들로 다시 담은 부록은 이 책이 바다를 품었음을 보여 주는 귀중한 기록이다. 시인은 부록에서 속명은 과거와 현재 흑산도에서 사용되고 있는 방언이며, 차자한 속명은 정약전이 거주할 당시 흑산도 방언을 한자음을 빌려 표기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시인 손택수의 노력은, 정약전이 시인들에 의해서 이제까지 모르는 점을 알고 부르게 되기를 바란 것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이렇듯 심혈을 기울여 자산어보를 쓴 정약전은 아우인 정약용을 만날 꿈에 부풀었다. 학문의 동반자였던 정약용에게 오랜 세월을 통해 써 낸 『자산어보』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만나 나누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나지 못한 시름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유배지에서 돌아오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에서 시인은 그로부터 이 년 후 마침내 유배에서 풀려난 정약용이 정약전의 유품을 수습하면서 도배지로 쓰인 자산어보를 한 장 한 장 수습하여 그의 제자 이청에게 필사시킨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자산어보』는 원본이 전해지지 않으며 8책의 필사본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실제로 정약전의 『자산어보』를 지켜 낸 것은 아우인 정약용이니 불행 중 다행이라 할 수 있겠지만 출처를 찾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다. 『자산어보』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다가 국문학자 김태준, 수산물 과장 정문기, 생물학 교사 이태원 등 바다에 관심을 갖던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조금씩 알려지면서 특히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책에는 물고기마다 세밀하게 관찰한 결과를 기록하였다. 비늘을 가진 어류 71종과 비늘이 없는 어류 43종, 해조류 45종, 조개류 50종, 바닷게 17종, 바다거북 1종을 조사하여 수록했으며 먹는 방법과 요리법도 세세하게 기록하여 후대의 사람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의 집필을 정약용과 의논하며 삽화도 넣고 싶어 했지만 정약용이 말려서 아쉽게 그림으로 남기지 못하였다.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에서는 다양한 물고기의 그림을 보여 주고 정약전이 지은 물고기의 이름까지 다시 정리해 놓았으니, 실학자들이 꿈꾸던 세상의 가치는 후세를 이어서 전해지고 연구되어 더욱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자산어보』는 시인 손택수의 말대로 역사의 중심부로 귀환하였다. 정약전을 질시하고 그를 유배 보내고 그의 정신을 덮으려던 자들의 간악함을 뚫고 빛을 발하는 그의 노력과 아름다움이 남아 있는 책, 『자산어보』는 다양한 여러 형태의 책으로 계속 출간되고 있다. 올해에만도 『신역 자산어보』 등 새롭게 번역한 책과 『물고기 선생 정약전』 등 어린이 책이 출간되었으니 정약전을 통해 바다를 꿈꾸는 이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다.
어유선 | 작은도서관에서 오랫동안 활동했으며 대안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었습니다. 현재는 뒷동네도서관 운영위원으로 마을도서관을 꿈꾸며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