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01월 통권 제170호
속 깊은 책 이야기
책 너머 세상 읽기
더불어 책 읽기
열린어린이 선정 이달의 좋은 책
겨울 방학 권장 도서
열린어린이 서평
주목 받는 새 책
열린어린이가 권하는
이 달의 책

책 너머 세상 읽기

[책 걸음 한 발짝 두 발짝]
고리송이 고리산이와 도란도란

윤정애 | 2017년 01월

서울과 부천의 경계 지역, 나지막한 강장골산 옆에는 지역 주민들의 즐거운 이야기 나라 도란도란 작은도서관이 있다.

도서관에 들어서면 빼곡한 서가마다 책들이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용자들은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빼어 들고, 즐거운 이야기 나라로 입장하곤 한다. 그중에서 『고리송이 고리산이야! 고강동을 지켜줘』란 책을 읽고 있는 한 작은 아이가 눈에 띈다. ‘고리송이’와 ‘고리산이’는 고리울을 지켜 주는 수호신이다. 고리송이는 봉황, 고리산이는 현무, 고리울은 고강동의 옛 이름이다. 이들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떻게 ‘도란도란 이야기 나라’에서 살게 되었을까?

도란도란 이야기 나라에는 책과 사람이, 많은 식물 친구들이 오순도순 어울려 지내고 있다. 15년 된 사서도 있고, 14살 만냥금 식물도 있고, ‘도란도란 도서관’ 출신 15년차 엄마들과 아이들도 많다. 엄마 손잡고 도서관에 처음 왔던 코찔찔이 꼬마들이 지금은 훤칠한 대학생이 되어 찾아올 때마다 ‘쏜살 같은 시간’에 놀라면서도 뿌듯한 마음이 절로 든다. 어릴 때의 순진함이 깃든 얼굴로 “지금도 아이들과 동아리 수업하세요?” 묻곤 한다. 아이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시들지 않는 ‘싱싱한 기억들’을 낳는다.

2015년에는 아이들과의 특별한 만남이 있었다. 우리 동네 아이들로 구성된 ‘고리울 탐험대’와 함께 우리 마을 이야기를 동화책으로 발간하는 ‘특별한 일’을 하였다. 고리울 이야기를 찾아가는 아이들이 고리울 탐험대이다. 『고리송이 고리산이야! 고강동을 지켜줘』 책을 펴내면서 했던 낯선 글쓰기 시간은 우리 아이들을 ‘오래된 미래’의 비밀로 안내해 주었다.

고리울 봉배산에는 부천에서 유일한, 한강 유역 지역에서도 대표적인 청동기 시대 유적(취락 주거지)이 자리하고 있다. 완만한 산꼭대기에서는 청동기 시대부터 천신제를 지냈던 ‘적석환구유구’가 자리하고 있으며, 지금도 천신제를 현대적으로 재현한 ‘고유제천의례’가 해마다 열린다. 철쭉꽃이 만발하는 4월이면,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는 고유제천의례가 진행된다. 무릇, 봉배산이란 ‘예전부터 봉황이 살았던 신성한 곳’이라는 유래를 가지고 있으며, 고리송이는 오래전부터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숨쉬던 ‘신비로운 새’ 봉황을 21세기 후손들이 새롭게 이름 붙여 우리 곁으로 불러낸 것이다.

고강동 수호신 캐릭터 ‘고리송이’와 ‘고리산이’

2013년 우리 동네 예술 프로젝트(꽃고리울 지킴이) 사업에서 지역 예술 단체인 ‘수주도예연구소’와 ‘고강종합사회복지관’은 지역 주민들과 함께 지역의 역사 유물과 정신을 스토리텔링 작업으로 복원하여 현재의 ‘고리송이와 고리산이’라는 수호신을 탄생시켰다.

이러한 ‘우리 마을 되살려 내기’ 사업을 이어받은 도란도란 작은도서관에서 ‘고리송이와 고리산이’ 수호신의 유래를 마을 아이들과 상상하면서 모은 이야기를 『고리송이 고리산이야! 고강동을 지켜줘』란 마을 이야기 책으로 출간하였다. 2015년 경기도 마을공동체 작은도서관 지원 사업의 지원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고리송이 고리산이야! 너희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렴. 첫 번째 발걸음 소리, 뚜벅뚜벅. 먼저 ‘김미혜 작가와 함께 하는 동화 교실, 고리울 상상 아이들, 모여라!’를 열었다.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그렇게 구성된 ‘고리울 탐험대’ 아이들은 먼저 지역 유적 곳곳을 찾아다니면서 자신만의 이야기 주머니를 채우기 시작했다.

부천시 향토유적 제1호 ‘변종인 묘역과 신도비’에서 출발했다. 한국 삼변이라고 불리는 ‘변영만’, ‘변영태’, ‘변영로’ 묘소에서는 일제 강점기 시대를 뿌리 깊은 기개로 이겨 냈던 할아버지들의 호탕한 웃음을 보았다. 곰달래 고갯길에서는 지금은 사라진 서낭당 할아버지의 따스한 목소리를 들었다.

(…)‘곰달래’라는 이름처럼 고운 달빛이 맑게 비치는 동네 길을 따라
어떤 날은 아이가 와서 소원을 빌고 어떤 날은 어른이 와서 소원을 빌고
곰달래 서낭당은 매일매일 사람들의 기도와 바람을 들었어요.
서낭당은 사람들의 기도를 들으며 생각했어요.
‘내가 진짜로 저 수많은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들은 펄쩍 뛰며 기뻐하겠지?’

「고리송이와 고리산이」 이예은 (고리울초 6)

뜨겁게 지글거리는 아스팔트를 지나, 우리 동네 자랑거리인 ‘선사 유적지’가 자리하고 있는 봉배산을 오를 때는 신비로운 새 소리를 듣기도 했다. 만화가가 꿈이라는 지우는 그때 ‘고리송이’가 진짜로 우리 곁에 있느냐는 질문을 재잘재잘 퍼붓다가, 그루터기에 걸려 넘어질 뻔했는데, 그 순간 어디선가 청아한 새 소리가 들려왔다. 겨우 중심을 잡고 일어선 지우는 “선생님, 고리송이가 정말 우리를 지켜 주고 있나 봐요!”라고 말했다.

이렇게 직접 우리 마을 이야기로 온몸을 가득 채운 ‘고리울 탐험대’ 아이들은 김미혜 작가가 나눠 준 여린 ‘이야기 씨앗’을 각자의 마음에 조심스럽게 심으면서 싱그럽게 키워 내기 시작했다.

… 커다란 돌은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것이 될 거라고 희망을 갖는 것, 오늘이 마지막이야. 내일부터 강아지가 내 위에 똥을 싸도 화내지 않을래.” …
“아야! 아파. 하지만 이건 내가 훌륭한 무엇인가가 되기 위한 길이니 힘들고 아파도 참아야 해!” … 커다란 돌, 아니, 멋진 비석은 아직도 강장골산에서 변종인 무덤을 지키고 있답니다.

「커다란 돌멩이 이야기」 박혜인 (고리울초 6)

평상시에는 관심 하나 없이 지나쳤을 우리 동네 허물어져 가는 비석 하나, 거의 뿌리만 남아 있는 고목 한 그루에서도 아이들은 쌓여 온 ‘시간들의 역사’를 보고, 느끼면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우리들도 나중에는 역사가 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이다.

처음 아이들과 ‘마을 이야기 책’을 준비할 때는 마냥 즐겁다가, 동화 수업이 시작되면서 시끌벅적 동화 교실 한 곁에서 설익은 아이들의 언어를 듣고 있자니, 슬며시 밀려드는 ‘완성도’에 대한 불안감. 그렇게 여름은 가고, 시간은 흘러…. 어느새 아이들의 이야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언어의 즐거움’이 내 마음을 적시기 시작했다. 창가로 쏟아지는 뜨거운 햇살 속에서도 나는 시원한 이야기 바람을 맞고 있었다. 행복했다.

3개월간의 긴 이야기 탐험을 무사히 마친 탐험대 아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다듬고, 그림으로 옷을 입히면서 조금씩 꼬마 동화 작가로서의 첫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드디어 『고리송이, 고리산이야! 고강동을 지켜줘』란 마을 이야기 책이 발간되던 날. 우리들은 많은 지역 주민들을 모시고 출판 기념회도 진행했다. 향기로운 복사꽃으로 어여쁘게 치장한 고리송이 고리산이가 우리 곁으로 날아와 축하해 주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찾아 주어서 고마워!”

이렇게 해서 고리송이와 고리산이는 도란도란 작은도서관에서 살게 되었다. 눈을 들면 도서관 커다란 창으로 밀려드는 강장골의 푸르름은 겨울 아침 속에서도 변함없다. “오늘 500살 먹은 향나무가 팔이 아프대.” 고리송이, 고리산이가 들려주는 아침 이야기로 시작하는 우리 동네 작은도서관, 도란도란 작은도서관은 오늘도 이상 무!
윤정애 | 부천 도란도란 작은도서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서입니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는 ‘작은도서관 사서’로서의 일상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