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01월 통권 제1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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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책 이야기

[그림책 이야기 방식 읽기]
디지털 시대 그림책에서 글자 그리기

김영욱 | 2017년 01월

구텐베르크 이후의 문자 문화 시대를 거쳐 온 우리는 이제 디지털 문화 시대에 직면해 있다. 직관과 연상 작용을 중요시하는 그래픽을 비롯하여 새로운 형식의 디지털 텍스트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 이들은 기존의 문자 중심 커뮤니케이션에서 벗어나 좀 더 이미지와 소리에 의존하는 경향을 띈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를 촉진하는 것 중 하나가 그림과 문자가 결합된 도상문자의 재출현이다. 문자와 그림이 한 뿌리에서 발생한 것임을 방증해 주는 도상문자의 회귀가 난데없고 뜬금없는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으나, 그 기원은 글을 그림처럼 그리던 고대 상형문자에 두고 있다. 또한 오래전부터 동양미술사에서는 시(詩), 서(書), 화(畵)가 조화롭게 병존해왔으며, 근대 서양미술에서도 입체주의, 미래주의, 초현실주의 사조에 속하는 다양한 작품에서 문자와 이미지의 교차 혹은 병치된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림책은 그림책 전체가 문자 텍스트와 그림 텍스트가 결합하여 생성된 하나의 통합 텍스트로서 아이코노텍스트(iconotext)이며 독자적인 예술 장르이다. 따라서 그림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 세 가지 텍스트의 기호를 동시에 해석하는 것이다. 아이코노텍스트는 ‘아이콘(icon)’과 ‘텍스트(text)’의 합성 개념이다. 그러나 글과 그림이 단순히 합성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서로에게 말을 건네며 서로를 향해 열려 있는 형식을 의미한다. 특히 현대 그림책에서는 텍스트의 의미 전달이 과거와 달리 문자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문자 역시 단순히 메시지의 전달 기능에 그치지 않고, 시각 이미지로 전환되어 미적 효과를 노리는 시도가 많아지고 있다. 따라서 이번 호에서는 그림책에서 구현된 아이코노텍스트의 사례를 살펴볼 수 있는 작품 두 권을 함께 볼까 한다.

그림책에서의 『문자도』 복원 - 『피노키오는 왜 엄펑소니를 꿀꺽했을까?』

작가 박연철이 밝히고 있듯이 그림책 『피노키오는 왜 엄펑소니를 꿀꺽했을까?』는 그에게 영감을 준 영화감독 히치콕이 우산을 쓰고 지나가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모종의 암시가 있다. 즉, 작가가 이 그림책에서 추구하고 있는 바인 문자 내지 기호의 의사소통 가능성 실험을,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대체한 물음표(?)로 표현함으로서 선언한 셈이다. 그런데 이 물음표는 히치콕의 영화에서 무의미한 가짜 힌트에 해당하는 ‘맥거핀’과 유사한 의미를 갖고 있는 ‘엄펑소니’란 단어에 대응하는 하나의 기호이기도 한 것이다.

전체 스토리는 화자인 히치콕이 내포독자인 아이들을 대상으로 거짓말이 들어 있는 여덟 가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전개되는데, 각각의 독립된 이야기는 사람이면 누구나 지켜야 할 삼강오륜(三綱五倫)과 관련된 문자들 - 효(孝)·제(悌)·충(忠)·신(信)·예(禮)·의(義)·염(廉)·치(恥) 여덟 자에 관한 것이다. 이 그림책에서 작가 박연철은 상형문자로서 함축적인 뜻을 내포하는 한자의 특성에 바탕하여 글자의 시각적 형상과 언어적 내용을 결합시킨 한자가 만들어진 이후 이를 조형적 예술로 승화시킨 서예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도안화된 글자 예술인 우리 전통 민화의 「문자도」에서 글이 그림이 되고 그림이 글이 되는 방식을 차용하고 있다. 즉, 글자의 자획 속을 글자의 뜻과 부합되는 그림을 채워 넣거나 필획 자체를 그림으로 대체한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내고 있다. 게다가 박연철은 그림책의 면을 이어 붙여 병풍과 같은 느낌이 들게 한 뒤, 의미 전달에 주안점을 두기 보다는 그 시각 효과에 관심을 두고 조선 후기에 유행했던 문자도의 세련미를 아이코노텍스트의 그것과 견주고 있다.

글자의 비언어적 표현 유형에는 크게 ‘형태로서의 표현’과 ‘기능으로서의 표현’이 있는데 한자는 본래 상형문자로 물상의 형태에서 따온 기표가 사회적 약속에 의해 하나의 기의로 굳혀지게 된 것이다. 언어의 사회적 약속이란 측면에서 최근 인터넷 통신을 통해 광범위하게 쓰이는 이모티콘 역시 대단히 단순화된 도상 기호라 할 수 있겠다. 지금은 ‘후기문자(post-literal)’ 시대이다. 단적인 예로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등도 날이 갈수록 아이콘으로 만들어진 ‘그림언어’가 복잡한 명령어를 대신하도록 계발되어지고 있음을 들 수 있다.

사실 박연철 작가는 『피노키오는 왜 엄펑소니를 꿀꺽했을까?』 이전에도 그림이 문자가 되고 문자가 그림이 되는 다양한 아이코노텍스트 사례를 시험해 왔다. 가령 『어처구니 이야기』의 속표지에서 고의적으로 글자를 뒤집어서 씀으로써 ‘어처구니없다’는 의미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려 한 점이나, 바위를 그린 그림에 목판으로 찍은 ‘바위’라는 글자를 새겨 넣은 장면이 그렇고,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에서 ‘스르륵 스르륵’의 문자 표현도 떨림이 느껴지는 글자체로 써 넣음으로써 주인공의 감정을 문자의 형태만으로도 감지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피노키오는 왜 엄펑소니를 꿀꺽했을까?』에서는 우리 전래의 「문자도」에서 사용된 그림문자 이외에도 일상 속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다양한 표의문자와 약호화된 도상 기호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를테면 응급처치를 가리키는 빨간 십자가, 비상구 위치 표시 지시선, 기타 등등. 자, 이제 모든 이야기를 끝낸 히치콕은 약속대로 엄펑소니를 독자들에게 건네줘야 하는데, 피노키오가 꿀꺽 삼켜 버렸다고 한다. 난감한가? 아직 난감한 감정을 느끼기에는 조금 이르다. 한 장 넘겨 피노키오의 몸통 부분을 자세히 보자. 히치콕의 주문대로 한쪽 눈을 감고 아무리 책을 기울여 봐도, 내 눈에는 붉은 바코드에 숨겨 있는 글자들이 보이지 않는다. 매우 난감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요란한 글씨들 - 『냄새 고약한 치즈맨과 멍청한 이야기들』

1993년 칼데콧 아너는 내가 알고 있는 가장 괴이쩍은 제목의 그림책에게 주어졌다. 영문으로 된 원제목 The Stinky Cheese Man and Other Fairly Stupid Tales를 우리말로 살린 번역본 제목도 『냄새 고약한 치즈맨과 멍청한 이야기들』로 매우 길고 황당하다. 이 그림책은 표지부터 녹색과 붉은색의 알파벳으로 가득 차 있다. 글씨의 크기도 서체도 일정하지가 않고, 혹시나 싶어서 뒷표지를 보면 어처구니없는 심정이 되고 만다. 그림책이 분명한데도, 앞뒤 표지가 글자로 뒤덮여 있는 것부터가 범상치 않다. 그렇다면 내지는 어떨까 하는 궁금증으로 속표지를 본 독자는 헛웃음을 짓기 십상이다. 누군들 제목이 적혀 있기 마련인 속표지 장인지 모를까마는 이 엉뚱한 두 작가는 여백도 남김없이 잔뜩 키운 글씨로 이 장이 제목에 할애된 장이란 사실을 친절하게 알려 주고 있다. 그런데 더 기가 찬 노릇은 다음 장에서도 이어진다. 통상적으로 24쪽 안팎의 지면으로 구성된 그림책에 ‘서문’이 필요할까마는 이 책에는 버젓이 노란 띠지를 상단 한가운데 두고 그곳에 ‘서문’이라는 친절한 안내 글자를 박아두고 있다. 그 뿐인가? 책이 파본은 분명 아니건만, 서문 옆에 있는 헌정사는 박연철의 『어처구니 이야기』의 속표지 글자가 그랬듯이 위아래가 뒤집혀 있다.

그 내용은 ‘그래 나도 쪽이 뒤집혔다는 것쯤 알아. 일부러 그런거야. 누가 이런 글을 거들떠보기나 하겠어?’라는 주인공 잭의 대사이다. 하지만 이 눙치는 작가들은 이미 이렇게 뒤집어 놓으면, 헌정사 따위는 주의 깊게 보지 않는 독자들이라도 이게 뭔가 싶어서도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임을 알고 있다. 이 그림책은 재치 넘치는 존 셰스카의 글과 기발한 상상력이 빛나는 레인 스미스의 그림을 대조해 보는 즐거움도 주고 있지만, 이렇게 멋지고 새로운 그림책에서 다양한 문자의 형태와 크기와 배열상의 기울기 등을 시험해 볼 수 있기까지 들인 편집자의 공도 무시할 수는 없을 듯싶다.

이 그림책에는 거인이 작은 잭을 손에 쥐고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면, 뼈를 갈아 빵으로 만들어 먹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동일한 문장이 계속 반복되고 있고, 페이지의 아래쪽에는 아예 여백도 없다는 점이다. 이 여백 없음은 아무래도 화자인 잭이 거인에게 끊임없이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유추해석하게 만드는데, 깨알만큼 작아진 글씨체는 지루해진 거인이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태도를 대신하고 있거나, 쉴 새 없이 떠드는 잭으로부터 실제 멀어지고 있는 거리감을 표현하는 것으로도 생각해 보게 된다. 아무쪼록 그림책의 구성 요소 중 하나인 글자가 지면 밖으로 이어지고 있는 이와 같은 새로운 시도는 그림책 공간을 확장해서 상상해보게 하는 색다른 방법임이 분명하다. 다른 그림을 보자. 오븐 뚜껑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은 오븐 속에서 나온 냄새에 질식하고 바닥으로 쓰러져 버리는데, 그 냄새가 어찌나 지독한지 글자들마저 비틀거린다. 그 비틀거리는 글자들과 오븐에서 튀어나와 달아나고 있는 치즈 머리 남자의 머리통 부분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냄새를 그려낸 구불구불한 굵은 선들이 재미나게 조응하고 있다.

그림책은 문자 텍스트와 그림 텍스트로 구성되어 있지만, 디자인에 대한 이해나 연구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지금까지 간단하게나마 그림책에서 ‘그림 = 이미지’이고 ‘글 = 문자’로 통용되던 관습을 깨고자 하는 시도를 살펴보았다. 그림책을 읽는 행위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읽고 어떻게 읽는 것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최근 들어 다시 손 글씨 쓰기가 유행하고 있다. 손글씨에는 글씨를 쓰는 사람의 미적 감각이 배어나는 바, 단순히 의미 전달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서예 또는 캘리그래피와 마찬가지로 손 글씨로 쓰인 문자는 단순히 글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정보를 담고 있는 시각적인 이미지이기도 하다. 바야흐로 그림책에서의 문자 텍스트를 미학적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뜰 때가 온 것이다.
김영욱 | 서울에서 태어나 교육학과 영문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아동문학과 문화콘텐츠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월간 『어린이와 문학』 편집부에서 일했고, 어린이책 기고가로 활동했습니다. 지은 책으로 동화 『책벌레 대소동』, 에세이 『그림책, 음악을 만나다』가 있고, 옮긴 책으로 『우리는 핀볼이 아니다』 『알 카포네의 수상한 빨래방』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