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01월 통권 제170호
속 깊은 책 이야기
책 너머 세상 읽기
더불어 책 읽기
열린어린이 선정 이달의 좋은 책
겨울 방학 권장 도서
열린어린이 서평
주목 받는 새 책
열린어린이가 권하는
이 달의 책

속 깊은 책 이야기

[어린이 책 깊이 들여다보기]
동시 장인(匠人)의 열 번째 동시집

김현욱 | 2017년 01월

숫자 10의 의미

숫자마다 의미가 있다. 그중에 10은 각별한 숫자다. 숫자 10은 십진법의 전환점이 되는 숫자이다. 1+2+3+4는 10이 된다. 이때 1은 점, 2는 선, 3은 면, 4는 공간을 뜻한다. 10은 완전수로 1로의 회귀를 상징한다. 10은 양손의 열 손가락을 기초로 나온 숫자이며, 모든 계산의 기본이면서 ‘완성’을 의미한다.

그리스 영웅 오디세우스는 9년간의 방랑을 끝내고 10년째 고국으로 돌아온다. 트로이는 9년간 포위를 견디다 10년째에 함락되었다. 10은 여행의 완성이면서 동시에 처음으로의 회귀를 뜻하는 것이다. 중국에서 숫자 10은 滿(찰 만)을 의미한다. 목표를 달성한다는 뜻이다.

한국 아동문학에서 동시인하면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권오삼 시인이 열 번째 동시집을 냈다. 완성이면서 동시에 처음으로의 회귀를 뜻하는 열 번째 동시집이다.

권오삼 시인은 1943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1975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오월」이, 1976년 소년중앙문학상에 「그네 타는 아이」가 각각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권오삼 시인의 1975년, 1976년 등단작을 찾느라 손품을 팔았다. 여기서 잠시 권오삼 시인의 등단작을 감상해 보자.

오월

오월의 햇살은
곰실곰실
용마루에서 피어오르다,
기왓골을 타고
눈 따가운 빗물로
곤두박질치며 좌르르 쏟아져 내리다,
훌쩍, 나뭇잎 푸른, 푸른 몸매로 앉아
바람에 장단 맞춰 일렁이며 몸짓하다가
어느새, 산마다 들마다
아, 미친 듯 마구 불을 질러
활활 타오르는 푸른 불길.
이제 푸른 불길은
그림을 그리는
아이의 눈 속에서도, 손끝에서도
마구 일고 있다.
(월간문학 1975)

그네타는 아이

두 손으로
꼬옥
그넷줄을 잡고
발판에 힘을 주어
바람을 차면
그네는
바람 안은 연
쑤욱
공중으로 솟아올라
푸른 하늘이 다가들고
담장 너머 집들이
언뜻
눈 아래 선다.
올라가면 내려오고
내려가면 올라가고
아이는
한 마리 힘찬 제비
팽팽한 그넷줄을
당길 때마다
바람이 와 걸려
바람을 차며
쑤욱 쑥
하늘을 오른다.
휘익 휙
하늘을 난다.
(소년중앙 1976)

권오삼 시인이 40년 전에 쓴 등단작을 굳이 소개한 까닭은 열 번째 동시집이 현재에 갖는 각별한 의미 때문이다. 완성이면서 동시에 처음으로의 회귀를 뜻하는 숫자 10인 만큼 자신의 이름을 걸고 세상에 처음으로 발표한 동시와 오늘날의 동시를 비교해 보는 것도 충분히 값어치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동시 「오월」은 생생한 이미지가 돋보인다. 오월의 눈부신 햇살을 빗물과 몸짓과 불길로 강렬하게 형상화했다. 동시 「그네 타는 아이」는 어디 한군데 걸리는 데가 없이 리드미컬하게 읽히면서도, 그네를 ‘바람 안은 연’, 그네 타는 아이를 ‘한 마리 힘찬 제비’로 적절하게 비유했다. 두 편 모두 훗날 동시 장인으로서 삶을 예고한 등단작이다.

나는 2000년대의 신인이고, 문학청년이다

2016년 현재까지 권오삼 시인이 낸 동시집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강아지풀』(교음사, 1983)
2. 『가시철조망』(큰나무출판사, 1995)
3. 『물도 꿈을 꾼다』(지식산업사, 1998)
4. 『고양이가 내 뱃속에서』(사계절, 2001)
5. 『도토리나무가 부르는 슬픈 노래』(창비, 2001)
6. 『아낌없이 주는 나무들』(지식산업사, 2007)
7. 『똥 찾아가세요』(문학동네, 2009)
8. 『진짜랑 깨』(창비, 2011)
9. 『라면 맛있게 먹는 법』(문학동네, 2015)
10. 『나무들도 놀이를 한다』(열린어린이, 2016)

이번에 『나무들도 놀이를 한다』 동시집 서평을 쓰기 위해 권오삼 시인의 작품론이나 작가론을 구석구석 찾아보았다. 여느 동화 작가들을 연구한 논문이나 자료는 많았지만, 권오삼 시인을 연구한 자료는 턱없이 부족했다. 다행히 권오삼 시인의 삶과 문학을 조망할 수 있는 몇 편의 대담 자료가 있었는데, 흥미로운 대목이 많았다.

권오삼 시인은 2004년 어린이문학협의회 누리집에 “나는 2000년대의 신인이고, 문학청년이다.”라고 선언한다. 그전까지 다섯 권의 동시집을 냈으면서도 권오삼 시인은, “나는 문학 공부를 아주 많이 해야 하는 사람이고, 문학청년이 가지는 열정이라든가 순수성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사실 지금도 시를 쓰면서 시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고백한다.

권오삼 시인은 70년대에는 초등학교 교사로, 80년대에는 자영업으로, 90년대 후반부터는 사업을 접고 동시 쓰기에 전념했는데, 그의 시세계를 2000년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는 것은 동시의 형식과 내용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치열하게 고민하고 탐구하고 실험했던 시기가 바로 그때였기 때문이다.

2001년에 출간한 동시집 『고양이가 내 뱃속에서』에 들어 있는 동시를 한 편 감상해 보자.

어, 어
나뭇잎에 떨어졌네!

어, 어
전깃줄에 걸렸네!

그럼
어디 한번
매달려 볼까?

대롱대롱대롱

아이고
힘 빠졌다
톡-.

「빗방울 1」 전문

제12회 방정환 문학상 수상작 중의 한 편인 「빗방울 1」은 참신하고 감각적인 표현으로 이전의 시에서 종종 보였던 과도한 시인의 목소리(메시지)가 주는 중압감에서 멀리 벗어나 있다. 어느 대담에서 권오삼 시인은 자신에게나 아동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나 중요한 말을 남긴다. 「빗방울 1」을 비롯하여 2000년 이후, 권오삼 시인의 순수하고 재미있는 동시가 어떻게 쓰였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가 ‘동시란 무엇이냐’고 할 때, 첫째는 어린이의 눈과 마음으로 사물이나 세계를 본다는 것이고, 둘째는 어린이의 마음, 감정, 생활 세계를 표현한다는 것이고, 셋째는 시인이 어린이를 위해서 준다, 라고 이렇게 세 가지로 규정할 수 있는데, 이제까지 나는 ‘시인이 어린이에게 주는’ 그런 쪽의 시를 썼다는 것이지요. ‘준다’는 것은 곧 시인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어린이에게 준다’는 것을 빼 버리고 ‘어린이의 눈과 마음으로 세계를 보자’ 하면 또 달라진단 말이에요. 어린이의 눈과 마음으로 사물이나 사건, 현상을 보자는 거지요. 이렇게 되면 모든 게 달라진다는 거지요. 어린이의 눈과 마음으로 사물을 보려고 하니까 어린이 마음을 갖게 됐어요. 순수한 마음으로 사물을 보는 눈을 갖게 된 셈이지요.

언젠가는 어른이 될 아이들에게 바치는 동시집

권오삼 시인의 열 번째 동시집 『나무들도 놀이를 한다』에도 「빗방울 살려」라는 동시가 실려 있다. 「빗방울 1」과 비교하면서 읽어 보는 것도 재미있다.

어이쿠! 야단났네!

어! 어어! 어어!

솔잎 가파른 길을 정신없이 쭈르르
미끄러지던 빗방울

앗! 낭떠러지다!

빗방울 살려!

솔잎 끝에 대롱대롱-

「빗방울 살려」 전문

동시집 『나무들도 놀이를 한다』 서문에 권오삼 시인은 “언젠가는 어른이 될 아이들에게, 예전에는 아이였던 어른들에게, 또 한 권의 동시집을 바칩니다.”라고 썼다. 40년 동안 권오삼 시인은 동시 외길만을 걸어 이제 한국 동시문학의 장인(匠人)이 되었다. 이번 동시집에도 동시 장인으로서의 기품과 순수한 동심으로서의 시세계를 잘 담아냈다.

부슬부슬
찬비 내리는
산책길 쉼터 긴 의자에
버려진 강아지처럼
쓰러져 누워 있는
빈 페트병
옆에는
빨대 물고 고양이처럼
오도카니 앉아 있는
빨간 우유 팩 하나

「말로 그리는 그림 2 - 빈 페트병과 우유 팩」 전문

「말로 그리는 그림」 연작시 중에 두 번째 작품이다. ‘시는 말로 그림을 그리는 놀이’라는 이재복 아동문학평론가의 해설처럼 권오삼 시인의 동시는 말이 말처럼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손에 잡힐 듯 선명한 이미지를 보여 준다. ‘빨대 물고 고양이처럼/ 오도카니 앉아 있는/ 빨간 우유 팩 하나’가 특히 돋보인다.

내 크레파스 중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색은 파란색
키가 제일 작다

내가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다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전문

문학을 문학이게 하는 가장 중요한 특성 중의 하나가 바로 ‘형상화’다. 사랑, 믿음, 희망, 정직, 순수, 동심과 같은 것들은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귀에 들리지도 않는다. 이걸 ‘관념적이다’라고 한다. 눈에 보이게, 손에 잡히게, 귀에 들리게 쓰고 그리고 만드는 것이 문학이고 예술이다.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을 눈에 보이도록 생생하게 표현했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아 작아진 파란색 크레파스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기서 뭔가가 떠오른다. 부모님이든 할머니든 친구든 선생님이든 감사한 누군가가 떠오를 것이다. 말하지 않고 말하기도 문학의 중요한 특성이다.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는 몇 줄 짧은 구절로 참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동시이다.

사람들만 놀이를 하는 게 아냐
나무들도 놀이를 한다

그림자 길게 뻗어
누가 땅 많이 차지하나
땅 차지하기 놀이

낮에도 하고
밤에도 한다

달빛에서도 하고
가로등 불빛에서도 한다

이기는 쪽은 늘
키 큰 나무들

「나무들도 놀이를 한다」 전문

권오삼 시인의 열 번째 동시집 『나무들도 놀이를 한다』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어떤 대단한 메시지나 주제 의식이 아니다. 숫자 10이 갖는 각별한 의미를 시인 스스로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이 분명하다. 마치 ‘그까짓 게 뭐라고! 흥! 나는 동시랑 앞으로도 신나게 놀래!’ 하면서 말이다.

내가 아는 권오삼 시인은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동문학 판의 젊은 후배들을 지극히 아끼는 분이다. 권오삼 시인이 운영하는 다음 카페 ‘동시사랑 동시마을’은 그야말로 동시문학의 보물 창고다. 칠순의 연세에도 치열한 시정신과 동심으로 직접 가닿고자 하는 노력은 후배들에게 많은 귀감이 된다. 모쪼록 권오삼 시인이 건강을 잘 챙겨서 한국 동시문학의 장인으로서 어른으로서 오래오래 남아 주시길 고대해 본다.
김현욱 | 2007년 진주신문 가을문예에 시가, 2010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었습니다. 해양문학상, MBC창작동화대상, 서울문화재단 창작기금을 받았으며 시집 『보이저 씨』, 동시집 『지각 중계석』, 동화집 『도서관 길고양이』(공저) 등을 냈습니다. 현재 포항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