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통권 제168호
속 깊은 책 이야기
책 너머 세상 읽기
더불어 책 읽기
열린어린이 선정 이달의 좋은 책
열린어린이 서평
주목 받는 새 책
열린어린이가 권하는
이 달의 책

더불어 책 읽기

[즐거운 책 읽기 신나는 교실]
‘엄마 사용 설명서’라구?

지수연 | 2016년 11월

제목부터 재미있었나 보다. 표지를 보여 주자마자 아이들은 웃기 시작했다. 뭔가 음모를 꾸미고 있는 듯 씨익 웃고 있는 남자아이의 얼굴 아래에 쓰인 ‘엄마 사용 설명서’ 1.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는 방법 2. ‘공부, 공부!’라고 말하지 않게 하는 방법 3. ‘빨리 해’라고 말하지 않게 하는 방법!

겨우 세 줄 읽었는데, 아이들이 웅성거린다. “전 먹고 싶지 않은 걸 안 먹는 방법이 필요해요.” “난 밥을 빨리 먹으라고 하지 않게 하는 방법이요.” “난 동생 사용 설명서가 필요해요. 동생이 까불지 않게 하는 방법.” “난 언니가 나한테 화 좀 안냈으면 좋겠어.” ‘그러냐, 난 너희들이 한꺼번에 말하지 않고 말 차례를 지키게 하는 방법, 복도에서 걸어 다니게 하는 방법 뭐 그런 거 필요하다.’ 속으로 말하면서 읽어 나갔다.

“우리 집에서 가장 큰소리를 치는 사람은 엄마입니다. 아빠보다 훨씬 무섭고, 큰소리 땅땅 칩니다. 오늘도 아침부터 얼마나 꽥꽥 잔소리를 늘어놓던지, 나는 화가 났습니다.” 아이들이 크게 웃었다. “나도 어제 엄마 때문에 화났었어. 엄마가 나보고 미친 ××래.” 큰 소리로 민기가 말했다. 민기는 공부하기 너무 힘들다면서 비비 꼬고, 의자에 다리를 올렸다 내렸다 부산을 떨다가 결국엔 교실 구석 매트에 엎드려서 수업을 하기도 한다. 기대하는 4학년의 모습은 아니지만 그래도 곧 자기를 다스리는 방법을 배울 거라 믿고 기다리게 만드는 녀석이다. 솔직하지만 악의는 없고, 친구들이 힘들 때면 마음으로 이해하는 민기와 이야기하다 보면 웃음이 난다.

“야, 넌 또 뭔 사고를 친 거냐?” “오죽했으면 엄마가 그러셨겠냐?” 우리 반 아이들은 민기 엄마 편을 든다. 민기도 뭐 찔리는 게 있는지 머쓱한 웃음을 짓는다. 그렇게 민기 엄마 편을 들던 녀석들이 이내 가족에게 들었던 욕을 이르느라 시끄러워졌다.

아이들은 엄마들이 알면 기겁을 하고 민망해 할 가족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한다. 그래서 담임 교사들은 본의 아니게 부모님들의 맨얼굴을 보게 된다. 그걸 뻔히 아는지라 나 역시 아들 담임 선생님의 의미심장한 웃음에 등골이 서늘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상담 시간에 만난 부모님과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부모님 모습이 너무 다를 땐 아이와 부모님을 번갈아 떠올리며 어떻게 대화를 이어나갈지 고민이 된 적도 있다. 지금껏 아빠가 책 읽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든지, 아빠가 사고를 치고 돈이 없어서 엄마에게 꼼짝도 못한다든지, 엄마가 친구 만나 술 마시고 엄청 늦게 들어와서 엄마랑 아빠랑 이혼하면 어떡하나 걱정하면서 울었다든지…. 공개된 지면에 실을 수 없는 그런 이야기도 한다. 벌써 가슴이 봉긋해져서 속옷을 입네 마네, 승강이를 해야 하는 4학년인데도 속없이 다 말한다.


어쨌든 아이들은 아침부터 야단맞고 분해서 쓴 데쓰야의 글이 재미있단다. 고소하다고도 한다. 이어지는 데쓰야 가족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에 아이들은 금세 빠져들었다. “그럼, 한 캔 더 마시고 목욕할까?” 하면서 일어나 흘끔 엄마 눈치를 살피는 데쓰야의 아빠. 집집마다 사정이 다른데도 아이들은 이런 가족 구도가 익숙하다. 집안의 실질적 대장이자 잔소리 대마왕 엄마, 엄마에게 꼼짝도 못하는 아빠. 형편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매체 때문에 익숙해진 가족의 모습이다. 수업 공개를 하는 모습이며, 뭔가 다른 메뉴를 기대하는 아침 식탁의 풍경, 심지어 사용 설명서들이 어지러이 들어 있는 거실 서랍장까지도 별 다르지 않아 다른 외국의 동화를 읽을 때처럼 낯설지 않다. 짱구네 가족을 마르고 닳도록 보면서 큰 아이들인지라 일본의 형편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매실 장아찌가 들어 있는 주먹밥을 먹어 보지는 않았지만 그게 김에 싸 먹는 밥 정도 되는 거라고 서로 설명해 준다.

데쓰야는 아빠가 조언한 대로 누구나 그걸 읽으면 조작할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도록 일명 ‘엄사설’, ‘엄마 사용 설명서’를 쓰기로 한다. 각 부분 명칭, 각종 기능, 사용 방법. 이런 것들을 자세히 쓰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엄마의 생활을 자세히 떠올리게 되고, 데쓰야는 조금씩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이제 막 자기중심적인 세계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는 3, 4학년 아이에게 엄마의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라는 건 무리이다. 어른들이 꾸중할 때 아이에게 하는 말은 삼분의 일도 가닿지 않는다. 혹시나 하고 확인해 보지만 어른스러워 보이는 아이조차도 예외가 아니다. 언제 어떤 일을 겪어야 마음이 자라 다른 이의 마음과 상황을 읽을 수 있게 될까.

데쓰야가 찾은 엄마 사용 방법은 실은 누구에게나 통하는 방법이다. 먹고 싶은 것을 먹으려면 엄마의 음식을 무조건 칭찬하고, 친구 엄마 음식과 비교하며 엄마를 치켜세운다느니, 늦잠 잤을 땐 셔츠를 돌려 입거나 뒤집어 입고 서두르는 모습을 보여 주면 잔소리를 듣지 않는다느니. 아이들은 이런 데쓰야의 방법이 추가될 때마다 공책에 써야겠다는 둥 외워야겠다는 둥 좋은 정보를 얻었다면서 반가워했다. 만날 뭘 잊어버리고 와서 ‘블랙홀’이라고 불리는 윤수는 손가락을 꼽으면서 그 방법을 외우기도 했다. 내가 ‘블랙홀’이라고 부르기까지 하는데, 엄마한테는 오죽 많은 잔소리를 들었겠나 싶어 웃음이 나왔다.

데쓰야의 친구인 가즈도 엄마 사용 설명서를 만들게 된다. 엄마와 떨어지지 못해 힘들었다던 가즈의 사연이 나오자 엄마와 떨어질 때 울었던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의 기억은 꽤나 구체적이었다. 통학 버스를 타며 엉엉 울었던 유진, 낮잠 시간에 잠들려는데 엄마 생각이 갑자기 나서 울었던 지수, 교실 앞에서 서성이던 일학년 초 집에 가고 싶었던 마음도 떠오른다고 했다. 이 책의 장점은 장면마다 아이들이 공감하기 쉽다는 데 있다. 아이들은 가즈의 상황에도 쉽게 공감했다. 어릴 때처럼 시시콜콜 챙겨 주는 엄마가 이젠 갑갑하게 느껴지는 가즈의 마음도 이해가 된단다.

나는 몹시 안타깝고, 가슴이 아파서 잠자코 쓰레기통에 버려진 걸레를 꺼냈다.
이제 4학년이나 됐으니 엄마한테 어린애 취급받고 싶지 않을 거다. 친구 앞에서는 더욱 그럴 거다. 그런 가즈 마음은 이해한다. 가즈 이해해.
하지만 가즈 엄마는 가즈를 생각해서 일부러 학교에 가져다준 거다. 그런 엄마 마음도…….
심장이 쿵 하고 울렸다.
엄마 마음, 엄마 마음?
나 역시 엄마 마음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89~90쪽)

아이들은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뭔가 신나게 전개되던 이야기가 여기서 멈추자 생각이 많은가 보다. 데쓰야가 왜 이러는 걸까 묻는 내 말 뒤에 아이들이 웅성웅성.

“야, 좀 아닌 것 같지 않냐?”
“이건 사람을 이용하는 거잖아.”
“그래, 원래 제목부터 사용 설명서였잖아. 이제 와서 뭘 또?”
“그래도 심한 것 같아. 사람을 조종하는 건 좀 그래.”
“그래도 반항하고 화내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엄마도 그게 나을 텐데.”

내내 별 말 없이 듣기만 했던 재인이는 속내를 일기에 썼다. 재인이는 항암 치료 후 돌아온 엄마를 위해 이부자리도 챙기고, 약 드실 시간도 챙기는 살뜰한 아들이다. 타고난 성향이 바른 생활 사나이인 데다 부당한 일이나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바로 말하는 편이어서 여자아이들에게는 까칠한 아이로 정평이 나 있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할 때면 더없이 살가운 아들인 재인이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엄사설은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엄마를 이용하는 것 자체가 안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를 키워 주신 부모님인데 컸다고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다. 엄마가 그 모든 것을 알아 버리면 ‘지금까지 한 칭찬은 날 이용하기 위한 것들이었군.’ 이렇게 생각하면서 슬퍼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엄사설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이 년째 만나고 있는데도 속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겠고, 엄마도 모르겠다고 하는 혜원이는 이렇게 썼다.

난 엄마 사용 설명서는 얼마든지 써도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엄마 사용 설명서를 쓰게 한 사람이 엄마이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그 정도는 아니다.) 어차피 엄마가 하고, 엄마가 당하는 거니까 별로 상관없다. 그렇지만 어쨌든 데쓰야가 정신을 차리는 것 같아 다행이다.

그 뒤로 데쓰야는 엄마를 재발견하게 되고, 가족들을 다루는 데는 데쓰야 엄마가 한 수 위였음을 알게 된다. 나는 데쓰야가 엄마 마음을 신경 쓰게 되는 딱 거기까지만 읽어 주었다. 읽어 주고 싶은 좋은 책이 많고, 이쯤까지 읽어 주면 자연스럽게 찾아서들 읽는 아이들인지라 ‘마지막엔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이럴 줄은 몰랐다, 반전이 두 번 있는데 마지막은 소~름’이러면서 감질나게 약만 올렸다. 그리고 나서 목 아프게 짬 내어 며칠 동안 읽어 주었으니 너희들도 뭔가 내게 이야기를 해 줘야 하지 않겠느냐며 대가를 요구했다.

“책 속의 인상 깊은 엄마나 아빠에 대해 소개하기로 하자. 읽은 책 속에 나오는 부모 중에서 정말 상냥하고 좋아서, 또는 너무 악독하고 이해할 수 없어서, 가엾어서, 존경스러워서, 등등 어쨌든 인상 깊은 부모가 나오는 책을 가져오면 돼. 그동안 읽었던 책에서 골라도 되고, 아님 새로 만난 책에서 골라도 되고.”

글을 시작하면서 우리 반 아이들이 ‘착한 어린이 콤플렉스’에 걸린 건 아닐까 의심하면서 아이들이 과연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일상에서 있음직한 일들과 자신들과 닮은 주인공의 마음이 잘 그려져 있어 아이들이 자기 경험을 꺼내기에 좋았다. 하지만 가족의 모습과 전개가 너무 익숙해서 아슬아슬한 상황도, 너무했다 싶을 만한 사건도, 읽는 동안 조마조마하거나 거북한 마음의 동요도 없어서 나는 좀 싱거웠다. 그래도 아이들은 자신들의 엄마를 떠올리면서 읽었고, 다른 책으로 건너가는 책으로는 손색없었다.

지금 욕심으로는 이런 엄마 말고, 문제적 엄마들도 좀 만났으면 좋겠다. 서로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하는 가족 관계가 그려지는 해피엔딩도 좋지만 좀 다른 책들,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책도 만났으면 싶다. 아이들은 어떤 엄마를 찾아올까? 미디어가 획일화시켜 놓은 가족의 형태를 벗어난 다양한 가족, 다양한 처지에 놓인 부모, 신화화된 부모의 유형을 벗어난 다양한 부모를 찾아왔으면 좋겠다. 마침 사회 시간에 성 역할, 다문화, 다양성 존중에 대해 배우고 있어서 아이들이 들려줄 이야기는 교과와 삶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재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내 숙제도 생겼다. 열 세 명의 아이들과 2년째 지내면서 속속들이 알게 된 것들을 되돌아보면서 아이들이 부모에 대해 양가적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걸 새삼 발견했다. 당연하게도 아빠, 엄마가 너무 미울 때가 있지만 미움과 함께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 그래서 부모가 된통 당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 놓고 통쾌해 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아이들에겐 옛이야기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마음 놓고 미워할 수 있고, 원망할 수 있고 통쾌하게 벌을 줄 수 있는 이야기!
지수연 | 한 학년이 한 반 밖에 없는 작은 학교에서 열 세 명의 아이들과 살고 있는 아줌마 선생님입니다. 혼자 책 읽는 시간이 참 좋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책 읽어 주는 것도 그만큼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