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통권 제1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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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로 전하는 음악 세계]
인상주의 음악과 드뷔시

박은경 | 2016년 11월

프랑스 파리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박물관 투어지요. 그중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과 함께 제게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이었습니다. 책갈피로도 많이 사용되던 모네의 수련 작품들이 방 전체에 전시되어 있더군요. 또한 미술책에 항상 등장하던 그림 「인상, 해돋이」를 가까이서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지요.

모네의 「인상, 해돋이」는 ‘인상파’라는 명칭을 만들어 낸 중요한 작품입니다. 최초의 인상파 전시를 준비하던 동료들은 모네에게 이 작품의 제목을 물어보았습니다. 작품의 제목을 아직 정하지 못했던 모네가 머릿속에 떠오른 대로 말해 준 것이 ‘인상’이었지요. 전시회를 찾은 비평가는 이 그림의 제목을 보고 비꼬며 “날로 먹은 장인 정신의 자유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인상주의자들의 전시회’라는 조롱조의 별칭을 붙였습니다. 하지만 인상주의자들은 이 명칭을 마음에 들어했으며, 이렇게 해서 ‘인상파’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인상, 해돋이」를 보며 저는 드뷔시의 피아노 음악 「달빛」이 떠올랐습니다. 푸른 바다 위로 솟아오르는 붉은 해와 부드러운 달빛의 잔잔한 멜로디를 감상했습니다. 은은하게 퍼지는 빛과 희미하면서도 세련된 색채의 「인상, 해돋이」에 은근하면서도 몽환적인 드뷔시의 화성과 선율이 겹쳐지고 교차되면서 그림 앞을 뜰 수가 없었습니다.

드뷔시의 「달빛」은 영화 「그린 파파야 향기」의 배경 음악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린 파파야 향기」는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영화로 칸 영화제 황금 카메라상을 받았지요. 배경은 50년대 베트남 사이공이지만 영화에 스민 감각은 지극히 프랑스적입니다. 프랑스에서 공부한 감독이, 프랑스에 세트를 차려 놓고 찍었다고 해요. 여주인공 무이가 그린 파파야를 요리할 때, 금빛 샌들을 발끝으로 살짝 건드릴 때, 바닥에 떨어진 빨간 립스틱을 주울 때 간간이 흐르지요. 가벼운 터치의 드뷔시 음악은 그린 파파야 향기처럼 산뜻하고 화사하게 울립니다.

인상주의란 1880년경부터 세기 말까지 흥했던 프랑스 미술학파를 일컫는 말이지만, 음악에 적용된 인상주의를 정의하자면 작곡의 한 양식으로서 풍부하고 다양한 음색과 화성으로 분위기를 불러일으켜 묘사하는 듯한 인상을 만드는 악파를 말합니다. 그 대표 음악가가 드뷔시입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어두침침한 아틀리에를 박차고 나가 밝은 야외로 나갔습니다. 빛의 변화에 따른 자연의 미묘한 변화를 캔버스에 옮겨 놓았죠. 인상주의 화가들이 빛이 빚어내는 색의 향연을 펼쳤던 것처럼, 드뷔시도 자연과 여러 사물을 음으로 그려 내며 다양한 음악적 색채를 뽐내었지요. 이를 위해서 그는 자신만의 새로운 화성어법을 창조해 내지요. 드뷔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음악을 열렬하게 사랑한다. 사랑하는 까닭에 나는 그것을 숨막히는 전통으로부터 해방시키려 한다. 그것은 용솟음쳐 오르는 자유의 예술이며 하늘과 바다, 바람과 같이 무한한 것들의 예술이다. 내가 원하는 음악은 영혼의 서정적 발로와 꿈의 환상에 충분히 순응할 수 있는 유연한 것이어야 한다.

드뷔시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모든 음들이 땅에 뿌리내리지 않고 마치 대기 속을 헤엄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이것은 그동안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었던 기존 음의 질서로부터 드뷔시의 음악이 상당히 벗어나 있기 때문이지요. 그는 온음 음계라는 새로운 음계를 사용했습니다. 1옥타브를 6개의 온음으로 등분한 음계로 6온음 음계라고도 합니다. 그는 이러한 새로운 화성 때문에 파리 음악원 재학 시절에는 교수로부터 엉뚱한 학생이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습니다.

드뷔시는 1862년 8월 22일 파리와 가까운 작은 전원 도시, 생제르맹앙레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중국 등 아시아의 도자기를 주로 취급하는 도자기상이었습니다. 여덟 살 때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 베를렌의 숙모로부터 정식으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드뷔시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그를 프랑스 최고 음악 교육 기관인 파리 음악원에 입학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하지만 드뷔시는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지요. 화성학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새로운 화음을 만들어 교수들을 당황하게 했습니다. 그가 제멋대로 만들어 낸 이상야릇한 화음들을 본 교수가 “자네는 도대체 무슨 법칙을 지키나?”라고 물었더니, ”아, 제 자신의 즐거움 외에는 아무 것도 지키는 법칙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22세 때인 1884년 로마 대상을 받아 로마로 유학을 갔으나 유학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한 채 파리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파리에 돌아온 드뷔시는 함께 예술을 논할 수 있는 젊은 예술가들과 점차 친분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드뷔시는 상징파 시인 말라르메의 집에서 열린 ‘화요회’에 참가해 인상파 화가, 상징파 문인들과 교류했습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말라르메, 보들레르, 베를렌 등과 같은 시인들에 의해 상징주의 문학 운동이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상징주의 시인들은 낭만파 시인들과 같이 감정이나 사상을 그대로 표현하지 않고 영상과 음악으로 암시하는 시풍을 개척했습니다. 드뷔시는 언어의 여운, 혹은 언어의 음악성에 시의 모든 것을 걸었던 그들에게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던 중 마침내 1892년 말라르메의 시에 영감을 받아 만든 「목신의 오후 전주곡」을 신호탄으로 그는 새로운 예술 세계를 펼쳐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1889년에 드뷔시는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인도네시아의 합주 음악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 음악 형식의 자유로움, 리듬의 신선함, 타악기의 효과, 유럽 음악과 코드가 다른 선율과 울림의 매력 등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동양 음악을 접하고 신선한 매력에 사로잡힌 드뷔시는 그의 음악에 동양적 색채와 음향을 자주 등장시킵니다.

드뷔시는 자신에게 몰입하는 성격이었던 탓에 친구가 그리 많지 않았고 낭비벽도 있어 평생 쪼들리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가 비평가 일을 하게 되었던 것도 원고료 수입으로 조금이나마 가계에 보태려는 의도에서였습니다. 비평 능력이 탁월했고 예리한 통찰력을 지녔음이 인정되었기에 비평 활동이 흉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드뷔시를 위협하기 시작한 두 가지 일이 발생하고 말지요. 하나는 그의 건강을 해치는 병마가 서서히 다가왔고, 또 하나는 1914년에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이었습니다.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18년 3월 25일 밤에 드뷔시는 암으로 56년의 생애를 마감했습니다. 독일군의 포화 속에 파리 시가지를 동서로 가로질러야 했기에 그의 관을 뒤따르는 사람은 약 20명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드뷔시의 피아노 작품 중 『Estampes』가 있는데 이 제목은 ‘판화’라는 뜻입니다.

드뷔시의 『판화』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다. 세 곡으로 나눠지는데 처음이 「탑」, 두 번째가 「비의 정원」, 마지막이 「그라나다의 밤」이다. 각각 이국적인 정경이 인상파의 그림처럼 세밀하게 피아노의 선율로 그려진다. 아름다운 곡이니 꼭 들어보시길. 고등학교 때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라는 피아니스트의 음반으로 이 곡을 자주 들었다. 리히터는 냉전 시대의 소비에트 연방 사람으로 그때까지 서방에는 거의 모습을 보인 적 없는 환상의 피아니스트였는데, 1960년 전후 해외 연주를 나서기 시작해 이탈리아에서 라이브를 녹음했다. 이 『판화』도 그때의 연주인데 너무나도 훌륭하다. 터치가 강렬하면서도 지극히 섬세하며 게다가 뭔가 몽롱한 정념 같은 것이 밑바닥에 감돌고 있다. 한마디로 ‘소름 끼칠’ 정도라고 할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에 실린 「판화」 중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하루키의 글들을 읽다 보면 그의 엄청난 음악 지식과 감각적인 취향에 놀라게 되는데요. 하루키가 잘못 쓴 건지, 번역 오류인지 모르겠는데 『판화』의 두 번째가 「그라나다의 밤」, 세 번째가 「비의 정원」입니다. 피아노가 전공이다보니 이런 것이 눈에 잘 들어옵니다.

피아노 모음곡 『어린이 세계』는 드뷔시가 딸을 위해서 만든 곡입니다. 드뷔시는 첫 번째 부인과 이혼하고 두 번째 결혼 생활에서 처음으로 귀여운 딸 클로드 엠마를 낳았습니다. 딸은 슈슈라는 애칭으로 불렸습니다. 이 유명한 『어린이 세계』는 아버지인 드뷔시의 설명을 곁들여서 ‘소중하고 귀여운 슈슈에게’라는 헌사가 적혀 있습니다. 『어린이 세계』는 어른이 본 어린이의 세계가 아닌 어린이의 마음에 떠오른 어린이가 본 세계를 나타내고 있지요.

『영상』은 사물에 대한 이미지를 세련된 감각으로 펼쳐놓은 작품입니다. 제1권의 「물의 반영」 「라모를 찬양하며」 「움직임」과 제2권의 「잎새를 스치는 종소리」 「황폐한 사원에 걸린 달」 「금빛 물고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905년 9월 드뷔시가 제1집을 완성한 뒤에 출판업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곡은 슈만의 왼쪽, 쇼팽의 오른쪽에 자리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드뷔시가 두 선배 작곡가들과 어깨를 겨루겠다고 확신할 만큼 뛰어난 작품들이며 한마디로 영상미가 절절히 배어 있는 곡들이지요.

드뷔시 피아노 음악의 최고봉은 뭐니 뭐니 해도 『전주곡집』일 것입니다. 12곡씩 2권으로 나누어 출판했습니다. 각각의 곡들에는 곡의 시작이 아닌 끝에 묘사적 제목이 쓰여 있습니다. 먼저 음악을 통해 받은 인상을 제목으로 표현하게 만든 것입니다. 24개의 아름다운 음악을 듣다 보면 인상파 그림의 화보를 보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전주곡집』 제1권에서는 「아나카프리의 언덕」을 제일 좋아합니다. 아나카프리는 이탈리아 카프리 섬의 조그마한 마을입니다. 카프리 섬은 푸른 나무와 바다, 새하얀 마을과 로마 유적이 한데 어우러져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죠. 아나카프리 언덕에서 바라본 맑고 투명한 지중해 바다 그리고 그 바다 물결 위에 비치는 반짝이는 햇살 등을 드뷔시는 감각적으로 그려 내는 듯합니다. 제2권에서는 「불꽃」을 제일 좋아하지요. 이 곡은 드뷔시가 7월 중순 파리의 축제에서 하늘에 불꽃이 터지는 장면을 마음에 담아 두었다가 후에 「불꽃」이란 표제로 작곡한 곡입니다. 고난이도의 주법을 요하며 화려하게 진행되다가 프랑스의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가 멀리서 들리며 아쉽게 마무리 짓습니다.

매년 10월이면 여의도에서 ‘세계불꽃축제’가 열리는데요, 형형색색의 불꽃들이 장관을 이룹니다. 몇 년 전의 축제 때에는 불꽃에 은은한 달빛까지 더해져서 운치와 즐거움이 더해졌지요. 그 아름다운 기억을 저는 독주회에 담아 보았습니다. 2013년 예술의 전당 리사이틀홀에서 피아노 독주회를 가졌는데요.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쇼팽의 「프렐류드」를 연주하기 앞서 드뷔시의 「달빛」과 「불꽃」으로 프로그램을 시작하였습니다. 여의도 밤을 떠올리며 한 편의 인상주의 그림을 그리는 기분이었지요.

후기 인상주의 미술은 인상파에 속하거나 또는 그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차츰 그 영향에서 벗어나 개성적인 방향을 모색한 사람들의 경향을 가리키는데요. 세잔, 고흐, 고갱 등이 이에 속합니다. 일본 사람들 중에는 19세기 인상파 그림에 넋을 잃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사랑받는 화가는 빈센트 반 고흐이고요. 고흐가 활동하던 때 유럽에는 ‘우키요에’라는 일본의 풍속 판화가 대량으로 흘러들어 갔습니다. 중국 도자기에 이어 일본 도자기가 주목받게 됐는데, 이 도자기의 완충제이자 포장지로 쓰였던 것이죠. 우키요에에서 크게 영향을 받은 고흐는 작품 「탕기 영감의 초상」을 남깁니다. 일본의 화가 가츠시카의 우키요에 「카나가와의 큰 파도」는 드뷔시가 그의 교향적 스케치 『바다』를 만들도록 강렬한 자극을 주었습니다.

일본은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문화를 수입하여 일본 예술을 한 차원 발전시켰습니다. 바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뛰어난 에도 시대 문화 예술입니다. 일본 에도 시대에 서민 계층을 기반으로 발달한 풍속 판화가 우키요에입니다. 일본은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참가하게 되었으며 이후 유럽에 일본 예술이 퍼져 사랑을 받았습니다. 유럽에 온통 일본풍이 유행이 된 것이었지요. 고흐의 그림도, 드뷔시의 음악도 물들였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슬며시 이렇게도 적어 봅니다. 조선의 문화가 인상주의 미술과 음악에 영향을 주었다고요.
박은경 | 선화예고와 서울대학교 음대를 졸업하고, 독일 유학길에 올라 만하임 음대와 뷔르츠부르그 음대를 졸업하였습니다. 조선일보사 우수 신인 데뷔 연주회, 헨델 서거 250주년 기념 음악회, FM 93.1 KBS 음악실 등에 출연하였으며, 현재는 순천대, 백석콘서바토리와 계원예고에 출강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