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06월 통권 제1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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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의 동화 비평 교실]
가만히만 있으면, 세상은 평화롭지 않다

허수지 | 2016년 06월

아이라면 누구나 그저 놀기만 하는 곳을 상상한다. 그런 곳이 있을까? 있다. 바로 움직이는 섬이다. 이 섬에는 어른이 없고 아무 걱정할 일도 없다.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은 섬 안에 있다. 섬 안에서 온갖 놀이를 할 수 있다. 밤 소풍을 나가 은은한 달빛을 조명 삼아 낚시를 하고, 밤바다로 뛰어 들어 수영을 하기도 한다. 화창한 날엔 뗏목을 타고 섬 밖으로 나가 놀 수도 있다. 놀기만 해도 시간이 모자란 채 날이 저무는 곳, 이렇게 매력적인 섬은 왜 필요할까?

섬은 잠깐의 해방구일 뿐이다

섬에 간 아이들은 반드시 언젠가는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섬 아이들 사이에 갈등 요인이 되는 이 원칙은 작품 초반부터 강조된다. 언제까지나 섬에서 살 수는 없으며 힘들 때 잠시 머무르는 곳이라는 사실이 아이들의 말과 ‘환영의 집’을 통해 드러난다. 섬은 오직 자신을 위해서만 살 수 있는 공간이다. 아이를 학대하는 어른, 방임하는 어른들로부터 벗어나는 해방구이다. 그럼 이 해방구는 왜 필요한가, 아이들은 제대로 놀아야 제대로 크기 때문이다. 『움직이는 섬』 속 아이들은 새 둥지 속 알을 식량 삼고, 모래로 놀고, 나무를 타고 오르면서 손과 발의 감각을 키운다. 또한 밤바다에 나가 수영을 하면서 삶에 필요한 지식과 방법을 체득한다.

그럼 이 해방구가 일시적이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들은 언젠가 어른이 되기 때문이다. 이 섬에는 가정 환경이 각박한 아이들이 간다. 담이는 엄마의 심한 잔소리와 집단적으로 자신을 놀리는 아이들 때문에 괴롭다. 진규는 술만 마시면 가족을 개 패듯 패는 아빠 때문에 몸이 멍투성이다. 지헌이는 자신을 버리고 간 아버지 때문에 병중인 할아버지를 대신해 돈을 벌어야 했다. 민혜는 어릴 적 부모님을 잃고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친척 집을 전전한다.

작품 속 아이들은 모두 섬에 갈 마땅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이 섬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섬 밖 세상에서 계속 생겨날 테고, 지금 섬에 있는 아이들만 해방구를 영원히 차지할 수는 없다. 대신 다시 현실로 돌아갈 상황에 대비하여 현실에 맞설 용기를 길러야 한다.

평소 바다 위를 표류하는 섬은 현실 세계와 단절된, 독립적인 공간이다. 하지만 현실 세계와 이어지는 때가 두 번 있다. 밤례 할머니가 아이들에게 필요한 음식이나 옷을 갖다 주러 섬에 들어오는 때와 섬에 출입하는 아이가 있을 때다.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는 듯한 섬이지만 실은 현실 세계 인물의 도움으로 유지된다. 밤례 할머니의 도움이 없다면 아이들은 섬의 생활을 제대로 즐길 수 없을 것이다. 즉, 아이들은 섬에서조차 어른의 영향력 아래 있다. 결국 환상 공간이든 현실 세계든, 좋든 싫든 어른과 함께 살아야 함을 아이들은 깨닫는다. 이것은 섬이 잠깐의 놀이터는 될지언정 새로운 보금자리가 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이다. 아이들은 섬에 들어오고 나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현실 세계의 엄중함을 깨닫는다. 이 깨달음을 통해 아이들은 현실에서 어려움에 맞서는 생각 연습도 하면서 섬의 생활을 열정적으로 즐기게 된다.

과연 아이들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아이들은 어떻게 변하는가, 과연 섬의 존재 목적대로일까? 아이들 유형에 따라 어떤 아이는 섬의 목적대로 바람직하게 변하고, 어떤 아이는 섬의 목적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섬의 안위를 위협한다. 현실에서 워낙 상처를 많이 입은 아이들이기에, 섬이 만능열쇠처럼 모든 아이들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다.

특히 주인공 담이는 섬의 목적대로 성공적으로 성장한 아이들 중 하나이다. 담이는 우유부단한 평화주의자였다. 싸움을 싫어해서 아이들이 장난처럼 하는 결투 신청에 거절의 표시로 냅다 도망을 가기도 했다. 평화를 원하면서도 정작 평화를 위한 노력은 실행하지 않았다. 그저 회피할 뿐이다. 담이는 어이없이 섬에 가게 된다. 섬이 절실하던 진규에게 우정을 느끼면서 따라갔을 뿐이다. 그래서 섬에 처음 가서는 불편하고 허름한 시설들에 대해 쓴소리도 한다. 하지만 밤낮으로 아이들과 몰려다니며 오래 전부터 섬에 살아온 듯, 적극적으로 바뀌어간다.

담이는 섬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지내는 성빈이를 안쓰럽게 여긴다. 먹거리도 갖다 주고 비가 오면 걱정돼 찾아가면서 성빈이가 비밀리에 조사하는 공책에 대해 알게 된다. 공책은 섬을 계속 바다에 표류하게 하려는 예전 아이들의 기록이었다. 섬의 리더 지헌이가 섬에 영원히 살기 위해 그 공책의 내용대로 움직인다는 것을 눈치 챈 성빈이와 담이는 이 사실을 다른 아이들에게 알리려 한다. 하지만 그 순간 공책이 사라지고, 담이는 방화범으로 누명을 쓰게 된다. 그리고 담이가 추방되는 날 우주와 성빈이의 도움으로 담이는 섬 동굴 통로의 비밀을 밝혀낸다. 지헌이가 섬의 물길을 바꾸고자 통로를 일부러 막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에게 가서 이 사실을 폭로하고 지헌이와 싸우는 순간, 이제 담이는 더 이상 어정쩡한 평화주의자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더러 함께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고? 이렇게 잔뜩 겁을 주고 우리들의 세상을 만들자는 게 말이 되냐고!”(224쪽)

아이는 외친다. 더 이상 숨거나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따진다. 아무 말 않고 가만히만 있으면 절대로 세상이 평화롭지 않을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어쩌다 오게 된 섬이지만 여기 남아 리더가 될 거라는 담이, 하지만 아직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다 갖추지는 못했다. ‘더 이상 갈 곳 없는 우리가 여기서 같이 잘 살아보자’는 지헌의 논리는 간단하고 명확하다. 하지만 담이의 논리는 아직 약하다. 담이가 좀 더 성공적으로 변화하려면 섬의 존재 목적에 대해서 바르게 이해하고, 명확한 비전을 갖추고, 무엇이라도 행동해야 할 것이다.

섬의 리더 지헌이는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았었다. 할아버지가 아프셔 돈을 벌어야 했던 지헌이가 만났던 어른들은 대부분 나쁜 모습들만 보였기에 지헌이는 어른을 믿지 못하게 된다. 아픈 할아버지를 시립병원에 입원시키고 섬에 간 지헌이가 어른에 대한 불신을 가라앉힐 수 있으면 좋겠으나 그렇지 못했다. 섬의 리더가 된 지헌이는 자신이 ‘어른’이 되려 한다. 회의를 주도하여 규칙을 만들며, 섬에서 독립적으로 살 수 있도록 토대를 만들고자 한다. 그리고 옛날 등대에서 섬의 물길을 조절할 수 있음을 알게 되자 혼자만의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다.

자신의 계획이 드러났을 때 지헌이는 오히려 아이들을 설득하려 한다. 어차피 갈 곳 없는 우리들이니까 섬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자고 말한다. 지헌이는 끝내 자신의 잘못이 자기만 잘 살려는 이기적인 마음에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이 섬 생활을 통해 지헌이는 거의 변화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 채로 지헌이는 섬을 떠난다. 첨예한 대립과 토론을 통해 지헌이가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깨닫는 에피소드가 없는 것이 아쉽다.

이 섬은 과연 의미 있는 여행지인가

움직이는 섬은 아이들의 여행지이다. 잠깐 쉬면서 삶의 의미를 찾고, 열심히 살아갈 용기도 얻는 곳이다. 모든 아이들, 특히 어려운 환경에 처한 아이들에게 더더욱 이런 시공간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아이들에게 선물 같은 동화라고 할 수 있다. 산타 할아버지나 마법 학교처럼 ‘움직이는 섬’을 믿게 된다면 이 믿음도 삶의 활력소가 될 수 있다. 더불어 독자에게도 이 섬이 의미 있는 여행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작품 속에서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섬의 모습을 많이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작품 속 인물들이 섬에서의 경험을 통해 자기 삶에서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섬의 매력을 효과적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것 같다. 오히려 섬 내 권력 관계에 초점이 맞춰져 아이들 사이 권력 다툼, 정치적 관계 등이 자세히 설명된다. 섬에서 재미있게 노는 모습도 나오긴 하지만 대부분 짧다. 작품의 갈등 구조가 주로 ‘권력’과 ‘정치’에 관련되다 보니 독자는 ‘의미 있는 여행’에 초점을 맞추며 읽기 힘들다. 아이들 사이 권력 문제는 문학 작품들에서 찾기 쉬운 소재이고, 배경이 굳이 환상 공간일 필요가 없다.

또한 이 환상 공간 섬은 구체적인 설정에서 억지스러운 경향을 보인다. 섬은 스스로 움직이는데 뭍 가까이 가면 저절로 물길이 열려 ‘걸어서’ 섬으로 들어갈 수 있다거나, 많은 아이들이 놀기에 충분한 크기의 섬을 아이 한 명이 물길을 막아 움직임을 조절한다, 이런 설정들은 납득하기 어렵다. 작품 속 아이들과 작품 읽는 독자 모두에게 의미 있는 여행지가 되려면, 섬의 법칙에 억지스러움이 보완되면 좋겠고 섬의 목적에 충실한 이야기 구성도 필요해 보인다.
허수지 | 경남 창원의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어른이 되고서야 어린이문학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진주교대 교육대학원에서 동화 창작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작품다운 작품을 쓰고 싶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