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06월 통권 제1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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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로 전하는 음악 세계]
낭만주의 음악과 슈베르트

박은경 | 2016년 06월

오늘은 친구들과 함께 슈베르티아데(Schubertiade)를 가졌습니다. 성악가 친구는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를 불렀고, 첼리스트 친구는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연주했습니다. 저는 「방랑자 환상곡」을 연주하였구요. 모두들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가졌지요.

슈베르티아데란 고유명사로 ‘슈베르트의 밤’ 또는 ‘슈베르트 친구들’이란 뜻입니다. 슈베르트가 생전에 자신의 음악을 좋아하는 시인, 화가, 법률가, 음악가 등 다양한 직업의 친구들과 거의 매일 만나 함께 연주하고 시를 읊고 문학을 논했던 작은 음악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당시 슈베르트는 이 음악회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직접 연주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신작들을 발표했지요. 슈베르티아데라는 말은 슈베르트가 활동하던 낭만주의 음악 사조에서 생길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지요. 그 시대에는 이러한 소규모의 작은 음악회가 많이 유행했습니다.

낭만주의(romanticism)라는 말의 어원은 소설, 이야기라는 뜻을 지닌 프랑스 말 ‘Le Roman’에서 유래합니다. 낭만주의의 태동에는 18세기 말엽에 발생했던 두 혁명, 산업혁명과 프랑스 혁명이 있었습니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자본주의의 발달은 기존의 체제와 사람들의 생활 등을 완전히 바꿔 놓고 말았죠. 또한 프랑스 혁명으로 사회 불안이 심각해져서 사람들은 점점 현실에 지쳐 갔습니다. 이런 혼란한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사람들은 꿈과 이상 등 새로운 세계에 몰입하기 시작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고스란히 낭만주의의 토대가 되지요.

질서와 조화 등 고전주의가 추구하던 가치와는 달리 낭만주의는 자유와 열정 등을 격정적으로 갈구했습니다. 순수한 음 자체를 추구하며 소나타로 대변되던 고전주의 음악에 반해 낭만주의 작곡가들은 표제음악을 추구했습니다. 표제음악이란 낭만주의의 어원에서도 보여지듯이 음악의 소재를 문학이나 미술 등 음악 외적 요소에서 가져오는 것이지요. 또한 이 시대에는 예술 영역 간의 경계선이 모호해지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예를 들면 시는 음악의 성질을 얻으려고 노력하고, 음악은 시의 특성을 닮으려고 애쓰는 것이죠. 그리하여 괴테, 하이네 같은 시인들의 시에 슈베르트, 슈만, 브람스 등의 작곡가들이 곡을 붙여 수많은 예술 가곡들이 만들어집니다. 슈베르트는 가곡의 왕으로 불리고 있지요.

19세기를 흔히 낭만주의 시대라고 부르는데요. 낭만주의 시대에는 작곡가와 청중 사이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부를 얻은 대중들은 음악회의 주요 고객으로 자리 잡아 갔습니다. 고객의 범위는 넓어졌으나 비교적 음악적인 소양이 깊지 않았던 대중 고객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작곡가는 고민을 해야 했습니다. 작곡가로서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서든지 새로운 청중을 만족시켜야 할 필요가 있었지요. 한편 이 시기는 자신만의 세계 안에서 진정한 예술을 추구하려는 비사회적인 예술가가 생기는 현상도 나타납니다. 슈베르트는 그 대표적인 작곡가인데요. 비교적 비슷한 생각을 지닌 교양 있는 음악 청중들의 모임인 슈베르티아데가 만들어진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겠지요.

낭만주의자들은 피아노를 애호했습니다. 18세기 중엽부터 이미 피아노는 일반 가정에도 깊숙이 침투하여 놀라운 보급률을 보였습니다.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는 침대나 식탁처럼 집안에 피아노가 한 대쯤 있는 것이 자연스러워졌고, 특히 피아노를 치는 것이 여성들의 취미로 큰 유행이 되었지요. 피아노는 대형 연주 무대에서나 대저택의 객실에서나 동일하게 잘 어울렸습니다. 작은 공간에서 작곡가들은 생생하고 내면적인 감정을 보다 친밀하게 전달할 수 있었지요. 이런 음악회에 잘 어울리는 수많은 독특한 소품들이 피아노를 위해 작곡되었는데요. 이들은 성악의 예술 가곡에 해당하는 기악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술 가곡 「들장미」는 괴테의 시에 곡을 붙인 슈베르트의 대표적 가곡입니다. 슈베르트는 들장미와 같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예술만을 순수하고도 정열적으로 추구하였습니다. 음악을 향한 천진난만함은 어떠한 불순물도 끼이지 않았습니다. 명성이나 돈을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들에 핀 장미처럼 들에서 꽃을 피우고는 겸허히 자연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그 아름답고도 진한 향기는 오래도록 남아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지만, 슈베르트는 유독 짧은 삶을 살았습니다. 35년을 산 모차르트보다도 적은 31세의 생을 이 세상에서 보냈습니다. 슈베르트는 1797년 1월 31일 오스트리아 빈 근교에서 태어났습니다.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던 그의 아버지는 슈베르트가 음악에 남다른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고, 어릴 적부터 음악 교육을 시켰습니다. 슈베르트는 11세에 지금의 빈 소년합창단인 콘빅트에 입학하였습니다. 아름다운 소년 소프라노 음성을 인정받은 것이었죠. 슈베르트는 교사가 되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작곡에만 전념하고 싶은 마음에 교사의 길을 포기합니다. 그 후로는 친구들 집을 전전긍긍하며 살았지요.

슈베르트는 재산은 없었지만 사이좋게 지내던 친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슈베르트는 일생 동안 자기 집을 가진 적이 없었고, 피아노조차도 없었다고 합니다.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악상이 떠올랐는데 5선지가 없을 때는 눈치 빠른 친구가 메뉴 뒷면에 5선을 그어 주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그의 화가 친구들은 그들의 생활을 그림으로 많이 남겼는데요. 슈베르트의 데생이나 초상화를 보면 대개가 이마가 툭 튀어 나오고, 고수머리에다 도수가 높은 안경을 끼고 있습니다. 슈베르트는 당시 유명한 가수 포글과 진한 우정을 나누는 사이였습니다. 예술 가곡의 명콤비라고 할까요? 30세 위인 포글은 슈베르트의 가곡을 매우 좋아하였고 이들은 슈베르티아데를 통하여 많은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대표적인 곡으로 가곡집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 「백조의 노래」 「겨울 나그네」가 있습니다.

슈베르트는 생애 마지막 해가 되어서야 자신만의 창작품으로 단 한 번의 공개 연주회를 가졌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거나 사람들의 인기를 얻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1827년 3월 29일 베토벤의 관을 메고 가는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슈베르트는 존경하는 베토벤을 묻으려 장지로 향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난 1828년 11월 19일 슈베르트는 그의 유언대로 베토벤 곁에 묻혔습니다.

슈베르트는 진심으로 베토벤을 존경했습니다. 슈베르트와 베토벤은 빈에서 동시대를 살았습니다. 슈베르트는 초창기부터 소나타 양식을 익혀 베토벤을 계승하고자 하는 바람이 컸지만, 정작 그의 피아노 음악의 정수는 소품들의 모음집에 있습니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은 아름다운 선율입니다. 그의 샘솟는 멜로디는 끝이 어디인지 모르게 흘러 나옵니다. 그의 대표적인 피아노 소품집으로 『악흥의 순간』과 『즉흥곡』이 있습니다. 이들은 내면의 일기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진솔한 내용을 보여 주는데요. 그 당시 건반 음악 작곡의 경향은 대곡 중심의 작곡 형태가 점점 쇠퇴할 무렵이었는데 이러한 새로운 소품집을 슈베르트는 불과 20대에 완벽하게 구현해 냅니다. 이후 소품집은 낭만 시대 피아노 음악의 주류를 이루게 됩니다. 청년 슈베르트는 새로운 시대를 개척한 순수하고도 강렬한 선구자적 음악가의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여기서 슈베르트의 천재성이 드러나고 있지요.

슈베르트의 「즉흥곡」은 슈베르트의 타고난 서정성과 뛰어난 표현력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작품입니다. 즉흥곡이란 즉흥적인 악상을 소품 형식으로 쓴 곡을 말합니다. 작품 D.899의 네 곡과 작품 D.935의 네 곡이 있습니다. 그의 즉흥곡들은 드라마틱하면서도 영롱하고 화사한 색채가 물씬 풍깁니다. 건반을 한 음 한 음 누르다 보면 시적인 감흥에 흠뻑 젖어들지요.

슈베르트 즉흥곡 D.899의 내림 마장조를 공부하는 제자에게 물었습니다. 슈베르트의 작품을 연주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하고요. 제자는 ‘자연’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저와 똑같은 답이었습니다. 풍경을 그린 한 점의 수채화를 감상하는 느낌입니다. 그림으로 표현하면 영국의 낭만주의 풍경화가 윌리암 터너의 작품에 비유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잔잔한 물결을 연상시키는 선율들은 팔레트 위의 물감이 번지듯 공간을 채색하며 아름다운 장면 장면이 됩니다.

윌리엄 터너는 영국의 낭만주의 화가로서, 19세기 최고의 풍경 화가로 평가됩니다. 그의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색채를 자유로이 사용하여 자연 풍경을 표현했다는 점입니다. 터너는 단순히 자연을 그림처럼 묘사하지 않고 모든 사물의 움직임을 빛과 색채로 환원하여 표현했습니다. 그는 항상 혼자 작업하고 아무도 보지 못하게 했으며 잘 팔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어쩌면 예술가적 삶의 방식도 슈베르트와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그의 그림이 투명하고 빛나는 것은 그의 고독한 예술 정신 때문일까요? 맑고 친밀한 그의 수채화들을 보며 슈베르트의 즉흥곡들을 듣는다면 개인적인 고백들이 절로 나올 것 같습니다. 한 편의 수필을 써 보거나 편지를 띄워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작품 D.760 「방랑자 환상곡」은 슈베르트의 피아노곡 가운데에서 가장 비루투오소(Virtuoso)적인 작품입니다. 비루투오소란 말은 명인 또는 기교가 뛰어난 자를 말합니다. 가곡 「방랑자」 D.489의 선율을 사용하였기에 「방랑자 환상곡」이란 곡명이 붙여진 정열적이고 화려한 작품입니다. 기교의 대가 리스트는 슈베르트의 이 곡을 자신의 리사이틀에서 자주 연주했다고 합니다.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난 1828년은 마지막 세 개의 피아노 소나타를 완성한 해이기도 합니다. 작품 D.958, D.959, 그리고 D.960 세 개의 장대한 걸작입니다. 그는 작품 D.960 내림 나장조 소나타를 많은 소나타 가운데 피아노 소나타 3번이라고 불렀는데요, 이들만이 세상에 알려지기를 원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만큼 금지옥엽처럼 자랑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 세 소나타는 기술적으로 굉장히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구조를 표현하는 감각과 노래를 만들어 나가는 성숙한 음악성을 필요로 합니다. 또한 다양하고 세련된 음색을 창출하기 위해서 예민함과 섬세함이 돋보여야 하지요. 작품 D.960의 네 악장은 슈베르트의 서정이 아름답고 짙게 깔려 있어서 가슴 시릴 정도입니다. 그윽하면서도 애수가 넘치는 1악장, 애잔하면서도 비운에 잠긴 2악장, 투명하고도 화사한 3악장, 운명처럼 드라마틱한 4악장! 결국 이 작품을 완성하고 두 달이 지난 뒤 슈베르트는 삶의 여행을 마치고 새로운 방랑의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자기 속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이르는 말로 지음이 있습니다. 이는 중국 춘추 시대의 백아와 종자기의 고사에서 비롯된 말인데요. 백아와 종자기는 아주 친한 친구 사이였습니다. 백아는 거문고 연주로 이름난 음악가였는데, 백아가 혼신을 다해 곡을 연주하면 종자기는 그 의미를 알아차리곤 했습니다. 가령 백아가 산을 생각하며 연주하면 종자기는 태산에 오르는 것 같다고, 또 물을 생각하며 연주하면 흐르는 강물과 같다고 칭찬해 주었지요. 백아는 자기의 음악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종자기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자신의 음악을 알아준다고 하여 지음의 벗이라 하였습니다. 종자기가 먼저 죽자 거문고 줄을 끊고 더 이상 연주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들장미와 같이 피었다가 사라진 슈베르트의 인생이지만, 슈베르트에게는 지음이 참으로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지음들 덕분에 슈베르트의 예술이 피어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오늘 가졌던 어릴 적 친구들과의 슈베르티아데는 음악 이상의 그 무엇이 있어 더욱 소중했습니다. 추억의 시간이겠지요. 오래될수록 좋은 것 중의 하나가 친구라지요. 벌써부터 다음번의 슈베르티아데가 기다려집니다. 저는 슈베르트의 즉흥곡들을 연주하지요. 가곡 「아베마리아」 「송어」 「보리수」 또한 현악 사중주 「죽음과 소녀」도 연주될 것입니다. 친구들과 함께 윌리암 터너의 풍경화도 함께 감상해 보려 합니다. 재미나고 진솔한 옛 이야기들과 요즘 살아가는 얘깃거리들을 나눌 생각에 마음이 설렙니다. 지음의 벗들과 함께하는 한여름밤의 작은 음악회! 수채화로 그려서 한번 남겨 보려고 합니다.
박은경 | 선화예고와 서울대학교 음대를 졸업하고, 독일 유학길에 올라 만하임 음대와 뷔르츠부르그 음대를 졸업하였습니다. 영산아트홀 초청 젊은 연주자 독주회 시리즈, 헨델 서거 250주년 기념 음악회, 예술의 전당 리사이트홀 쇼팽 리사이틀 등의 연주회를 하였으며, 현재는 백석콘서바토리와 계원예고에 출강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