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06월 통권 제1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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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품 나의 이야기]
동물들이 그리워하는 집

진경 | 2016년 06월

내가 다니던 대학교 바로 앞에는 서울어린이대공원이 있다. 종종 산책도 하고 쉬러 가기도 했던 그곳에는 조그만 동물원이 있다. 그 안의 동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참 복잡한 마음이 들곤 했다. 코끼리, 원숭이, 공작새, 미어캣…. 저마다 다른 생김새와 생활 방식, 생존법을 가진 동물을 보고 있노라면 대자연의 신비랄까, 생명의 위대함이랄까, 그런 거창한 표현이 생각나기도 하고 좁은 우리에 갇혀 지내는 동물들의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 인간들도 그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간혹 소리를 지르고 동물들에게 약을 올리거나 쓰레기를 던지는 사람들을 보면 같은 인간으로서 갇혀 있는 동물들에게 부끄럽고 창피하기도 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진주 언니네 집에서 조카를 봐 주며 일러스트 공부를 할 때에도 동물원에 자주 갔다. 과천에 있는 서울동물원은 서울어린이대공원과는 조금 분위기가 달랐다. 일단은 넓었고 숲이 울창하고 공기가 좋았다. 사람이 몰리지 않는 평일에, 한적한 그곳에 가는 것이 좋았다. 동물도 더 많았고 덜 답답해 보였다. 도심과 가까운 곳이었지만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흰코뿔소였는데 갑옷을 입은 듯 다부지고 압도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나는 그 흰코뿔소를 한참 동안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만약에 야생에서 저 동물을 만난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면서 동물원의 동물들을 바라보곤 했다.

그 무렵 조카는 영상물을 보기 시작했고 나는 조카에게 보여 줄 만한 좋은 영상을 찾던 중 한국 동물원 개원 1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동물원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조카가 그 다큐멘터리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바람에 진주 언니도 나도 나레이션을 외울 지경이 되었다.

“생태동물원으로의 변화는 그들의 서식지를 빼앗은 인간이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일지도 모릅니다.” 생태동물원, 그러니까 인간 중심의 동물원이 아닌 동물 중심의 동물원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이기심으로 시작한 동물원의 현재 모습이다. 멸종 위기에 처한 몇몇 종은 동물원을 떠나게 된다 하더라도 마땅히 살 곳이 없다. 사불상이라는 사슴은 자연에서는 이미 멸종되었고 전 세계 동물원에 100여 마리만 생존해 있다.

동물원의 동물들을 보면 왜 가끔 가슴이 먹먹해지는지 그제서야 알 것 같았다. 기린에게 어울리는 높은 먹잇대를 설치해 주고, 장난치는 것을 좋아하는 곰에게 나무둥치를 선물해 주고, 텃밭에 채소를 심어 고릴라가 뜯어 먹게 해 준다고 해도 그곳은 그들에게 우리일 뿐 집이 될 수 없다. 미워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는 곳, 그곳이 지금의 동물원이었다.

나는 이런 동물원의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풀어 보고 싶었다. 그런데 몸에 좋은 것을 먹어야 해요, 동생을 괴롭히면 안돼요, 하는 식의 명확한 주제가 될 수 없을 것 같아 고민이 많았다. 동물들을 가두니까 동물원은 나빠요,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고, 동물들이 잘 살고 있는 동물원이 최고에요,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가치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기고 싶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동물들에게 자연 그대로의 환경과 삶이 가장 좋다는 것이다. 강조하고픈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는 그것을 세련되게 풀어낼 수 있는 재주가 없었다. 이렇게 저렇게 기획하고 글도 써 보았지만 내가 봐도 참 어설프고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보다 못한 언니가 조언을 해 주며 대공사가 진행되었다. 그러면서 완전히 환골탈태하여 간결하고도 짜임새 있는 글과 기획으로 바뀌었다. 언니가 글 작가로 결정되면서 더욱 격렬한 토론이 오가며 작업이 진행되었고 완성까지 끌고 갈 수 있었다.

『우리, 집』이라고 제목에 굳이 쉼표를 넣었던 것은 우리의 뜻이 ‘여러 명을 가리키는 일인칭 대명사, We’ 혹은 ‘짐승을 가두어 기르는 곳, a cage’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글을 아끼고 해석의 여지를 독자들에게 돌리고자 했던 의도대로 한 어린 독자는 우리를 ‘사람과 동물, Human and Animal’이라고 했다.

첫 장에서 빌딩 숲은 흑백으로, 동물원은 컬러로 표현하였는데, 그것은 동물들에게 유일한 안식처가 되어 주는 지금 동물원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자들은 배경과 어울리지 않는 그 동물원을 오아시스로 느낄 수도 있고 혹은 포로 수용소로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제목이 있는 페이지와 뒷표지에는 새가 새 모양 풍선에 올라 타 있는 이미지가 있다. 그 이미지에서 새는 살아있는 것과 자유로움을 상징하고, 풍선은 동물원의 대표적인 이미지이자 공산품, 생명이 없는 모양을 상징한다. 이 새는 각 장면에 등장하고 그 새를 모티브로 한 물건들도 모든 동물들의 집에 등장한다.

각 동물의 집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와! 이런 곳에서 살면 좋겠다!’ 라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이기를 바랐다. 목이 긴 기린의 길다란 식탁, 스컹크의 화장실, 미어캣의 경비 초소 등이 각 동물들의 사정에 맞기 때문에 사람의 입장에서 살고 싶은 곳, 이런 동물들이 이곳에 살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 있는 멋진 곳 말이다.

그러나 인간의 공간에 있는 동물들은 어딘가 어색하고 불편해 보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들이 웃는 얼굴로 있다고 해도 그것이 자연스러워 보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 장면은 대조적으로 대자연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동물들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러나 동물들을 욱여넣기보다는 자연의 모습만 쫙 펼쳐 놓아 사라지고 있는 녹지와 이곳의 동물들을 떠올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펼침 페이지로 자연의 모습만을 담았다. 대신 할 말이 많을 것 같은 동물들은 흑백으로 펼침 페이지 앞면에 그려 주었다. 바람이 있다면 독자들이 화려하지도 않고 재미있는 요소도 없는 이 마지막 장면을 좋아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 책은 5년 만에 나오게 되었다. 5년을 이어 온 가장 큰 이유는 게으름 때문이었다. 하지만 첫 책인 이 책을 작업하며 배운 것이 참 많다. 그 사이 나는 조금은 철이 들었고 탈고를 마치자마자 출산도 했다. 지금은 아이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지만 다음 작품을 위해 온몸으로 성장하고 있는 시기라고 믿는다. 진주와 진경의 조합으로 풀어내고픈 이야기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진경 | 오랫동안 그림책을 사랑하고 그리기를 즐겨왔습니다. 송도에서 언니 진주와 함께 심고 가꾸고 아트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아이들에게 자연의 가치와 미술의 즐거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 집』은 진주와 함께 작업한 첫 번째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