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06월 통권 제163호
속 깊은 책 이야기
책 너머 세상 읽기
더불어 책 읽기
열린어린이 선정 이달의 좋은 책
열린어린이 서평
주목 받는 새 책
열린어린이가 권하는
이 달의 책

속 깊은 책 이야기

[고릴라 아저씨의 제멋대로 그림책 읽기]
자유로운 표현이 돋보이는 그림책

김중석 | 2016년 06월

마음에 드는 그림책을 보면 ‘나도 이렇게 그려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친구랑 싸웠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 중 하나이다. 과감한 인물 묘사와 구도, 고정관념을 벗어난 표현 방법은 언제 보아도 나에게 새로운 자극을 준다. 표지를 살펴본다. 표지를 가로지르며 한 아이가 슬픈 표정으로 누워 있다.
붉은 얼굴에 볼에는 심술이 가득하다. 하얀 셔츠에는 시커먼 것이 묻어 있다. 이 아이는 왜 이리 화가 났을까? 『친구랑 싸웠어!』라는 제목 글씨가 선명하게 눈에 띈다.

속표지를 살펴보면 이 이야기의 무대가 보인다. 이곳은 ‘놀이 섬’이라는 아이들의 놀이터이다. ‘놀이 섬’에는 선생님이 있고 날마다 많은 아이들이 놀러온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많은 아이들이 머물고 노는 작은 사회이다. 동그란 원 모양으로 그려진 ‘놀이 섬’의 전경이 정겹다. 아이가 그린 그림처럼 천진하고 자유롭다. 나무로 둘러싸인 이 놀이터가 재미있고 가보고 싶은 곳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렇게 작품의 무대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시작하는 방식은 전통적이지만 안정적으로 이야기로 들어갈 수 있어서 좋다.



장면 1을 보면 ‘놀이 섬’의 선생님과 아이들이 모여서 함께 식사를 하는 모습이 보인다. 글에서는 주인공의 이름이 ‘다이’라고 알려 주고 가장 친한 친구는 ‘고타’라고 알려 준다. 하지만 인물의 특징을 알려 주지 않아서 누가 누구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장면 2에서 사건이 시작된다. 다이와 고타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리는 아이들끼리의 싸움이다. 화면의 왼쪽은 고타가 오른쪽은 다이가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선생님과 다른 아이들의 모습은 작게 그려져 있다. 인물의 크기가 대담하다. 하지만 이 장면 이후의 구도에 비하면 이 정도는 무난한 편이다.



장면 3에서 둘이 뒤엉켜 싸운다. 하지만 고타는 만만치 않다. 주인공인 나, 다이보다 더 힘이 세다. 다이는 붙잡히고 뒤로 나자빠졌다. 화면을 가득 채운 이 아이들의 싸움 모습은 진짜 옆에서 보고 있는 것 같다. 커다란 얼굴의 아이들과 화면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구도는 생생한 현장감을 잘 표현하고 있다.

장면 4에서 주인공은 자존심이 상했다. “봐 줬다, 이쯤에서 끝내자!” 라고 고타가 다이의 어깨를 팍 밀쳤다. 이게 뭐야. 사나이 자존심에 이렇게 상처를 내도 되는 건가? 다이는 기분이 상했다. 차라리 코피라도 흘리며 지는 게 낫지. 이렇게 찜찜하게 싸움이 끝나다니. 이번에도 화면이 꽉찼다. 고타의 비장한 표정과 다이의 억울한 표정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때의 표정은 아이 같지 않다. 얼핏 어른의 모습이 보인다.



장면 5에서 감정이 벅차오른다. 다이는 엉덩방아를 찧고 만다. “으앙!” 울음이 터지고 만다. 분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토 히데오의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깜짝 놀랐다. 다른 그림책보다 표현법이 과감해서 놀랐고 인물의 피부색을 처리하는 방식에 또 한 번 놀랐다. 붉은색으로 칠해진 피부색은 어떻게 보면 조금 이상하게 보인다. 과하게 보인다. 보통의 피부색보다 더 붉고 강하다. 화가 난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서 작가가 선택한 방법일 것이다.

장면 6에서 억울함이 폭발했다. 엄마에게 달려가 엉엉 울었다. 울어도 울어도 자꾸자꾸 눈물이 났다. 얼마나 서러울까? 하지만 엄마의 표정은 묘하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것 같다. 장면 7에서 아이코 선생님이 집으로 찾아왔다. 조금 전에 만든 ‘만두’를 함께 먹자고 한다. 다이는 혼자 생각한다. 나는 절대 안 갈 것이고 엄마도 당연히 안 갈 것이라고. 세 명의 인물이 크게 그려져 있다. 심지어 선생님의 머리카락 부분은 잘려져 있고 다이도 얼굴밖에 안 보인다. 선생님과 엄마는 웃는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다이는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하다.

장면 8은 다이의 마음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장면이다. 표지와 비슷해 보이는 이 장면의 표현을 처음 보았을 때 깜짝 놀랐다. 이 과감한 표현, 작가는 화면을 대담하게 가로지르며 주인공의 마음을 표현했다. 팔베개를 하고 눈에는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있다. 아이는 얼마나 서러울까. 엄마도 혼자 가 버렸다. 믿었던 엄마의 배신이라니.



장면 9에서 친구들과 선생님이 집으로 찾아왔다. “다이! 빨리 와! 같이 먹자.”고 한다. 하지만 다이는 마음속으로 흥! 싫어! 절대로 안 가, 라고 말하며 전혀 마음을 풀 생각이 없다. 장면 10에서 고타가 친구들 사이에 나타났다. “미안해!” 고타가 나에게 사과를 한다. 여전히 다이의 마음은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라고 말하고 있다. 다이는 아직 사과를 받을 준비가 안 되었다. 인물들의 표정이 재미있다. 친구들은 고타의 사과하는 모습이 놀라운 것 같다. 얼굴의 크기도 다양하다. 시선도 고타를 향해 있다. 인물들의 모습에도 리듬감이 있다. 정직하게 비율을 유지했다면 심심했을 장면이다.

장면 11, 12, 13은 하나의 묶음으로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주인공 다이의 감정이 제대로 드러난다. 인물을 향해 카메라를 점점 들이대면서 감정의 정점을 향해 가고 있다. 장면 11에서 아이는 눈물이 난다. 아직 분이 안 풀렸는데 친구는 사과를 한다.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두 페이지를 가득 채운 주인공의 표정은 안쓰럽다. 우리도 어린 시절 이렇게 눈물이 흐른 적이 있다. 무엇이 그리 서러웠을까, 지나고 보면 별일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그 순간에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고 그저 친구가, 선생님이, 엄마가 밉다. 우리는 이런 감정의 분출과 해소를 통해서 자라났을 것이다. 울어도 울어도 슬픈 이 울음. 그런데….

장면 12에 아이다운 사건이 일어난다. 엄마가 만두를 싸왔다. 나는 아직 먹을 생각이 없단 말이야! 이깟 만두로 나를 달래려는 건가? 하지만 이미 만두는 주인공의 입속으로 향하고 있다. 눈물은 벌써 그쳐 있었다. 화면에 주인공의 표정이 가득 차 있다. 크게 벌어진 콧구멍, 입을 향해 가고 있는 만두, 왼손에는 야무지게 물컵을 들고 있다. 인물 주변도 붉은 색으로 칠해서 인물과 배경이 이미 하나가 되어 버렸다. 장면 13도 끝내준다. 이제 카메라는 주인공의 얼굴을 향해 더 가까이 근접했다. 눈, 코만 보이는 정도이다. 눈을 지그시 감고 만족한 표정을 짓고 있다. 다이는 마음이 풀렸다. “엄마, 접시 씻어 줘.” 다이의 마음을 절묘하게 표현했다.

장면 14에서 카메라는 쑤욱 빠졌다. 멀리 벗어나서 ‘놀이 섬’ 전체를 보여 준다. 아이들은 여전히 뛰어놀고 있다. 다이는 접시를 들고 계단을 오르고 있다. 앞 장면과 너무나 대비되어서 재미있다. 장면 15에서 친구와 화해가 이루어진다. 고타가 사과를 한다.


그런데 이 책의 원화가 문득 보고 싶어졌다. 색채가 제대로 표현된 것인지? 책으로 보기에는 조금 불편하다. 인물과 배경이 거의 비슷한 색이라 구분이 잘 안되기도 한다. 장면 16에서 이 책의 내용이 끝난다. 주인공은 정면을 향해 바라보고 있다. 그렇지만, 다음엔 내가 꼭 이길 거라고 독백을 한다. 인물의 표현은 조금 다르게 보인다. 이 책에서 유일하게 배경이 생략되어 있다. 하얀 바탕에 그려졌다. 화선지에 그린 그림은 번짐이 많이 보인다. 힘을 완전히 빼고 그린 그림이다.

이렇게 아이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한 그림책이라니! 책 안내를 읽어 보니 이 책의 글쓴이는 실제로 놀이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이야기도 실제로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자라고 화해하면서 자란다. 내 마음이 다 풀리지 않았지만 친구와의 사이에서 배려하고 이해하면서 자란다. 이런 아이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한 그림이 내겐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번엔 『아빠와 아들』을 함께 읽어 보자. 한상언 작가는 자유로운 표현과 개성 있는 인물 묘사로 독특한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이다. 표지를 보니 아빠와 아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라면을 먹고 있다. 번쩍이는 장식 위에 아빠와 아들이라고 쓰여져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림책의 기법에서 조금 벗어난 재미있는 표현이 많이 있다. 글에는 없는 인물들의 혼잣말이나 생각들을 낙서처럼 자유롭게 써놓았다. 조금 산만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 내용을 읽어 보는 것도 재미있다.

첫 번째 장면에서 아이의 뒷모습이 보인다. 아이는 혼잣말을 한다. ‘어서 커서 아빠가 돼야지!’라며 중얼거린다. 장면 2를 보니 아빠는 제멋대로이다. 점잖은 아빠가 아니라 매일 게임하고 텔레비전 보고 많이 먹는 아빠다. 장면 3, 4, 5에서도 아빠는 철부지 같다. 아이와 함께 신나게 놀아 주고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인 것 같다. 밤늦게 아이와 라면을 끓여 먹고, 게임하려고 잔꾀를 부리는 아이를 이해해 준다.

장면 6에서 아빠와 아이는 목욕탕에 갔다. 아들을 대동한(?) 아빠의 전형적인 행동이 시작된다. 바로 아들 자랑이다. 목욕탕에서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계속 아들 자랑을 하는 팔불출이다.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 아들을 자랑하기에 바쁘다. 공부도, 운동도 잘하고 인기도 많은 아들이라고 계속 자랑한다.

하지만 장면 7에서 집으로 돌아온 아빠는 돌변한다. 계속 게임만 하는 아들의 컴퓨터를 부셔 버리고 싶은 마음이다. 역시 이것이 현실이겠지. 인물 뒤편에 낙서처럼 그리다가 지워 버린 그림들이 재미있다. 『친구랑 싸웠어!』처럼 아이가 그린 듯한 제멋대로의 그림이지만 왠지 정겹고 다정하다.

장면 8의 표현이 신선하다. 글자 많은 동화책을 읽기 힘들어하는 아들을 표현하기 위해 바탕에 글자들이 둥둥 떠다닌다. 글자의 바다에 빠진 아들을 구하기 위해 아빠가 출동한다. 장면 9에서도 아빠와의 놀이가 멈추지 않는다. 아빠는 아들이라고 봐주지 않는다. 눈치 없는 아빠 같으니라고. 장면 10, 11, 12, 13에서도 아빠의 어처구니없는 말들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건 아들을 사랑하는 아빠의 표현법이라는 것을 어른들은 금방 눈치챌 수 있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어떤 흐름을 가지고 가는 책은 아니다. 하나하나의 에피소드들이 재미있게 표현된 것이 흐름이라면 흐름이다. 장난처럼, 낙서처럼 던져진 장면들을 찾아 읽는 재미가 있다. 장면 14에서 아빠는 술에 취해 들어왔다. 아들을 꽉 껴안는다. 여러 가지 냄새가 난다. 아들은 이런 아빠를 이해해 준다. 장난과 유머가 가득하고 편안한 표현이 돋보이는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그림을 그릴 때마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묘사력이 뛰어나지 않지만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잘 표현하는 작가들이 있다.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똑같이 그려 내지만 자기 그림의 변화를 원하고, 표현하고자 애쓰지만 잘 안 되는 작가들도 많이 만난다. 자유롭게 그린 이 두 권의 책을 참고삼아 나의 그림은 어떤지 되돌아보게 된다. 나도 변할 수 있을까?
김중석 | 대학에서 서양화를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미술 교육을 공부했습니다. 2003년 보림 창작그림책 공모전에서 우수상과 2013년 소년한국 우수도서상 일러스트레이션 부분상을 받았습니다. 『아빠가 보고 싶어』를 쓰고 그렸고 『나는 백치다』 『찐찐군과 두빵두』 『웨이싸이드학교 별난 아이들』 『엄마 사용법』 등 여러 동화책과 그림책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요즈음은 ‘드로잉 그림책 학교’에서 학생들도 가르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