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09월 통권 제1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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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서평]
이야기가 해 준 것

편은정 | 2015년 09월

작가 이자크 디네센은 1957년 『뉴욕타임스 북리뷰』와 인터뷰를 하며 이야기에 관해 말합니다. “내 친구 중 하나가 나에 대해 말하기를, 모든 슬픔은 당신이 그것들을 이야기에 담거나 이야기할 수 있다면, 어쩌면 그것이 꼭 사실이 아니더라도, 견딜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더군요.” 『멋진 화요일』은 이 문장을 이야기로 풀어놓은 그림책이라고 해도 될 것 같아요. 할머니의 어린 시절에 시작된 뜻밖의 사건이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이끌고, 할머니가 잃어버린 것이 다른 데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는 것을 보여 주기도 합니다. 우연은 일회성 사건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런 우연이 이어져 이야기가 되고 인연이 될 때 사람들은 삶의 놀랍고 경이로운 순간을 경험하지요.

각 요일마다 그 요일을 맡아서 돌보는 캐릭터가 있다고 해 보세요. 이 책의 주인공은 ‘화요일’입니다. 화요일 아침, 화요일이 세상을 둘러봅니다. 날씨는 청명하고 사람들은 즐겁게 하루를 시작해요. 아, 저기 벤치에 앉은 할머니는 그렇지 않네요. 근심이 가득해 보여요. 함께 가 보아요.

할머니는 나이가 많아서 아무것도 잘 기억하지 못해요. 하지만 어린 시절은 잘 기억해요. 할머니의 근심 어린 표정도 어린 시절 잃어버린 인형 때문이에요. 엄마가 만들어준 그 인형은 까만 머리에 파란 옷을 입었고 눈이 길쭉했어요. 아이였던 할머니는 인형을 아꼈어요. 파란 천사나 길쭉이, 아님 사랑이라고 불렀지요. 그런데 심부름 다녀오는 길에 인형을 잃어버리고 말아요. 그 안타까움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할머니 마음을 짓누릅니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은 화요일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사건의 시작은 이래요. 할머니의 어릴 때 이야기예요. 남자아이 한 명이 짓궂은 장난을 쳤어요. 여자아이의 인형을 몰래 가져간 거예요. 그러고서는 곧 후회하고 여자아이를 뒤쫓아 갔어요. 제 딴에는 장난을 만회하려 했지만 엉뚱하게도 다른 집에 인형을 던졌지 뭐예요. 마침 그 집에는 아픈 소녀가 있었어요. 마당 안락의자에 앉아 빌고 있었지요. ‘셋을 셀 때까지 특별한 일이 일어나면 가서 피아노를 배울 거야. 하나, 둘, 셋.’ 그 순간, 파란 옷의 예쁜 인형, 사랑이가 담을 넘어 날아옵니다.

자, 인형은 할머니 손에서 떠났지만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아픈 소녀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소녀는 연주회를 열었고 그 연주를 들은 한 아빠는 무척 감동 받았지요. 그래서 멀리 사는 아들에게 긴 편지를 썼어요. 아빠의 편지를 받은 아이는 아주 기뻤어요. 큰 나무에 올라가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어요. 마차를 타고 지나가던 소녀가 노래를 들었고, 소녀는 이 아이의 영향을 받았지요. 그리고 소녀가 남긴 결과는 또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할머니 앞을 지나가는 소년도 그중 하나일지 몰라요.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기냐고요? 글쎄요, 화요일이 다 지어낸 이야기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이게 다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세상의 우연은 놀랍도록 희한하게 이어지기도 하니까요. 설령 실제가 아니더라도, 이야기를 만들어낸 이 능력으로 슬픔과 지난날 상처는 승화되어 바라볼 만한 것이 됩니다. 할머니도 이제 인형을 잃은 것을 덜 안타까워할 거예요. 나에게 소중한 것이 세상 어딘가에서 그 사랑스러움과 가치를 퍼뜨렸음을 알았으니까요. 그러면 전보다 견딜 만하지요. 할머니는 그렇게 된 거예요. 멋진 화요일의 이야기 덕분에!

세상에 사건이 일어나기에 상실과 슬픔이 생기고, 상실과 슬픔이 있기에 위로와 지혜가 옵니다. 긴 시간 동안 사건과 감정이 이어지면서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집니다. 짧지 않아요. 이야기 하나가 만들어지는 것은. 그런데 그 이야기로 인하여 우리는 처연한 슬픔과 이해할 수 없는 세상살이에 대해 어느 정도의 보상을 받습니다. 이야기가 사람살이의 사치 영역일 수 없는 이유입니다. 본능이지요. 이자크 디네센의 말을 한 번 더 인용합니다. “나에게, 삶의 이유는 그것의 멜로디, 그것의 패턴처럼 보입니다. 또한 나는 삶에서 그런 무한하고 진정 생각지도 못할 판타지를 느낍니다.”
편은정 | 철학을 공부하고 책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스토리텔러로 사람살이 이야기를 듣고 글을 쓰며 이야기의 힘과 기능에 계속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