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09월 통권 제1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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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시 꽃이 피었습니다]
우렁이논을 오가는 길에서

김은영 | 2015년 09월

우렁이논에서

아이들과 모내기했던 논으로 산책을 다녀왔습니다. 마을 길이어서 오가는 차 때문에 신경이 쓰였지만, 남자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뒤쳐져서 몰려 있다가 다시 뛰어오기를 반복했습니다. 논에 도착해서 “벼야 잘 자라라” 격려도 해 주고, 벼 잎을 만져보기도 했습니다. 논에서 사진도 찍고 우렁이도 보고 소금쟁이와 잠자리도 보았습니다. 산책은 자연과의 만남이고 수많은 생명들과의 교감을 나누는 일입니다. 그 만남과 교감을 시로 쓰는 것이지요.

자연은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에 있지만, 우리는 자연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살 때가 많습니다. 조금만 여유를 갖고 눈길만 주면 바로 곁에서 보고 느낄 수 있는데 말입니다. 이제 아이들도 자연 속에서 산다는 것이 경치만 보면서 도시인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연 속에서 생명을 만나고 시를 쓰면서 감성과 생태적 정서가 내면에서 싹트고 자란 까닭이겠지요.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논에 와 봤더니/ 초록 벼가 많이 자랐어요./ 그 밑에는 우렁이가 있었어요./ 우렁이 알도 참 많았어요./ 논이 초록으로 다 차 있었어요.” 「초록 벼와 우렁이」, 방현준
현준이의 시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논이 초록으로 다 차 있”다는 표현은 얼핏 보면 평범한 사실일 수 있으나 직관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표현이기에 그렇습니다.
“선생님이랑 산책을 하는데/ 청설모가 나무 위에서/ 다람쥐처럼 빠르게 달려서 신기했다./ 청설모를 만져 보고 싶다.” 「청설모」, 방하민
“청설모가/ 엄청 빠르고/ 진짜 귀여워요./ 산에서도 청설모를 봤고/ 다람쥐도 봤어요./ 다람쥐가 청설모보다 더 귀여워요.” 「청설모」, 장연우


산자락 아래 논두렁 길가에 있는 나무에서 재빠르게 기어오르고 나뭇가지에서 옆 나뭇가지로 건너뛰는 청설모를 본 아이들은 순간 탄성을 터뜨렸습니다. 자연과 생명은 놀이터이자 멋진 장난감일 테니 청설모를 귀엽다고 하고 만져 보고 싶은 건 당연한 욕구라고 볼 수 있겠지요.

한편, 방하민과 장연우는 많은 친구들과는 달리 ‘청설모’를 소재로 시를 썼습니다. 아마도 하민이는 ‘방아깨비’라고 아이들이 놀려서 청설모를 소재로 했을지도 모릅니다.(방아깨비 놀림 이야기는 뒤에 나온답니다.) 어쨌든 자기만의 소재를 골라서 쓴 것이지요. 앞에 나온 방현준의 「초록 벼와 우렁이」와 뒤에 나올 김혜민의 「산딸기」도 그렇습니다. 남과 다른 소재를 선택한다는 건 시선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장점이 있지요.

방아깨비에 홀린 아이들

학교로 돌아올 때에는 마을 농부 할아버지를 따라 개울가 논두렁길로 왔습니다. 오솔길 같았지요. 그 길에서 방아깨비를 만났고, 산딸기를 만났고, 청설모를 만났고, 개구리를 만났습니다. 그중 풀밭에서 뛰는 방아깨비를 보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방아깨비 잡는 재미에 빠져 도통 학교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랬으니 방아깨비를 소재로 쓴 아이들이 많을 수밖에요.

“방아깨비를 잡았다./ 그런데 실잠자리도 봤다./ 큰 방아깨비도 잡아서/ 키우려고 했는데 불쌍해서 풀어 주었다./ 방아깨비를 잡아서 신났다.” 「방아깨비와 실잠자리」, 최준범
“방아깨비를 잡았다./ 방아깨비 색깔은 초록색이었다./ 방아깨비를 더 많이 잡고 싶었는데/ 방아깨비가 불쌍해서 놔 줬다./ 방아깨비가 폴짝폴짝 뛰었다.” 「방아깨비」, 이윤호

방아깨비를 “키우려고 했는데 불쌍해서 풀어 주었다”는 준범이의 시나 “불쌍해서 놔 줬다”는 윤호의 시를 보면 산책하며 만나는 생명을 절대로 죽이지 말자는 약속을 지키는 아이들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놀이에 빠져 잡기는 했으나 다시 살려주는 것은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생명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지요.

“방아깨비가 엄청 컸다./ 그리고 성연우가 엄청 많이 잡았다./ 그리고 방아깨비가 고추 같이 생겼다./ 다리를 잡으니까 시소처럼 움직였다.” 「방아깨비」, 전호진

호진이의 표현도 참 재미있습니다. 호진이는 자기만의 비유와 표현을 찾아 쓴 게 참 좋습니다. “방아깨비가 고추 같이 생겼다”고 한 것은 방아깨비가 초록색이어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방아깨비가 방아를 찧듯 위아래로 움직이는 모습을 “시소처럼 움직였다”고 표현했습니다.

“잠자리가 윙윙 날아다녔어요./ 방아깨비 볼 때 방하민이 생각났어요./ 그런데 방아깨비가 너무 빨라서 못 잡았어요.” 「잠자리와 방아깨비」, 이대우
“논에 모가 컸는지 안 컸는지 보러 갔다./ 모를 보고 숲 속으로 들어가서/ 방아깨비를 봤다./ 방아깨비가 폴짝폴짝 뛰어갔다./ 남자들이 방아깨비를 잡고 방하민 친구라고 말했다.” 「방아깨비」, 이지민
“방아깨비를 잡는데/ 호진이가 방하민한테 방아깨비라고 했다./ 그래서 방하민이 씩씩거렸다.” 「방아깨비」, 송용준

대우와 지민이, 용준이의 시는 닮은 점이 있습니다. 방아깨비를 보고 말놀이를 하듯 첫음절이 같은 ‘방하민’을 연상한 것은 아이들의 놀이와 유희 본능 속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웃음이 납니다. 놀림을 받고 화가 나서 “씩씩거”린 방하민의 모습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놀이는 놀림과 경계가 모호할 때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사물의 연관성을 직접적인 비유로 묘사하기도 하지만 이처럼 시의 운율에서 두운을 활용하는 것처럼, 발음의 유사성만으로도 서로 놀리기도 하며 놀이를 창조해냅니다.

“방아깨비는 멋졌다./ 통통거리는 게 멋졌다./ 방아깨비는 논 색이다./ 풀숲에서 산다.” 「방아깨비」, 이도헌

위에서 현준이는 “논이 초록으로 다 차 있”다고 했다면, 도헌이 시에는 “방아깨비가 논 색”이란 발견이 담겨 있습니다. 도헌이는 또 친구들이 방아깨비의 움직임을 “폴짝폴짝” 뛴다고 묘사한 것과는 달리 “통통거린다”고 묘사했습니다. 비록 짧지만 자기만의 표현과 발견이 있는 것이지요.

“방아깨비를 잡았다./ 방아깨비를 잡으려고 했는데/ 옆에서 검정색 방아깨비가 나타나서/ 그 방아깨비를 잡았다./ 방아깨비가 신기했다.” 「방아깨비」, 오윤성
“방아깨비가 있어서 잡으려고 했는데 놓쳤다./ 방아깨비가 나타났다./ 그래서 잡았다./ 그런데 왕방아깨비였다./ 갈색 방아깨비는 없는 줄 알았는데 있었다./ 방아깨비를 너무 많이 잡아서 몇 마리인지 몰랐다./ 방아깨비가 이상하게 뛰었다.” 「방아깨비」, 성연우
“풀밭을 걸어가는데/ 방아깨비가 나왔다./ 메뚜기랑 비슷했다./ 잠자리도 봤다./ 방아깨비는 메뚜기랑 비교가 안 된다./ 폴짝폴짝 움직였다.” 「방아깨비」, 윤해환
“방아깨비가 완전 잘 뛰었다./ 그래서 잡기가 너무 힘들었다./ 풀 사이로 폴짝폴짝 뛰었다./ 선생님이 뒤에 불렀다.” 「방아깨비」, 오세준

오윤성, 성연우, 윤해환, 오세준, 이렇게 네 명의 개구쟁이들은 방아깨비 잡으며 노는 일에 흠뻑 빠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 보는 것도 아닐 텐데 신기해하고, 없는 줄 알았던 갈색 방아깨비도 보고, 폴짝폴짝 뛰는 모습을 메뚜기와 견주기도 하고, 더 잡고 싶은데 선생님이 불러서 아쉬워하는 마음도 느낄 수 있습니다.

잎새 뒤에 숨어 숨어 익은 산딸기

학교 주변에는 산딸기나무가 두 종류 있습니다. 버찌가 익는 유월 초쯤 복분자 나무처럼 길게 늘어져 자라는 산딸기나무가 학교 울타리 주변에 있고 7, 8월 여름에 붉게 익는 산딸기는 학교 바깥 논두렁길에 있습니다. 방아깨비를 잡고 노는 논둑길 가장자리를 살펴보니 탐스러운 산딸기가 있었습니다. 비탈진 곳에 덤불처럼 어우러지고 가시마저 있어서 아이들은 쉽게 딸 수 없었기에 몸을 앞으로 수그리고 팔을 쭉 뻗어 따야만 했습니다. 손바닥에 따 모은 산딸기가 어찌나 붉고 탐스러운지 먹기가 아까울 정도였습니다. 방아깨비를 잡지 않고 나를 따라온 여자아이들과 가까이 있던 남자아이들을 따주느라 가시에 긁히기도 했습니다.

“산딸기가 작았는데 커졌다./ 작았을 때보다 맛이 있었다./ 맛이 시기도 했다./ 산딸기가 톡톡 터지는 것 같았다./ 다른 애들은 방아깨비를 잡느라/ 조금밖에 못 먹었다.” 「산딸기」, 김혜민
“산딸기가 아주 맛있었어요./ 난 산딸기를 안 먹어봤어요./ 지금 또 먹고 싶어요.” 「산딸기」, 장연우

혜민이는 전에 따먹었던 산딸기보다 이번에 먹은 산딸기가 크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같은 종류의 산딸기로 알고 있나봅니다. 산딸기가 입속에서 “톡톡 터지는 것 같”다며 산딸기 맛을 생생하게 표현했습니다. 연우는 여름 산딸기를 처음 먹어보았을 것입니다. 몇 개 따주었더니 맛을 보고 금세 또 달라고 합니다. 야생의 맛, 자연의 맛이지요. 아이들이 시장기를 느낄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연우는 시를 두 편이나 썼습니다.

가을을 기다리며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옵니다. 가을도 한동안 무덥겠지요. 여름 동안 산책하며 열매를 따먹고 벌레나 곤충을 잡았던 일들을 시로 썼습니다. 가을이 오면 아이들은 여물어가는 대추를 따 먹거나 밤이나 도토리를 줍겠지요. 가을이 오면 산책하면서 쓴 시뿐만이 아니라 여덟 살의 눈으로 본 세상, 여덟 살 아이들의 인생을 담은 시를 써보자고 이야기해 보렵니다. 이 아이들의 맑고 순수한 세계만을 추구할 게 아니라 이따금 느끼는 분노와 슬픔, 괴로움도 담아내고 싶기 때문입니다.
김은영 | 198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시로 등단. 동시집 『빼앗긴 이름 한 글자』 『김치를 싫어하는 아이들아』 『아니, 방귀 뽕나무』 『선생님을 이긴 날』 『ㄹ받침 한 글자』 『삐딱삐딱 5교시 삐뚤빼뚤 내 글씨』 등을 펴냈습니다. 현재 남양주 작은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