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09월 통권 제1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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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세상 이야기]
새로운 서양 과학 기술을 도입하다

김연희 | 2015년 09월

일본과 새롭게 국제 관계를 맺으며 시작된 개항부터 조선 정부는 대원군이 다스렸던 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서양 문물을 받아들였습니다. 대원군 시대에는 어떻게 했었는지 기억나나요? 맞습니다. 바로 책을 통해서 서양 문물, 특히 무기와 관련된 기술들을 배우려 했지요. 결과도 기억나지요? 별로 신통치 않았던 것이요.

하지만 고종은 다른 방식으로 서양 문물을 도입하려 했어요. 그 기회는 직접 정치를 시작하면서 마련했지요. 결정적 계기는 개항으로 만들어졌어요.

외국에서 기술 익히기

1880년 이후부터 조선 정부는 각종 명목의 유학생과 시찰단을 외국에 파견했어요. 서양 과학 기술을 국가 통치에 적용하기 위해 정부 부서를 새로 만들기도 했지요. 이 부서를 중심으로 조선 정부는 무기 제조 기술 습득을 위한 영선사행, 서양 제도 도입으로 급격한 개화를 이룬 일본을 살피기 위해 조사시찰단을 파견했어요. 그리고 미국과 수교 후에는 보빙사절단 등을 파견해 서양 상황을 살펴보게 했지요. 또 부국강병 정책 추진을 위해 여러 정부 부서를 새로 만들기도 했지요. 이런 정책들은 막대한 비용이 필요했어요. 이 비용 마련을 위한 사업도 이들 부서들이 담당했어요. 예를 들면 광산 개발을 주도하는 광무국, 새로운 농법 개발과 비단 제조 산업을 위한 농상국, 새로운 화폐 주조를 위한 전환국, 낡은 방식의 봉수와 역원을 대신하는 전보국 등이에요.
 
부국강병을 위한 사업들은 대부분 근대 서양 과학 기술이 필요했지요. 이를 위해 유학생을 파견하는 일이 잦아졌어요. 특히 1881년 말에 이루어진 무기기술유학단인 영선사행을 청국으로 파견한 일은 관심을 가질 만합니다. 이 유학단의 목적은 서구식 무기 제조 기술을 배워오는 일이었어요. 청국 텐진 무기공장에 가게 된 유학생들은 전기, 화약, 기계 설계, 기계 작동 등의 신기술을 익혔습니다. 이들은 조선 최초로 새로운 신기술과 근대 과학을 접하고 익힌 사람들이에요.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몇몇은 정부의 새로운 부서에서 활동했어요. 하지만 전통적 기술자 출신 유학생들은 고생하며 익힌 기술을 써보지 못한 채 역사 속에서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되기도 했지요. 무기 공장 설립이 어려움을 겪게 되고 자꾸 늦어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1884년 미국에 파견된 보빙사절단이 본 서양의 과학 기술은 일본이나 청국과는 전혀 다른 경지의 것이었어요. 거대하고 화려한 건물이나 대륙을 횡단하는 철도, 전기로 움직이는 승강기도 보았지요. 무엇보다 광활한 농장을 보았어요. 최경석은 이 농장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을 열심히 관찰했습니다. 그는 농업뿐만 아니라 낙농업이나 축산업에도 큰 관심을 가졌어요. 귀국한 그는 고종의 지원을 받아 농무목축시험장이라는 시험용 농장을 마련했어요. 미국에서 수입한 새로운 품종의 농산물 재배와 낙농업을 시험하고 확장할 목적이었지요. 그는 미국에서 필요한 기계들과 도구들, 그리고 100여 가지의 종자, 소와 말, 양, 돼지 등을 수입했어요. 이 사업은 최경석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농장 경영이 어려워졌고, 그나마 영국에서 농업기사를 데리고 왔지만 그조차도 갑자기 죽는 바람에 이 농장 유지가 매우 어렵게 되었어요.

또 중국의 비단 제조 방법으로 비단을 제조하기 위한 시도도 했지요. 1884년 잠상공사를 설립해 중국에서 새로운 누에 종자와 뽕나무를 수입하기도 했답니다. 이때 수입한 뽕나무만 해도 100만 그루가 넘었지만 이 사업 역시 큰 효과를 보지 못했어요.

조선 정부, 서양 과학 기술 도입의 중심이 되다

이런 실패에도 불구하고 조선 정부는 서양 과학 기술이 국가 통치 제도들에 켜켜이 쌓인 문제를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했어요. 조선 초 마련된 역원과 봉수라는 훌륭한 제도도 500년의 긴 세월을 지내면서 부패와 무능으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이를 새로운 서양 통신 방법으로 바꾸려 한 것이 그 한 예입니다. 전기 신호를 이용하는 전보통신은 봉수를 대체할 것이라고 여겨졌어요.

이런 기대 속에 1884년 4월 우정총국이 설립되었지요. 전보통신기술을 익히기 위해 유학생들도 중국과 일본으로 파견되었고요. 하지만 우정총국이 갑신정변의 중심이 됨으로써 우편사업은 10년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전개될 수 있었고, 전신사업권은 청나라에게로 넘어가고 말았답니다. 물론 1895년에 되찾아 오기는 했지요.

서양 근대 기기와 기술자를 도입해 운영했던 부서로는 전환국을 들 수 있어요. 화폐를 근대식 기계와 화학을 이용해 만들어내는 공장을 운영하는 부서였어요. 전환국은 조선 정부의 재정 부족을 해결하고 개화 정책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그리고 근대적 화폐 제도를 수립하기 위해 만들어진 부서였어요. 전환국은 용산에 공장 터를 마련하고 압인기(디자인을 금속에 눌러 동전을 찍어내는 기계)와 엔진 등 근대 화폐 주조를 위한 기기를 구입했고, 이를 관리할 독일인 기사 3명도 초빙했지요. 그리고 청동이나 주석에 도금하는 방법으로 각각 5종의 금화와 은화, 그리고 적동화를 주조할 계획을 세우고, 독일에서 화폐주조의 기본 모형이라고 할 수 있는 극인과 종인을 주문 제조, 수입하기도 했어요. 주조 상태가 좋지 않아 일본 조폐국 기수 2명을 초빙해 수정 보완하는 과정을 거치기도 했답니다.

1885년에는 서양 의사를 채용한 광혜원(이후 제중원으로 개칭)이 정부에 의해 설립되기도 했지요. 또 증기선을 도입해 근대 해운기술을 확보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어요. 조선 정부는 1885년 전운서(轉運署)라는 해운업무 전담 부서를 설치했고 기선을 구입해 세금으로 받는 곡식 운송을 담당하게 하기도 했어요. 전운서의 주요 업무는 단지 기선을 도입해 세곡 운반을 수행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조선 근해의 해운권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의 해운업을 견제하고 조선의 대외무역과 국내 상업을 발전시키려 했지요. 조선 정부는 1881년, 조사시찰단을 일본에 파견했을 때 김용원(金鏞元)으로 하여금 기선 운항에 관한 제반 사항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게 하기도 했답니다.

1886년에는 근대 무기를 수리하고, 뇌관과 같은 군사 소모품을 제조할 수 있는 규모의 무기공장이 세워지기도 했어요. 1883년 이를 관할할 기기국이 설립되었고 1882년 무기기술 훈련 유학생이 귀국했음을 감안하면 공장의 설립은 매우 늦어진 것이었고 규모도 실제 많이 축소된 것이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군사력을 강화시킨다는 정책이 조선 정부의 가장 큰 목적임을 생각한다면 적은 규모이지만 무기공장이 마련된 것은 당시 상황에서는 다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지식들이 쏟아지다

이런 일들이 정부에서 발행한 신문에 자세하게 보도되었어요. 이 신문은 1883년 첫 호를 낸 「한성순보」입니다. 이 신문에는 이런 정부의 움직임들만 보도된 것이 아니었어요. 서양 과학 기술 관련 지식 도입에도 열심이었습니다. 이 신문은 박문국이라는 정부 부서에서 서양식 인쇄기를 수입해 발행했는데요. 10일마다 한 번씩 3천 부를 발행해 전국 곳곳에 배포했지요.

정부의 움직임을 주로 소개했지만, 서양 문물과 사정, 그리고 과학 기술을 알리는 기사도 많이 실었어요. 지구가 둥글고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이며 달은 위성이며 일식과 월식은 지구의 자전과 공전에 의해 생기는 자연적인 현상이라거나, 세계에는 5대주 6대양이 있고 많은 나라들이 대륙에 자리 잡고 있으며 여러 인종들이 살고 있으며, 다양한 동물과 식물이 퍼져 있다고도 전했어요. 서양이 동양에서 배워간 과학과 기술로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다고 주장하면서 그 중에는 전기나 전신과 같이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기술들이 적지 않다고 했지요.

이 신문은 1884년 말에 일어난 갑신정변으로 발행이 중지되었다가 1885년 말 1주일에 한 번씩 발행하는 「한성주보」로 복간되었어요. 1887년부터는 재정이 부족해 더 이상 찍어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서양의 과학 기술로 유교의 나라를 강건히 하려 하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근대 과학기술을 들여와 정부를 개혁하려는 움직임이 적지 않았어요. 책으로만 서양의 기술을 익히려 했던 대원군 섭정기 때와는 많은 차이가 나지요. 하지만 고종이 서양 과학 기술을 우호적으로 바라보고 외국에 직접 사람을 보내 기술을 익히게 하거나 외국인 기술자들을 초대하여 직접 서양 과학 기술을 익히려 했다고 하더라도 서양 과학 기술을 바라보는 기본 입장은 서양의 과학과 기술로 조선의 안위와 종묘사직을 지킨다는 것이었어요.

서양의 과학 기술을 이용해 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키워 일본 및 서양과 대등한 관계를 만들어 외국으로부터 수모를 겪지 않겠다는 것과, 이를 바탕으로 유교 국가로서의 기틀을 다지겠다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지요. 이런 태도를 동도서기라고 하는데요. 이 생각을 토대로 서양 과학 기술을 받아들였고,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진 때가 대한제국기입니다.

- 본문에 사용한 사진들은 문화재청 공공누리 자료를 사용하였습니다.
김연희 | 서울대학교에서 한국과학사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서울대학교 연구교수로 있습니다. 한국 역사 속에서의 자연 이해와 자연 이용 기술에 관심이 많습니다. 서양 과학과 우리 전통 과학이 만났을 때의 이해 방식에 관해 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 『창덕궁에서 만나는 우리 과학』과 『강은 어떻게 흘러가나』 『고종 시대의 과학 이야기』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