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09월 통권 제1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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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책 이야기

[어린이 책 깊이 들여다보기]
존재하지만 의식하지 못하는 아픔은 어떻게 극복되는가

권혁준 | 2015년 09월

어린이의 삶에서 배워가고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타인과의 관계 맺기라고 할 수 있다. 부모의 사랑이 바탕이 되는 가족 간의 관계나 혈연으로 맺어진 친척 형제와의 관계는 비교적 원만한 아이들도 학교 친구와의 관계에서는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물론 부모 자식 간의 관계나 형제자매와의 관계도 항상 원만한 것은 아니다. 구약성서의 카인과 아벨 이야기나, 흥부전, 콩쥐팥쥐 같은 옛이야기를 보면 인간 사이의 가장 원초적인 갈등은 형제 관계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은 성장해가면서 사귀어야 할 사람, 부딪쳐야 할 사람이 더 많아지고 복잡해질 수밖에 없으며, 인간관계의 어려움도 더 커진다. 타인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아픔은 쉽게 극복하기 어렵기에 이 문제는 어린이가 성장해가면서 배우고 해결해야 할 지난한 인생 과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승에서 배우는 이승의 삶
이승에서 인색하게 살던 부자(또는 현감)가 저승에 갔다가 빈천한 자의 곳간에서 노자를 빌려 이승에 오는 모티프는 옛이야기에서 익히 보던 것이다. 『노잣돈 갚기 프로젝트』는 옛이야기의 모티프를 현대 도시를 배경으로 다시 쓴 아동소설이다. 동우는 등굣길 문구점 앞에서 준희를 만난다. 준희가 준비물 사고 남은 돈을 들고 있기에 전에도 종종 그랬던 것처럼 돈을 빌려달라고 하자 준희는 반항을 하며 차도로 뛰어들고 뒤쫓던 동우는 자동차에 부딪혀 하늘을 날았다가 도로에 처박힌다. 이후 벌어지는 일들은 옛이야기의 전개와 비슷하다. 다만,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교통수단이 나룻배가 아니고 검은 버스라든가, 저승사자와의 의사소통 수단이 핸드폰이라든가 하는 설정은 현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에 리얼리티를 부여하고 잔잔한 재미를 준다.

염라대왕 앞에서 심판을 받던 동우는 저승사자가 실수로 잘못 데려온 것이 밝혀져 다시 살아날 수 있었지만 동우의 저승 곳간에는 이승으로 돌아올 노자가 없다. 누군가의 곳간에서 노자를 빌려 이승에 돌아온 동우는 49일 안에 노자를 갚지 않으면 다시 저승으로 돌아가야 한다. 병원에서 다시 깨어난 동우는 우여곡절 끝에 자기가 갚아야 할 노잣돈의 주인이 그동안 자기가 괴롭혔던 준희라는 것을 알게 되고 친구네 집에서 훔친 돈 10만 원을 준희의 주머니에 억지로 넣어 준다. 그러나 노자 장부의 ‘正’자는 한 획도 지워지지 않고 노자 갚을 날은 점점 가까워 온다. 저승 곳간에서 빌린 노자를 ‘돈’으로 갚을 생각만 하는 동우의 행동은 이 시대 보편적인 어린이들의 물질적 가치관을 반영하고, 고발하는 것 같다.

동우가 노자 갚는 방법을 알지 못해 답답해하면서 노자 장부를 펼쳐보니 이게 웬 일? ‘正’자 하나가 지워진 것이 아닌가.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준희가 혼자서만 급식 뒷정리하는 것을 보고 안쓰러워서 친구들에게 준희를 편들어주는 말을 한 것 때문인 것 같다. 노자 갚는 방법을 깨달아 가는 것이다. 작가의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타인과 진정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마음에도 없는 ‘돈’보다는 진정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그의 처지를 헤아리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는 타인의 범주에 사람만이 아니라 고양이 같은 생명도 포함된다. 동우가 죽어가는 새끼 고양이를 불쌍히 여기고 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줄 때 노자 장부의 숫자가 줄어들고, 결정적으로 준희가 기르던 고양이를 살리기 위해 자기도 모르게 찻길로 뛰어들어 고양이를 품에 안았을 때 ‘노잣돈 갚기 프로젝트’는 완수된다.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넘어 인간 이외의 생명체까지도 소중한 마음으로 대해야 함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동우가 ‘노잣돈 갚기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깨달아가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이 시대의 독자들도 물질적인 가치보다는 진정성 있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 타자와 진정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진심으로 상대를 위하고 배려해야 함을 알게 될 것이다.

융의 ‘개별화 과정’ 이론으로 텍스트 읽기  

이상의 내용이 이 텍스트에 대한 표면적인 해석이다. 어린 독자들 또는 보통의 독서 능력을 지닌 성인 독자들이 이 정도만 읽어내도 작가가 의도한 메시지를 잘 이해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텍스트를 칼 구스타브 융(Carl Gustav Jung)의 이론을 알고 읽으면 주인공 동우의 심층적인 마음의 움직임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융은 개인의 심리적 발달과 성숙의 과정을 ‘개별화(individuation) 과정’이라는 이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를 간단히 설명하면, 인간이 독립적이고 전체적이며 완전한 개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는 정신적 혼란을 겪게 되며 그 혼돈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과정에 무의식이 중심적 역할을 한다는 것, 그리고 이 심리적 과정은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첫 번째는 무의식 단계(unconscious stage)로 개인이 외부 세상의 문제와 위험들을 인식하지 못하는 아동기의 본성적이고 완전히 순수한 단계이며, 두 번째 단계는 의식적 단계(conscious stage)로 개인이 자신의 결점과 자신을 둘러싼 세상의 문제를 깨닫게 되는 단계로서 불안, 고뇌, 그리고 성격 분열이 있는 시기이다. 세 번째 단계는 의식과 무의식이 통합되어 행복한 일치, 균형, 조화를 얻게 되는 단계이다. 1

동우는 준희에게 돈을 빼앗으면서도 빌린다고 표현한다. 찻길로 도망가는 준희를 뒤쫓아 가면서까지 돈을 빼앗으려 하고, 찌질이라 부르고 뒤통수를 때리면서도 동우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한다. 준희의 자존심이 얼마나 상처를 입을지, 그의 마음이 얼마나 괴로울지는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자신의 입장에서 편안함과 쾌락을 위해 아무런 의식 없이 타인을 괴롭힌다. 이 단계를 융 학파의 용어로 말하면 무의식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동우가 자신의 문제를 깨닫기 위해서는 혹독한 시련이 필요하다. 이 작품에서 동우가 치러야 할 대가는 죽음이다. 그런데 동우는 저승에 갔다 와서도 자기의 잘못을 인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저승에서 보내오는 신호도 무시하려 든다. 자신의 결점과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은 이토록 어려운 과업이다. 저승사자가 핸드폰의 문자 메시지로, 49일 안에 노잣돈을 갚지 못하면 다시 죽어야 한다고 경고하고, 손이 반쯤 투명해지는 위협을 당한 후에야 동우는 비로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는다. 그리고도 자기 돈으로 불량 중학생들의 담배 심부름을 해보고 나서야 준희가 겪었던 마음의 상처를 이해한다. 저승사자의 도움으로 자기의 문제를 인식하는 이 단계가 의식적 단계이다.

노자를 갚기 위해서 동우는 저승사자의 충고에 따라 준희를 열심히 관찰하기 시작한다. 준희에게 관심을 갖고 준희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니 비로소 그의 괴로움과 아픔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자기도 모르게 준희를 위하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노자를 갚기 위해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의식도 없이 저절로 준희를 위하여 행동을 하는 단계가 무의식과 의식이 통합되는 단계로 볼 수 있다. 통합 단계는 타인의 감정과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세계와 조화로운 상태가 되는 것이며, 도덕적이고 정신적인 성숙을 이끄는 자아 발견의 단계이다.

한편, 신화와 전래동화에 나오는 개별화 과정은 대체로 지옥(상징적인 죽음)으로의 전락, 고난, 상승, 부활의 형태를 취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 작품의 플롯도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것이 흥미롭다. 이 작품이 민담의 모티프를 빌려 썼기 때문에 얻게 된 수확이다. 동우가 저승에 가서 염라대왕을 만나는 장면이 무의식을 뜻하는 죽음의 단계이며, 저승에서 돌아와 노자 갚는 방법을 알아가는 과정이 상승을 위한 고난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또 차도로 뛰어든 고양이를 살리기 위해 자기 몸을 던졌다가 자동차에 치여 다시 한 번 저승에 갔다가 되돌아온 결말은 정신적 부활을 상징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무의식에 침잠해 있는 슬픔과 죄책감

『말하는 까만 돌』도 표면상으로는 어린이가 겪는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그린 작품으로 읽을 수 있다. 주인공 지호는 조부모, 아빠와 같이 사는 아이다. 엄마는 2년 전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형규, 희준이 같은 악당들은 새나 벌레와만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며 아토피 피부염이 있다는 이유로 지호를 못살게 굴고 왕따 시킨다. 어느 날 지호는 이 악당들의 괴롭힘을 피해 달아나다가 숲 속에서 까만 돌 하나를 발견하고 그 돌이 말도 하고 사람의 말도 들을 줄 아는 신기한 돌임을 알게 된다. 아무하고도 대화를 나누지 않던 지호는 그때부터 까만 돌과 이야기를 나눈다. 주로 지호가 말하고 까만 돌은 어쩌다가 대꾸를 할 뿐이지만 지호는 까만 돌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음이 후련해짐을 느낀다.

지호가 까만 돌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보면 정신과 치료나 상담의 원리를 떠올리게 된다. 상담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내담자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이다. 충고나 조언, 치료에 앞서 내담자의 고민과 상처를 공감하고 이해해 주어야 한다. 여기서 까만 돌이 하는 역할이 바로 그것이다. 까만 돌은 지호가 마음 편하게 말할 수 있도록 그저 조용히 듣기만 한다. 반응을 할 때도 마음속에 억눌려있던 답답함을 드러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도에서 그친다. 조언이 필요할 때도 지호가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볼 수 있는 질문을 함으로써 스스로 자신을 성찰해볼 수 있는 방법을 취한다. 그러므로 이 돌은 ‘말하는 까만 돌’이라기보다는 ‘들어주는 까만 돌’이라고 해야 옳다.

지호는 까만 돌에게 학교에서 벌어진 사소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다가 점차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지호의 상처는 조금씩 치유되기 시작한다. 지호가 자신의 고민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서 돌이 대답을 하지 않아도 자기의 질문 속에 답이 들어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야기의 앞부분을 보면 지호의 고민은 악당 친구들에게 괴롭힘과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과 실어증에 걸려 지호와 한 마디도 대화를 나누지 않는 아버지 때문인 것 같지만 이야기가 진전되면서 그런 일들은 겉으로 보이는 문제일 뿐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지호가 나무나 풀들과만 이야기를 나눈다든가, 수학 시간엔 칠판의 글씨도 안 보이고 수학 문제를 못 푸는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엄마를 잃은 슬픔이 지호를 억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어린 지호는 자신이 지닌 문제의 원인은 물론이고 문제 자체도 의식하지 못한다.

지호를 사랑으로 돌보는 할머니나 지호에게 관심이 많은 선생님도 이 문제의 원인을 알지 못한다. 앞에서 서술한 융의 ‘개별화 과정’ 이론으로 이 작품을 들여다보면, 지호가 지닌 심리적 장애와 그 원인, 치유의 과정, 이 동화의 주제 등 작품의 전반적인 내용이 더 잘 이해된다.

지호가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새나 콩벌레, 나무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나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하는 장면은 그렇게 심각해 보이지 않는다. 새가 자기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 같은 몸짓을 할 때는 즐거워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의식하지 못할 뿐이다. 슬픔이 마음의 저 깊은 곳에 침잠해 있기 때문에 지호는 자기의 슬픔 자체를 의식하지 못한다. 존재하지만 의식하지 못하는 슬픔. 무의식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말하는 까만 돌’에게 자기를 괴롭히는 악당 이야기, 자기를 돌보아주는 할머니 이야기, 말을 하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털어놓으면서 지호는 자기 마음을 응시하게 된다. 까만 돌이랑 있을 때는 수다쟁이가 되는 지호는 자기의 걱정을 말로 표현하면서 서서히 자기 아픔의 실체를 자각한다. 의식적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통합 단계는 어린 지호의 힘만으로는 다다를 수 없다. 아빠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말하는 까만 돌’에게 아빠의 슬픔을 치유하는 역할도 맡긴다. 지호 아빠의 치유 과정도 개별화 과정의 3단계를 거친다. 자기의 나태함과 무관심으로 아내를 잃었다고 생각하는 지호 아빠는 그 죄책감 때문에 실어증에 걸렸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도 못한다. 자기 자신의 문제를 의식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자기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다. 모른다기보다는 회피하고 싶은 죄책감을 무의식 속에 밀어 넣어 억누르고 있으니 무의식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지호의 방에서 지호 물건을 살펴보던 아빠는 우연히 까만 돌이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까만 돌에게 지호가 처한 어려움을 듣는다. 그러자 불현듯 악몽 같은 이 년 전 일이 떠오른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그 일이…. 이제 지호 아빠는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 마루 밑의 도둑고양이처럼 가슴속에 웅크리고 있는 이야기, 자기를 실어증에 빠뜨린 그 이야기를 까만 돌에게 풀어놓게 된다. 죄책감을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올리는 의식적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얘기를 하고 나니 가슴에서 돌덩이를 내려놓은 것 같았다. 눈가에 따뜻한 물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지호 손을 잡았을 때의 느낌도 떠올랐다. 작고 말랑하고 따스한….(본문 111쪽)

무의식 속에 잠겨 있던 지호와 아빠의 슬픔이 의식의 표면 위로 떠오르자 두 사람의 치유는 순탄하게 진전된다. 아빠가 수학을 가르쳐 주자 지호는 아주 쉽게 문제를 풀 수 있게 되고 칠판 위의 글씨가 또렷하게 보인다. 이웃집에 사는 줄리 아줌마와 같이 사진첩을 보다가 엄마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아빠가 엄마와 살던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하자 지호는 드디어 자신이 회피하던 슬픔의 실체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아빠 입에서 나온 ‘엄마’라는 말을 듣는 순간 모든 것이 살아났다. 잠자는 마법에 걸린 성이 마법에서 풀려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깨어나듯이.
엄마 얼굴과 지호네가 살던 집과 동네, 엄마 목소리, 셋이 함께 가던 시장, 빵집, 공원, 수영장, 소아과 병원…. 지호 머릿속에 모든 것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바람 빠진 공기 인형에 바람을 빵빵하게 채워 넣은 것처럼 모든 것이 제 모습을 찾았다. 엄마 얼굴도 또렷하게 생각났다.(본문 167~168쪽)


악당들의 괴롭힘을 피해다니고,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하면서 지호는 엄마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슬프다는 생각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빠에게 ‘엄마’라는 말을 듣자 마법에서 풀려나듯이 엄마가 떠오른다. 엄마 얼굴이 또렷이 생각났다는 것은 지호가 자신의 슬픔을 객관화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지호는 물론 아빠도 혼자서는 슬픔을 극복하기 어렵다. 아빠와 지호가 따뜻하게 손을 잡고 서로의 유대 관계를 회복함과 동시에 두 사람의 슬픔도 극복된다.

이야기의 힘, 이론의 힘
어떤 이론으로 문학 작품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했을 때 혹자는 그 이론과 텍스트의 상관관계에 회의의 시선을 보내는 경우가 있다. 작가가 그런 이론을 알고 그에 맞추어 작품을 쓰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이다. 좋은 작가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나 인간이 겪는 다양한 문제 상황 그리고 그 문제를 극복하며 성장해가는 과정 등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할 뿐이다. 인생의 다양한 국면을 통찰하고 그것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여 독자들에게 깨달음과 감동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문학의 좋은 이론도 인간의 다양한 국면을 잘 설명해준다. 예컨대 좋은 심리학 이론은 인간의 내면이나 심리적인 문제를 잘 설명해주고 적절한 해결 방안까지도 제시해 준다. 그러므로 작가가 어떤 문학 이론이나 심리학 이론을 모른 채 작품을 썼더라도, 좋은 문학 작품은 문학 이론이나 심리학 이론으로 설명이 잘 될 수밖에 없다. 이론의 도움으로 작품을 읽어낼 때 더 깊고, 풍부한 의미를 길어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 현실에서 겪는 어린이의 고민과 갈등을 주제로 동화를 쓸 때에도 표면적인 갈등을 그리는 작품보다는 그들의 내면과 욕망을 깊이 있게 그려내는 작품이 인간 삶의 심층까지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더 우수한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1 『아동문학의 미학적 접근』 마리아 니콜라예바, 조희숙 외 역, 교문사, 2009, 114~116쪽 참조
권혁준 | 공주교대에서 문학교육을 강의하는 어린이문학 평론가입니다. 저서로 『아동문학의 이해』 『문학이론과 시교육』 『독서교육의 이론과 방법』 『살아있는 동화 읽기, 깊이 있는 삶 읽기』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