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06월 통권 제1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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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서평]
글을 쓰는 이유

편은정 | 2015년 06월

작가는 왜 글을 쓸까요. 글쓰기는 본능처럼 무작정 시작될지 몰라도, 결국 작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쓰게 됩니다. 설령 사물에 관한 글이라도 사물을 만들고 개념을 부여한 것이 사람이니, 그 배후에 사람이 있지요. 세상사와 사람살이를 자신의 언어로 보여 주는 것이 업이어서 작가는 자신을 둘러싼 세상, 자신이 만난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에 빚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이유로 사람을 존중하고 사람살이에 겸허해야 함은 기록하고 말하려는 자의 기본이어야 한다 생각했습니다.

‘빚지고 있고’ 그래서 ‘도의적 책임’을 느낄 수밖에 없는 작가의 글쓰기를 마주합니다. 『추락하는 것은 복근이 없다』는 김해원 작가의 단편소설 모음집입니다. 누군가의 외로움, 누군가의 절망, 누군가의 쓸쓸한 성장, 누군가의 마지막. 작가는 이런 순간을 함께합니다. 주인공들이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말들, 끊임없이 뇌와 입 사이에서 맴돌던 말을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경준이네 반지하 집의 쓸쓸한 정경을 읽다 보면, 여섯 아이들이 만날 찾아와 라면 끓여 내라는데도 내쫓지 않은 건 단지 후환이 두려워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요.

“혼자 남은 반지하 집은 어두운 굴속 같았다. 어쩌면 이 굴에 다시 찾아올 사람은 없을지 모른다. 민호도, 여섯 명도. 그리고 아빠도, 엄마도 다시 올지 알 수 없다.”(「가방에」)

처절한 외로움. 반지하 집에 가득한 외로움은 경준이 혼자 소비하기에는 너무 컸습니다. 가방이라는 작은 공간이 경준이가 그나마 견딜 수 있는 공간이었을까요. 그 안에서 경준이는 편안함을 느낍니다.

“나는 진술서를 더 읽지 않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말을 그들한테 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최후진술」) “내가 걔를 봤다고요. 그날, 베란다 앞에 서 있는 아이를 봤어요. 그 아이가 뒤를 흘낏 돌아봤는데 나하고 눈이 마주쳤다고요. 아이는 울고 있었어요. 그때 내가 그 아이에게 알은체를 했으면, 그 아이는 살았을지 몰라요.” (「구토」) “부부의 뒤꽁무니를 선뜻 따르지 못한 여자아이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쳐다보던 건 작고 흰 브래지어였다.”(「붉은 브래지어」)

미처 내뱉지 못한 이 말들의 주인은 반도체 회사 직원이었던 백혈병 소녀, 왕따이거나 왕따였던 사람들, 스스로 세상을 저버린 사람들과 이들을 막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주인공은 다 다르지만 우리가 공유하는 이곳에 일어나는 일은 우리를 둘러싼 현실을 조금씩 다른 시점에서 보게 됩니다. 때로는 웃겨 주고, 때로는 삶이 무언지 말해 주지만, 무엇보다 이들의 공감자이자 이야기의 전달자로서 작가는 이야기 속 인물의 아픔, 쓸쓸함, 외로움을 더 적극적으로 책임지지 못했다는 데 대한 안타까움과 후회를 내비칩니다.

반짝이기를 기대하건만, 실상 삶은 지난한 순간과 무기력함을 견뎌내는 것 같습니다. 삶이 원래 그런 것이어서 더더욱, 무기력함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는 이들을 응원하게 됩니다. “한번 혼자서 뭐든 내 힘으로 해 보고 싶어서요.” “정말 위험한 건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이 세상에 부유하고 있는 거지요.”(「표류」) 이 남자는 스티로폼 배 타고 태평양을 횡단하는, 정말 무모하고 쓸데없어 보이는 일에 도전합니다. 구태의연한 일상에서 벗어나려는 거지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삶이란 자기의 좁은 생각 안에서만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그 남자는 알았으니까요. 욕으로 학교를 재패했던 껌딱지는 이제 자기의 연약함을 피력하고자 자기를 쓰러뜨린 이고수의 손목을 잡고 뜁니다.(「추락하는 것은 복근이 없다」) 본능적으로 비루함을 내보이며 더 억울해질 일을 차단하려는 겁니다. 추락하는 껌딱지에게 간지나 복근 따위는 없지만, 비루함 덕에 껌딱지는 삶의 다른 부분을 지키게 될 것입니다. 비루함, 패배가 생의 에너지로 변모할 거라는 묘한 기대가 생기지요. 마지막으로 작가는 버마에서 온 뚜라의 입을 빌려 말합니다. “헬로.”(「을지로 순환선을 타고」) 이 통화를 시작으로, 뚜라는 절망에 젖기를 멈추고 삶의 현장에 뛰어들 것입니다.

알아요, 그 모든 것이 삶이고 삶의 현장이지요. 절망이든 기쁨이든. 그럼에도 삶은, 일도 내고 상처도 받고 뻔뻔하게 다시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성아가 후회와 통탄을 담아 내뱉듯이요. ‘그래도 그러지 말지. 그냥 좀 참지. 살아보지.’(「구토」) 그런데 비루함으로도, 절망을 견뎌내는 것으로도 지킬 수 없는 생명이 있기에, 세상이 빼앗는 생명을 목격했기에, 작가는 부채 의식에 글을 이어갈 수밖에 없고 세상의 글쓰기는 멈추지 않습니다.
편은정 | 철학을 공부하고 책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책 속 이야기에 곧잘 매혹되고 책 밖의 사람살이가 궁금합니다. 지금은 스토리텔러로 사람살이 이야기를 듣고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