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06월 통권 제1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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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시 꽃이 피었습니다]
석 줄 시에 담긴 1학년 아이들

김은영 | 2015년 06월

저만치 떨어져서 지켜보기

시를 석 줄 써 보자고 했더니 한 아이가 금방 다 썼다고 가져왔습니다. “진달래꽃이/ 향기가/ 좋았어요.”였습니다. 웃음이 나는 걸 참으며 “한 문장밖에 안 되는데?” 하니 “아니에요, 세 줄이잖아요.” 합니다. 제 딴에는 잔꾀를 낸 것인데, 그 모습이 당돌하면서도 귀엽습니다.

3월부터 시 읽기를 하면서 한 글자나 한 낱말이 한 행을 이루는 시를 읽어서 그렇게 썼는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에게 행갈이를 어떻게 지도할까? 시를 쓰는 저도 참 어려운 일입니다. 더군다나 1학년 아이들에게 운율이나 호흡, 내용의 흐름에 따라 행을 바꿔 쓰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그냥 느낌이나 생각을 한 줄 더 써 보자고 합니다. 그러면 대개가 ‘재미있었다’ 또는 ‘기뻤다’ 라고 쓰지만 잠자코 한 줄 더 쓰기를 기다리지요.

1학년 아이들에게 시 쓰기와 시 지도는 화두를 던지고 참선하는 것과 같습니다. 대신 실컷 놀고 깊이 관찰하도록 자극을 주어야 하지요. 그리고 시를 쓸 때는 가만 두는 게 낫습니다. 저만치 떨어져서 지켜보는 일밖에 달리 할 일이 없지요. 개입하면 할수록 닮은 작품이 많이 나오고 그러다보면 아이들만의 살아있는 감각이나 기발한 생각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앞서 썼던 시들과 느낌이나 생각을 똑같이 써 오면 다른 말을 찾아보라고 권하는 정도입니다.

진달래꽃 따는 날

봄에 학교 앞산으로 진달래꽃을 따러 갔습니다. 다음날 진달래 화전을 만들 예정이었거든요. 하민이네 집 앞 개울가 징검다리를 건너 도헌이네 할아버지 비닐하우스가 있는 산비탈 아래로 갔습니다. 진달래꽃들에게 “미안해”라고 말하고, 꽃잎이 으깨지거나 찢어지지 않도록 꽃받침을 잡고 살살 땄습니다. 아이들은 마냥 신이 나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산에 올라가고, 뛰고, 소리 지르며 좋아했습니다. 자연과 생태가 살아있는 곳에 학교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꽃을 따고 돌아와 모두 시를 썼습니다.

“진달래꽃 잎이 천 같았다./ 진달래를 따다가 나뭇가지를 따기도 했다./ 나뭇가지가 같이 나오면/ 나무에게 미안했다.”(「진달래꽃」, 김혜민)
“징검다리를 건너가는 게 재미있었어요./ 징검다리를 건너다가 빠졌는데/ 양말이 안 젖었어요./ 조안초등학교 가는 길에 맨 뒤에서/ 징검다리에서 슈퍼 점프를 했어요.”(「징검다리」, 성연우)
“징검다리를/ 볼장볼장 뛰면서/ 건너서 행복했다.”(「진달래꽃」, 윤해환)
“진달래를 보니까 행복해졌어요./ 진달래가 나한테 예쁘다고 했어요./ 진달래는 너무 너무 예뻐요.”(「진달래꽃」, 이지민)
“징검다리가 보여서/ 어쩔 수 없이 건너봤는데/ 다행히 신발도 안 젖고/ 양말도 다행히 안 젖었다./ 그래서 예쁜 꽃도 따게 되었다.”(「징검다리」, 장연우)
“징검다리를 건너갈 때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징검다리를 건너는데/ 다리가 후둘후둘했습니다.”(「징검다리」, 최준범)

•• 진달래꽃을 따러 간 날, 진달래꽃보다도 징검다리를 소재로 시를 쓴 아이들이 더 많았습니다. 진달래꽃을 딴 일보다는 징검다리를 건너 본 경험이 아이들 가슴에 더 남았나 봅니다. 진달래꽃이 아이들에게 의미로 다가가긴 아직 더 기다려야 할 것도 같습니다. 자연 속 체험이 의미가 되고 삶과 정서를 가꾸어 주리라 확신하기에 여러 가지 생태 체험을 하고 이렇게 시를 씁니다. 진달래 나뭇가지까지 따서 “미안했다.”는 혜민이의 마음, “진달래를 보니까 행복”했다는 지민이의 마음이 기특하고 예쁘기 그지없습니다.

봄비 내리는 날

봄비 내리는 날, 아이들이랑 우산을 쓰고 바깥으로 나갔습니다. 먼 산꼭대기에서 흩어지는 구름을 보며 “야, 저기 용 올라간다.” 했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이들이 “어디요?” 하면서 구름에 가린 산을 봅니다. “진짜 저기 용이 올라간다.”며 담임의 거짓말에 속아 장단을 맞추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비바람에 진 벚꽃 잎도 보고, 빗방울 맺힌 비비추도 보고, 운동장 물웅덩이에 떨어지는 빗방울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이 춥다고 하여 교실로 들어왔습니다.

오늘은 무엇으로 시를 쓸까 물었더니 “비, 빗방울, 봄비, 구름, 용, 꽃비(현준이에게 ‘꽃비’를 어디서 들었냐고 물으니 아빠가 말해줬다고 합니다.)” 이런 말들을 해서 모두 칠판에 적었습니다. 점심시간까지 남은 시간이 십여 분밖에 되지 않았지만 시를 석 줄에서 다섯 줄까지 써 보자고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자기가 고른 제목(소재)으로 뚝딱! 시를 써냈습니다.

“비가 오는데 추웠어요./ 느낌이 얼을 것 같았어요.”(「비」, 이대우)
“빗방울이 얼음 같았다./ 그래서 시원했다./ 신기하고 멋있었다.”(「빗방울」, 방하민)
“달팽이 찾고 있었는데/ 달팽이가 없었어요./ 빗소리가 톡! 톡! 톡! 났어요./ 비가 조금 오다가 많이 왔어요.”(「봄비」, 성연우)
“산에서 구름 속에서/ 용이 나타나는 전설/ 놀랐어요.”(「용」, 이도헌)
“비가 주룩주룩/ 물이 가득 차 있는 곳이 재밌어요./ 왜냐하면 콩콩 뛸 때/ 촉촉하면서 물이 튀기니까요.”(「비」, 장연우)
“내가 우산을 쓰고 있었는데/ 빗방울이 두두둑 두두둑/ 소리가 났다./ 두두둑 두두둑/ 너무 재미있었다.”(「빗방울」, 이지민)
“빗방울 소리가 톡! 톡! 톡! 예뻤다./ 숲에서 비가 떨어질 때 멋이 있었다./ 운동장에서 떨어질 때 소리가 멋이 있었다./ 운동장의 웅덩이가 냇물 같았다.”(「빗방울」, 오윤성)
“봄비가 떨어지는 소리가 좋았어요./ 그리고 용도 멋있었어요.”(「봄비랑 용」, 방현준)
“비가 왔다./ 천둥이 쳐서 무서웠다./ 하지만 빗방울이 뚜뚜득 떨어져서 좋았다.”(「비」, 오세준)
“빗방울이 우산에 떨어지니까 좋았습니다./ 그리고 빗방울이 우산에 떨어져서/ 비가 노래를 부르니까 좋았습니다.”(「빗방울」, 최준범)
“빗방울이 눈알처럼 작았다./ 그리고 빗방울이 파란색이었다.”(「빗방울」, 윤해환)
“빗방울이 땅에 톡! 톡! 떨어졌다./ 운동장은 툭! 툭! 떨어졌다./ 몸이 추웠다./
옷은 두껍게 입었는데 추웠다.”(「빗방울」, 김혜민)
“봄비가 톡! 톡! 했어요./ 소리가 좋았어요./ 빗방울이 길쭉했어요./ 빗방울이 우산으로 떨어졌어요.”(「봄비」, 이윤호)
“비가 천둥 같았어요./ 느낌이 으스스 했어요./ 쬐끔 따끔했어요.”(「비」, 송용준)
“우산 쓰고 운동장에 나가서/ 비 내리는 걸 보니까/ 꽃잎처럼/ 비 내리는 걸 보니까/ 기분이 좋아졌어요.” (「비」, 전호진)

•• 비오는 날 산책하며 쓴 시는 모두 수준작입니다. 비가 와서 몸은 비록 추웠지만 온몸의 감각이 살아나고 감성도 활짝 열리나 봅니다. 저마다 발견이 담겨 있고, 자기가 느낀 감각과 생각을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더군다나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감정까지 담아냈습니다. 자연 서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1학년 아이들도 서정을 묘사해내는 힘이 내재되어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가 노래를 부르”고, “꽃잎처럼/ 비 내리는 걸 보”는 아이가 비단 호진이만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을 테니까요.

도꼬마리와 애기똥풀

학교 뒷산으로 들어가는 묵정밭에서 활짝 핀 복숭아꽃, 벌, 나비, 애기똥풀, 도꼬마리와 같은 자연 속 생명들을 만났습니다. 활짝 핀 복숭아꽃에는 벌들이 잉잉거리고 있었지요. 꽃 빛깔이 너무 예뻐서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들여다보고 만져도 보았습니다. 꽃잎도 세어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흰 나비를 보았고, 흰 나비가 날아가는 산 속으로 조금 들어가 보기도 하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도꼬마리가 많아서 씨앗을 따서 친구 옷에 달라붙게 던지며 놀았습니다. 밭 가장자리에 피어 있는 애기똥풀을 꺾어서 노란 진물을 손톱에 바르고 놀다가 교실로 들어왔습니다.

“도꼬마리가 가시 같았다./ 그래서 따가웠다./ 근데 신기했다./ 옷에 붙으니까 달팽이 같았다.”(「도꼬마리」, 방하민)
“복숭아꽃이 예쁘고/ 흰 나비를 오랜만에 봐서 좋았다./ 벌한테 쏘일까 봐 무서웠다.”(「복숭아꽃, 벌, 흰 나비」, 방현준)
“도꼬마리가 따가워요./ 도꼬마리는 고슴도치/ 도꼬마리가 가시가 많아요.”(「도꼬마리」, 송용준)
“도꼬마리가 따가웠다./ 그렇지만 좋았다./ 내 옷에서 도꼬마리가 살고 있다.”(「도꼬마리」, 오세준)
“흰 나비가 팔랑팔랑 날아가는 게 예뻤다./ 하늘에 날아갈 때 기분이 꽃 같았다./ 흰 나비가 날아갈 때 개나리 같았다.”(「흰 나비」, 오윤성)
“복숭아꽃이 복숭아 같았어요./ 느낌이 좋았어요./ 복숭아꽃이 꽃잎이 다섯 개였어요.”(「복숭아꽃」, 이대우)
“꿀벌이 꽃에서/ 꿀을 모으고 있었다./ 붕붕 날아갔다.”(「벌」, 이도헌)
“벌이 웅! 웅! 했어요./ 벌이 노란색이었어요./ 벌이 꿀을 먹고 있었습니다./ 벌이 꿀을 맛있게 먹었습니다.(「벌」, 이윤호)
“애기똥풀이 노란색이었어요./ 손에 묻으니까/ 똥 냄새가 났어요.”(「애기똥풀」, 전호진)

•• 도꼬마리를 ‘가시’나 ‘고슴도치’로 비유한 아이도 있고, 옷에 달라붙어 있는 도꼬마리를 ‘옷에서 살고 있다’고 의인화한 친구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 날아가는 흰 나비를 보고 ‘기분이 꽃 같았다’고 한 표현은 감탄을 자아냅니다. 그런데 마지막 행에는 개나리에 비유했습니다. 색깔이 서로 어울리지 않아서 비유의 오류라고도 볼 수 있지만, 이런 표현은 꾸밈없는 어린이시를 보는 즐거움이지요. 아이들은 즉흥적이어서 두 사물의 연관성을 치밀하고 긴밀하게 따져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린이시가 아이를 더 잘 드러내고 재미있는 것이라 여깁니다.
김은영 | 198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시로 등단. 동시집 『빼앗긴 이름 한 글자』 『김치를 싫어하는 아이들아』 『아니, 방귀 뽕나무』 『선생님을 이긴 날』 『ㄹ받침 한 글자』 『삐딱삐딱 5교시 삐뚤빼뚤 내 글씨』 등을 펴냈습니다. 현재 남양주 작은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