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06월 통권 제1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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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그림책 만나며]
대단한 아이들에게, 모두 박수!

이숙현 | 2015년 06월

바람이 분다. 동네 둘레길 물들인 짙푸른 초록이 살랑인다. 신기하다. 길모퉁이, 나뭇가지만 앙상하던 생강나무가 손바닥만 한 나뭇잎을 흔들며 인사한다. 연둣빛 머금은 아기 나뭇잎과 눈을 맞춘 게 얼마 전 같은데 언제 저렇게 자란 걸까. 여리고 여린 아기 모습 지나 부쩍 자란 푸르른 초록 잎이 대견하다. 어디 생강나무뿐일까. 겨울 지나 봄, 여름 맞은 생명들 모두 자라 있다. 우리 아이들도 자라고 있다.

봄 소풍날, 숲에서 신나게 놀고 나오는 길이었다. 나무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길고 긴 계단 길은 고불고불, 심지어 가파른 곳도 있었다. 일곱 살 아이들은 성큼성큼 저만치 가는데 맨 꼴찌로 계단을 밟은 다섯 살 아이들은 한 발 한 발 거북이걸음으로 내려갔다. 그러다 몇 명이 걸음을 딱 멈췄다. “선생님, 무서워요.” 쭉 이어진 난간 손잡이가 갑자기 뚝 끊겨 있다. 제법 가파른 구간인데 거기만 양쪽 난간 없는 나무 계단이다. 엉덩이 뒤로 내빼며 울먹이는 아이들. 나는 덥석, 손을 잡았다. “괜찮아, 괜찮아.” 두 명 손을 잡고 천천히, 무사히 내려왔다.

다시 올라갈 생각으로 뒤돌아보니, 몇 명이 혼자서 내려오고 있다. 계단을 더듬는 것처럼 조심스러운 걸음발이지만 씩씩하게 내려오고 있다. “와, 대단하다!” 나는 손뼉을 짝짝 쳤다. 저 뒤에 주저하며 바라보고 있던 몇 명도 걸음을 뗀다. 조심조심 내려온다. 제일 먼저 승민이가 내 곁에 도착했다. “선생님, 나 대단하지요?” 승민이가 나를 툭툭 건드리더니 말했다. 콧등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승민이 눈동자가 반짝였다. “대단해, 대단해! 정말로 대단해!” 승민이 어깨를 가만히 끌어당겨 토닥였다. 승민이 덕분일까. 다른 아이들도 용기를 냈다. 차례차례 혼자 힘으로 내려왔다. ‘나도 대단하지요?’ 하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는 아이들. 나는 손바닥이 뜨거워지도록 박수를 치며 소리쳤다. “이야, 대단하다, 대단해!”

『대단해 대단해!』 그림책에는 누구를 만나든 무엇을 만나든 ‘정말로 대단’하다고 치켜세워주고 따듯한 박수를 보내줄 것 같은 앵무새가 등장한다. 책 속에서 앵무새를 통해 만나는 ‘대단한’ 존재들은 다양하다. 신발, 하마, 우산, 캥거루, 땅, 친구…. 앵무새(작가)는 노래하듯 이야기한다.

신발은 대단해/ 정말로 대단해/ 뭐가 대단해?/ 매일매일/ 쿵쿵 걸어 다니니까.
정말로 대단해!/ 신발에게 박수!
우산은 대단해/ 정말로 대단해/ 뭐가 대단해?/ 비를 많이 맞아도/ 젖지 않으니까.
정말로 대단해!/ 우산에게 박수!


그림을 보면, 신발과 우산이 활짝 웃고 있다. 하마도 캥거루도 땅도 친구도 자신들이 대단한 이유를 들으며 모두모두 웃고 있다. 웃는 얼굴 마주하는, 읽는 이의 마음에도 웃음꽃이 핀다. 웃으면서 실감하는 ‘대단해’라는 말이 지닌 힘. 따듯하고 부드럽다. 크레파스와 색연필을 섞어 그렸다는 그림은 아이들이 신나게 그린 그림처럼 유쾌하고 생동감이 가득하다. 저마다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는 색감 또한 서로 어우러지면서 즐거운 기운으로 마음을 돋운다. 모두 모여 ‘나도 대단해’ ‘너도 대단해’ ‘우리 모두 대단해’ 노래하듯 말하는 장면에는 분화구에서 터져 나오는 불길처럼 뜨겁고 힘찬 응원이 담겨 있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대단하다고 믿는 아이들은 그림책 『난난난』 앞표지 그림 속 남자아이처럼 반짝반짝 빛이 난다. 몸짓이 기운차고 잘 웃는다. 제목처럼 ‘나’를 내세워 힘주어 말하기 좋아한다. 이 책은 앞뒤 면지에 그림이 있고, 서로 다르다. 앞 면지에는 말풍선 속에 엄마의 말(정리해!)이 있는 반면, 뒤 면지에는 아이의 말(잘했죠?)이 있다. 뒤 면지에는 엄마가 정리하라고 했던 블록으로 멋지게 집을 완성한 주인공이 엄지를 척 들어 보이며 미소 짓고 있는 것도 달라진 점이다. 앞 면지에서는 시무룩한 얼굴이었는데…. 아, 왜 그런지 알 것 같다. 만들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런 건데 엄마는 마음도 몰라주고 다짜고짜 블록을 정리하란다. 그뿐만이 아니다.

엄마는 오늘도 “왜 이것도 못해!”라고 말했어요.

첫 장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이를 가리키는 손가락, 그리고 고개를 숙인 채 주눅 든 아이 얼굴… 『너 왜 울어?』 표지 그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괜히 심장이 벌렁벌렁…. 그런데 한 장 넘기니 풉, 웃음이 난다. 아이가 신나게 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난난! 잘하는 것도 많아요. 크고 굵은 ‘난난난’ 글자에 붙은 커다란 느낌표! 앞표지의 제목 글자처럼 점점 크고 또렷하게 읽게 된다. 소리 내어 말하는 마음에 당찬 기운이 스며든다. 정말이지 주인공은 잘하는 것도 무지 많다. 점프도 잘 하고, 힘도 세고, 무지무지 빨리 달릴 수도 있고, 넘어져도 울지 않는다. 무지무지 씩씩하니까. 친구도 많고, 아주아주 신나게 놀 줄 안다. 무엇보다 잘 웃고 친구들도 따라 웃게 만든다.

이것만도 대단한데, 이게 다가 아니다. 주인공은 잘하는 게 많다.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변신도 감쪽같이 잘’하고, 채소로 ‘멋진 용’도 만들고, ‘매운 김치도 지… 진짜… 진짜 잘 먹는’단다. 그런데 김치 먹는 주인공, 그림으로 표현된 모습이 글과 다르다. 입 안에서 불이 뿜어져 나온다. 커다래진 눈동자에서는 눈물이 찔끔 나올 것 같다. 글과 그림의 불일치. 그 사이의 ‘틈’이 독자에게 특별한 즐거움을 안겨 준다. 아직은 아니지만 곧 그렇게 될 거라고 자신을 믿는 아이의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싫은 소리보다 좋은 소리 듣고 싶은 마음, 언제나 멋진 ‘나’이고 싶은 솔직한 아이의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혼자서도 정말정말 잘 잘 수 있지만…’ 책을 너무나 잘 읽기 때문에 엄마한테 읽어 줘야 한다는 주인공. 이렇게 말하며 두 팔 벌려 양손 높이 든 채 엄지 척, 올리고 눈 찡긋 한다.

그러니까, “왜 이것도 못해!”라고 말하지 마세요.
난난난! 잘할 수 있는 것도 많아요.

엄마 아빠 사이에 끼어들어 주인공이 펼친 책 제목이 아주 상징적이다. 그건 바로, ‘내가 잘한 것도 봐 주세요.’ 뒤 표지에는 엄지를 치켜세운 손 그림이 커다랗게 박혀 있다.

“선생님, 나 오늘, 김치랑 반찬 다 먹었다요!”
“이제 혼자 신을 수 있어요.”
“나, 진짜 빨리 달릴 수 있어요.”

문득, 어쩌다 마주치면 자기 이야기 들려주기 바쁜 우리 아이들이 생각난다. 하루하루 자라나는 아이들은 어제와 다른 오늘의 이야기, 어제는 못했지만 오늘은 해낸 자기만의 이야기를 펼쳐놓으며 얼마나 뿌듯해하는지 모른다. 자기가 잘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아이들의 얼굴은 밝게 빛난다. 빛나는 얼굴에는 대단한 ‘무엇’이 자리하고 있다. 씨앗처럼 움터 열매 맺을 ‘무엇’이 숨어 있다. 시간이 흘러 그 ‘무엇’은 무엇이 될까? 궁금해진다.
 
아이들이 빛나는 얼굴을 보여 줄 때가 또 있다. 무언가를 뚝딱뚝딱 만들어 내놓을 때! 안에서든 밖에서든 아이들은 언제나 무언가를 즐겨 만든다. 때로 뜻밖의 작품을 만들어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한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하고 말이다. 그래서 『위대한 건축가 무무』 그림책을 만났을 때 무척 반갑고 기뻤다. ‘아이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가’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어른(작가) 한 명을 알게 되어 반갑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이야기, 아이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기뻤다.

이야기는 앞 면지부터 시작한다. 자기가 직접 만든 ‘빨간 집’에 살고 있는 무무는 ‘오늘도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집을 나’선다. ‘먼저 무엇을 만들지 계획을 세’우고, ‘터를 고’른다. 그리고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들. 건축가의 고민과 나란한 소중한 시간들. 계획했던 대로 되지 않을 때는 다시 생각하고 수정하면서, 도전하기를 멈추지 않는 무무. 자기만의 공간을 완성하기 위해 진지하게 몰입하는 무무의 모습이 멋지다.

바닥에 장판도 깔고, 쓰임새에 맞게 안을 꾸며요.
문까지 달면 드디어 공사가 끝났습니다.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몰려들었어요.

그 무렵, 한 지붕 아래 같이 살고 있는 큰 아이도 숲 속 집짓기가 한창이었다. 학교 끝난 오후, 숲에 갈 때마다 굵은 나뭇가지를 여러 차례 실어 날라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어 집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열 살 생일잔치 날, 큰 아이는 아이들을 숲 속 작은 집으로 이끌었다. 솔가지로 만든 빗자루로 급히 바닥을 쓸고, 금세 주워온 상자 종이로 뚝딱 신발장을 만들며 친구들을 집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그날 오후, 숲 속 작은집은 집-식당-택배 대리점 등으로 변신하며 즐거운 이야기꽃을 피웠다. 초인종도 있고, 작은 창문도 있는, 무엇보다 다양한 재료를 얹어 지붕이 돋보이는 집에 나는 감탄했고, 아이는 행복해보였다. 순간, 나는 온 가족이 모여 무무의 새 작품을 보고 감탄하는 장면을 떠올렸다. 그 속에서 아빠는 엄지를 치켜세우고 무무는 뿌듯한 얼굴로 웃고 있었는데 우리가 꼭 그랬다.

정말이지 아이들은 ‘대단한’ 씨앗을 품고 있고, 저마다 ‘잘하는 것’을 갖고 있는, 타고난 예술가이다. 거침없는 상상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어 나갈 위대한 예술가…. 그러니 어른들은 날마다 아이들에게 따듯한 격려와 응원의 박수를 보낼 일이다. 자, 지금 이 순간도 자라나고 있을, 대단한 우리 아이들에게, 모두 박수!
이숙현 | 경북 구미, 오래된 아파트 한 가운데 이야기 숲 옆구리에 끼고 있는 곳, 금오유치원에서 어른 아이 가리지 않고 소중한 인연 엮으며 이야기 짓고 지냅니다. 여럿이 함께 그림책 보고 읽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참 좋아합니다. 월간 『어린이와 문학』을 통해 동화 마당에 나왔으며, 지은 책으로 『초코칩 쿠키, 안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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