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06월 통권 제1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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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책 이야기

[고릴라 아저씨의 제멋대로 그림책 읽기]
풍부한 질감과 낯설게 하기, 콜라주

김중석 | 2015년 06월

콜라주는 현대 회화에서 처음 도입된 표현 기법이다. 이전의 화가들은 오로지 붓과 물감에 의지해 대상을 재현하는 일에 충실했다. 그러나 인상파 이후 서양 미술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현상을 표현하기 위해 애썼고 입체파에 와서는 그 실험이 더욱 가속화 되었다. 실험가이자 혁명가인 입체파 화가 피카소와 브라크가 콜라주를 가장 먼저 시도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들은 표현에 적합한 기법을 찾다가 주변에 있는 신문지, 벽지, 포장지 등을 그림에 붙이기를 시도한 것이다. 일상에서 흔히 보던 물건들이 물감과 붓 터치를 더해 만나면서 전혀 새로운 느낌의 회화가 만들어졌다.

그림책 작가들도 물감으로 그리기만으로는 표현의 한계를 느낄 때 다양한 표현 기법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판화, 사진, 입체, 콜라주 등의 현대 회화의 기법들을 적극적으로 그림책 기법으로 응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콜라주는 확실히 그리기에서 표현할 수 없는 풍부한 질감을 만들어 준다. 잡지 사진의 어느 모서리가 작가에게 영감을 주기도 하고 찍어내기로 만들어낸 질감, 영수증의 모서리, 책에 인쇄된 외국 글씨는 그리기로는 표현할 수 없는 다양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나도 한때 콜라주 작업에 재미를 붙여 적극적으로 작업하기도 했다. 문방구에서 파는 스티커나 잡지 조각, 예쁜 색종이를 모아 두었다가 적재적소에 붙이면 그리기로 표현할 수 없는 다양한 질감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콜라주 작업은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바로 작업실이 엄청나게 지저분해진다는 것이다. 거의 쓰레기 더미에서 작업을 할 수 밖에 없다.

학생들과 콜라주 수업을 해 봐도 재미있는 결과가 많이 나온다. 전혀 다른 이미지들이 만나 새로운 형태가 만들어 지기 때문에 상상력 훈련을 하기 좋다. 이렇듯 콜라주는 낯설게 하기이다. 이 기법을 ‘데페이즈망’이라고 한다. 낯익은 물건을 뜻하지 않은 장소에 배치함으로써 보는 이에게 심리적 충격을 줘 무의식의 세계를 해방시키는 것으로, 전치 혹은 전위법이라고 하기도 한다. 도시의 건물에 영수증이 붙어 있고 도장이 찍혀 있고 꽃 사진이 붙어 있다. 금전출납부 용지가 책상이 되기도 하고 낯선 외국 잡지가 공룡이 되기도 한다.

외국 작가들 중에도 에릭 칼이나 에즈라 잭 키츠, 레오 리오니 같은 작가들이 콜라주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에즈라 잭 키츠의 『눈오는 날』이나 『피터의 의자』 같은 작품을 보면 강렬한 색감의 색종이를 그림에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에릭 칼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작품들이 휴지에 물감을 뿌려 만든 종이를 잘라서 붙인 기법이다. 레오 리오니의 『꿈틀꿈틀 자벌레』 『프레드릭』 같은 작품의 경우에도 콜라주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김진화의 『백만 년 동안 절대 말 안해』를 살펴보자. 김진화 작가는 콜라주 기법을 가장 세련되고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작가다. 과하지 않게 적재적소에 사진이나 종이가 붙어 있어 처음에는 콜라주란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다가 자세히 보면 아! 콜라주였지, 생각이 든다. 표지에는 엷은 미소를 띈 아이가 기우뚱하게 서 있다. 벽에는 여러 가지 낙서들이 있고 진짜 책상 사진 위에 접은 메모지도 보인다.

주인공은 불만이 많다. 엄마는 툭하면 화를 내고, 아빠는 늦게까지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서 나만 일찍 자라고 하고 언니는 자기만 예쁜 줄 알고…. 불만투성이 주인공이다. 가족 같은 건 필요없다면서 제멋대로 하려고 한다. 하지만 걱정도 많다. 내가 없으면 장수풍뎅이 밥은 누가 줄 것인지 걱정하는 것부터 신경 쓰이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족들이 구원의 손길(?)을 펼친다. 주인공은 못이기는 척 이를 받아들인다.
 
김진화 작가는 화려한 색상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색이 중회색 톤이고 가끔씩 포인트가 되는 부분만 원색을 사용한다. 그래서 조금씩 보이는 원색이 더욱 강렬하다. 아빠가 윗몸 일으키기를 하는 장면의 바닥 패턴, 주인공이 화가 나서 땅을 파는 장면에서 사용된 콜라주는 딱 포인트가 되면서 그리기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멋진 장면을 만들어냈다. 모든 장면들을 처음 휘리릭 넘기다가 다시 살펴보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장면들이 보이게 된다. 이런 장면들을 찾아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일 것이다. 아마도 작가는 회화적 화면 연출을 무수히 해 봤기에 이런 장면을 뽑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고경숙의 『나야, 나!』는 자유분방한 터치와 콜라주가 잘 어우러진 책이다. 이 책은 대단한 이야기를 가진 책은 아니다. 어느 날 주인공 미미(사실은 종이에 그려진 그림)는 태어나자 마자 버려졌다. 누가 미미를 버렸는지 찾는 이야기 구성이다. 표지에는 미미가 그려져 있다. 찍찍 연필로 막 그린 듯한 드로잉. 노트 한쪽을 자른 듯한 조각들이 화면 구석구석에 있다. 본문 그림 속의 이미지들도 사실적인 표현과는 거리가 멀다. 피아니스트라고 표현된 인물은 언뜻 보면 그 직업을 알 수 없다. 몇 개의 이미지를 잘라 이리저리 조합해서 만든 것이다. 아이가 자르기 놀이를 한 것 같기도 하고 낙서 같기도 하다. 다른 인물들도 생뚱맞은 질감의 종이들이 서로 묘하게 어우러져 만들어졌다. 작가는 정확한 묘사를 하지 않았지만 재미있는 그림 놀이를 한 것 같다. 검은 점들로 표현된 패션 디자이너도 재미있다. 디자이너가 든 봉지에는 여러 잡지나 색종이 같은 것들이 오밀조밀 붙어 있다. 점과 면 그리고 사진 이미지까지 합쳐져서 묘한 공간감이 만들어졌다. 고경숙 작가의 그림은 한 장면을 따로 떼어 보아도 재미있는 그림이다. 모든 장면이 액자에 넣고 싶을 만큼 장식적으로도 손색이 없다.

김동수의 『천하무적 고무동력기』는 아이의 그림 같은 순수한 그림과 콜라주가 적절히 조화된 그림책이다. 주인공 아이가 집으로 돌아온다. 익숙한 듯 빈 집에 들어간다. 고무동력기를 만들 재료가 준비되어 있다. 혼자 고무동력기를 만들며 자기만의 상상 세계로 점점 빠져들어 간다. 고무동력기는 오리 배를 끌기도 하고 놀이동산에도 가고 물귀신도 만난다. 즐거운 놀이를 끝내고 나니 어서 빨리 엄마에게 자랑하고 싶어진다.

이 책에는 다양한 기법들이 과감하게 사용된다. 먹물, 연필, 마카, 물감 등으로 그림을 그리고 모눈종이, 노트, 포장지, 스티커를 아이들이 장난치듯이 마구마구 사용하고 있다. 어떤 질서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화면을 굉장히 감각적으로 구성하고 있어서 시간이 지나고 다시 보아도 지겹지 않은 그림이다. 때론 아기자기하게 아이의 동작을 그리다가 어떤 장면에서는 시원하게 날고 있는 고무동력기를 볼 수 있다.

이덕화의 『뽀루뚜아 아저씨』는 콜라주를 화면 가득 사용한 책이다. 언니의 공룡 자랑에 심술이 난 다혜는 엉겹결에 ‘뽀루뚜아’라는 이름을 생각해낸다. 바둑이와 뽀루뚜아를 찾아 나선 다혜는 커다란 산아저씨를 만나게 된다. 산아저씨에게 뽀루뚜아라는 이름을 지어준 아이는 신나게 들판을 뛰어다니면 논다. 커다란 어깨 위에 앉아 숨바꼭질도 하고 아저씨의 머리 위에 구름 모자가 놓인 풍경도 보며 놀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고 깨어 보니 엄마 품에 안겨 있었다. 엄마 품에 안겨 자신만의 비밀을 말한다. “뽀루뚜아는요, 키가 크고, 알록달록 멋진 옷을 입은 상냥한 내 친구예요.”라고.

이 책에서 작가는 엄청 많은 양의 콜라주를 선보인다. 뽀르뚜아 아저씨를 표현할 때는 여러 가지 풀과 꽃들을 따로 그려서 쭉쭉 손으로 잘라서 화면에 붙였다. 자세히 살펴보면 빨간 꽃도 있고 녹색 풀도 붉은색 가지도 보인다. 후반부에 꽃들과 만날 때는 갖가지 꽃들을 잘라붙인 꽃다발이 아저씨 등에 붙어 있다. 작은 풀과 꽃과 나무들이 모여 산을 이루듯이 종이에 그려진 여러 가지 질감의 종이 조각들이 모여 ‘뽀르뚜아 아저씨’를 이루고 있다.

이 책은 흰 여백이 많다. 종이를 이리저리 붙이다보니 그 화면 부분은 여러 가지 질감으로 복잡할 수 있다. 나머지 화면에도 채색을 한다면 더 복잡하게 보일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질감이 있을 때는 여백의 공간을 마련해야만 눈의 피로도를 줄일 수 있다. 콜라주 작업이 재미있는 부분은 붙이기 전에 여러 가지로 미리 화면을 조율할 수 있다는 점이다. 책으로 볼 때는 그냥 툭툭 붙인 것 같지만 그림 작가는 붙이기 전에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고민을 하게 된다. 종이의 각도만 조금 틀어도 전혀 다른 느낌의 그림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마 이덕화 작가도 화면에 붙이기 전에 여러 가지 모양의 종이들을 놓고 수없이 고민하며 붙이고 떼어내기를 반복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지선의 『꿈꾸는 변신대왕』을 펼쳐 본다. 변신대왕? 누가 변신대왕이지? 속표지에는 알 속에 어떤 아이가 웅크리고 있다. 첫 장면에서는 땅속 깊은 곳에 아이가 벌레 같은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글쎄…, 잘 모르겠는데. 아이는 누군가에게 대답한다. 그럼 한 번 생각해 보는 건 어때? 누군가가 묻는다. 아이가 황당한 꿈을 이야기하면 오른쪽 아래에 있는 어른은 구체적인 직업을 대며 이런 꿈 아니냐고 되물어본다. 하지만 아이의 대답은 엉뚱하다. “내가 되고 싶은 건 말이야. 매일매일 달라져. 정말이라니까!”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언제나 아이가 되었으면 하는 구체적 직업에 관심을 가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이에게 필요한 건 어떤 직업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통제되지 않은 아이의 꿈과 마구마구 놀 수 있는 재미있는 놀이가 아닐까?

이 책에서 작가는 콜라주를 풍부한 회화적 상상력을 위해서 사용한다. 멀리 이국에서 날아온 듯한 우표, 인쇄물, 포장지가 화면 곳곳에 자유롭게 꾸며져 있다. 구석구석 그림 보는 재미를 선사하는 흥미로운 그림책이다.

콜라주는 현대 미술에 와서 개발된 표현 기법이다. 이를 그림책 작가들이 적극적으로 그림책에 도입하면서 더 풍부한 시각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는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많은 책과 잡지, 인쇄물을 접하고 있다. 하지만 그림책 작가들은 상상력으로 이를 책 속으로 흡수시키고 있다. 아이와 함께 집에 뒹굴고 있는 인쇄물을 잘라 붙이며 놀아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단 집안은 대단히 지저분해질 수 있다.
김중석 | 대학에서 서양화를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미술교육을 공부했습니다. 2003년 보림 창작그림책 공모전에서 우수상과 2013년 소년한국 우수도서상 일러스트레이션 부분상을 받았습니다. 『아빠가 보고 싶어』를 쓰고 그렸고 『나는 백치다』 『찐찐군과 두빵두』 『웨이싸이드학교 별난 아이들』 『엄마 사용법』 등 여러 동화책과 그림책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요즈음은 ‘드로잉 그림책 학교’에서 학생들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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