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05월 통권 제1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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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책 이야기

[나의 작품 나의 이야기]
금금이는 일흔다섯 우리 어매의 선물

김혜원 | 2015년 05월

“저어기 충청 전라 어름에 쪼글 할매가 살았는디, 아들도 없이 딸도 없이 영영 혼자라.”

금금이 책 맨 앞에 아들도 없이 딸도 없이 방 안에 덩그라니 앉은 쪼글 할매는 한 20년 뒤 내 모습일 거야. 방 안 풍경은 좀 다를 테고 할매만큼 나는 바지런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좀 늦되고 게으른 편이거든. 특히 무슨 일을 시작할 때는 한참을 밀쳐 두었다가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하는 버릇이 있어. 일단 하면 곧잘 하는데 시작하기가 그리 어렵네. 잘하고 싶은데 잘 못할까봐 마음을 다잡느라고 뜸을 들이는 거야. 처음 엄마 이야기를 써 보지 않겠냐는 말을 들었을 때도 선뜻 대답 못하고 망설였어. 그 진진한 세월을 정리할 자신이 없어서지. 하루에도 열두 번씩 마음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데 무슨 글을 쓰겠어. 그러나 판소리로 써 보라 해서 솔깃했지. 나는 판소리가 참 좋아. 한을 흥으로 풀어 그렁저렁 넘어서게 하는 그런 점이 맘에 들거든. 나도 그렇게 쓰고 싶었어. 치매 엄마랑 살면서 힘든 점이야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좋은 순간도 무지 많아서 그 부분을 표현하고 싶었거든.

처음엔 끊임없이 배회하고 조바심치는 엄마 치다꺼리하면서 만날 소리 지르고 짜증 내고는 그런 내가 너무 실망스러워서 속상하고 슬펐어. 나는 내가 안쓰러워서 엄마가 보이지 않았어. 자꾸 실수하고 개념이 뒤죽박죽되어 가는 자신을 느끼며 엄마가 얼마나 불안하고 슬프고 외로운지. 엄마가 고관절 수술을 하고 거동을 못하게 되니 생활에 조금 여유가 생겼지. 움직이지 않으니 사고 날까봐 늘 신경 곤두세우지 않아도 되었거든. 그래서 엄마 이야기를 써 볼 엄두를 냈지.

처음부터 성장 이야기로 써 보자 한 건 아니었어. 쓰다 보니 그렇게 된 거야. 엄마랑 함께 보낸 세월이 나를 발견하고 내가 성장하는 시간이었거든. 나는 내가 온순하고 원만한 사람인 줄 알았어. 내가 그토록 격렬하게 감정을 드러낼 줄 몰랐어. 내가 그럭저럭 산 것은 엄마가 그만큼 나를 다독여 주었기 때문이더라고. 아마도 세상 모든 자식들이 그렇지 않을까. 등장인물이 많으면 감당할 수 없으니 그냥 엄마와 나 둘로 좁히고, 나는 효녀 심청이처럼 효성이 지극하지도 부지런하지도 않으니 게으름뱅이 짝퉁 효녀인 걸로 하고. 엄마랑 지낸 시간 속에서 기억에 가장 남는 이야기들을 시간의 흐름대로 써 나갔지. 날마다 사건이고 때때마다 울고 웃고 화내고 그런 이야기들을 판소리 가락의 흥에 이끌려 풀어냈어. 밥하고 청소할 때 버스 탈 때 심청가 흥보가 춘향가를 내리 들었지. 가락을 몸에 담으려고.

초고를 쓰는 데 한 달쯤 걸렸어. 하루 두세 시간씩 엄마가 누운 침대 옆에서 쓰는데 왜 그리 눈물이 나던지. 글로 쓰다 보니 지난 시간들이 좀 더 차분하게 돌아봐지더라고. 엄마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이 오락가락해서 글 쓰다가 엄마를 한참 안아 주고 쓰다듬고 그랬지. 등장인물을 엄마와 나로 정한 건 참 잘한 일이더라고. 엄마와 나의 관계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고 엄마와 나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어. 나와 똑같이 희노애락을 느끼는 사람으로서 엄마를 보게 됐달까.

그런데 초고는 그야말로 초고였어. 어른인 내가 쏟아놓은 감정들이어서 아이들이 읽을 그림책 글이 되기에는 갈 길이 한참 멀었거든. 나는 판소리가 흥겨운데 아이들에게 다가가기에는 낯설고 어렵다는 지적도 있었고. 그래 동화시로 써 보기도 했는데 뭔가 흥이 덜한 거야. 보통의 이야기 투로 써 보자는 의견도 있었는데 나로서는 흥이 있어야 했거든. 생각 끝에 조금 민요에 가까운 판소리조로 하자 해서 지금의 말투가 되었지.

금금이는 사실 엄마의 어릴 적 동무 이름이야. 엄마가 한참 많은 이야기를 쏟아 낼 때 늘 금금이 이야기를 했거든. 금금이가 어쩌고 저쩌고. 그래서 내 마음속에 금금이가 콕 박혀 있었나봐. 그래 주인공은 그냥 금금이가 되었지. 금빛 나는 박에서 나온 금쪽 같이 귀한 자식이니 금이 두 개인 금금이가 된 거야. “얽어배기 찍어배기라도 자식 하나만 있었으면” 이 말은 엄마가 늘 결혼을 재촉하며 내게 하던 말이야. 얽어배기 찍어배기라도 심성만 좋으면 된다고 노래를 불렀지. 왜 박씨고 박이냐. 모르겠어. 나는 그냥 하얀 박꽃이 좋고 둥덩실 보름달 같은 박이 좋아. 푸근하고 정겨운 게 고향 같잖아. 흥부가에 박타는 장면이 흥겹기도 하고. 이야기로는 박통 속에서 아기가 나오지만, 현실적으로는 업동이나 입양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

우리 엄마가 쪼글 할매처럼 나를 한시도 떼어 놓지 않고 금이야 옥이야 키웠느냐. 아니야. 팔형제 중 맏이인 우리 아버지한테 시집와서 대식구 살림하느라 나는 젖 먹을 때 빼고는 엄마 품에 있을 겨를이 없었고, 좀 커서는 외갓집에 고모집에 이리저리 떠돌아다녔대. 중학교 3학년 때 서울로 전학 오는 바람에 쭈욱 떨어져 지냈고. 어릴 적 엄마 품에 못 있었던 거 이제는 늘 붙어 지내니 원도 한도 없을 거 같아. 더구나 우리 엄마는 대놓고 사랑을 표현하는 법은 없어서 나는 엄마가 나를 그리 사랑하는 줄 모르고 컸어. 병이 나고 엄마를 돌보면서 알았어. 엄마는 엄마 나름으로 나를 사랑했는데 내가 그 사랑을 볼 줄 몰랐구나. 마음이 어두워서. 그건 내가 그동안 머리로 살았다는 거지. 가슴은 닫아 두고. 책만 들입다 읽어서 사람은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하고 이런 당위성만 가득 키워서 아픈 엄마를 돌보면서도 엄마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그러니 나는 금금이처럼 게으르고 늦된 아이인 거지.

금금이가 세월이 흘러도 크지 않는 건 마음이 자라지 않는 거야. 내가 그랬듯이. 사람이 나이 먹고 몸이 커진다고 마음도 커지는 건 아니거든. 그래서 금금이는 엄마가 호호 불며 키울 때는 자랄 필요도 없어 마냥 어린아이로 있다가 엄마가 병나서 저를 돌봐주지 못하니 더듬더듬 하나씩 겪어 가며 마음이 열리다가 한순간에 팍 성장하게 되지. 모자라지만 하나씩 스스로 해 나갈 때 자신감도 생기고 마음도 커지는 거지. 내가 그랬거든. 엄마가 밥도 못하고 똥오줌도 못 가려서 울 때 금금이는 부스스 일어나서 “혼자 못 하면 나하고 하지.” 그러잖아. 이건 정말 내 바람이고 꿈이야. 나는 그러질 못 했거든. 엄마가 헤매니까 내가 후딱 해 버렸거든. 엄마가 설 자리를 안 남겨 두어서 엄마를 더 외롭게 했거든. 그래서 금금이처럼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마음에서 그리 썼어. 금금이는 제가 모자라고 느릿한 아이니까 엄마가 헤매면 같이 헤매며 그럭저럭 지내잖아. 세상일이 그런 거 같아. 지금 당장에는 좋은 일이 나쁜 일 되고 나쁜 일이 좋은 일 되고 해서 길게 보면 좋은 일이다 나쁜 일이다 말할 수 없는 거. 엄마가 치매에 걸렸을 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거 같았는데 지내다 보니까 엄마와 나를 이해하게 되고 나도 사람답게 변했거든. 그런 걸 말하고 싶었어.

엄마가 밥을 못 하면 함께하면 되고, 똥오줌을 싸면 치우면 되고, 없어지면 찾으러 가면 되고. 길을 나서면 또 여기저기 도움의 손길이 닿고. 세상 모든 일을 단순하게 보면 좋지 않을까 싶은 거지. 무수히 끓어오르는 감정과 생각들을 좀 덜어 내고. 사실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그거야. 무슨 일이 일어나든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는 거. 특히나 아이에게 엄마란 얼마나 절대적이냐고. 엄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거나 하면 얼마나 무서울까. 나는 마흔 넘어서 엄마가 병이 났는데도 날마다 무섭고 겁났는걸. 그런데 막상 닥치니 그럭저럭 하게 되더라고. 똑소리 나게 잘하진 못해도 모자란 대로 함께 울고 웃으며 겪다 보면 내가 조금씩 성장하고 그러다가 어쩔 때는 부쩍 성장한다는 거를 말하고 싶었어. 내가 지금 모자란다고 미리 걱정할 필요 없다고. 여전히 걱정하고 불안해 하는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해.

금금이는 강을 건너며 쑥쑥 커지잖아. 그리하여 엄마를 찾았을 때 엄마를 업고 집에 돌아오고 그럭저럭 농사도 짓고 엄마를 돌보게 되지. 옛날에 엄마가 금금이를 돌보던 것처럼 이제 금금이 차례가 된 거지. 난 그게 세상 이치라고 생각해. 어려서는 엄마가 날 돌보고 내가 크면 엄마가 늙으니까 이제 내가 돌볼 차례가 되는 거. 엄마랑 함께 살며 엄마를 돌보다 보니, 아 옛날에 우리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겠다 싶더라고. 결혼해서 아이를 키운 사람들은 알겠지만 난 결혼 안 했으니 그럴 기회가 없었잖아. 엄마가 병난 덕에 엄마 마음을 조금 짐작하게 되었지. 엄마가 치매라는 걸 알았을 때 젤 걱정했던 게 그거야. 나중에 날 못 알아보면 어쩌지. 엄마가 못 알아봐도 괜찮더라고. 내가 다 기억하는걸. 오히려 엄마가 병나기 전보다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니까 더 많은 걸 기억하게 되더라고.

그림책을 내면서 크게 깨달은 거 하나. 그림은 그 많은 말들을 한 장에 머금는다는 거. 시는 모양 없는 그림이고 그림은 소리 없는 시라는 말이 딱 와 닿더라고. 같은 이야기를 나는 글로 쓰고 화가는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 뭐라 말할 수 없는 세계인 거라. 빛깔까지 갖춘 금금이를 보고 나니, 내가 미처 그리지 못했던 금금이가 거기 있는 거야. 맘에 쏙 들었어. 표정이며 몸짓이 볼수록 금금이야. 화가는 어쩜 이런 금금이를 그렸을까.

요즘 우리 엄마 얼굴은 쪼글 할매하고 똑같아. 살이 많이 빠져서 쪼글쪼글하거든. 인물이 정확히 표현되니 다른 것들은 크게 문제되지 않더라고. 나는 사실 금금이가 강 건너며 크는 장면이랑 엄마랑 만나는 장면에선 더 왁자하길 바랐거든. 근데 그건 내 성격에 따른 표현이고, 그리는 이는 느끼는 게 또 다르니까. 보는 사람에 따라서도 다르겠지. 이런 걸 알게 된 것만도 나에게는 큰 공부고 성장이었어. 글을 쓰는 건 결국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거라는 점을 알았거든. 금금아, 정말 고마워. 쪼글 할매, 고마워요. 책이 나오기까지 긴긴 시간 함께하며 북돋워 준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지금의 나는 나 혼자 된 것이 아니라는 거 알게 해 줘서 고마워요.
김혜원 | 2011년 『어린이와 문학』 동시 추천을 받았고, 「시험」 「소나기」 「개구리 소리」 「나팔꽃」 들을 발표했고 그림책 『천하태평 금금이의 치매 엄마 간병기』를 냈습니다. 푸르른 초안산과 비가 내려야 졸졸 물이 흐르는 우이천에 기대어 살며 만나는 이야기들을 동시로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