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통권 제1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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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서평]
아이들이 보내는 신호

김혜곤 | 2014년 11월

일상은 누구에게나 똑같아 보이지만 어떤 날은 행복에 겨워 하루가 지나가는 것이 아쉽기만 하고 또 어떤 날은 하루 넘기기가 너무 힘들어 시간이 빨리 지나기만을 기다리기도 합니다. 특히 마음의 추 하나가 움직이는 날 그 무게감을 누구에게도 선뜻 전하기 어렵고 불편한 날은 더욱 그렇습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른들이 만든 기준에 따라 목표점에 도달하기 위해 힘겹게 달려야 하는 마음이 아닌, 아이들이기에 더 힘겹고 더 어려운 갈등과 아픔을 겪어야 하는 그 마음이 요동치는 그런 어느 날 말입니다. 여기 삶에 오래오래 남을 결정적인 하루를 지내며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현실을 극복하고 성큼 성장하는 세 아이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잘난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이름 때문에 사는 게 더 힘든 아이 영광. 어느 날 선생님으로부터 떠드는 사람 이름을 적을 노란수첩을 전달받습니다. 영광이는 마치 대단한 일을 부여 받은 양 마음이 우쭐해집니다. 암행어사의 눈초리로 하루 종일 아이들을 지켜보고 또 지켜봅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자신에게 준 완장의 재미를 톡톡히 볼 수도 있었지만 영광이의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불편하기만 합니다. 자기 때문에 이름이 적힌 친구들은 선생님께 혼날 뿐 아니라 당번까지 해야 한다는 사실에 심적 부담을 느끼지요. 곰곰 생각해 보면 친구들은 저마다 이유가 있어 떠들게 된 것이기도 했지요. 결국 기껏 적은 이름에 가위표를 해 버리고 선생님께 노란수첩을 돌려드립니다. 그리고 영광이다운 진짜 고민을 시작합니다. ‘집에 가는 길에 쭈쭈바를 먹을까? 하드를 먹을까?’

자장면 집 아들 봉구는 동생이 태어나면 자신이 찬밥신세가 될 거라는 생각에 동생의 출생이 반갑지 않아요. 드디어 동생이 태어나는 날, 심난한 마음에 늘 찾던 웅덩이를 찾은 봉구는 그곳에서 날개 짓하는 작은 새 한 마리를 발견하지요. 무심코 작은 돌을 집어 들어 새를 향해 날립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될 줄은 몰랐던, 절대로, 절대로 그렇게 하려던 것이 아니’지만 봉구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집니다. 바로 그 돌에 새가 죽게 됩니다. ‘힘내! 다시 날아 봐! 야, 새야! 이 멍청한 새야!’ 아무리 외쳐 보지만 새는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그때부터 봉구의 심장에서는 빠각빠각 소리가 들립니다. 드디어 동생 봉희와 첫 대면의 순간, 봉구는 동생에게 자신의 마음에 억눌려 있는 새에 대한 미안함 마음을 터뜨립니다. 그리고 예쁜 색지를 준비해 다신 그곳에 가지 않겠다고 결심한 그 죽음의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동생의 탄생과 새의 죽음,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새 생명과 또 다른 죽음을 겪으면서 봉구는 인생이란 아픔 자체이며 아픔을 견뎌내는 과정이 삶임을 느끼게 되지요.

내 머릿속에 각인된 어느 날 하루를 끄집어내 보면 어떤 날이 있을까요? 충격이 너무 커서 마음에 차마 담을 수 없는 일. 그런 일들은 아주 잊혀 지면 좋으련만 우리 몸은 신기하게도 그것을 기억하게끔 어떤 징후를 제공합니다. 하운이도 그렇습니다. 평생을 구두수선으로 살아오신 할아버지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하운이네는 얼마 전부터 온 동네 버려진 신발들을 주어와 정성껏 수리하는 할아버지 때문에 집안이 조용하지 않습니다. 주위의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구두수선은 마무리되고 보름달이 뜬 날 하운이와 할아버지는 검은 그림자를 불러 그 신발들을 주인들에게 돌려줍니다. 마지막 검은 그림자는 작은 아이였습니다. 할아버지는 그 아이가 바로 하운이의 동생 지운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하운이는 떠나는 지운이를 그렇게 보낼 수 없다며 소리쳐 울며 애원합니다. 지운이의 죽음에 대한 자책감에 그만 말을 놓아버린 하운이, 할아버지 덕분에 아픔과 슬픔을 치유하는 애도의 과정을 다 치루고 나서야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신발을 수리해주며 살아가는 할아버지와 마음의 상처에 말문을 닫은 아이, 비록 하찮아 보일지 모르지만 정작 현실에 막힌 답을 찾아가는 길을 제시합니다.

용기가 없어서, 두려워서, 내 잘못인 것 같아서, 밖으로 얘기하지 못하고 상처를 자기 안에 돌돌 말고 살아가는 아이들. 그들에게 환한 웃음을 돌려주기 위해 이제는 누구라도 아이들의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그들의 자리에서 그들처럼.
김혜곤│열린어린이 독서교실 팀장. 무엇이든 제자리에 있을 때 가장 빛이 납니다. 아이는 아이다울 때, 어른은 어른다울 때. 뒤죽박죽 세상에 내 자리는 어디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