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통권 제1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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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책 이야기]
어둠에 대한 새로운 발견

박양미 | 2014년 11월

늦은 밤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홀로 귀가하던 여고생이 괴한의 흉기에 찔려 숨졌다. 밤늦게 귀가하는 여성들만을 노려, 집 바로 앞까지 쫓아가 가방을 상습적으로 날치기한 40대 남성이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새벽 2시 반쯤엔 서울 강북구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12살 초등학생이 대학생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뉴스 기사의 내용들이다어른인 나도 밤이 정말 무섭다.

어둠이라는 주제를 받고, ‘희망이나 밝음 같은 주제가 아니라 왜 어둠이지?’라는 생각에 마음이 많이 어두웠었다. 그러나 어둠과 관련된 그림책들을 접하고,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어둠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난 그림책들은 어둠의 부정적인 이미지보다는 긍정적이고 친구 같은 어둠을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 같은 어둠

『그날, 어둠이 찾아왔어』에서 어둠을 무서워하는 라즐로는 어둠과 한 집에 살고 있다. 옷장 속, 샤워 커튼 뒤, 지하실 상자와 서랍장 등 집안 곳곳에 어둠이 숨어 있다. 밤이 되면 어둠은 몸을 쭉쭉 뻗으면서 밖으로 나온다. 그림책을 넘기는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괴물이라도 나타날까 긴장되고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어둠이 라즐로를 데려가거나 삼켜버리면 어떻하지?’ 하는 걱정도 되었다. 라즐로는 손전등을 손에 꼭 쥐고 쉽게 잠들지 못한다.

그런데 라즐로는 어둠과 인사하고 싶어 한다. 라즐로는 자기가 어둠을 먼저 찾아가면, 어둠이 자기 방에는 오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어느 날, 어둠이 찾아왔다. 무서울 것만 같았던 어둠은 라즐로의 이름을 불러주고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어 한다. 어둠은 예상 외로 다정한 면이 있다. 어둠이 준 선물로 라즐로는 편안하게 잠이 들 수 있었다. 이제는 라즐로가 어둠에게 먼저 인사를 하게 된다. 어둠은 변함없이 라즐로와 함께 살고 있지만, 라즐로는 이제 어둠이 무섭지 않다. 우리가 밤하늘의 별을 쳐다볼 때, 어둠은 우리들을 내려다본다는 표현이 매우 인상적이다. 서랍장 아래, 열린 서랍이 웃는 입처럼 보인다는 작가의 표현이 또한 참 재미있다. 어둠이 무서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 늘 우리 곁에 있지만 새로운 어둠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어둠은 무섭지 않아!』에 나오는 데이지는 옷도 핑크, 커튼도 핑크, 핑크색을 좋아하는 아이로 보인다. 그리고 검은색 어둠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아이다. 데이지의 방 창문으로 어둠이 까만 손을 하나 걸쳐놓은 장면에서 살짝 긴장감이 든다. ‘어둠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하다. 어둠이 살며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에도 데이지는 뭘 하고 놀지, 생각하고 있다. 어둠은 데이지의 방에 점점 몰려와 재빨리 빛을 먹어 치우며, 방을 깜깜하게 채운다. 그러나 데이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리저리 춤추고 돌아다니며, 신나게 놀고 있다. 데이지는 방에 어둠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데이지와 어둠은 서로를 보았다. 데이지는 어둠의 손목을 꼭 잡고, 어둠의 팔을 끌고 다닌다. 어둠은 데이지의 손에 이끌려 방안을 이리저리 돌고, 신 나게 트위스트를 춘다.

데이지의 당찬 행동에 오히려 당황한 듯 쩔쩔매는 어둠의 모습이 재미있다. 또한 데이지가 원하는 대로 함께 놀아주는 어둠이 정겹다. 어둠은 사람 형태로 몸만 온통 까만 귀여운 친구로 표현되어 있다. 5살된 막내가 어둠의 움직임을 따라해 본다. 다리를 벌리고 구부정한 모습, 한쪽 발을 든 모습, 입을 벌리고 만세를 하고 있는 모습 등 어둠의 표현과 움직임이 재미있다. 이제 어둠은 밤마다 찾아오는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러다 데이지가 지쳐서 불을 끄면 다정한 작별 인사와 함께 어둠으로 데이지를 한껏 안아준다. 어두운 밤을 무서워하는 아이들에게 편안함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어둠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

흔히 밤에는 잠자리를 준비하고, 잠을 잔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밤은 고요만이 있지는 않다. 그렇다면, 밤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캄캄한 밤에』에서는 깊은 밤에 일어나는 일들을 소개하고 있다. 하늘이 어두워지며 밤이 되자, 커튼을 치고, 창문을 닫고, 불을 끄고 잠을 잘 준비를 한다. 캄캄한 밤이 되자, 제각각 즐거운 생활이 시작된다. 배고픈 박쥐들이 식사를 하러 날아오고, 이웃 사람들이 한데 모여 흥겨운 파티를 하고, 쥐들도 먹이를 찾으러 모여든다. 깊은 밤에도 자동차가 지나가고, 개가 짖으며, 사람들이 식당과 영화관에서 나온다. 한밤중에 구두 소리가 울리고, 경비원아저씨는 박물관의 보물을 지키고, 동화 작가는 재미난 이야기를 쓴다.

조용하고 지루한 밤은 찾아볼 수 없다. 글 위에 시계가 현재 시간을 알려주고 있고, 시시각각 일어나는 밤의 일들을 살펴볼 수 있다. 다양한 모양의 시계들을 보는 재미가 있고, 활기찬 밤의 세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사람과 동물들을 찾아보는 즐거움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인 큰 아이는 밤이 이렇게 신나고 즐거운 것인지 몰랐다면서, 나중에 커서 동화 작가가 되면 밤에도 꼭 글을 써 보겠다고 한다.

어둠을 지키는 사람들도 있다. 『밤을 지키는 사람들』에서 영두와 고모는 어둠 속에서만 모습을 드러낸다는 투명인간을 찾으러 간다. 투명인간은 낮에는 보이지 않다가 한밤중이 되면 보인다고 한다. 영두와 고모가 찾은 투명인간은 바로 환경미화원이었는데, 경찰관, 119 구급대원, 트럭 운전수, 택시 기사, 도로보수원, 천문학자, 우유배달부를 만나며 밤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된다. 평소에는 생각지 못했는데, 이 그림책을 통해서 밤에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덕분에 우리들이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개인적으로는 첫 아이와 둘째 아이를 한밤중과 새벽에 낳았는데, 출산을 도와주신 산부인과 간호사 선생님들과 의사 선생님, 아침에 막내 아이와 함께 유치원 가는 길을 깨끗하게 청소해 아침의 상쾌함을 주신 환경미화원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오늘 밤도 이 곳저곳에서 투명인간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아이들은 밤에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분들의 노고에 고마움을 느끼게 될 것 같다. 영두 고모가 만화가여서인지, 곳곳에 만화같이 나뉘어져 있는 장면들이 읽는 재미를 더하며, 밤을 지키는 사람들의 현장을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어 유익했다.

내가 경험한 특별한 어둠

7년 전쯤 특별한 어둠을 경험한 적이 있다.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던 ‘어둠 속의 대화’가 그것이다. 흔히 전시라고 하면 눈으로 관람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사전 지식 없이 전시에 갔던 나는 그저 ‘어두운 작품에 사람 이야기가 들리는 전시이겠거니.’ 하고 생각했었다. 우선 빛을 낼 만할 휴대폰 등을 포함하여 소지품을 보관함에 넣고, 시각장애인용 지팡이를 짚고 어둠의 공간으로 들어갔다. 한 8명쯤 되는 사람들이 그룹을 지어서 이동했는데, 한줄기의 빛도 찾아볼 수 없는 캄캄한 어둠에 놓였을 때,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일상생활 중에서 눈으로 보는 것에 얼마나 익숙해 있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고, 어둠 속에서 속수무책인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서 공원을 지나가고 차 소리 가득한 횡단보도를 건너보는 등 늘 접할 수 있는 일상적인 공간임에도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나무를 안아보고, 시장의 물건들을 만져보며 냄새 맡아보며 눈이 아닌 소리와 손의 감촉 등 다른 감각들을 이용해서 경험해야 했기에 좀 더 집중하려고 노력을 했던 것 같고, 용기도 필요했다. 마지막에 탄산음료를 주문해서 마셔 보았는데, 포도맛 탄산음료의 시원함과 짜릿함 또한 인상적이었다.

당시 직장 동료들과 함께 갔었는데, 서로를 볼 수는 없었지만, 함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 놓여 있었지만, 서로 돕고 의지하는 마음을 느꼈다. 전시를 체험한 후에 어둠 속에서 친절하고 차분하게 우리를 안내해 주었던 가이드가 시각 장애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의 도움을 필요로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장애인이 어둠 속에서는 우리를 도와주고 인도해 주는 역할을 해 주었던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어둠을 달리 볼 수 있다는 것, 어둠이 친구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어둠 속이 활기찬 세상일 수 있다는 것을 그림책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어둠이 있기에 밝음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박양미 | 달달한 커피와 수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아줌마입니다. 5살과 8살, 11살 된 딸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새로운 그림책들과의 만남이 즐겁습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