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통권 제1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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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은의 그림책 심리학]
검피 아저씨의 배에 타려면

신혜은 | 2014년 11월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그림책일 뿐 아니라 그림책을 처음 접하는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정말 좋아하는 그림책이다. 필자의 첫 아이도 어렸을 때, ‘그래서 모두들 물속으로 풍덩 빠져 버렸지’ 하는 장면은 열 번 이상 반복해서 읽고 넘어갔었다. 이 장면 놀이가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를 읽는 우리만의 의식(ritual)이었다.

‘풍~덩~’은 최대한 깊고 넓은 느낌이 들도록, 그리고 최대한 길고 멀리 퍼져 나가도록 읽어야 했다.
 
물론 필자도 노를 잡고 서 있는 검피 아저씨 등줄기의 그 꼿꼿함이 어찌나 마음에 들던지, 검피 아저씨만 떠올려도 필자의 굽은 등이 저절로 펴지곤 했다.


그렇게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를 만난 지 15년이 되던 해인, 2012년 4월 그 뱃놀이 책을 다시 새롭게 만나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그림책 심리학 강의를 수강하시던 참여자 한 분이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를 자신의 첫 그림책으로 들고 오셨다. 워낙 차분하시고 말수가 없던 분이셨다.

함께 공부하던 분들뿐 아니라 필자도 조금은 의아한 마음으로 이 책이 첫 그림책인 이유를 여쭈어 보았다.

그 분은 첫 그림책을 찾아 집 근처 도서관 그림책 코너에서 수십 권의 그림책을 보셨지만 벌써 마음속에는 몇 달 전부터 검피 아저씨가 자리 잡고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처음에는 검피 아저씨의 넉넉한 마음 때문이었다고 하셨다.

각각의 개성 때문에 배가 뒤집힐 줄 뻔히 알면서도, 배 타기를 원하는 이들이 다 타도록 허용하고 여유 있게 뱃놀이를 떠나는 검피 아저씨의 모습. 그리고 한마디의 책망이나 불평 없이 강기슭으로 헤엄쳐 나온 이들을 이끌고 집으로 데리고 가 다과를 먹이는 훈훈함. 떠날 때는 “다음에 또 배 타러 오렴” 하고 손들어 주는 넉넉함….

이에 마치 자신이 검피 아저씨가 되어 넉넉한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 같은 착각 속에 한동안 살았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것이 그 분의 첫 그림책이 된 이유는 아니었다.

이후 여러 번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를 반복해서 읽었는데, 점차 꼬마와 동물들의 요청하는 말에 마음이 이끌리게 되었다고 하셨다.
 
“저도 따라가도 돼요? 나도 타고 싶은데… 나도 데려 가실래요?… 내 자리도 있나요?… 내 자리도 마련해 줄 수 있나요?”

각각의 약점들 때문에 거절당할지도 모르는데, 이들은 넉넉한 검피 아저씨를 믿었는지 거리낌 없이 태워달라고 요청한다. 내가 왜 꼬마와 동물들에게 마음이 꽂혔을까? 두려움, 소심함 때문이다.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고, 무엇을 요청할라치면 여러 번 생각하고 망설이다가 겨우 무슨 죄인이나 된 것처럼 기어가는 목소리로 요청한다. 이런 성향이 동물들에게 그대로 투사가 된 듯하다.(by S.J. 2012. 4)
 
그분은 자기도 “아저씨, 저도 따라가도 돼요?”라고 검피 아저씨에게 물었다고 하셨다. 그러자 검피 아저씨는 “그러렴. 소심하게 가만히 있지만 않는다면” 하고 답했다고 하셨다.

‘그러렴. 소심하게 가만히 있지만 않는다면?’ 그림책 속 검피 아저씨는 태워 달라는 꼬마들과 동물들의 요청에 아주 다양한 조건을 내밀었다.

‘둘이 싸우지만 않는다면, 날개를 푸드덕거리지 않는다면, 깡충깡충 뛰지 않는다면, 토끼를 쫓아다니지 않는다면, 고양이를 못살게 굴지 않는다면, 시끄럽게 울지 않는다면, 뒷발질 하지 않는다면’ 등등 모두 참을 수 없는 자신들의 오래된 본연의 모습과 습관을 참고 견디는 것을 배 태워주는 조건으로 제시했었다.

하지만 ‘가만히 있지만 않는다면’ 태워주겠다고 하다니! 참으로 놀라운 이야기 재구성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필자도 이끌리듯 검피 아저씨에게 물어보았다. “아저씨 저도 데려가 주실 수 있나요?” 그랬더니 아저씨는 “그래 좋다.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지만 않는다면” 이렇게 대답하시는 게 아닌가!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지만 않는다면…’ 평생 스스로를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이라 여겨왔던 터라 스스로 깜짝 놀라기도 했고, 이 대답이 내게 어떤 의미일까 곰곰 음미해 보게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음’은 나 스스로 취약한 면이라 여기는 것이기도 했지만 또 생각해 보면 크게 고민하지 않고, 마치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할 수 있는 것이 나의 강점이기도 하다는 느낌이 들자,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는 또 다른 측면에서 참 재미있는 그림책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 그림책을 알고 있는 분들을 만나 “검피 아저씨가 뭐라고 했을 거 같으세요?”라고 물었다. 신기하게도 아무도 같은 대답이 없었다.
 
혼자 놀지만 않는다면… / 울지만 않는다면… / 초조해 하지만 않는다면… / 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 딴 생각하지만 않는다면…

왜 각자 저런 답들을 떠올렸을까? 무엇 때문인지 이유는 명확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닭에게 푸드덕거리지 말고, 염소에게 매애거리지 말고, 고양이에게 토끼를 고양이를 쫓아다니지 말라고 한 검피 아저씨의 말을 떠올려 보았을 때, 분명 그 대답들은 각자의 삶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한 국면을 반영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오래전부터 내가 들어왔던 외부의 명령의 목소리이든, 아니면 스스로 만들어낸 내면의 비판자 목소리이든 말이다.

이천의 한 그림책 집단 모임에서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를 함께 읽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도 같이 검피 아저씨의 배를 타고 뱃놀이 갈 거니까 각자 검피 아저씨에게 태워달라고 하라고 했다.

한 분이 검피 아저씨의 대답을 받아쓰고는 한 동안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다른 분들은 어렵지 않게 각자의 답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셨는데, 그 분은 필자에게 종이쪽지를 건네 보여 주시고는 계속 펑펑 우셨다. 그 쪽지에 쓰인 문장은 ‘그래 좋다. 엄마 아빠 보고 싶다고 울지만 않는다면’이었다.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면 울어야 한다. 울지 않고 참아온 세월이 너무 오랫동안이었던 거다.
 
아이들은 싸워야 하고, 닭은 푸드덕 거려야 하고, 양은 시끄럽게 울어야 하고, 돼지는 배 안을 더럽힐 수밖에 없고, 소는 쿵쾅 거려야 한다. 얼마 동안은 참고 갈 수 있지만 언젠가는 자연스런 본연의 모습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배가 기우뚱, 모두들 물속으로 풍덩 빠져 버렸지만, 하지만 괜찮다. 강가에 나와 젖은 옷을 말리고, 함께 따뜻한 차를 마시면 된다. 그리고 또 빠질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배 타러 가야 한다. 배 타러 와도 좋단다, 우리의 검피 아저씨가.

함께 노를 젓지 않는다면… / 난간에만 앉지 않는다면… / 너만 생각하지 않는다면… / 혼자 집안 걱정하지 않는다면… / 무섭다고 강 한가운데서 내려달라고만 하지 않는다면… / 앞일에 대한 걱정만 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이 어떤 대답을 듣게 되실지 모르지만, 한 번 물어보시면 좋겠다. “아저씨, 저도 데려가 주실 수 있나요?” 그러면 검피 아저씨가 대답해 줄 것이다. “…” 그 대답 속에서 여러분 삶의 중요한 한 국면을 찾게 되시길.

Gumpy’s outing! 파이팅!
신혜은 | 아동심리학자로 그림책을 통한 인간심리의 이해와 치유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경동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와 KBBY 부회장으로 일하면서, ‘신혜은의 그림책심리학’ 과정(http://cafe.daum.net/PrimingPicturebook)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파랑새가 산다』 『마음아 작아지지 마』 『비가 오면』 등 펴낸 책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