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9월 통권 제1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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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의 고민, 십대의 마음

한미화 | 2014년 09월

부모가 되고 나니 그전에는 안 보았던 세상의 아이들이 보인다. 내 아이 또래의 학생이라면 특히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개중에는 좀 튀는 아이들도 있다. 머리에는 헤드폰을 쓰고, 교복 위에 후드 티를 걸치고, 가방은 건들거리고, 교복 바지는 터질 듯 꽉 줄여 입고, 슬리퍼를 질질 끌고 걸어간다. 구태여 말을 건네지 않아도 “지금 기분이 엿 같거든!” 혹은 “행여 날 건들 생각도 하지 마!”라는 메시지를 온 몸으로 발산하고 있는 게 느껴진다. 게다가 그 학생이 교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엉뚱한 방향으로 새는 걸 볼 때면 가서 어디 가냐고 물어야 하나 싶어 고민이 될 때도 있다.

자신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고 싶어서, 보잘 것 없이 살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은 없는 법이다. 오히려 거친 행동, 과격한 말투는 뭔가를 감추고 싶어 나타나는 과잉 행동일 수 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아닌 척 애를 써야 할 만큼 불안하다는 뜻이다. 특히 사춘기 무렵, 이런 증상이 극에 달한다. 대체 십대는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고민을 할까? 청소년의 심리를 다룬 책들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열일곱 살을 위한 심리학

인간의 행동과 마음을 다루는 심리 관련서는 국내에서 이천 년대로 접어들며 각광받기 시작했다. 비즈니스에 심리학을 활용한 『설득의 심리학』(2003)과 정신 분석의 기본 개념을 자전적 경험 속에서 풀어낸 김형경의 『사람풍경』(2005)이 출간된 즈음이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 심리학은 인문 분야를 리드할 만큼 목록이 풍성해졌다. 학제 간 융합 현상도 활발하다. 예컨대 요즘 유행하는 행동경제학은 심리학과 경제학을 접목시킨 학문이다.

성인 트렌드는 어린이나 청소년 책에서도 반복되는데 지금껏 출간된 청소년 대상 심리 관련서는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심리학 지식을 전달하는 책으로, 주로 이야기 속에 녹여 전달하는 방식을 택한다. 김서윤의 『토요일의 심리 클럽』은 심리 동아리 학생들에게 학자들의 심리 실험의 결과를 들려주는 스토리다. 심리학자들이란 별별 실험을 다하는 사람들인데 그중에서도 청소년들이 관심 있어 할 법한 실험들을 잘 간추려 소개하고 있다. 예컨대 프레더릭 바틀릿의 기억 이론이나 대니얼 웨그너의 ‘흰곰 현상’ 같은 유명한 심리실험을 그냥 설명하지 않고 동아리 학생들이 실험에 참여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이야기로 풀어낸다.

이남석의 『자아놀이공원』은 좀 더 소설적 구성이 강하다. 철학 소설인 『소피의 세계』나 『알도와 떠도는 사원』처럼 지식 소설의 형식을 빌어 심리학의 주요 이론을 소개한다. 게임을 좋아하는 열일곱 소년이 새로 개장한 자아놀이 공원의 초대를 받아 간다. 그곳에서 소년을 기다리는 건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프로이트의 빙하 놀이관, 융의 UFO 전시관, 스키너의 입체 게임관, 매슬로의 피라미드관 같은 심리학 요소가 개입된 환상체험놀이다. 소년이 체험하는 환상놀이 자체가 심리학적 상징이며, 때로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프로이트나 『꽃들에게 희망을』을 쓴 트리나 폴러스 등을 만나 직접 설명을 듣기도 한다.

두 권의 책을 읽으며 미국산 논픽션 책들이 떠올랐다. 최근 미국 논픽션의 흐름은 최신 심리 실험과 연구 결과를 수집해 이를 하나의 주제 아래 일관되게 정리하되 소설 못지않게 흥미진진하게 들려주는 것이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인 말콜 글래드웰의 『다윈과 골리앗』, 『아웃라이어』나 찰스 두히그의 『습관의 힘』 등이 이런 책이다. 이 책들은 구태여 소설로 포장하지 않고 논픽션으로 접근했지만 이야기성이 무척 강하고 흥미롭다.

교양 지식을 어떻게 쉽고 재미있게 풀어 매길 것이냐는 늘 숙제 거리다. 인류가 태어난 이래 이야기가 가장 강력한 정보의 전달 수단인 것은 분명하지만 소설로 포장할 경우 완성도 있는 서사 구조가 요구된다. 그러나 지식과 서사라는 두 가지 토끼를 한 번에 잡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토요일의 심리 클럽』이나 『자아놀이공원』 모두 인간 심리에 관한 연구 중 청소년에게 필요한 내용을 잘 정리하여 소개하고 있지만, 지식 소설이라는 한계 또한 지닌다. 어린이들을 위한 지식 동화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아도 청소년 책은 유치하고 성인들이 읽는 책을 기웃거리는 열일곱 살 청소년들을 유인하려면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한 법이다.

고민을 들어줄 사람이 없다

청소년을 위한 심리학 중에서 또 다른 한 축은 고민 상담이다. 고민 상담은 신문과 잡지의 오랜 단골 메뉴고 최근에는 성인용 책의 유행 키워드이기도 했다. 특히 단순한 조언과 충고가 아니라 독설에 가까운 쓴 소리를 담은 책일수록 큰 인기를 누렸다.

한 사회학자의 말처럼 요즘 사람들은 ‘돈 내고 야단맞으러 가는’ 걸 즐긴다. 점점 더 남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사회, 그러면서도 내 하소연은 하고 싶어 하는 사회에 우리는 산다. 하지만 남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내 말을 쏟아낼 상대도 없는 법이다. 결국 돈 받고 말을 들어주는 산업이 활황이다. 상담이나 치료도 이런 수요의 반영이다. 그중에서도 청소년은 오래 전부터 이런 말 못할 고민에 시달려 왔다.

『괜찮아, 열일곱 살』의 저자인 이나미는 서문에서 이런 말을 들려준다. 1990년대부터 상담실에서 청소년을 만났는데, 십대의 고민은 생각 외로 다양했다고 한다. 왜 인기가 없을까, 왜 못생겼을까, 왜 친구가 생기지 않을까, 남자친구가 자꾸 몸을 만지려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등등. 이렇듯 고민은 다르지만 청소년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고민을 털어놓고 상의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부모에게 말했다가는 괜히 혼만 날 것도 같고, 교사는 믿지 못하겠고, 주변에 의지할 어른이 없는 거다.

어른 입장에서 보면 십대의 고민은 지나고 보면 별 거 아닌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귀를 기울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 번 사는 사람은 없다. 십대의 고민은 생애 처음 만나는 일생일대의 문제다. 그래서 더없이 심각하고 아픈 현재 상황이다.
 
책은 자아, 가족, 친구, 학교, 성과 사랑에 관해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청소년의 걱정거리를 살핀다. 고민에 대한 전문가의 상담도 상담이지만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십대의 발달심리학적 특징도 살필 수 있다. 청소년이 읽는다면 자신이 겪는 고통이 자연스러운 성장의 한 과정임을 깨달을 수 있겠다. 간혹 ‘나만 이런 게 아니다’는 사실 만으로도 위안이 될 때가 많은 법이니까. 이를테면 십대의 동성애 감정은 본인에게는 상당히 당황스럽지만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이다. 인간이 성장함에 따라 사랑의 형태도 변화한다. 어릴 때는 자기 몸을 탐색하며 사랑하고, 다음에는 부모를 무조건 사랑하고, 그리고 나면 동성애적 사랑이 찾아온다. 하지만 이런 감정은 일시적이며 자연스럽게 이성애로 이행된다.
또 저자는 청소년들이 담배 피우고, 술 마시는 건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어른 흉내를 내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어릴 때와 달리 청소년은 어른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한데 어른들은 십대를 여전히 아이 취급하며 억압하려 든다. 그럴 때마다 화가 나고, 빨리 어른이 되어 자신의 권리를 찾고 싶어진다. 이런 강한 성장 욕구가 어른인 척 흉내를 내는 이유란다. 이렇듯 각종 문제 때문에 괴롭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고민을 해결하도록 돕는 건 물론이고, 십대의 심리를 이해하고 싶은 어른들에게도 좋은 길라잡이 역할을 한다.

또 한 권, 안광복의 『열일곱 살의 인생론』도 고민 많은 십대가 읽으면 좋을 책이다. 이 책은 ‘철학 상담서’ 로 분류할 법한 책이다. 열일곱 살에 품을 법한, 가족, 우정, 사랑, 미래, 죽음 같은 추상적 개념에 대해 진지하게 답하다.
 
인생에는 시기마다 겪어야 할 고통이 있고, 넘어야 할 고민과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어른들은 청소년들에게 삶의 고민마저 대학가서 품으라고 강요하지만 이는 엄연한 성장 과업의 유예다. 당장은 고민을 비켜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고민은 다시 찾아 든다. 사람은 언젠가는 개인의 성장 과업을 풀어야 한다.

저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제자들이 찾아오면 늘 같은 말을 한다고 지적한다. “선생님, 고등학교 때가 제일 행복했어요.” 이 말이 정말일까? 이 책을 읽을 청소년들이라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어른들이라면 금방 알 것이다. 사실이다. 고교 시절은 지긋지긋하지만 끝이 있다. 대학에 가면 고생 끝일 거라는 희망이 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면, 대학에 진학하면, 눈에 보이는 목표 대신 끝이 보이지 않는 고민이 시작된다. 풀리지도 않는 고민이다. 그러니 이구동성으로 그때가 행복했다고 하는 거다.

당장은 힘들더라도 고민과 아픔에 시달렸고 그 문제를 성찰했다면 그 사람은 분명 전과 다른 사람일 수 있다. 2500년 전 이 땅에 살았던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같은 철학자들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쳤고 인생의 여러 문제에 대해 답을 내놓았다. 바로 철학이다. 선각자들의 지혜로운 성찰을 책이 들려준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지만 어떤 때는 혼자 힘으로 도저히 풀어낼 수 없는 고민도 생기는 법이다. 그럴 때 책들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 성장 과업의 숙제를 풀어 볼 수 있다면 좋겠다.
한미화 | 출판 칼럼니스트입니다. 책과 출판에 관해 글을 쓰고 방송도 합니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 『책 읽기는 게임이야』 『잡스 사용법』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