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9월 통권 제1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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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서평]
달걀과 바위

김원숙 | 2014년 09월

생계는 삶과 연결됩니다. 아이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한 집에 사는 엄마 아빠의 살림 형편은 곧 아이들의 생활과 연결되지요. 아이들 세계는 밝고 순수하다고 말하지만 그건 넉넉한 가정 아이들의 이야기인 경우가 많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드리운 이런저런 그늘들. 단편집 『×표 하시오』의 작품들은 그런 아이들의 그늘을 비추고 있습니다.

첫 단편 「최악의 짝꿍」은 갑자기 저소득층 자녀가 되어 버린 인호의 갈등을 그렸습니다. 위암을 앓던 아빠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식당으로 일하러 가고, 작은 연립 주택에서 살게 된 인호는 달라진 환경을 받아들이느라 하루하루가 벅찹니다. 그런데 무료 급식과 ‘사랑의 도시락’에다 아이티꿈나무 지원까지 받는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자 자존심이 크게 상합니다. “내가 얼마나 불쌍한 애가 되어야 속이 시원하냐?”고 엄마에게 소리칩니다. 처지가 달라진다는 것은 참기 힘든 일이지요. 저소득층 자녀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을 보잘 것 없다고 여기는 시선과 줄긋기가 싫어서라는 것을, 아이의 그런 심리를 찬찬히 그린 작품입니다.

그렇게 비참하고 왜소하게 느껴졌을 인호를 일으켜 세워 준 것은 짝꿍 준형이었습니다. 인호는 사랑의 도시락을 받는 모습도, 엄마에게 했던 화풀이도 들켜버린 준형이가 싫었습니다. 하지만 준형이는 희망과 의지를 인호에게 보여 줍니다. 무료가 어때서 그러냐고, 커서 갚으면 된다고, 돈 많이 벌어서 두 배, 세 배, 아니 몇 십 배로 갚으면 된다고 말해 줍니다. 청소부 할머니와 사는 준형이의 처지가 인호와 비슷하고 또래가 제시하는 희망이어서 인호는 마음을 열었을 것입니다. 아이들 내부에서 변화의 힘을 얻는 결말이 마음을 잔잔히 흔듭니다.

하지만 작품에 녹아 있던 그 희망은 「FC 603」에서 여지없이 무너집니다. 이야기는 6학년 반 대항 축구 대회를 한 축으로 하고, 대기업의 문어발식 기업 운영에 맞서는 동네 상권 문제를 다른 한 축으로 하여 펼쳐집니다. 축구 대회 결승전 날, 6학년 2반 대표는 시험을 핑계로 결승을 한 주 뒤로 미루려 합니다. 하지만 2반의 속셈은 주말 리그를 마친 축구부 선수들을 시합에 합류시키려는 것이었지요. 이유를 빤히 짐작하면서도 시합에 축구부가 참가하면 안 된다는 규칙이 없다는 말을 반박하지 못하고 결승전은 연기됩니다.

득이 되는 것을 쥐고 있는 무리들과 그렇지 않은 무리의 대결을 달걀과 바위로 빗대었습니다. 축구 선수가 있는 2반과 없는 3반 아이들, 대형 마트와 작은 동네 슈퍼. 이들이 겪는 좌절을 설득력 있게 작품에 녹였습니다. 큰길에 새로 생기는 대형슈퍼 개장 반대 시위를 하러 가며 엄마 아빠는 민규에게 슈퍼를 지키라고 합니다. 하지만 시합 준비가 우선이고 집에 닥친 위기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민규는 동생에게 가게를 맡기고 운동장으로 달려갑니다. 2반이 축구 선수를 투입시킬 작정이라면 3반은 일주일 동안 체대 다니는 친척 형에게 축구 지도를 받아 대항하겠다는 계획입니다. 그때 형은 냉정하게 말합니다. 벼락치기로 축구 실력이 늘지 않는다, 축구 선수가 있다면 달걀로 바위치기라고. 하지만 현실을 아직 모르는 민규와 3반은 패스와 슈팅 연습을 계속하고 결승전에 임합니다.

결과는 역시 달걀로 바위치기. 민규네 FC 603 팀은 열심히 연습했음에도 2반에게 11대 0으로 완패합니다. 기적은 없었습니다. 열심히 하면 바위를 깰 수 있을 거란 기대가 헛되이 부서집니다. 희뿌옇게 먼지 날리는 운동장에 지쳐 누운 민규의 눈에 2반 축구부의 빨간 유니폼이 들어옵니다. 그것은 큰길에 들어서는 대형마트이고, 우리 사회 곳곳에 있는 바위임을 깨닫습니다. 담담한 결말이 무겁게 마음을 누릅니다. 달걀들에게 희망은 없다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을 인정하고 더 꿋꿋이 일어나라는 뜻으로 읽고 싶습니다.

나머지 작품들도 탄탄한 구성으로 섣부른 낙인이 주는 상처를 말하고, 물건을 훔치는 언니의 비밀을 알게 된 동생의 심정을 따스하게 감싸고, 친구를 원하는 아이의 심정과 엄마 아빠를 그리는 마음을 그리고 있습니다. 아이들 속에 숨어 있는 많은 그늘들을 쳐다보라 말합니다. 그리고 연약한 달걀인 아이들이 서늘한 그늘과 단단한 바위를, 스스로 이겨내라고 응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아이들 곁에 있는 우리는 무얼해야 할지 가만히 고민해 볼 일이 남았습니다.
김원숙│ 오픈키드 컨텐츠팀장. 어린이 청소년 책을 읽으며 청소년 책읽기, 신화, 논어 모임에서 어린이 책 공부도 하며 즐거이 지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