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9월 통권 제1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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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서평]
제발 누군가 대신 해주기를

김수영 | 2014년 09월

일반적으로 대다수의 우리는 정의가 옳고,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불의를 보았을 때 선뜻 나서서 바로잡으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우리는 발을 동동 구르며 누군가가 대신 나서서 지금의 상황을 정리해주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누구에게나 제발 누군가 나 대신 해주길 간절히 원했던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이진하가 지은 『외계인 전학생 마리』는 평범한 일상에 갑자기 찾아든 외계인 마리를 통해 내성적인 이솔이 어떻게 방관자의 자리에서 벗어나 스스로 나서게 되는가를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이솔이는 왕따가 아니다. 친구들과 노는 대신 책을 읽거나, 공상을 하거나, 공책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며 지내는 걸 좋아하는 내성적인 아이일 뿐이다. 다만 가끔은 재미있는 생각을 함께 나눌 친구가 없는 것이 서글프다. 그러던 차에 마리가 전학을 왔고, 이솔이의 짝이 되었다. 제목에서 이미 드러났듯이 마리는 마루마라는 별에서 온 외계인이다. 물론 주변사람들이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믿어주지는 않지만. 아무튼 마리 때문에 단풍초등학교 4학년 5반의 생활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마리는 목소리가 크면 왜 선생님께 혼나느냐고 묻는가 하면, “쉬는 시간 10분? 어떻게 딱 10분만 놀 수 있어? 수업시간이라는 것도 이상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도 있잖아.”라고 투덜거린다. 이처럼 마리는 일상적인 학교생활을 신기하게 보이게 만들고, 당연히 해야 할 일들에 의문을 갖게 한다. 그동안 우리가 당연시 해온 것들이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회를 좀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힘을 갖게 해준 것이다.

마리는 이솔이와 친구가 되고, 친구와 싸우고 슬퍼하는 민아를 위해 므니인형 제작법을 전수하고, 단어를 잘 외우고 싶어 하는 정수에게는 기억력 연필을 빌려주며 교실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러다보니 마리는 곧 아이들 위에 군림하던 은지의 타깃이 되었다.

“잠깐! 나 책에서 본적 있어! 이게 왕따라는 거지?” “오, 맙소사! 내가 왕따를 당하고 있어! 내가 지구에 와서 제일 체험해보고 싶었던 게 바로 왕따였거든!” 자신을 왕따 시키려는데 오히려 기대에 찬 눈빛으로 질문을 해대는 마리를 보며 은지는 당황한다. 그런 마리를 지켜보면서 이솔이는 자신도 모르게 방관자에서 참여자로 돌아서고 있었다.

한편, 단풍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은 월요 방송조회 때 연설하기를 좋아한다. 권위적인 그는 아이들이 자신의 ‘좋은 말씀’을 흘려들을까봐 연설 내용을 빠짐없이 받아 적게 했다. 아이들 모두 속으로만 불평할 때 마리는 방송실로 달려가 교장선생님만 말하는 건 불공평하다고 외쳤다. 결국 교장선생님은 다음 조회시간에 학생들에게도 발언할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한다. 단,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면 마리가 학교를 떠나야 한다는 조건으로. 그후에도 권위에 도전한 발칙한 마리를 용서할 수 없는 교장선생님의 방해 공작은 도를 넘어섰다.

드디어 약속한 조회 날. 그날은 특별히 운동장에서 조회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자리에 나서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교장선생님의 계략은 적중했다. 아무도, 나서지 않았던 것이다. 이솔이는 누구라도 영웅처럼 나타나 저 마이크를 붙잡고 이야기해주기를, 그래서 마리가 퇴학당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다 문득, 친구인 마리를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누군가가 대신 말해주기만 기다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그래서 이솔이는 주먹을 꽉 쥐고 앞으로 뛰어나가 마이크를 잡는다. 늘 있는 듯 없는 듯 내성적인 아이, 이솔이가 말이다.

정의롭지 않은 사회에서는 대다수가 불행하다. 정의롭지 않은 소수가 대다수의 행복을 가로채기 때문이다. 저마다 누군가가 대신 해주기만을 기다리면 정의로운 사회는 오지 않는다. 힘센 소수는 언제나 정의롭지 않은 사회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외계인 전학생 마리』에서는 마리가 나타나 이솔이를 변화시켰다. 이솔이의 용기로 학교의 권력은 요동치며 변하기 시작했다. 우리 안의 마리는 언제쯤 나타나 줄까? 우리 안의 이솔이는 언제쯤 심호흡을 하며 연단으로 뛰어나갈까?
김수영│어린이 책이 좋아서 어린이 책을 읽고 쓰고 강의하는 일을 합니다. 동화미디어 창작 박사과정을 마쳤고, 라디오 동화작가로도 일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