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9월 통권 제1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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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 만드는 이야기]
생각이 행동을 만들어요

조진희 | 2014년 09월

옛날과 지금

옛날 옛날에 한 양반이 살았어요. 그는 지혜롭고 정직했으며 책 읽기를 좋아했죠. 하지만 집이 가난해 관가에서 양식을 꾸어다 먹고살았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빚이 1,000석이나 되었고 결국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이 소식을 같은 마을의 부자가 들었어요. 그는 돈은 많았지만 신분이 낮아 주변의 업신여김을 받았지요. 그래서 양반에게 곡식을 줄 터이니, 양반이라는 신분을 팔라고 했죠. 양반은 허락했고, 부자는 곡식을 보내어 빚을 갚아 줍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군수는 양반과 부자를 불러 양반이 마땅히 해야 할 일에 대해 들려주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부자가 가만히 들어보니 양반은 농사도 짓지 말고 장사도 하지 말고 오직 공부를 해서 벼슬에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해 작은 벼슬이라도 얻으면 이웃집의 소를 가져다 먼저 밭을 갈고 마을 일꾼을 데려다 김을 매어도 된다고 합니다. 지나가는 사람의 머리끝을 잡아 돌리고 수염을 뽑더라도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하고요. 그 말을 들은 부자는 자기를 도둑으로 만들 작정이냐면서 양반 되기를 포기하고 집에 돌아가지요.
 
이 이야기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쓴 「양반전」의 줄거리입니다. 박지원은 이 소설을 통해 허례허식에 찬 양반을 비꼬고 돈으로 신분을 사고파는 당시의 시대상을 풍자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잘 뜯어보면 좀 이상하지 않은가요? 양반은 성품이 좋고 정직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사람이 돈을 벌지 못해서 곡식을 꾸어 먹고살았던 걸까요? 사지 멀쩡하고 아는 것도 많은 사람이었으니, 마음만 먹었다면 장사를 하든 의원이나 역관이 되어서라도 돈을 벌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도 이 양반은 가만히 앉아서 가족들이 배고픔에 굶주리거나 말거나 책만 읽었습니다.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그건 그 당시 사람들이 양반은 체통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양반은 처음에는 벼슬길에 오르는 문반과 무반을 합쳐 말하는 것이었지만, 조선 중기를 넘어서자 신분의 하나로 굳어졌습니다. 양반의 자식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벼슬길에 나아가 출세하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삼았고, 글공부에만 매진했습니다. 출세를 하는 것이 가장 큰일이었기에 그 외 일들은 다 천한 일이 되었습니다. 장사로 돈을 버는 것도, 화가가 되는 것도, 의원이 되는 것도 죄다 천한 일이었고, 양반의 자손이 그런 일을 하면 꾸지람을 들어야 했지요. 그래서 「양반전」 속 양반도 자신의 식구가 굶으면 나라에 곡식을 꿀지언정, 본인이 직접 일을 해서 먹고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십 년 전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어떨까요? 가족 있는 아버지가 고시 공부에 매달려 공부만 하느라 돈이 없어 은행에서 대책 없이 돈만 빌려 쓰는 겁니다. 그러다 그 빚이 불어나 감옥에 가게 된다면 주위에선 어떻게 생각할까요? 이십 년쯤 전이라면, 남자라면 자기 가족이 평안하고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열심히 바깥일을 하고, 어머니는 안에서 집안 살림을 열심히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었으니, 그러지 못하는 아버지가 아마 주위 사람들에게서 흉 좀 들었을 겁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또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왜 굳이 아버지만 일을 해서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나요? 예전에는 남자 여자에게 주어진 역할이 달랐지만, 이제는 개인의 능력과 취향이 우선시되는 시대입니다. 능력이 되고 의욕이 있다면 어머니가 밖에서 돈을 벌고 아버지가 집에서 살림과 공부를 해도 되지 않을까요?

어때요, 조선 시대, 약 이십 년 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같은 사건을 두고도 사람들은 각기 다른 생각을 하지요?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왜 이렇게 시대에 따라서 사람마다 생각이 달라질까요? 우리는 우리 스스로 각자의 생각에 따라 판단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주변 사람의 생각에 따라 아무 생각 없이 따라하는 건 아닐까요? 그렇다면 주변 사람들의 생각은 또 어떻게 이루어지는 걸까요?

이렇듯 생각의 뿌리를 더듬다 보면 어느 순간 당대의 생각이 사람의 행동을 결정짓고, 생각에 따라 다양한 문화와 역사가 꽃피고 열매 맺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당대 사람들의 생각을 알면 옛 사람들의 문화도 좀 더 본격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지요. 바로 여기에서 ‘우리 고전 생각 수업’이라는 고전 문화 시리즈가 출발했습니다.
 
생각을 알면 이해되는 옛사람들의 문화

요즘 서점에 나가 보면 우리나라 전통 문화에 대한 수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그중에는 친절하고 재미나게 글로 설명한 것도 있고, 그림으로 쉽게 설명한 것도 있고, 아예 어린 친구들이 좋아하는 만화로 꾸민 것도 있습니다. 모두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들이 우리 전통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더해, 그리고 더 큰 고민 끝에 탄생한 작품들이죠. 그래서 이런 책들이 많지 않던 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저 같은 어른은 이런 책을 볼 때마다 깜짝 놀라곤 합니다. 너무나 재밌거든요!

물론 저도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으니, 다른 사람들에 비해 전통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었어요. 옛사람들이 예절을 무척 중시했다는 것, 효를 가장 큰 덕목으로 여겼다는 것, 시대와 지역에 따라 귀하게 여기는 음식이 따로 있다는 것, 조선의 모습을 그리는 사람이 처음 나온 것이 조선 중후반에 이르렀다는 것, 옛날에는 신분에 따라 입을 수 있는 옷이 각기 달랐다는 것 같은 것들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조상님들은 왜 예절을 중시했지? 왜 효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을까? 왜 시대와 지역에 따라 귀하게 여긴 음식이 따로 있었을까? 조선 땅을 그림으로 남긴 사람은 조선이 건국되고 무려 삼백 년이나 지나서야 나타난 것일까? 신분이 다른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해서 왜 입는 옷까지 차등을 두어야 했을까? 왜? 왜? 왜?

이런 의문점을 풀어줄 수 있는 것은 옛날 사람들이 남긴 기록들이었습니다. 옛날 기록들을 잘 살펴보면, 당대 사람들의 생각을 알 수 있습니다. 당대 사람들의 생각을 알면, 우리 조상들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 수가 있죠. 생각의 꼬리가 꼬리를 물면서 우리 앞에 몇 백 년 전 사람들의 문화와 생각들이 그대로 펼쳐지는 것입니다. 그저 결과만 알고 있을 때는 영혼 없는 인형들의 동작을 보는 것처럼 생동감이 없었는데, 그 결과의 이유를 알게 되니, 옛사람들이 내 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 생생해졌지요. 양반이라서 돈을 벌지 못했던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처럼, 내 앞에서 움직이는 옛사람들의 행동에는 각기 수많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덕분에 ‘우리 고전 생각 수업’ 시리즈를 만들면서 옛사람들의 생각을 한층 더 가까이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리즈의 첫 책인 『나를 갈고 닦는 예절 동자례』(조선 시대 어린이 예절 책)는 사실 원문이 따로 있습니다. 조선 중기에 이름난 학자였던 김성일이 「동자례」라는 아동 교육서를 정리했습니다. 그 옛날 사람도 아이들 교육에 대해 무척 고민했다는 뜻이죠. 그 교육서 내용 중 오늘날 우리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뽑아 쉽게 설명하고, 아이들이 흥미를 갖도록 옛날의 일화도 곁들여서 옛사람들에게 예절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하는 책입니다. 첫 원고를 읽다 보니 우리나라 복잡한 예절이 저절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밥을 먹을 땐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절을 할 때는 공손히 고개를 숙입니다. 어르신 앞에서는 꿇어앉고, 어른이 먼저 수저를 들기 전에는 밥을 먹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었지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약 오백 년 전 한 학자가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를 하나하나 또박또박 따져서 풀어 설명한 것이 바로 「동자례」입니다. 왜 예절 바르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한지, 왜 부모님에게 효도를 해야 하는지, 왜 크고 작은 수많은 예절이 있는지, 심지어 세수하는 예절처럼 사소한 예절까지 지켜야 하는지 명명백백하게 설명하고 있지요. 이 원고를 읽다 보니 옛사람의 생각이 오늘날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점을 짚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책인 『이순신 장군과 고기 국수』(옛사람과 함께하는 음식 이야기)는 음식을 대할 때 옛사람이 가졌던 태도와 생각을 살펴보는 책입니다. 옛날 요리책을 보면 수많은 자료들이 나옵니다. 요즘에는 잘 먹지 않는 드문 음식이 있는가 하면, 그저 재료를 삶고 구웠을 뿐인 음식도 있고, 굉장히 손이 많이 가는 음식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음식은 누가 만들어 먹었을까요? 작가는 상상력을 발휘해 옛사람들의 족적을 따라 그들이 먹었을 법한 음식을 골라 차려 놓습니다. 즉, 누가 무엇을 먹었는지는 실제의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튼튼한 아이를 낳고 싶었던 어머니의 마음, 나라를 건 결전을 앞두고 어깨에 내려앉은 무거운 책임감에 고뇌하는 장군의 마음, 세상과 끝내 어울리지 못했던 천재의 마음, 허구 속 인물이지만 당대의 신분 제도에 아픔을 지닌 소설 속 주인공의 마음, 종갓집 지체 높으신 부인의 마음, 선비로서 세속에 흔들리고 싶지 않았던 마음,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아 유배지에서 고뇌하던 학자의 마음, 외세의 침입에 잠 못 이루던 황후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해서 그들이 마땅히 찾았을 법한 음식을 상으로 차려냅니다. 그래서 옛날 음식을 눈으로 즐기다 보면, 어느새 문득 옛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에도 슬그머니 닿게 되지요.

세 번째 책인 『심심 남매, 우리 그림에 빠지다』(생각 담은 옛 그림 이야기)는 조선 시대 그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왜 하필 조선 시대냐면, 조선 시대 전으로는 남아 있는 그림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유독 외세의 침입에 많이 시달렸고 전쟁이 많아 불타 없어진 그림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조선 이후의 그림이 그나마 남아 있는 편이지요. 게다가 세련되고 격조 있다고 여겨진 중국의 그림을 베껴 그리는 것이 대다수였습니다. 하지만 사회가 발전하고 시대가 변하면서 조선 시대 화가들도 점차 생각이 달라집니다. 그림 속에 자기 이야기를 슬쩍 담기도 하고, 중국의 산천을 베껴 그리다가 조선의 산천을 직접 그리기 시작합니다. 왕실의 위엄을 드높이기 위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자화상을 그리기도 하지요. 서민의 삶을 가감 없이 그려낸 풍속화와, 그저 자기 자신을 위한 그림을 그리게 만든 화가의 생각은 무엇일까요?

네 번째 책인 『조선 시대 옷장을 열다』(옛사람들의 옷 이야기)는 우리나라 옷 문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옷을 벗고 살 수는 없기에, 옷은 언제 어디서나 사람과 함께했습니다. 그래서 옷에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살펴보면 옛사람들이 옷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옛날에 가채가 유행하면서 목이 부러질 듯한 아픔을 참고 고가의 가채를 사기 위해 재산을 탕진한 여인들의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그런데 남자들도 담비 털을 두른 호화로운 쓰개를 얻기 위해 왕실의 종친이 관에 쳐들어가 조르기도 하고, 멋진 구슬갓끈을 쓰려고 왕이 내린 금지령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귀고리를 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나요? 이런 속물적인 세태에 대해 왕과 여러 학자들은 개탄하고 여러 번 금지령을 내렸지만, 검소해야 할 선비들조차도 멋 부리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또 이와는 반대로, 신하들을 위해 입던 옷을 거침없이 벗어 준 왕 이야기와, 조선 말 조선을 방문한 푸른 눈의 이방인 눈에 비친 조선의 복식 문화는 오늘날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을 살그머니 되살려 줍니다.
 
새롭게 만나는 온고지신의 뜻

자, 어떤가요? 이런 시각으로 보면 우리 옛 전통을 색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저 습관적으로 인사를 꾸벅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을 진정한 마음에서 공경하는 것이 나 자신의 수양을 쌓게 하고 나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옛사람을 이해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우리 전통 문화에 더욱 가깝게 다가갈 수 있지요.

예로부터 온고지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옛것을 공부하여 새것을 안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사회는 아주 오랫동안 조상의 생각이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진 토대 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 지금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옛사람의 생각을 알아서 그것으로 오늘날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는 거울로 삼는 게 어떠할까요? 옛사람을 통해 지금의 나를 돌아보고 성장시키는 것이지요. 옛사람의 생각을 배워 오늘의 나를 완성시키는 생각의 세계에 여러분도 어서 폴짝 뛰어들기를 바랍니다.
조진희 | 전에는 어른 책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어린이 책에 흠뻑 빠져 있어요. 책을 두세 권 만들다 보면 어느새 한두 계절이 훌쩍 지나간 걸 깨닫고는 시간 여행자가 된 듯한 기분에 젖기도 하지요. 시간을 잊고 만든 책 속에서 어린 친구들도 같이 시간을 잊고 열중할 수 있기를 바라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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