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9월 통권 제1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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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거나 말거나, 거울

송아름 | 2014년 09월

올해 초에 새로운 학교에 발령을 받아 갔더니 배정받은 교실에 거울이 없었다. 원래 특별실로 쓰던 곳이라 그렇다고 했다. 행정실에 거울을 사달라고 하고 기다렸는데 이번에는 학교에 배부된 예산이 대폭 줄면서 교실 비품에 책정된 예산이 아예 없다고 한다. 거울 하나를 가지고 옥신각신하다 보니 한 달이 흘렀는데 그동안 거울을 찾는 아이가 아무도 없었다. 생각해보니 좀 신기했다. 1학년이라 학교 생활이 처음이라 원래 교실에는 거울이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 달 여 만에 교실에 거울이 생겼는데 정작 거울을 들여다보는 아이가 거의 없었다. 나도 거울을 거의 안 보는 편이라 괜히 행정실장님께 조른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점심 급식에 짜장면을 먹고는 입가에 짜장 범벅이 된 줄도 모르고 노는 녀석들 손을 붙잡고 거울 앞에 데려갔더니 씩 웃고는 도망가기 바쁘다. 다른 사람의 눈에 자기가 어떻게 비춰지는지 아직 모르는 건지, 관심이 없는 건지. 나 혼자 잔소리하고 쫓아다니다 보니 문득 옛이야기 한 자락이 생각났다.
 
자아 인식의 도구, 거울

숯쟁이가 숯을 팔러 한양에 갔다. 아내는 반달처럼 생긴 빗을 사다 달라고 했지만 달처럼 생긴 물건을 사오라고 한 것만 기억이 나서 보름달같이 생긴 거울을 사갔다. 거울을 받아든 아내는 선물은커녕 웬 젊은 여자를 데려왔냐며 화를 내고, 남편은 확인하려고 거울을 보았다가 여자가 아니라 남자라며 어리둥절해 한다. 시아버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웬 영감이 남의 집에 들어왔다며 거울 속 영감에게 호통을 친다.

거울 속에 든 사람이 누구인지 서로 옥신각신하다 원님에게 들고 갔더니 원님은 암행어사가 나타났다며 줄행랑을 친다. 모여든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는 숯쟁이가 한양에서 귀신을 데려왔다며 난리법석을 피운다.(『거울 속에 누구요?』)

이야기 속 인물들은 모두 거울이 그 앞에 있는 사물을 비추어 보여주는 속성을 가진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옛날에는 거울이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도 아니었고 순박한 시골 사람들이니 거울을 볼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이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거울이야 처음 보는 물건이니 낯설 수도 있지만 자기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낯선 사람으로 오해하여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은 우습지만 왠지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느낌이 든다. 오랜만에 목욕탕에 갔더니 거울 속에 웬 오동통한 아줌마가 있어서 “누구세요?” 하고 묻고 싶었던 때와 똑같은 기분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라캉은 어린 아이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그 이미지를 따라 상상적으로 자아를 구성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러한 자신의 생각에 ‘거울단계’라는 이름을 붙였다. 거울은 나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해준다. 하지만 그 모습은 거울이라는 매개를 통해 보게 되는 것이다. 거울은 때로 사물의 모습을 확대하거나 축소하고 왜곡하기도 한다. 얼룩이 묻은 거울에 비춰보면 말끔한 얼굴에도 얼룩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표면이 고르지 않거나 깨끗하지 않은 거울에 비친 모습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을 때 그 자아는 왜곡된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좀 슬프기도 하다. 죽을 때까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단 한 번도 볼 수 없다니 말이다. 그래서 주변에, 잘 닦인 거울같이 맑고 깨끗한 사람들이 많아야 되는가보다. 내가 미처 볼 수 없는 모습까지 보아주고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면 내 모습을 다 보지는 못해도 제법 많이 알 수는 있을 테니 말이다.

현실과 닮은 듯 다른 세계, 거울

거울은 자신이 비출 수 있는 반경 내의 모든 것을 비춘다. 물론 빛이 있다면 말이다. 거울은 빛을 통해 사물의 모습을 반사시켜 보여준다. 그런데 거울이 사물을 비출 때는 나름의 규칙이 있다. 우선 위아래는 바뀌지 않지만 좌우는 반대로 바뀐다.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노트에 쓸 때 좌우를 반대로 하여 적어 넣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레오나르도가 자신의 천재성을 시기하는 사람들 때문에 일부러 암호를 사용한 거라고 말하기도 하고, 레오나르도가 왼손잡이였기에 글자를 거꾸로 쓰는 게 편했을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유야 어떻든 레오나르도가 남긴 아이디어를 제대로 읽으려면? 거울에 비춰보면 된다.

그리고 거울은 빛이 거울의 중심에 모일 때 입사각과 반사각이 같은 각도를 이룬다. 만약 표면이 완벽하게 고른 거울이라면 입사각과 반사각이 90도로 일치하기 때문에 사물의 모습을 정확하게 비출 것이다. 그러나 유리 뒷면에 금속을 입혀 만드는 거울은 시간이 지나면 금속이 변하거나 벗겨지기 때문에 오래된 거울은 사물을 정확하게 비추지 못하고 부분적으로 왜곡하여 비추게 된다. 어떤 옷가게에서는 일부러 거울을 비스듬히 놓아 사람이 실제보다 크고 늘씬하게 보이도록 상을 왜곡하기도 한다. 복잡한 거울방정식에 따르면 오목거울은 빛이 모아지는 초점이 거울면 앞에 맺히기 때문에 위아래가 거꾸로 보이고, 볼록거울은 초점이 거울면 뒤에 맺히기에 실제보다 더 크게 보인다.

고등학교 물리시간이 새록새록 기억나는 이 복잡한 거울의 논리를 신이 나서 동화로 써내려간 사람이 있으니 그 이름도 유명한 루이스 캐럴이다. 그는 동화작가이기 이전에 뛰어난 수학자였다. 동료 교수의 가족과 함께 뱃놀이를 갔다가 사랑스러운 여자아이 앨리스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책으로 옮겨 베스트셀러가 된 사실은 아는 사람은 다 알기에 생략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는 첫 책보다 조금 더 정교하게 고안된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거울의 규칙을 통해 독창적인 환상 세계를 만들어냈다.

눈이 내리는 겨울날 앨리스는 고양이들과 장난을 치며 이런 저런 상상을 해본다. 고양이가 체스 말의 여왕이 되는 상상을 해보기도 하고, 거울 속에 비친 집은 진짜 집과 어떻게 다를지 거울 속에 들어가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자 거울 표면이 안개처럼 옅어지고 앨리스는 거울 속으로 들어간다. 거울 속 세상은 거울의 규칙대로 길도 글자도 좌우가 바뀌어 있다. 그리고 체스의 말들이 살아서 움직이며 지금 졸병인 앨리스가 여덟 칸을 앞으로 나가야 여왕이 될 수 있다는 체스의 규칙에 따라 앨리스를 게임의 세계로 이끈다.

앨리스는 한 칸씩 앞으로 나아가며 다양한 이들을 만난다. 거울에 비춘 모습처럼 똑같이 생간 트위들덤과 트위들디를 만나고, 미래에서 과거로 가며 시간을 거꾸로 사는 하얀 여왕도 만난다. 하나 가격보다 두 개 가격이 더 싼 가게의 주인도 만나고, 여왕에게 ‘안 생일 선물’(생일이 아닌 날 받은 선물)을 받고 자랑스러워하는 험프티덤프티도 만난다. 왕이 되기 위해 서로 싸우던 사자와 유니콘은 신기해하는 앨리스에게 오히려 어린아이가 전설 속 괴물인 줄 알았다며 놀라워한다. 마침내 여덟 번째 칸에 도착한 앨리스는 여왕이 되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지금은 거울이 생활필수품이지만, 옛날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귀하고 신비로운 물건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자신을 비춰보는 거울이라는 물건에 신비로운 힘이 있다고 믿어 주술의 도구로 사용하였고 그 흔적을 지금도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다. 서양에서도 역사적으로 거울은 예사롭지 않은 물건이었다. 특히 중세 때는 마녀들이 점을 치는 도구라 하여 거울을 가진 여자들을 마녀로 몰아 죽이기도 하였다. 그림형제의 동화 「백설공주」에서 못된 계모가 거울을 보고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지?” 하고 외치다가 마녀로 판명되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면 그 시대 사람들의 거울에 대한 인식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물론 백설공주를 괴롭힌 것은 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마녀가 아니라 그냥 젊음을 시기하는 중년 부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고인이 된 그림형제한테 한 번 더 생각해 보라고 말해줄 수도 없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거울이 가진 힘은 과학과 문명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인간이 그 자신의 모습을 제 눈으로 완전하게 볼 수 없는 한은 계속 그럴 것이다. 앨리스가 여행한 거울나라는 신나고 재미있는 모험의 세계였다. 그러나 나의 거울나라는 마냥 재미있지만은 않다. 몇 년 사이에 갑자기 붙은 살들을 보면 자괴감이 밀려오고 다른 사람 눈에도 뚱뚱해보일까 끊임없이 걱정하는 한편 저녁거리를 고민한다.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한 것을 들으면 하루 종일 내가 정말 그런 못난이가 된 것 같아 괴롭다.

짜장면 묻은 입을 거울에 비춰보고도 아무렇지 않은 여덟 살 우리 반 아이들도 몇 년 후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될 것이다. 지금의 순수함이 너무 좋으니 그대로 남아달라고 하는 건 가능하지도 않고 그냥 내 욕심일 뿐이다. 이 아이들도 쉬는 시간마다 거울 앞에 붙어 서서 머리를 빗고 또 빗겠지. 가끔은 혼자 거울을 보며 자신이 왜 이렇게 잘생겼나 고민에 빠질지도 모른다. 그 때가 되어 거울 너머로 자신과 이 세상을 볼 때 실제와 가장 가까운 모습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을 찾아보아야겠다.
송아름 |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깨를 볶으며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책 읽기로 대화하고 글 쓰기로 데이트하는 선생님이 되고 싶은 꿈을 올해도 키워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