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9월 통권 제1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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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책 이야기]
존재하는 모든 것은 누군가의 거울이다

서지선 | 2014년 09월

1

지난 봄, 빡빡한 일정으로 지내던 중임에도 ‘숲 해설가’ 란 단어가 와락 품에 안기더니 기어이 씨앗을 틔워 작은 나무로 자라났다. 4개월에 걸친 녹록찮은 교육일정을 마치고 필기와 시연 시험을 거쳐 따끈한 수료증을 받으니, 새삼 인연들에 뿌듯하고 감사하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게 그리 대단한 것도 내세울 만한 것도 아니다. 유효하게 활용할 수 있을지, 그런 실력이 될지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지금 내게 큰 기꺼움을 주는 건 풀과 나무와 곤충과 새들의 이야기가 결국 사람과 삶, 그리고 세상을 비추는 무수한 거울이라는 것을 실감 있게 알게 됐기 때문이다. 자연을 알면 알수록 내 삶을 비추는 많은 거울을 갖게 되는 것이고 더 깊게 삶을 배우고 사랑하게 되는 것임을.

옛이야기 중에 장에 갔던 남편이 거울이란 것을 사 왔는데 아내가 보고는 웬 젊은 여자를 데리고 왔냐 하고 다툼이 생겨서 결국 깨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거울의 발명은 이러한 소동을 얘깃거리로 낳아 대대로 이어지게 할 만큼 참으로 대단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거울은 겉모습뿐만 아니라 내면을 비추기도 한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을 보기 때문이다. 거울에 눈을 두고 있으면서도 속상한 내 마음을 보거나 어제의 억울한 일을 보거나 멀리 있는 그리운 사람을 보는 경우도 있다. 백설공주의 계모가 가졌던 요술거울이나 과거나 미래를 보여주는 거울도 그런 상징인 셈이다. 겉모습이든 내면이든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비추어보고 살펴볼 수 있다는 건 위대한 일이다.
 
2

김진경의 『거울 옷을 입은 아이들』은 내면을 비춰주는 거울의 의미를 형상화해 보여준 작품이다. 깨진 거울 속 자기 모습을 보고 피를 흘리며 쪼아대는 박새 이야기가 맨 처음 나오는데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분위기를 조성하면서도 주제를 이끌어준다. 거울 속으로 들어가기라도 할 것처럼 피를 흘리면서도 자신을 공격하는 모습에서 욕심 많고 아둔한 인간의 모습이 떠오른다. 또한 거울 속에서 언뜻언뜻 비치는 검은 그림자의 이미지를 통해 환상과 현실이 섞여들고 진실과 본성에 닿도록 인도한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타인의 눈이나 필요에 의해 구성된 자신이 아닌, 순수한 본성 그대로의 자신을 직시하는 내면의 성찰을 주문한다. 솔직한 본성을 그대로 비추어보고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낼 때 성장통을 이겨내고 성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아쉬운 점은 주제가 다소 관념적이고 현실과 환상이 섞여 있고, 세 아이의 시점이 돌아가며 서술되고 있어 어린 독자들에게는 다소 혼란스럽고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작품 중에 ‘벌거벗은 임금님’의 후속편 이야기가 나온다. 벌거벗은 임금님이 어린아이의 솔직한 말에 창피를 당하고 사람들이 (권위를 잃은) 임금님의 말을 듣지 않게 되자 서로 싸우고, 속이고, 빼앗고 하는 혼란스런 동네가 되었다. 그러자 동네가 왜 이 모양이냐며 멀리 떠나는 사람들도 생기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장사가 안 될까봐 사람들이 흩어지는 게 두려웠던 시장의 한 재단사가 사방에 거울을 붙인 옷을 만들어 싫어하는 사람에게 입혔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거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는 덤벼들어 그 사람을 두들겨 패서 결국 떠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이제 저놈을 쫓아냈으니까 우리 동네도 내일부턴 괜찮아질 거야.’라고 믿게 되었다. 덕분에 그 동네는 서로 속이고, 빼앗고, 훔치면서도 흩어지지 않고 유지될 수 있었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 거울 옷을 입혀 놓고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그 사람을 공격한다는 것으로 왕따 현상의 본질을 꼬집는다. 밖으로 향한 눈, 타인으로 쏠린 눈을 안으로, 자신으로 돌리는 용기와 성찰만이 성숙한 나,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는 지름길인 것이다. 남을 미워하는 것은 그 사람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서 비춰지는 나 자신의 싫은 점을 보기 때문인 것이다.

3

『거울 옷을 입은 아이들』은 선영, 미나, 지희 세 아이들의 이야기인데 모두 잠재의식 속의 문제들을 감추고 행동하면서 갈등을 겪지만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고 인정하면서 화해하고 성장으로 나아간다.
선영이는 집안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운 역할을 요구받는다. 그리하여 ‘어른스러운 아이’라는 기대와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아이로서의 본성을 누르고 산다. 하지만 깊은 내면에서는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 욕구는 거울과 꿈속의 환각 형태로 나타나는데 그 세계는 유혹적이기도 하고 두려운 것이기도 하다. 지희의 지갑 분실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괴로움을 겪는 중에 축대에서 떨어져 의식불명의 상태가 되는데 꿈속에서 폐렴으로 죽은 동생을 만나게 된다.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깨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 아빠는 자신의 슬픔에 짓눌려 소외돼 있었던 선영이의 슬픔과 고통을 이해하게 된다.

미나는 4학년 때까지 거울을 자주 본다고 ‘공주병’이라는 별명을 가졌는데, 부모와 선생님의 사랑을 받는 착하고 귀여운 아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5학년 때는 그것으로 인해 지희 패거리들에게 공격을 받으면서 왕따 대상이 되었는데 그 때의 외로움과 괴로움을 다시 겪고 싶지 않은 내면의 욕구로 인해 자신의 실수를 스스로의 기억에서조차 지워버린다. 교실에서 지희의 지갑을 주웠다가 마침 지희가 들어오는 바람에 선영이의 책상 속에 엉겁결에 넣었는데 그로 인해 선영이가 친구들 사이에서 도둑으로 몰려 곤란을 겪는 동안에도 미나는 자신이 그랬다는 사실마저 까맣게 잊고 있는 것이다. 지희에 대한 두려움과 왕따 당했을 때의 고통이 미나의 잠재의식 속에서 공포와 기피기제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나는 거울을 통해 보게 된 진실을 용기 있게 마주하고 고백함으로써 성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지희는 언니와 남동생 사이의 둘째로서 소홀하게 대접받는다는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긍정적인 아빠의 태도로 위로를 받고 있었는데 그 아빠마저 다른 여자를 만나 떠나게 되면서 심한 배반감을 느끼게 된다. 아무에게도 의존적이지 않고 독립적인 사람으로 살겠다고 큰소리치고 지나치게 독립적인 얼굴을 갖고 있지만 그것이 오히려 가면이며 방어기제라고 할 수 있다. 어른에게 의존적인 미나에 대해 공격적인 태도를 드러냈던 것도 이런 내적인 심리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나중에는 여전히 아빠에게 의존적인 자기의 모습을 깨닫고 인정하게 된다.

거울 옷을 입혀놓으면 아이 스스로는 딱딱한 벽 속에 갇혀 옴쭉 못하게 된다. 주변에서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싫은 모습을 보며 그 아이를 공격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엄마로서 선생님으로서 나도 아이들에게 그러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도 하게 된다.
 
4

김해의 전직 대통령 묘소의 들머리에 ‘마음을 비추는 거울 수반’이 있었다. 모래와 자갈을 바닥에 깔고 물을 가득 담아놓은, 허리춤 높이의 커다란 수반인데 그 앞에 섰을 때 가슴이 크게 울렁거렸던 기억이 난다. ‘내 마음을 비춘다고?’ 하면서 살짝 들여다본 그곳에는 하늘과 구름과 건너편 산들과 나무들, 노을이 아득히 담겨 있었다. 바람까지도 쏙 담겨서 잔잔한 파도로 일렁이고 있었다. 수면이 거울이 되어 비추어내는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고 순결해서 울컥했던 것이다. 내 마음이 하늘이고 구름이고 나무이고 노을이고 바람이구나, 그리고 또한 물속의 자갈이고 모래이구나, 그때의 잔물결이 내 가슴에서 아직도 일렁이고 있다.
 
숲 공부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나무의 수관은 뿌리의 거울이다.’는 것이다. 보이는 것을 통해 안 보이는 부분도 볼 수 있는 눈을 갖는 것, 그것이 용기이고 지혜인 것이다. 세상 만물은 모든 것을 비추는 거울이다. 나는 수많은 거울을 통해 비춰진 것들을 본다. 세상의 모든 것은 내가 보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을 비춰주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서지선 | 삶의 현장에서 경험하는 모든 일이 좋은 글의 밑천이 되려니 여기며 주어진 인연에 집중하며 열심히 지내고 있습니다. 언제나 좋은 동화쓰기에 대한 꿈과 공부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2006년에 펴낸 『도둑』은 한겨레 문학상을 받은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