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9월 통권 제1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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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세상 이야기]
총통등록이 뭔지 아세요?

김연희 | 2014년 09월

총통등록?

총통등록(銃筒謄錄)이라고 들어본 일이 있으신지요? 뭘 등록하냐고요? 이 말에서 등록이란 우리가 아는 “허가나 인정을 받기 위해 단체나 기관 따위의 문서에 이름을 올린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여기서 등록은 “베껴 적음”, “선례를 베낌”이란 뜻을 가진 말이에요. 어떤 선례를 베낀 것이 총통등록이냐고요? 총통, 즉 무기와 관련된 여러 선례를 베껴놓은 것이지요. 총통등록은 바로 조선의 모든 무기를 만드는 방법을 적어 놓은 것을 말합니다.

박물관에서 만나는 옛날무기들은 참 어설퍼 보이지요. 하지만 옛무기라 할지라도 대충 만들지는 않았어요. 화약을 쓰는 무기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면 화약이 터져서 만들어지는 압력을 이기는 것도 중요하고 이 압력이 폭발해 탄알을 발사시킬 때 생기는 힘도 이겨내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대포알이 화포에 딱 들어맞아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야 화약이 타면서 만들어내는 연기가 새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를 생각해서 화포를 만들었고 화포 각 부분의 크기를 자세히 적어 다른 사람들도 같은 크기로 만들 수 있도록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총통등록」입니다.

무기 정비의 시대를 맞이하다

고려 말, 우리나라 처음으로 화약제조법을 알아낸 최무선이 이끈 화통도감은 곧 문을 닫았습니다. 사실 화통도감은 임시로 만든 국가 기관이기 때문에 문을 닫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나라로 쳐들어오는 왜구나 홍건적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었어요. 이들은 조선 건국 후, 세종임금 시대까지도 적지 않게 골치를 썩였지요. 세종임금은 오랑캐와 왜구들의 소란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단순히 쳐들어오는 오랑캐와 왜구를 막아내겠다는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적극적이고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생각한 거지요.

그렇게 하려면 사실 강한 무기와 잘 훈련된 병사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병사들이 싸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보급품들도 충분히 공급되어야 했습니다. 그 보급품 가운데 하나는 화약입니다. 화약의 원료인 염초를 제대로 만들어내려면 전쟁을 치르는 곳에서는 어려웠지요.

그러니 안전한 곳에서 만들어서 포탄과 함께 전쟁터에 보내야 합니다. 전쟁터에 보급품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은 지금은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생각이었어요. 그렇게 전쟁을 많이 했던 서양에서조차 근대 이후에야 체계가 갖추어지는 개념입니다. 그전에는 약탈 전쟁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전쟁터에서 필요 자원을 구한다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기껏 만들어 옮겨온 포탄이 화포와 맞지 않는다면 아무런 쓸모가 없지요. 작아도 문제입니다. 화약이 터져 생기는 연기가 빠지면 포탄이나 탄알은 불발탄이 돼 버리고 말지요. 이를 막으려면 아주 정밀하게 수치에 맞게 만들어야 합니다. 화포나 포탄이나 말입니다. 이런 일들을 하려면 서울에서 쓰는 자가 평양에서 쓰는 자나 부산에서 쓰는 자가 같아야 하지요. 전국의 자가 하나로 통일되어야 하는 거지요. 그래서 바로 도량형 정리가 필요했습니다. 이는 지난 호에서 살펴보았지요.

무기 개량 사업에 몰두하다

포탄과 화포의 크기를 맞추는 일도 중요하지만 성능 좋은 무기를 만드는 일도 국력을 강하게 하는 데에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이 성능 좋은 무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화약이 일단 많아야 합니다. 화약을 써봐야 성능이 좋은지 나쁜지 알겠지요. 이 화약 만드는 부서를 세종임금은 궁궐 안에 두었습니다. 아무데서나 만들다가 국가 비밀인 화약 만드는 법을 오랑캐나 왜구가 알면 곤란하지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동십자각 반대편인 고궁박물관 앞쪽에 있었을 서십자각 안에서 만들었어요.

세종임금은 염초를 내사복이라는 부서에서 굽도록 했어요. 내사복은 궁궐의 마구간과 임금이 타는 말이나 수레 따위를 관리하던 관청입니다. 이 일의 지휘는 내시부가 맡았습니다. 내시부는 임금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내시들의 부서예요. 내시들은 내사복을 관리하며 화약의 핵심 원료인 염초를 대량으로 구워내는 일과 성능 좋은 화약을 만드는 데에도 성공했습니다. 세종임금은 이 성공을 기뻐하며 사표국이라는 특별한 부서로 만들어 염초 제조와 관리를 전담하게 했습니다. 이 사표국은 단종을 내쫓고 왕이 된 세조임금이 폐지했습니다.

새로운 무기 만들기

세종임금 시대에는 많은 무기들이 새로 만들어진 것으로 유명합니다. 새 무기에는 새로 만든 화약을 썼고, 화약이 터지는 힘으로 화살들을 멀리 날려 보냈습니다. 화포 무게는 훨씬 가벼워졌고 크기도 다양해졌어요. 이 화포들에는 천자총통이니 지자총통이니 하면서 이름을 붙였어요. ‘천지현황’하는 천자문의 순서대로 이름을 붙인 거지요. 그렇다고 천지현황의 순서가 크기 순서는 아니랍니다.

새 무기들은 이전 무기보다 적게는 두 배, 많게는 네 배까지 화살이나 돌이나 포탄을 날려 보냈다고 해요. 화약을 조금 쓰고도 큰 효과를 낼 수 있게 했다지요. 또 이전 포탄은 적진을 부수기만 했는데, 이때는 포탄이 날아가면서 터지거나 적진에 떨어져서 터지게 만들어 적들에게 겁을 주었대요. 머리 위에 터지면 포탄 안에 들었던 날카로운 파편들로 적들이 많이 다치기도 했지요. 아니면 겁먹고 도망가느라 적진이 흐트러지기도 했을 겁니다. 또 포탄 안에 짙고 매운 연기를 만드는 쑥을 넣어서 연막탄과 최루탄의 효과를 한꺼번에 내기도 했어요.

또 화전(불화살)도 만들었어요. 화약에 불을 붙여서 여러 화살을 날아가게 했어요. 4전 총통은 4개의 화살이, 8전 총통은 8개의 화살이 날아가게 설계되었지요. 화살 뒤쪽에 화약통을 매달아 불을 붙여 쏘아 올리면, 화약이 터지면서 훨씬 멀리 날아갔어요. 그래서 주화(달리는 불)라고도 불렀답니다. 심지어 이 주화들을 한꺼번에 많이, 멀리 보내고 이리저리 옮겨서 쏠 수 있는 장치를 만들고, 움직일 수 있게 화차에 싣기도 했어요.

이것이 유명한 신기전이라 불리는 무기입니다. 수레에 실려 한꺼번에 쏘아 올릴 때 잘 못하면 엉뚱한 곳으로 화살이 날아갈 수 있기에 아주 섬세하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수레도 화약의 힘을 잘 버텨주어야 하고요. 이런 점에서 신기전은 매우 뛰어난 무기라 하지 않을 수 없답니다. 이 신기전은 세자 시절부터 무기에도 관심이 많았던 문종이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속적 무기 제작의 길을 열다

이처럼 많은 다양한 무기를 만들게 했던 세종임금은 획기적인 생각을 해냈어요. 무기와 화약, 포탄의 크기, 화살의 길이들을 매우 자세하게 종류별로 정하고, 이들을 아주 자세하고 세밀하게 그려 책으로 만들라고 명령했지요. 모든 무기들의 길이, 무게, 두께, 화포 구멍, 사용 화약의 무게, 심지 넣는 위치 등등을 아주 꼼꼼하게 정하도록 했어요. 무기의 성능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도록 크기와 화약의 양을 정해야 했지요. 그 때문에 많은 실험을 반복해야 했지요. 그 결과 만들어진 책이 『총통등록』이랍니다.

『총통등록』은 무기의 도면만을 기록한 책이 아닙니다. 이 책대로 전국의 중요 군사기지에서 무기를 만들게 하는 책이었어요. 이 책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전쟁이 나거나 적이 쳐들어왔을 때 전쟁터가 아닌 다른 곳에서 화약과 화살, 포탄 등을 만들어 전쟁터로 공급할 수 있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지금이야 너무 당연해 보이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매우 창의적인 생각이었어요.

무기 체계를 잡는 일을 담당했던 했던 조선 초 군기감에서는 새로운 무기를 개발할 때마다 근정문 앞터에서 임금께 선보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덤으로 외국 사신들이 오면 불꽃놀이도 하고 화포도 쏘며 무기 자랑을 했대요. 이 정도로 화약이 많고 강하고 새로운 무기를 개발한 나라니 더 이상 쳐들어 올 생각은 하지도 말라는 의미였습니다. 무기를 자랑함으로써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전략을 쓴 것입니다.

세종임금 시대에 새로 개발된 무기들은 4군 6진이니, 대마도 정벌이니 하는 이 시기 군사적 움직임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세종임금은 여기에서 화약과 무기 제작을 끝내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 책 『총통등록』이 그 증거지요. 이 책은 중요한 군사지역에 보내졌어요. 이 책은 매우 중요했기에 장군들이 새로 오고 떠나는 전임과 이임에 반드시 주고받았다는 것을 병조가 확인했어요. 이 확인이 끝나야 비로소 새로 온 장군의 부임이 마무리가 되었지요. 그렇게 엄하게 관리하고 보관했음에도 이 『총통등록』은 남겨져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국조오례의』의 ‘병기도설’과 『세종실록』 부록에 실려 있습니다.

왜 찬란한 무기 제작의 역사가 막을 내렸는가

이렇게 조선 초 새로운 많은 무기들을 만들고 이 무기들이 세종임금 이후에도 제작될 수 있고, 전쟁이 일어났을 때에도 계속 공급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만들었어요. 매우 탁월한 생각이 아닐 수 없어요. 그럼에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우리 조상은 큰 곤욕을 치렀지요. 대부분 사람들은 조선이 사농공상의 가치관 속에서 무기를 포함한 쇠를 다루거나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을 천하게 여겼고, 그래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서 졌을 뿐 아니라 나라를 잃게 만들었다고 주장을 합니다.

하지만 조선의 왕들은 생각이 달랐어요. 고려 시대 겪었던 많은 내란과 조선 시대 초에 겪었던 왕위 다툼과 같은 병란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관아에서만 엄격하게 무기 제작과 관련한 공업을 담당하게 함으로써 조치를 취한 거지요. 그리고 공(工)과 상(商), 물건 만드는 것과 물건을 파는 일은 큰 연관을 가지고 있음에도 주목했어요. 물건 만드는 사람들은 가장 우수한 물건을 만드는 데 목표를 맞추지요. 하지만 만들어진 물건은 상인들에 의해 가장 많은 이익을 남기고 팔리게 됩니다. 이것이 상인들의 목적이고 더 큰 이익을 항상 추구합니다.

가장 큰 이익은 무기를 파는 데서 얻을 수 있지요. 상인들이 더 많은 이익을 얻으려면 무기가 더 좋아져야 합니다. 무기가 더 좋아지려면 과학과 기술을 하는 사람들이 무기 만드는 일에 많이 참여해야 하지요. 상인들이 경쟁적으로 더 좋은 무기를 만들게 하고, 그럼 이 무기들을 소비하기 위해서는 전쟁이 필요합니다. 바로 이런 점이 유교의 나라, 조선의 임금들이 막고자 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사농공상이 단순히 차별을 위한 차별이 아니라는 것, 이해하시겠어요?


* 이 글에 실린 사진들은 문화재청, ‘문화유산 데이터 개방 목록’에서 가져왔습니다. ─ 편집부
김연희 | 서울대학교에서 한국과학사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한국 역사 속에서의 자연 이해와 자연 이용 기술에 관심이 많습니다. 서양 과학과 우리 전통 과학이 만났을 때의 이해 방식에 관해 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 『창덕궁에서 만나는 우리 과학』과 『강은 어떻게 흘러가나』가 있습니다. 2014년도 서울대학교 연구교수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