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9월 통권 제1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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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은의 그림책 심리학]
그림자 빛

신혜은 | 2014년 09월

『리디아의 정원』 빛의 그림책

7년 전 필자는 그림책을 통해 우리가 어떤 행복감을 경험하는지를 연구한 바 있다. 당시 그림책 분야에서 10년 이상의 경력을 지닌 작가, 편집자, 연구자 등 전문가 24명을 대상으로 자신이 행복감을 느꼈던 그림책을 10권씩 고르게 하였는데, 이 절차를 통해 총 154권의 그림책이 선정되었다. 그 중에 3인 이상의 중복 추천을 받은 22권 중 참여자의 3분의 1이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 그림책이 바로 『리디아의 정원』이었다.

독자들은 리디아의 정원에서 마음의 위로와 안심을 경험했으며, 어려움 속에서도 주어진 일을 하며 주변을 환하게 만드는 리디아와 옥상에 펼쳐진 정원의 모습을 떠올리기만 해도 행복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주관적, 심리적 평안함을 제공하는 그림책이었으며, 필자에게도 따뜻함과 빛의 그림책이었다. 부인인 사라 스튜어트의 글도 글이지만 남편인 데이비드 스몰의 밝고 경쾌한 캐릭터 표현과 빛을 머금은 듯한 채색이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데이비드 스몰의 그림은 1997년 『리디아의 정원』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칼데콧 상을 세 번이나 받았다.

필자는 이 책의 그림 중 옥상 장면을 좋아하고, 그보다 더 좋아하는 장면은 초록의 기차 칸 장면이다. 무표정한 얼굴의 차장과 편안히 잠들어 있는 승객들, 그 속에 홀로 의연히 앉아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는 리디아, 그리고 위쪽에 올려놓은 트렁크에서 아무도 모르게 흩날리듯 떨어지고 있는 꽃씨 봉투들! ‘이런 이미지의 표현이라면, 이걸 그린 데이비드 스몰은 참 밝고 따뜻하고 위트가 있는 사람일 거야!’ 당시 필자는 데이비드 스몰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이후 『리디아의 정원』을 자신의 ‘첫 그림책’으로 고른 여러 독자들 중에, 기차역 장면에서 외로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는 분들이 계셨다. 이 그림에서 지나온 삶의 외로움과 힘듦을 다시 경험하는 경우였다. 짐 가방 두 개와 함께 홀로 남겨진 리디아가 서 있는 기차역… 커다랗고 검은 기차역 공간은 약간 낯설었다. 그 때는 그저 뒷장면의 기차역 이별 장면과의 대비를 위한 것이려니 했었다.

『바늘땀』, 그림자의 그림책

그런데 삶의 모든 순간은 생명을 위한 것이고, 생명은 양극적이라고 했던가? 2009년 필자는 깜짝 놀랄 만한 책 한 권을 만나게 되었다. 데이비드 스몰의 새 책 『바늘땀』. 원서 Stitches는 표지부터 충격적이었다. 그때까지 『리디아의 정원』의 데이비드 스몰의 그림과는 완전 반대의 정서와 뉘앙스, 흑백의 카툰 형식으로 된 이 책의 첫 장은 ‘내 나이 여섯 살 때’로 시작했다.

잔병치레로 힘들었던 어린 시절과 우울했던 가정사,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암 수술을 받아야 했던 십대 소년의 방황과 가출, 화가가 되는 것 외에 어떠한 꿈도 희망도 갖지 못했던 소년이 있다. 이 소년의 육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음(voicelessness)의 이야기였다. 필자가 놀란 만큼이나 전 세계의 독자들도 이런 데이비드 스몰의 자전적 이야기에 놀랐고, 또 그의 용기에 찬사를 보냈다.

시커멓게 딱지가 앉은 흉터 자국, 내 여린 목을 헤집고는
피투성이 장화를 졸라매듯 얼기설기 바늘땀을 떠 놓은 모습
설마, 이게 나일리 없어.
틀렸어, 친구. 자네가 맞다고

『리디아의 정원』 그림 속에 『바늘땀』의 어두운 그림자 여정이 드리우고 있었음에 놀라면서, 이 책을 읽은 전문 평론가들도 ‘어떠한 말도 할 수 없게 하는 책’이라 평했다. 『바늘땀』은 출간되던 그 해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고, ‘청소년을 위한 전미 도서상’ 최종 후보 선정, 수많은 언론의 ‘올해의 책’ 목록에 올랐다. 그리고 지금까지 9개 나라에서 7개의 서로 다른 언어로 번역되어 널리 감동을 주고 있다.

제일 마지막 에피소드는 ‘몇 해 전 이런 꿈을 꾼 적이 있다’로 시작한다. 꿈속에서 데이비드 스몰은 다시 여섯 살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저택과 정원, 높은 담이 사방을 두른 집 안에 혼자 갇혀 살고 있는 ‘나’가 있다. 바깥세상이 무서워, 한 번도 밖에 나가 본 적이 없다. 대신 매일 장난감 차를 밖으로 내보내고는 무선 조종기로 정원을 헤집고 다녔다. 그러다가 갑작스런 재채기에 조종기를 잘못 건드리고, 장난감 자동차는 정원 분수 연못에 빠져 버리고 만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자동차를 건져 내려면 안전한 집에서 나가야만 했다. 바깥으로. 그때 무슨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생전 처음으로 정원 담벼락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밖에 낡은 건물이 서있었다. 그리고 자기 집에서부터 그 낡은 건물로 길을 내듯 한 여인이 빗자루로 쓸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며 이리 오라는 듯 손짓을 했다. 나는 그 건물이 할머니가 감금된 곳임을 깨달았다. 옛 주립정신병원 건물이었다. 그리고 아래 보이는 사람은 내 어머니로, 뒤따라올 나를 위해 길을 쓸고 있었다.

마지막 텍스트는 “I didn’t”, 번역본에서는 ‘난 그 길을 따르지 않았다.’로 번역되어 있지만 필자에게는 그냥 “I didn’t”였다. 데이비드 스몰이 말한 그 길은 그의 외할머니와 엄마가 걸었던,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위태로웠던 삶을 의미한다. 데이비드 스몰의 마지막 텍스트는, 자기는 그들과 다른 삶을 택한다는 자기 선언이었다. 그런데 데이비드 스몰의 그 “I didn’t”가 필자에게는 처음부터 ‘난 죽이지 않았다’로 읽혔다. 지금도 『바늘땀』을 가끔 펼쳐보면, 여전히 ‘난 죽이지 않았다’라고 읽힌다. 나 역시도 다른 삶을 택했다는 자기 선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이 양극적이라는 말은 삶과 죽음, 좋고 나쁨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육체와 영혼이 둘이 아니라 하나인 것처럼. 마찬가지로 삶의 빛과 그림자도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라는 하나의 동전에 붙어있는 양면이라는 생각을 한다. 데이비드 스몰의 두 책 『리디아의 정원』과 『바늘땀』을 보면 그 느낌이 더욱 선명하다. 그림자가 크면 분명 빛의 영역도 크다는 것을.
중요한 것은 그림자 속에서 그 빛을 발견하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치유의 힘은 그림자 속에 있다고 하는지 모른다. 문제나 아픔의 근원이라고 보는 그 속에 근원적인 힘이 있다는 것일 게다. 그림자는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으므로, 빛 뒤에는 반드시 그림자가, 그림자 뒤에 반드시 빛이 존재한다. 그림책 심리학 강좌를 들으시는 분들께도 끝까지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다. 그림책 속에서 자신의 그림자를 감지하면, 그 뒷면의 빛을 기다리고 찾으시라 말씀드린다. 또 빛을 감지하시면 그 빛의 시작은 어디였는지 기다리고 찾아보시라 조언한다.

나의 그림자와 함께 내가 지닌 빛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림자와 빛을 모두 보는 것이 중요하다.
데이비드 스몰은 필자에게 그것을 작품으로 보여준 작가였다.
참으로 감사했다.
그의 빛과 그림자 모두에….

그림책 작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그것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완성해 간다. 글과 그림의 이야기를 계속 써 나간다. 이런 과정은 우리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술과 삶 또한 분리된 둘이 아니라 연결된 하나이므로!
신혜은 | 아동심리학자로 그림책을 통한 인간심리의 이해와 치유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경동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와 KBBY 부회장으로 일하면서, ‘신혜은의 그림책심리학’ 과정(http://cafe.daum.net/PrimingPicturebook)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파랑새가 산다』 『마음아 작아지지 마』 『비가 오면』 등 펴낸 책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