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8월 통권 제1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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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서평]
엄마는 봉선화

김원숙 | 2014년 08월

『엄마에게』는 눈물이 절로 나는 이야기입니다. 엄마라는 말 자체가 울림 있지만 이 책 주인공이 겪었을 감정 결이 느껴져 주르륵 눈물 흐릅니다. 사람 일이 한치 앞을 알 수 없고 한순간에 사람 운명이 갈린다는 말도 거듭 실감하게 되지요. 이 그림책은 장기려 박사 둘째 아들 장가용 교수의 어린 시절 이야깁니다. 알다시피 장기려 박사는 이 땅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의술을 펼친 분이고 그의 가족은 한국전쟁 이산가족입니다.

평양에서 화목하게 살던 가용이네 가족은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중공군까지 들어오자 피난길에 오르게 됩니다. 거동이 불편하신 할아버지 할머니 때문에 엄마와 육남매 먼저 피난길에 오르지요. 그런데 아버지의 피난 짐을 전하려한 가용은 가족과 헤어져 장기려 박사와 함께 병원 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향합니다. 그 피난길이 엄마와의 이별 길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림책 전체에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가용이의 마음이 절절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초록빛 바다와 그 바다를 바라보는 가용이의 뒷모습. 표지 그림이 애잔합니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해질 녘에 바다 저편 엄마를 부르고 있는 것이겠지요. 면지를 시작으로 그림책 곳곳에 그려진 봉선화는 엄마의 다른 이름입니다. 가용이네 가족사진의 담벼락 밑에도 봉선화가 피어 있고, 전쟁이 나던 날에도 가용이네 가족은 엄마 곁에 둘러앉아 봉선화 꽃물을 들이고 있었지요. 마당 가득 붉은 봉선화는 엄마처럼 예뻤습니다. 하지만 전쟁은 가용이네 가족을 어두운 토굴로, 차가운 눈보라 속으로 내몰았습니다. 아버지의 겨울 옷을 지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도 금방 따라가 엄마를 다시 만날 거라서 큰 걱정 안 했겠지요. 그런데 아버지와 병원 버스를 타고 가던 길에 엄마와 형제들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가족을 태우면 피난민이 서로 타겠다고 아우성일 터이니 환자가 탄 병원 버스를 세울 수는 없었지요. 그래서 가족들을 눈앞에 두고도 헤어졌던 것입니다.

유리창 저편에 있는 엄마를 향해 흔드는 가용이의 손짓에 안타까움이 가득합니다. 바다를 망연히 바라보는 뒷모습에도, 얼기설기 쳐진 마름모꼴 철창살 사이로 혼자 저녁을 먹는 모습에도, 엄마 없는 쓸쓸함이 배어 있습니다. 여덟 시가 다 되었는데 아버지는 병원에서 돌아오지 못하시고 가용이 혼자서 엄마가 끓여 주시던 만둣국이 아니라 차가운 밥을 떠먹고 있습니다. 그때 가용이는 엄마 생각에 얼마나 목이 메었을까요? 피난길에서 스친 엄마 모습이 얼마나 가슴을 쳤을까요? 그때 엄마를 태울 수 있었다면…, 아픈 가정법을 얼마나 되뇌었을까요? 냉혹한 철조망을 남긴 채 전쟁이 끝나고 가용은 봉선화 노래를 부르며 엄마를 그렸습니다. 봉선화는 엄마가 좋아하던 노래였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보낸 소포를 받았습니다. 그 안에는 사진과 봉선화 씨앗, 엄마가 부른 봉선화 녹음테이프가 들어 있었지요. 그날 밤 가용은 엄마 사진을 안고 돌아누워 울었고, 아빠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 없이 울었지요. 옥상 쪽방에서 울며 지샌 밤, 두 가슴이 얼마나 미어졌을까요?

다음 날 이발을 하고 엄마가 지어주셨던 옷을 입고 가용은 아버지와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엄마가 보낸 꽃씨로 피운 옥상 봉선화 꽃밭. 가용이는 고향 집 마당처럼 봉선화 핀 옥상에서 엄마의 봉선화 노래를 들으며 커갔겠지요. 부은 눈으로 엄마를 생각하며 찍었던 사진은 봉선화 꽃밭 다음 그림으로 나옵니다. 평생 엄마를 그리워하다 돌아가신 아버지. 장기려 박사의 산소에도 봉선화가 피어 있답니다. 가용이가 심었겠지요. 엄마와 함께 계시라고 봉선화를 심고 가꾸었을 가용이의 마음은 또 얼마나 아렸을지…. 가용이에게 봉선화는 엄마입니다. 앞면지에는 꽃 피지 않았으나 뒷면지에는 꽃이 피어 있는 걸 보니 가용이는 분명 엄마를 만났겠지요. 장가용 교수가 2000년에 그리던 엄마를 만났다는 신문 기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엄마를 만나지 못하고 2008년 세상을 떠나셨다네요. 온 가족이 웃고 있는 사진으로 시작해 가용과 장기려 박사 둘만 있는 단촐한 가족사진으로 끝나는 이 이야기는 이산가족의 아픔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남의 아픔을 어루만지느라 정작 자신과 가족의 아픔은 돌볼 겨를 없었던 장기려 박사와 장가용 교수의 아픈 가족사. 이들의 올곧은 삶 자체가 감동입니다. 담담한 글과 세심한 그림에 담긴 가용이 이야기를 읽고 나니 우리집 텃밭 봉선화도 엄마 같습니다.
김원숙│ 오픈키드 컨텐츠팀장. 어린이 청소년 책을 읽으며 청소년 책읽기, 신화, 논어 모임에서 어린이 책 공부도 하며 즐거이 지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