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8월 통권 제1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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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서평]
‘감정 없음’을 지향하는 사회

김수영 | 2014년 08월

2029년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은 가슴에 감정조절기 하트를 달고 다닌다. 중학생이 되기 전에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여 점잖고 착하고 학업 성취도도 높은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서이다. 학교에서는 매달 ‘이달의 감정조절 어린이’를 뽑고, 감정 실기 시험을 봐서 감정 조절의 왕을 뽑는다. 김보름의 『감정조절기 하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하트는 가슴에서 나오는 감정의 파장을 실시간 감지해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색깔 중 하나로 나타냅니다. 빨강은 가장 흥분된 감정, 보라색은 가장 침체된 감정입니다. 초록은 기준이 되는 색으로서 편안하고 쾌적한 기분을 나타냅니다. 화가 나거나 마음이 들뜨면 그 정도에 따라 노랑, 주황, 빨강 순으로 색깔이 올라갑니다. 반대로 기분이 가라앉으면 파랑, 남색, 보라색 순으로 내려갑니다. 가장 위험한 상태인 빨강 단계에 이르면 경보음과 함께….(14쪽)


주인공 은찬이의 엄마는 하트사랑학부모위원장으로 감정조절을 잘하는 사람이 성공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래서 은찬이에게 전문적인 감정과외 선생님을 붙여주고 매 시간 은찬이의 감정 변화를 살펴 최상의 상태인 초록색이 유지되도록 북돋운다.

하지만 은찬이는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기가 벅차다. 감정 실기 시험에서 만점을 맞고 감정 왕이 되면 편안해질 줄 알았지만 엄마의 요구는 끝이 없다. 급기야 은찬이는 자면서도 무심결에 하트를 의식하게 되면, 평상시 컨트롤에 도움이 된다는 엄마의 조언에 따라 밤에도 하트를 달고 자게 된다. 전국에 있는 초등학생들을 경쟁자로 생각하면서. 결국 은찬이는 하트 괴물에 빨려 들어가는 악몽을 꾸게 된다.

이야기의 시공간은 2029년, 미래지만 현재 초등학교 학생들의 상황과 다를 게 거의 없다. ‘영어’나, ‘수학’ 같은 학과목이 ‘감정 조절’로 바뀌었을 뿐이다. 미래에 이런 일이 일어날까 무섭다는 어느 학부모의 리뷰를 보며, 이런 일은 이미 일어나고 있는데 학부모들이 그걸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는 더 무서웠다. 매일 새벽 6시 30분이면 영어학원에 들러 공부하고 그곳에서 바로 학교에 등교하는 초등학생이 엄연히 존재하고, 밤 11시에도 학원 숙제 때문에 잘 수 없는 초등학생들이 점점 늘어나는 요즈음의 실태를 어찌할 것인가? 이 아이들이 매일 밤 하트 괴물의 악몽에 시달리는 은찬이보다 나은 게 뭐란 말인가?

감정조절 우등생이 된 은찬이는 친구들이 폭소를 터뜨릴 때에도 웃지 못한다. 은찬이의 하트는 파랗게 질렸고, 위태롭게 깜빡였다. 스스로 위험을 감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은찬이는 이전까지 감정 과목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세린이가 감정 조절을 위해 1년 전부터 진정제를 먹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진정제 과다복용으로 입원한 세린이를 보며 은찬이는 과외까지 받아가며 노력해서 감정 조절 전교 1등이 되었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은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자식을 최고로 만들고 싶은 엄마의 욕망이 가중된 ‘하트’는 점점 더 은찬이를 짓눌렀다. 은찬이가 눈치 챘듯이, 항상 초록색으로만 유지되는 감정은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의 ‘없음’ 상태이다. 결국 최고의 감정 조절 어린이는 감정 없는 인간, 로봇과 같은 인간을 지향했던 것인데, 문제는 은찬이처럼 정상적인 아이들은 그걸 견디기 힘들다는 것이다. 악몽에 시달릴 만큼.

2014년의 우리 사회도 ‘감정 없음’을 지향하고 있다. 어른들은, ‘성공’을 위해 ‘감정’쯤은 접어두라고 한다. 성공할 때까지는 가슴이 뜨거워져서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 따져보지도 말라고 한다. 그 속에서 질식해가는 아이들을 향해 작가 김보름은 ‘놀이’를 제안한다. 그것은 질식해가는 은찬이를 비롯한 이 땅의 아이들을 살리는 유일한 명약이다. 감정이 바뀌는 게 두려워 마음껏 뛰어놀지도 못하고, 좋아하던 피아노도 포기했던 은찬이는 감정이 메말라가는 시대를 안타까워하던 퐁퐁 할아버지를 만나 친구들과 함께 퐁퐁(트램펄린)을 타게 되고 그 위에서 ‘가슴이 터질 듯한’ 기쁨과 해방감을 느낀다. 그 때문에 가장 위험한 색깔인 ‘빨강’으로 바뀐 아이들의 하트가 요란하게 경보음을 울리자, 아이들은 너도 나도 하트를 내팽개쳐 버린다. 하트에 억눌려, 공부에 억눌려 숨 막히는 아이들의 해방구는 역시 신나는 ‘놀이’였던 것이다.
김수영│어린이 책이 좋아서 어린이 책을 읽고 쓰고 강의하는 일을 합니다. 동화미디어 창작 박사과정을 마쳤고, 라디오 동화작가로도 일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