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8월 통권 제1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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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빙자한 슬픔이 삶을 엄습할 때

박상육 | 2014년 08월

하여간 남자들이 문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는 끝없이 사랑을 갈구한다. 사랑은 이 회색 세상을 건너게 해주는 힘이다. 사랑이 우리를 달뜨게 할 때,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소중하고 빛나는 존재인지 새삼 확인한다. 그런데 이거 큰일 났다. 연애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한 축, 정확하게는 ‘남성’ 종족이 자꾸 삐걱거린다. 오늘도 학교의 대외 홍보에 여념이 없으신 교장, 약자만을 찾아 하이에나처럼 물어뜯는 권태응, 자식뻘 되는 여성을 노리는 변태 변 모 씨, 개자식 전두환은 입에 담기에도 부끄러우니 패스.
 
매너남인 듯 보이지만 은근히 여성을 깔보고 무시하는 박종현, 늘씬한 기럭지의 미덕을 단번에 말아 드시는 자뻑남 선우완, 모든 여자들이 자기한테 반할 거라 믿는 오정우, 식당 종업원에게 반말을 찍찍 뱉어 대는 조 기자…. 조그만 노래방을 운영하는 아빠도 마찬가지다. 한때 민주투사였으며 지금도 여전히 정의로운 척하지만, 도우미 아가씨들을 써 가며 매상을 올리는 중이다. 아, 그래도 가물에 콩 나듯 수컷 세계에서 떨어져 나온 몇몇이 보이기는 한다. 필시 외계에서 온 강동원, 부모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학교와 학원과 도서실에서 두문불출하는 고3 나금호는 패스.

먼저 한상진 선생이 눈에 띈다. 이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눈매가 예사롭지 않다. 모든 사물과 인간관계를 십 원짜리 보듯 한다. 사연을 짐작해 보건대, 그럴 만하다. 그이는 지금 세상의 두터운 편견과 싸우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여성들에게 눈길을 돌릴 여유가 없음을 너른 마음으로 헤아려 주어야 한다. 다음으로는 최강태진. 이 녀석이 문제다. 일단 비주얼이 저렴하다. 넉넉하게 봐 줘도 160센티미터 키에, 살짝만 밀쳐도 바닥을 뒹구는 부실한 몸에, 어디 하나 내세울 것 없는 녀석이다. 탬버린을 흔드는 재주가 출중하여 노래방 멤버로 받아들였으나, 도무지 ‘남성’으로 분류하기 어렵다. 이 녀석 이야기는 coming soon.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대략 『오! 나의 남자들』에 나오는 남자들을 열거해 보았다. 굳이 하나하나 들춰본 까닭을 눈치 채셨나? 돌이켜 보시라. 현실의 남자들 가운데 작품 속 캐릭터들과 견주어 좀 더 나은 녀석이 있는지를. 아마도 힘들 거다. 우리 시대에 ‘괜찮은 남자’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종으로 분류될 지경이다. 작품 속 몇몇 여성들의 깐깐하고 까칠한 눈썰미가 적잖이 불만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남성의 무혐의를 입증하지는 못한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이들은 필시 남한사회가 만들어 낸 괴물들이다. 유교적 가부장제가 DNA처럼 장착되고, 군사정권이 뿌리내린 ‘돌격 앞으로’ 정신으로 뇌세포를 채우고, 신자유주의 체제의 배타적 무한경쟁 질서에 뼛속까지 길들여진 변종 말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고대로부터 내려온 수컷 기질과 유교적 권위 의식과 현대사회에서 거세된 남성성의 불안을 한몸에 지니고 산다. 그들은 뜨거운 심장 없이 싸움과 욕설을 일삼고, 이간질과 뒷담화과 허세로 하루하루 연명한다. 그들은 경쟁구도에 살아남으면 그간의 역경을 보상받으려 하고, 경쟁구도에서 밀려나면 회복 불능 상태로 철저히 무너진다.

그러니 괜찮은 남자를 찾는 건, 남한사회에서는 불가능하다. 확인했듯이, 오늘날 남성의 병리현상의 원인이 여성 때문이 아니다. 그러니 사랑의 힘으로 치유하느니 하는 헛된 꿈 따위는 접으시라. 그보다는 해외 이주가 훨씬 현실적인 대안일 듯싶다. 물론 그 역시 외계에서 온 강동원과 연애할 확률에 버금갈 듯하다. 21세기 전지구적 신자유주의 광풍을 이겨내고 근사한 남자가 생존해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런 멋진 녀석을 현명한 여자들이 가만둘 리 없기 때문이다.

인생, 연애 아니면 연예

그러면 이제 어떡해야 할까. 썩어 문드러질 육신이야 어찌 되건, 더러운 세상 뒤집어엎을 반역의 칼날만 표독스럽게 갈고 있어야 하는 걸까. 천만에! 『오! 나의 남자들』 속 그녀들의 고군분투와 독야청청의 지혜를 배울 때다.

금영과 마루와 현지는 서경 생활과학 고등학교에 갓 입학하여, 떡 만드는 동아리 ‘떡실신’에서 의기투합한 파릇한 청춘들이다. 외모와 성격과 성적 모두에서 남부럽지 않게 겸손을 뽐내 주신다. 그녀들에게 남자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종족이다. 아니다, 사실 그녀들은 그 녀석들의 실체를 이미 알고 있다. 21세기 한국 사회에 여성으로 하 세월을 지냈는데 그 정도 깜냥은 필수다. 다만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를 보여주는 탓에 좌절을 거듭하지만…. 어쨌거나 그녀들은 남성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이겨내는 나름의 항체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 무엇보다 그녀들에게는 치유를 위한 힐링 캠프, 노래방이 있다!

노래방은 정나미 떨어지는 인간관계로부터 분리된 안전지대다. 오직 노래에만 몰입할 수 있는 환희와 열락의 공간이다. 어지간한 노래 번호를 머릿속에 입력하고 분위기에 따라 선곡 리스트를 뽑아내는 금영, 파워풀한 랩을 속사포처럼 쏘아 대는 현지, 고음 따위는 뻔뻔하게 무시하는 중저음 파워 보컬 마루, 그리고 신들린 탬버린 연주자 태진까지 노래방에서 그들은 예술혼을 불태운다. 이 시대의 남성으로부터 강요받은 고단함을 바야흐로 예술로 승화하는 중이다. 그녀들의 요구 조건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그저 유구한 인류 전통의 범주 안에서 예측 가능하게 움직이는 남성을 원한다. 그래야 연애도 가능하고, 세상도 살 만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괜찮은 남성을 굳이 가늠하자면 최소한의 기준이 그렇다는 거고, 기특하게도 그녀들은 ‘남성’에 연연하지 않는다. 괜찮은 남성 신화 따위, 노래방 10분 추가 시간보다 하찮게 여긴다.
 
그녀들의 고성방가를 경배하라. 인생, 연애 아니면 연예다. 사랑을 빙자한 슬픔이 그대의 삶을 엄습할 때, 자신이 가진 기예와 예술혼을 끌어올려 노래방을 해방구로 만들어 보시라. 연예가 연애의 슬픔을 집어삼키고 온전히 그대를 달뜨게 하시라.

그대를 가두고 있는 껍데기는 모두 벗어 던져 버리고, 지상에서 영원으로 날아오르면, 사랑도 사람도 너무나도 두려운 외톨이들이 모여 불나방스타소세지클럽의 ‘악어떼’를 열창하고 있을지니, 그 순간 그대는 어쩌면 신들리게 탬버린을 흔들어 대는 태진에게서 제3의 남성 종족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물론 노래방 양대산맥 금영과 태진이 합병하는 것만큼 어려운 확률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박상육 | 여러 해 동안 기획 편집자로 일했습니다. 올해는 꼭 형광등 불빛 아래를 벗어나리라 마음을 다잡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어쭙잖은 청소년 책 살펴 읽기 몇 차례가 『열린어린이』와 어울렸을지… 염려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