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8월 통권 제1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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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함께 읽기]
자신감의 또 다른 이름, 멋쟁이

나은영 | 2014년 08월

나는 무슨 장점이 있지?

아들 녀석이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 두 개를 힘 있게 펼쳐 턱 밑에 대더니 엄마를 부른다. “엄마! 멋쟁~이” 그 모습을 보고 나도 환한 미소로 대답한다. 손가락 두 개를 펼쳐 턱 밑에 대고 “멋쟁~이”라고. 아이의 얼굴에도 나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번진다. 이제 세 살이 된 아들은 요즘 한껏 애교가 늘었다.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인지 연신 멋쟁이를 해대더니 자신이 잘했으니 ‘칭찬’ 해달란다. 우리 아들에게는 아마도 ‘멋쟁~이’가 칭찬 받을 수 있는 굉장한 무기쯤 되나보다.

지난 저녁, 연신 멋쟁이를 날리던 아들이 생각나 우리 반 아이들에게도 한 번 물어보았다. 멋쟁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냐고. 아이들 입에서는 ‘멋쟁이 토마토’라는 동요 제목이 가장 먼저 나왔다. 대중가요를 즐기는 요즘 아이들 입에서 동요 제목이 가장 먼저 나오다니, 아이들은 아이들인가 보다. 그리고 뒤를 이어 나온 대답들은 우리 반의 개구쟁이 친구들 이름이었다.
 
“출렁이는 뱃살이 멋진 요한이요, 머리 모양이 재미난 병호가 멋쟁이에요.” 깔깔거리는 아이들 사이로 한 친구는 ‘패션, 코디’라는 말이 생각난다고 이야기하였고 어떤 친구는 자신이 좋아하는 스포츠 스타의 이름을 대기도 하였다. 그리고 한 친구는 “그림을 잘 그리는 호진이가 멋쟁이에요.”라고 이야기하였다.
 
옳다구나! 그럼 우리 반 친구들을 멋쟁이라는 말을 넣어 표현해보자고 제안하였다. “수비를 잘하는 성종이가 멋쟁이에요, 친구를 잘 돕는 지연이가 멋쟁이에요, 책을 많이 읽는 예은이가 멋쟁이에요.” 아이들은 친구들의 대표적인 특징을 찾아 멋쟁이라 표현하였다.

그럼 이번에는 자기 자신을 멋쟁이라는 말로 표현해보자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았다. 왁자지껄 웃음이 넘치던 교실 분위기가 갑자기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나를 표현하는 것에 주저함을 보이는 아이들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친구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무슨 장점이 있지?”

자주적인 학급 운영의 꿈

교사가 되고 나서 늘 변명처럼 입에 달고 다닌 말이 있다. “학급에 아이들이 너무 많다 보니까….” 학부모 상담이나 여타 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자리가 생기면 나의 부족함과 게으름을 감추기 위해 언제나 변명처럼 이런 말을 했다. 학급의 아이들 수가 너무 많아 부족한 부분을 개별 지도하기 어렵고, 학급에 아이들이 너무 많아 아이와 개인적으로 이야기할 시간이 부족하고, 학급에 아이들이 너무 많아 아이들에게 적합한 진로 교육을 하기 어렵고….

학생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언제까지 이런 변명이 통할는지, 다시 생각해보니 가슴이 조마조마하고 낯 뜨거워진다. 올해 초 5학년 학급을 맡았을 때, 나는 고학년인 만큼 우리 아이들이 자주적으로 자랄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급 운영의 주체를 아이들로 하고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학급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웠다. 학급 내 문제가 생기면 학생들 스스로 정한 규칙에 의해 해결하고, 언제나 자기 의견은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으며,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교실이기를 꿈꾸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무엇보다 아이들의 눈빛에서 살아 숨 쉬는 생명력을 느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아이들과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꾸준히 지켜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학기가 지난 지금 우리 교실에는 경쟁과 다툼, 무질서함과 혼란스러움이 끊이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은커녕 더위에 지쳐 총기를 잃은 듯한 눈빛의 아이들 앞에서 나는 되돌아오지 못할 질문만 허공에 던진다. 매일 원맨쇼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 내 모습이 안타까워서인지 고요한 교실을 뚫고 나오는 몇몇 친구들의 대답이 나를 위로한다. 배가 산으로 가고 있다. 학급에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말이다.

그렇다고 학급 운영에 게으름을 부리지는 않았다. 아이들과 한 약속은 최대한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수업 준비도 나름 열심히 하였다. 몇몇 아이들에게서 선생님과 공부해 공부가 즐거워졌다는 기분 좋은 메시지를 받기도 하였으니 내 노력의 증거는 있는 셈이라고 위로도 해본다. 그런데도 ‘자신을 멋쟁이로 표현해보자’는 내 제안에 자기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갈팡질팡 자신 없어 하는 우리 반 녀석들의 모습을 보니 자괴감이 든다.
 
랄슨 선생님의 비법
 
매일 신문만 읽고, 말 그대로 수업다운 교육 활동이라고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랄슨 선생님은 카라 랜드리와 같이 자기 생각이 분명하고 자신감 넘치는 녀석들을 길러내는 데, 나는 뭐 하고 있나 말이다.

랄슨 선생님은 하루 종일 교실에서 신문만 읽으며, 학급 운영 및 교육 활동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그는 아이들이 혼란과 소란 속에서 하루를 보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학부모에게는 가장 피하고 싶은 선생님 1순위 교사가 되었다.

이야기 속의 또 다른 주인공인 카라 랜드리는 ‘우리 반의 선생님은 랄슨 선생님인가? 학생인가?’라는 제목으로 랄슨 선생님의 교육자로서의 역할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하는 기사를 쓴다.

그리고 카라를 중심으로 한 아이들은 선생님은 있지만 선생님이 없는 교실 안에서 그들만의 학급 신문을 만들어 가며 부딪히는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하고 한 뼘 더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주적인 어린이, 살아 숨 쉬는 눈빛, 내가 바라던 바로 그 모습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랄슨 선생님은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일까? 게으름 부리지 않고 매일 아등바등 노력했던 나로서는 조금은 억울하기도 하지만, 그 비법이 궁금하여 책장을 계속 넘겼다.

선배 선생님들은 후배들에게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너무 열심히 하다가 의도와 달리 발생하는 학부모 민원으로 인해 후배 교사가 혹여 상처 입을까 걱정되어 하시는 말씀이기도 하다. 그리고 열심히 하는 것이 꼭 아이들에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하신다.

교사가 모든 것을 주도하면 아이들은 무언가를 해볼 기회를 잃는다. 실패하더라도 경험해본 것과 그렇지 못한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기회조차 가지지 못했던 아이들은 혼자서 일어설 수 없다.
랄슨 선생님은 아마도 이런 선배님들 뜻을 이미 알고 있었나보다. 그리고 나와는 달리 무질서함과 혼란스러움을 참아낼 수 있을 정도로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기도 했나보다.
 
아이들이 마음 속에 담아 둔 씨앗을 싹틔우기 위해서는 물도, 햇빛도, 적당한 온도도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하다. 랄슨 선생님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 때를 알고 아이들을 기다려 준 것이다. 마치 고래가 보고 싶거든 다른 것들에 신경쓰기보다는 가만히 기다려 주어야 하듯이 말이다.
 
가만히 기다려 주기
 
고래가 보고 싶니?
그렇다면 구름을 쳐다보아선 안 돼.
넓디넓은 하늘에 둥싱둥실 떠 있는 구름도
나란히 나란히 흘러가는 구름도 보아선 안 돼.
맞아, 밝게 빛나는 태양 같은 것도 안 돼.
쳐다보기 시작하면 고래를 놓칠지도 몰라.
(『고래가 보고 싶거든』에서)


고래가 보고 싶거든 장미 같은 건 모르는 척을 해야 한다. 작은 배에게 한 눈을 팔아서도 안 되고 커다란 배도 안 된다. 펠리컨, 초록색 벌레, 구름 따위에게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되고 오로지 고래를 만나는 그 순간을 기다려야 한다. 우리 반 친구들은 이 책이 주는 메시지가 꿈을 이루기 위해 다른 것들은 신경 쓰지 말고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우리 아이들이 품고 있는 작은 씨앗이 싹을 틔울 때까지 그저 조용히 지켜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하는 것 같았다. 공부도, 어른들의 욕심스러운 잣대도 모두 버리고 그저 아이들 가슴 속 작은 씨앗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어떻겠냐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나온 그림처럼 수면 위로 고래의 입과 코가 드러날 때까지, 물 속에 잠겨 있는 커다란 고래의 몸집이 멋지게 수면 위로 떠올라 물을 내 뿜을 때까지 다른 것들은 보지 말고 기다려주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나’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장점과 단점, 성격, 이미지들 중에서 나를 멋쟁이라 표현하기 위해 꺼내 든 단 하나의 특징. 그것은 아마도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자랑스럽고 자신 있는 것이 아닐까?

남들이 보기에는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내 스스로 보듬고 토닥여주면 나만의 멋진 자산이 되는 것, 우리 아이들이 품고 있는 씨앗, 그것은 한참 후 우리 모두가 인정하는 멋쟁이로 거듭날 수 있는 씨앗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내가 할 일은 이 작은 씨앗들이 싹을 틔울 때까지, 우리 아이들이 커다란 고래가 되어 수면 위로 멋지게 떠오를 때까지 기다려주는 일이 아닐까 한다. 언젠가 카라 랜드리처럼 우리 아이들이 나에 대한 발칙한 기사를 쓰더라도 의연히 받아주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말이다.
나은영 | 유모차를 끌고 동네를 누비다 매일 우리 반 학생을 만나는 일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열심히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고 싶어 늘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