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8월 통권 제1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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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책 이야기]
자신의 삶, 당당하게

배경미 | 2014년 08월

내 맘 속 멋쟁이

‘멋쟁이’는 ‘멋이 있거나 멋을 잘 부리는 사람’을 말한다. 텔레비전만 틀면, 거리를 나가보면 멋지게 차려입은 멋쟁이들을 흔히 만날 수 있다. ‘멋쟁이’로 사는 것은 인생을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너무 외형적인 멋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아 걱정스런 마음이 든다.

사람마다 멋쟁이의 기준이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멋쟁이는 옷을 잘 입거나 명품을 지니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하는 사람, 존경심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정말 멋있구나! 나도 닮고 싶다.’라는 생각을 상대로 하여금 갖게 하는 사람.
 
24년 전 정말 그런 사람을 만났다. 첫 직장인 어린이 도서관에서 일을 할 때 만난 본부장님이다. 1990년대 초, 우리나라에서는 ‘어린이 도서관’이나 ‘어린이 책’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다. 어린이 도서관의 사서로서 어떻게 무슨 일을 해야 되는지도 잘 모른 채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때는 전국에서 사직어린이도서관이 유일한 어린이 도서관이었기에 일을 배울 만한 곳이 따로 없었다.

우리 도서관 개관 준비부터 참여했는데 그 때 본부장님은 매일 청바지를 입고 출근하셔서 책도 같이 꽂고 도서관 꾸미는 일까지 같이 하셨다. 도서관 관장까지 하신 분이셨고, 직원들에게 맡기셔도 되는데 똑같이 몸을 움직이는 고된 일을 하셨다. 아주 즐겁게. 그 후로도 어린이 책을 꾸준히 읽고 아이들과 즐겁게 지낼 수 있게 끊임없이 자극을 주며 격려해 주셨다. 함께 일하며 ‘나도 저런 열정을 갖고 일해야겠구나’ ‘일은 저렇게 하는 거구나’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다.

나에게는 본부장님이 멋진 분이셨는데 아이들은 어떤 사람을 멋쟁이,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본부장님, 하니까 갑자기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들이 생각나네요. 왕자님 같은 외모에 여주인공을 도와주는…. 그런 본부장님과는 거리가 멀고 여자 분이십니다.)

진짜 멋쟁이 할머니!

『도둑 할머니』는 제목부터 눈길을 끈다. 벤의 할머니는, 그림처럼 서양 어린이 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다. 멋있는 할머니와는 거리가 멀다.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모습이다. 독자의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벤은 할머니가 싫은 이유를 10가지나 적었다. 고약한 양배추 냄새가 나고, 시도 때도 없이 방귀를 뀐다. 그리고 책을 읽으라고 하고…. 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아이들이 싫어할 조건을 두루두루 갖춘 할머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도둑이란다. 왜?

벤은 그런 할머니와 매주 금요일 저녁을 함께 보내야 한다.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엄마 아빠를 위해. 모두가 즐거운 금요일이 벤에게는 정말 끔찍하다. 그런데 할머니의 또 다른 모습을 알게 되면서 벤의 태도가 확 바뀐다. 할머니가 보석 도둑 ‘검은 고양이’라는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벤은 할머니가 들려주는 보석을 훔치는 흥미진진한 모험담에 빨려들어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을 즐기게 된다.

할머니가 하는 이야기에는 허술한 부분이 있어 거짓말인 줄 알기 쉬운데 벤은 철석같이 믿는다. 아이답다. 손자와 친해지기 위해 스릴 넘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스쿠터를 타는 할머니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신선하고 매력적이다. 어떤 어른이 아이를 위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벤은 할머니의 이야기에 몰입한 나머지 급기야 왕실의 보석까지 훔치자고 할머니에게 제안한다. 그리고 벤이 주도적으로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배관공이 꿈인 자기의 장기를 살려 하수관으로 박물관에 침투하는 계획을 세운다. 그동안 지루했던 수업마저 집중하게 된다. 인터넷으로 보석을 검색하고, 지리 시간에 런던 타워 위치를 확인한다. 싫어하던 체육시간도 체력을 단련하는 즐거운 시간이 된다.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시간도 집중한다. 사람들에게 잡혔을 때 당황하지 않고 다른 나라 사람인 척하려고 열심히 배우는 것이다. ‘아! 공부는 이렇게 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할머니는 이렇게 벤을 변화시킨다.

자기를 싫어하고 자신이 만들어 준 음식을 몰래 버리는 손자에게 서운할 수도 있고 화를 낼 수도 있지만 할머니는 벤에게 전혀 내색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보석을 훔치는 큰도둑이라고 뻥을 치며 흥미로운 이야기로 손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얼마나 멋진 할머니인가? 할머니의 노력과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놀랍다.

다른 이들로부터 인정받는 위치, 또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일수록 존경받길 원한다. 그런데 그런 것은 강요한다고 되는 것이 아이다. 벤의 할머니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진심을 가지고 다가가야 한다. 상대방의 마음이 움직일 수 있도록. 벤의 할머니는 진정한 멋을 아는 멋쟁이다. 벤의 마음속에 정말 멋진 할머니로 남을 것이다.
 
멋진 삶이란 뭘까

여기, 멋쟁이 개도 있다. 『명탐견 오드리』의 주인공 오드리다. 오드리는 사람들이 똥개라고 부르지만 자존감이 높은 개다. 자기 조상이 어사 박문수의 수행견이라는 자긍심이 대단하다. 초복이, 해피, 휘리릭… 사람들이 마음대로 이름을 지어 불러도 ‘오드리 헵번’이라는 배우 이름이 마음에 들어 스스로에게 ‘오드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오드리는 탐정견이다. 사람들이 훈련을 시킨 개가 아니라 스스로 탐정견이 된다. 예민한 후각과 추리력으로 고서화 도난사건, 다이아몬드 실종사건, 애완동물 습격사건들을 해결해 가는데 그 과정이 흥미롭고 재미있다. 평범한 개의 삶을 거부하고 스스로의 삶을 당당히 개척해 가고 만들어 가는 모습이 멋지다.

멋진 삶을 사는 게 무얼까? 오드리처럼 주어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며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것 아닐까?

지금 우리 사회는 풀어야 할 숙제들이 너무나 많지만 어느 누구도 풀지 못하고 있다. 이럴 때 누군가 짠! 하고 나타나 기적처럼 풀어준다면, 아니 풀 실마리라도 준다면…. 오드리 같은 명탐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른 사람들한테 ‘멋지다!’ ‘멋쟁이다’는 말을 듣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런 소리를 듣고 산다는 것은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나도 가끔 다른 사람들에게 “멋지다!”(외모로는 아니고)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그럴 땐 ‘아, 날 인정해 주는 사람이 있구나, 행복하다.’ 는 생각이 든다. 생활의 활력이 된다.

그런데 가족들에게는 그런 말을 듣지 못한다. 은근히 아이에게 엄마 어디가면 이런 소리도 듣는다고 하면 “진짜?” “왜?” 묻는다. 가장 가까운 사람, 가족들에게 인정받기가 어려운 것도 같다.

벤의 할머니가 벤의 마음에 멋진 할머니로 남았듯이 아이들에게 멋진 엄마로 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것 같다. 벤의 할머니에게 물어볼까? 그리고 아이들이 동화 속에서 멋진 인물을 만나고 공감하고 생각의 폭을 넓혀 스스로 멋진 삶을 꾸리면 좋겠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진정한 멋쟁이가 되어 당당히 살아가면 좋겠다.
배경미 | 어린이도서관에서 일곱 해 일했고, 지금도 어린이 책을 공부하며 지냅니다. 초등학교에서 책 읽어주기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도서관에서는 어린이 책 이야기를 어른들에게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