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8월 통권 제1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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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를 위한 임종길의 미술시간]
그림의 기초, 느낌 표현하기

임종길 | 2014년 08월

지난 시간에는 잡지를 이용해서 ‘느낌’을 표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연애의 열병을 앓아 본 사람이나 큰 슬픔을 겪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겁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이 심정’이란 말이 얼마나 실감나는지. 바로 말(언어)로 다 할 수 없는 그 느낌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어쩌면 예술의 존재 이유인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그림의 기초라 할 수 있는 소묘 재료를 가지고 느낌을 표현하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몇 달 전 이미 ‘자연 관찰 그림 그리기’에서 소묘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사실적인 그림’을 전제로 한 소묘 연습이었습니다. 사실적인 그림을 위해서는 관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얘기했었지요.

하지만 이번에는 그림의 기초로서 소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좀 더 포괄적인 소묘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림의 기초로서 소묘는 사실적인 표현을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포괄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단색을 이용하지만 사실적인 표현을 포함해서 심심하지 않은 시각적 흔적을 만들어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소묘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일이 있습니다. 17년 전쯤 수원의 한 여자중학교에 근무할 때였습니다. 수업 시간 중에 우연히 한 여학생이 연습장에 재미있게 낙서한 그림을 발견했습니다.

샤프 연필로 선을 반복하여 기하학적인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추상적인 그림이었습니다. 미로의 작품을 연상하게 했습니다. 연습장을 넘겨보니 그런 낙서들이 제법 여러 장 있었습니다.

지난 강의에서 미술에 소질이 있는지 알아보는 조건 두 가지를 말했는데 기억하나요? 똑같이 그렸든지 그렇지 않든지 시각적으로 심심하지 않을 것, 그리고 그런 그림이 우연히 한두 번이 아니고 반복될 것, 이것이 타고난 소질이 있는지 없는지를 구분하는 조건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객관적이지 않은 나의 기준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 여학생의 낙서 그림이 그랬습니다. 나는 그 여학생이 미술에 소질이 있다고 믿었고 종종 낙서 그림을 보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나의 느낌을 이야기해 주었고 부족하다 싶은 내용도 말해 주었습니다.

그림은 조금씩 완성도를 갖췄고, 그림에 나름대로 제목을 붙여보라고 하면 책 읽기를 좋아하는 그녀는 제법 멋진 제목도 붙였습니다.
그런데 그 여학생에게는 화가로 크기에는 힘든 조건을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 현실에서 미술대학을 가려면 그림을 잘 그리든지 공부를 잘 하든지, 적어도 둘 중 하나는 잘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여학생은 성적이 별로였고 그림 또한 사실적인 그림을 잘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친구의 추상적인 낙서 그림이 내 눈에 아무리 재미있게 보여도 대학을 가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여학생이 졸업하던 날 특별한 이벤트를 열어 주었습니다.

그동안 나와 만나며 완성했던 그림들을 모아 졸업식장 옆 복도에 전시회를 열어 주었습니다. 혹시라도 미술대학을 가지 못하더라도 나와의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화가로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전시회였습니다.

이후 그 여학생은 수원시에서 벗어난 고등학교로 진학한 후 디자인 계열 대학을 갔다는 얘기를 들었고, 한참동안 소식이 없었습니다.

소묘 재료로 느낌 표현하기

준비물 : 도화지, 연필·펜 등 소묘 재료

준비한 도화지를 자유스럽게 6칸으로 나눕니다. 그리고 각 칸마다 심심하지 않게 다양한 흔적을 남기면 됩니다. 단 구상 이미지를 그려서는 안 됩니다. 순수하게 점, 선, 면 같은 조형요소만을 사용합니다.

6등분을 한 것은 다양한 표현을 시도해 보기 위한 것뿐입니다. 필요하다면 구분 없이 표현해도 됩니다. 지난 시간에 잡지만을 사용해서 어떤 느낌을 만들어 냈던 작업과도 같은 연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직선이나 곡선을 반복하다 보면 시각적인 느낌이 생깁니다. 좀 더 다양한 느낌을 끌어내기 위해 음악을 들으며 그 느낌을 표현하거나 음식을 먹으며 ‘그 맛을 선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선이 어울릴까?’ 하는 방식으로도 다양한 시도를 해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작곡을 위해 다양한 소리를 찾아내고 그 소리를 합쳐가며 어울리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중에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그림을 완성할 때 지금 연습한 다양한 표현이 유용하게 쓰일 것입니다.

오른쪽 그림들은 소묘로 느낌을 표현해 본 것입니다. 맨 위는 선을 반복해서 긋는 것만으로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 작품은 연필을 사용해 반복된 둥근 면과 명암을 이용해서 조금씩 다른 느낌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세 번째 작품은 6칸으로 나눈 면에 서로 다른 느낌을 표현해 본 것입니다.

간단한 구상 이미지를 포함해서 느낌 표현하기

왼쪽 작품들은 한두 가지 구상 이미지를 그린 후 다양한 조형요소를 활용해 나머지 부분을 표현한 작품들입니다.
 
첫 번째 작품은 반복된 선이 시각적인 움직임을 주면서 가운데 부분의 간단한 사람 모양이 포인트가 되어 여러 가지를 상상하게 합니다.

두 번째 작품은 다양한 변화를 준 얼굴과 배경의 검은 면이 어우러져 시각적인 재미와 긴장감을 줍니다.

세 번째는 사실적인 표현 능력도 있는 학생의 작품입니다. 컬러가 없어도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음악을 듣고 그 느낌을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서 표현한 작품들

아래의 그림들은 네 종류의 음악을 듣고 음악을 듣는 동안 받은 느낌을 어떤 이미지도 사용하지 않고 표현하게 한 작품들입니다. 이런 연습을 통해 우리는 시각적인 표현 능력의 폭을 넓히게 됩니다.

처음 이런 실기를 할 때 막연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할 수 있는데 어떠한 정답이 없다는 생각을 먼저 해야 합니다.

그림 그리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빨강색을 생각할 때 그냥 한 가지 빨강색만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빨강색도 따뜻한, 섬뜩한, 감미로운. 몽롱한, 불쾌한 심지어는 차가운 느낌의 빨강색도 있을 수 있습니다.

거기에 재료마다 가지고 있는 느낌과 질감까지 곁들이면 수없이 많은 느낌을 발견하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런 노력들이 결국에는 본인이 표현하려는 느낌을 더욱 풍성하게 드러낼 것입니다. 비록 다른 사람들은 각자 달리 느낄 수 있어도, 개성 있고 느낌이 있는 자기만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됩니다.



임종길 | 자연과 사람을 주제로 그림 그리며,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열두 달 자연과 만나요』『두꺼비 논 이야기』 등을 펴냈으며 『콩알 하나에 무엇이 들었을까?』 『가랑비 가랑가랑 가랑파 가랑가랑』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녹색손’ 이름으로 꾸리는 자연 배움터 ‘도토리 교실’(cafe.daum.net/dotoliroom)에 오시면 더 많은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