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8월 통권 제1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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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세상 이야기]
한국 과학사 20- 나라의 근본을 바로잡다

김연희 | 2014년 08월

아악을 정비하라

나라의 근본을 음악으로부터 이야기하려 합니다. 왜냐고요? 유교의 나라에서 음악은 지금 우리의 음악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흥이 나면 즐거워 어깨를 들썩이고 발을 절로 굴리거나, 혹은 마음 한구석을 아리게 만드는 음악들이 아닙니다. 유교를 토대로 하는 나라에 맞는 음악이었어요. 그런 음악이 뭐냐고요? 단순히 멜로디와 박자의 조화만으로 되는 음악이 아닌 예악이라 하여 하늘과 인간 사이의 질서를 세우고(예) 하늘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기(악) 위한 소리였어요. 사회와 자연의 질서와 어우러짐을 음악이라고 한 것이지요. 유교 사회에서 음악이란 바로 예악의 하나로 유교질서의 중심이며,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어요.

그런데 조선이 세워졌을 때에는 음악이 헝클어져 있었어요. 질서나 조화와는 거리가 멀었지요. 고려의 음악들은 유교 질서, 즉 삼강오륜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특히 조상에게 제사를 모실 때 연주되는 아악은 예악의 백미였지만 중국 송나라에서 전해온 이래 아악은 고려의 옛 향가가 뒤섞여 제 모습을 찾기가 어려웠지요. 음악의 중심이며 근본인 아악이 제 소리를 갖지 못했던 거예요. 그래서 세종임금은 박연에게 조선에서 연주할 아악을 정비하게 했지요.
 
나라 질서의 기준 정하기

아악 정리는 악기를 갖추고 악보를 만드는 일도 포함했어요. 악보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악기의 기준음이 있어야 했습니다. 모든 악기와 악보의 기준음은 중국에서 정한 기준음, 즉 편경이라는 악기의 첫음인 황종음으로 삼는 것이 법이었어요. 편경은 아래 위 2개 층으로 만들어진 걸이에 ‘ㄱ’자 모양의 돌들을 8개씩 16개를 달아 만든 악기랍니다. 편경의 돌은 습하거나 건조하거나 덥거나 춥거나에 상관없이 언제나 맑고 고운 소리를 냈습니다. 이 편경의 첫 소리인 황종음에 맞추어 다른 악기들을 만들어 내면 되는 것이었지요.

이 일을 하려면 먼저 편경이 있어야 합니다. 조선에 있던 편경은 중국에서 가져온 것이었지요. 중국은 태종임금의 요청에 의해 편경을 보내며 자비 베푸는 듯한 태도를 보여 태종임금에게 창피를 주었지요. 너네정도 나라에서 예악은 해서 뭐하냐는 식이었지요. 그나마 세월이 지나 깨지고 부서지고 고장이 나 소리를 제대로 내지도 못했답니다.
 
아버지 태종이 편경 때문에 중국으로부터 수모를 당했음을 알고 있던 세종임금은 악기를 우리 손으로 만들겠다고 결심했어요. 편경은 경석이라는 옥돌로 만들어요. 이 경석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고, 마침내 경기도 남양(지금의 화성입니다)에서 발견했지요. 세종임금은 곧 이 돌로 편경을 만들라고 했어요.

옥돌을 간다고 편경이 만들어지는 일은 아닙니다. 소리에 맞추어 돌을 다듬는 것도 어려웠지만 그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기준음, 황종음을 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황종음을 만들어내기 위해 옛 음악이론서인 『율려신서』라는 책에 나온 조건들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 책에는 검은 기장 100알을 길이로 삼고 9알을 지름으로 하는 대나무관이 내는 소리가 황종음이라고 되어 있어요.
 
그런데 자연에서 거둔 곡식 가운데 가장 고르다고 얘기된 검은 기장 100알이 내는 소리가 중국 편경 황종음 소리보다 높았어요. 조선 해주에서 나는 기장은 중국 것보다 작았기 때문입니다. 또 늘 같은 소리가 나는 것도 아니었어요. 자연의 것은 항상 같지 않기 때문이지요. 아무리 고르고 골라 여러 번 실험을 해도 할 때마다 소리가 달랐고, 중국 편경과도 소리가 달랐어요. 옛 책만으로는 황종음을 낼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박연은 수많은 실험을 거치면서 밀랍으로 같은 크기의 기장 알맹이를 만들었어요. 이를 통해 중국 편경의 황종음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고 황종음을 내는 대나무관인 황종률관을 가질 수 있게 되었지요. 황종률관을 셋으로 나누고 그 둘을 취해 다시 셋으로 나누어 더하거나 빼면서 12개의 관을 만들었습니다. 『율려신서』가 가르치는 대로 말이지요.

조선의 악기를 만들다

편경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무려 3년에 걸쳐 528장의 편경돌, 즉 33대의 편경을 만들 수 있게 돌을 깎았어요. 힘들여 만든 만큼 편경을 잘못 다루거나 깨트리면 100대 볼기와 3년 유배의 벌을 주었지요.
 
편경을 만들고 난 다음, 여러 악기들을 만들어졌어요.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편종입니다. 편경을 만드는 데에 성공한 세종임금은 1429년(세종11년)에 종을 만드는 특별한 부서인 주종소를 만들어 편종을 만들게 했습니다. 편종은 구리로 종을 16개 만들어 편경처럼 아래위로 나누어서 건 악기예요. 같은 크기의 종을 두께를 달리해 높고 낮은 소리의 악기를 만들었습니다.
 
편경이 맑은 소리를 냈다면 편종은 웅장하고 날카로운 소리를 냈지요. 그리고 금, 슬, 대쟁, 생, 봉소와 같은 악기도 만들었어요. 아악을 연주하는 악기를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은 진정한 문화국가로 탈바꿈했음을 뜻합니다. 또 황종률관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길이와 무게와 부피, 즉 도량형의 기준을 가졌음을 의미합니다.
 
도량형을 굳건히 하다

나라 안에서 사용되는 모든 길이, 무게, 부피를 도량형이라고 합니다. 황종척이 조선의 기준이었습니다. 이 황종척을 기준으로 옷감을 재는 포백척, 제사 지내는 그릇을 만드는 조례기척, 건물 지을 때 쓰는 영조척, 천문관측기구나 거리 측정에 사용하는 주척들을 만들었어요. 또 부피는 황종률관에 담기는 기장 1200개를 한 작으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황종관에 우물물을 가득 채워 그 물 무게를 88분으로 해 무게의 기준으로 세웠습니다.

사실 도량형이 헝클어지면 백성들끼리 물건을 사고팔 수 없고, 이 고장 저 고장이 거래를 할 수 없지요. 긴 자로 물건을 팔고 짧은 자로 물건을 산다면 그 차이로 인해 누군가는 이득을 얻고 누군가는 손해를 보게 되지요. 누가 손해를 보고 싶겠어요? 서로 간에 믿음이 없어지지요. 무엇보다 조선 정부가 세금을 제대로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조선시대는 곡식과 옷감, 그리고 특산물로 세금을 받았어요. 세금을 모아서 내는 지방 관리가 자기는 큰 됫박과 긴 자로 세금을 모으고, 적은 됫박과 짧은 자를 이용해 세금을 한양 중앙정부에 보내면 백성과 나라가 다 가난해지게 되지요.

조선을 세우면서 꿈꿨던 것은 백성이 풍요롭게 살면서 서로를 믿고 아껴 삼강오륜이라는 유교의 사회질서가 자리 잡힌 사회였습니다. 세금으로 고통 받지 않고 왕과 백성이 부모와 자식처럼 서로를 아끼고 믿는 사회였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세금도 공평하고 정당하게 걷어야 했습니다. 도량형을 세우는 일은 모든 교환과 거래, 세금 납부와 같은 국가 경제의 토대를 마련하는 일입니다. 사람과 사람간의 의심을 없애 서로 믿는 마음을 키우고, 마을 간의 거래를 활발하게 하며, 더 많은 생산을 위해 노력하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이지요. 무엇보다 세금을 공정하게 받겠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몸의 한 부분을 어림짐작하여 길이를 재는 대신 예악의 근본, 즉 황종척으로 기준을 삼은 까닭입니다.
 
도량형과 관련한 법도 정해졌어요. 이 법에 따르면 지금의 도지사에 해당하는 관찰사에게 표준 자를 보내어 도량형의 운용을 감독하게 했어요. 그리고 자를 이용하는 사람들 가운데 한양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해마다 추분 날 경복궁 안 궐내각사에 있는 평시서에 와서 사용하는 자를 교정 받고 검사를 받았다는 도장을 받아야 했고요. 각 지방에서는 관찰사에게로 가서 검사받고 도장을 받아야 했고요. 그리고 암행어사가 임금의 명을 받고 전국 곳곳을 돌 때 꼭 지니고 가야 하는 것이 바로 ‘자’였습니다. 도량형을 제대로 운영하는지를 감시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렇게 엄격하게 만들어지고 사용되던 도량형 기준들이 임진왜란 때 모두 없어졌어요. 삼척에 보내진 포백척 하나만 빼고요. 이후 이 포백척을 다시 환산해 황종률관을 만들었지요. 1900년대 서양과 새롭게 교류하기 위해 국제표준을 받아들이기 전까지 이 황종률관을 모든 산업과 생활의 기준으로 사용했답니다.
김연희 | 서울대학교에서 한국과학사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한국 역사 속에서의 자연 이해와 자연 이용 기술에 관심이 많습니다. 서양 과학과 우리 전통 과학이 만났을 때의 이해 방식에 관해 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 『창덕궁에서 만나는 우리 과학』과 『강은 어떻게 흘러가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