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8월 통권 제1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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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책 이야기

[어린이 책 깊이 들여다보기]
완고한 동시 세계를 뒤엎는 뽀뽀 한 방의 작은 힘

최종득 | 2014년 08월

김유진 시인이 첫 동시집을 냈다.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 동시 부문과 평론 부문을 수상하고 『어린이와 문학』에서 동시를 추천받은 젊은 시인의 첫 동시집이라 무엇보다 눈길이 간다. ‘첫’이라는 말 속에는 언제나 설렘과 기대가 깃들어 있다. 김유진 시인의 ‘첫’ 동시집 『뽀뽀의 힘』에서는 과연 어떤 기대와 설렘을 찾을 수 있을까?

먼저 「시인의 말」을 살펴보면 “나의 목소리가 찾아낸 옷이 동시라서 기쁘다. 단순하면서도 깊고, 아름다우면서도 생기 넘치는 목소리여야 어린이에게 가닿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 속에는 동시에 대한 시인의 깊은 사랑이 담겨 있다. 그러면서 어린이가 좋아할 만한 동시는 단순하면서도 깊고, 아름다우면서도 생기 넘치는 동시여야 한다고 넌지시 말하고 있다.

나는 공주다

나는 공주
분홍 치마 입고
분홍 구두 신고
왕관 머리띠 쓰고서
하고 싶은 건
뭐든 다 하지

그럼 엄마는?
네가 공주면
난 왕비인데
시키는 대로
다 하는 엄마는
시녀 같지 않니?

에이, 엄마
외할머니가 그러는데
엄마도 옛날엔 공주였대
나하고 똑같았대
아시겠죠, 어마마마!

시인이 말하는 ‘단순하면서도 깊고, 아름다우면서도 생기 넘치는 목소리’가 이 시에는 담겨 있다. 이 시는 딸과 엄마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하고 싶은 건 뭐든 다 해서 자신은 공주라며 뽐내는 딸에게 엄마는 시키는 대로 다 하는 시녀 같다며 투덜댄다. 엄마의 투덜거림에 딸은 외할머니 말을 빌려 엄마를 달랜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엄마의 투덜거림에 답하기라도 하듯 “어마마마!”라며 애교를 떤다. 시적 상황이 단순하고 딸과 엄마의 생기 넘치는 목소리가 시 전반에 흘러 읽기 편하다. 그렇지만 딸, 엄마, 외할머니로 이어지는 3대 관계는 우리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면서 묘한 울림을 준다.

이 시 뿐만 아니라 「변신 모녀」, 「삼겹살 먹는 날」, 「부부 싸움 다음 날」, 「꼬르륵」, 「공개 수업 하는 날」, 「여름 방학」, 「훔쳐보기」, 「오솔길에서」 따위의 시에도 어린이의 심리를 잘 포착하여 상황에 알맞은 언어를 사용해 시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솔직히 지금까지 우리 동시는 어린이의 심리를 포착해 내는 데 서툴렀다. 물론 어린이의 심리를 포착해서 쓴 동시가 있지만 대부분 무겁거나 답답했다. 그러나 『뽀뽀의 힘』에 실린 동시들은 어린이의 심리를 꾸밈없이 보여주면서 곳곳에 발랄한 언어를 사용하여 생기 넘치게 그리고 있다.

이 발랄하고 생기 넘치는 언어들은 새로운 발상과 만나서 동화적 상상력까지 확대되고 있다. 새로운 발상이 동화적 상상력을 펼치게 했는지, 아니면 동화적 상상력 때문에 새로운 발상을 얻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새로운 발상과 동화적 상상력의 만남은 기존의 동시에 새로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보라색 머리핀 하나 사고 싶었는데」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갖고 싶어 하는 아이의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된다. 단순히 보라색 머리핀 하나를 사고 싶었던 아이는 마침내 보라색 머리핀을 사게 된다. 그렇지만 행복도 잠시, 머리핀에 어울리는 옷이 없어 옷을 사게 되고 결국에는 먼저 산 물건에 어울리는 것들을 차례로 사게 된다. 보라색 머리핀 하나를 갖고 싶어서 샀을 뿐인데 자신도 온 세상도 보라색이 되었다는 동화 같은 시다. 이 시를 읽다보면 알게 모르게 시 속 이야기에 빠져 들게 된다. 온몸을 보라색으로 치장한 여자 아이가 옆에서 자기가 보라색이 된 까닭을 수다스럽게 이야기하는 느낌이 들면서 독자를 보라색 동화 나라로 이끈다.

「블록 쌓기」는 현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새롭다. 트럭에 이삿짐 싸는 것을 블록 쌓기로 바라보는 시인의 눈은 독특하고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 시선이 어린이의 생활에 맞닿아 있다는 것이 부럽다.

그밖에 「빨간 털실 한 뭉치가」, 「부처님이 미소 짓는 이유」, 「벼락 맞은 놀이공원」, 「물안개」, 「마법에 걸린 집」 시에서도 이런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시인은 또한 감정을 드러내거나 비판하지 않고 현실을 꾸밈없이 보여주면서 현실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문제를 재치로 해결하여 문제를 단순화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
 

일요일 밤 여덟 시 오십 분
 
십 분만 있으면 밤 아홉 시
 모두 조용해야 할 시간인데
 
501호 아이 피아노를 치니
공부하다 졸던 401호 언니
‘에라, 모르겠다.’
문제집 밀쳐 둔 채
 
저도 덩달아 피아노 치고
301호 아줌마 이때다 싶어
일주일 치 마늘 콩콩 빻고
누워 티비 보던 201호 아저씨는
‘온 동네가 시끄럽네.’ 투덜대다
낮에 잊어버린 못이 생각나
탕탕탕탕 못을 박는데

‘아홉시만 돼 봐라.
내 경비실에 연락할 테니.’
벼르고 있는 101호 할아버지

다른 날도 아니고 일요일 밤이다. 한 주를 시작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일요일 밤, 그것도 아홉 시가 되기 십 분 전에 일이 벌어졌다. 사실 ‘아홉 시’는 우리 생활에서 잠을 자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모두들 ‘아홉 시’가 되면 조용한 분위기에서 잠잘 준비를 하거나 하루를 정리한다. ‘아홉 시’ 되기 십 분 전에 5층에서 아이가 피아노를 치고 말았다.
 
모두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피아노 소리가 울리고 이때부터 일이 벌어졌다. 공부하던 4층 언니도 덩달아 피아노를 쳐버리고, 3층 아줌마는 일주일 치 마늘을 빻고, 2층 아저씨는 못을 박는다. 피아노 소리, 마늘 빻는 소리, 못 박는 소리가 조용한 아파트를 순식간에 시끄럽게 만들었다. 1층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만이 어쩔 수 없어 아홉 시가 되기만을 기다린다.

아파트 층간 소음에 대처하는 모습이 층마다 재미있게 그려져 있어 심각하게만 느껴졌던 층간 소음 문제가 오히려 아무런 문제로 느껴지지 않고 재미있게 느껴진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까닭은 시인이 치밀하게 계획했기 때문이다. 가장 높은 층에서 가장 먼저 소음을 낸 주인공은 아이이다. 4층에 살고 있는 사람은 아이의 잘못을 눈감아 줄 수 있는 아이보다 나이 많은 언니다. 그리고 3층에 살고 있는 사람은 언니보다 나이 많은 아줌마이고, 2층에 살고 있는 사람은 아줌마보다 나이 많은 아저씨이다. 그리고 1층에는 아이와 언니, 아줌마와 아저씨를 모두 품어 안을 수 있는 할아버지가 살고 있다. 누구의 잘못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치밀하게 계획해서 썼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도 단순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동시집 『뽀뽀의 힘』의 특징은 어린이의 심리를 잘 포착하여 맛깔스러운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 새로운 발상과 동화적 상상력을 통해 고정된 인식을 무너뜨린다는 점, 그리고 복잡한 현실 문제를 재치로 단순화시킨다는 점이다. 이런 특징은 기존의 동시를 뒤엎을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기존의 동시는 무겁고 어렵거나 아니면 반대로 가벼운 경향이 있다. 그래서 끊임없이 기존의 동시에 도전하고 새로운 동시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김유진 동시는 기존의 동시에 큰 힘으로 도전하거나 완전히 색다른 모습으로 도전하지 않는다. 젊은 시인의 유쾌한 재잘거림으로 완고한 동시 세계를 알게 모르게 뒤엎으려고 한다. 
 

쉬는 날

잠만 자는 아빠
곁에서 맴돌아도
툭툭 건드려도
두 팔을 잡아끌어도
꿈쩍 않더니
쪽!
뽀뽀 한 방에
“아이구, 우리 딸.”
반짝
일어난다


‘쉬는 날 잠만 자는 아빠’는 완고한 동시 세계로 읽히고 ‘곁에서 맴돌아도 툭툭 건드려도 두 팔을 잡아 끌어도’는 끝임없이 새로운 동시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으로 읽힌다. ‘뽀뽀 한 방’은 김유진 시인이 말하는 단순하면서도 깊고, 아름다우면서도 생기 넘치는 목소리로 읽힌다.
 
이런 작은 뽀뽀 한 방들이 모이고 모이면 완고한 동시 세계도 ‘반짝’ 하고 뒤엎어지지 않을까?

끝으로, 『뽀뽀의 힘』 마지막에 실린 시 「줄탁동시」의 일부분을 빌려 이 글을 마칠까 한다.

줄탁동시(啐啄童詩). 어른 시인이 잘 쓰고 어린이 독자가 잘 읽어 주는 동시를 말해요.

앞으로 계속 좋은 동시들이 많이 나와서 많은 어린이 독자가 동시를 읽으며 행복해 하면 참 좋겠다.
최종득 | 바닷가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바다를 좋아합니다. 바닷가 작은 학교에서 아이들과 오래 지내다가 거제시 조금 큰 학교로 옮기게 되어, 헉헉거리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친구로 받아줄 때까지 ‘아이 친구’로 살고자 합니다. 동시집 『쫀드기 쌤 찐드기 쌤』을 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