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7월 통권 제1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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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책 이야기]
그 섬,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을까?

한양하 | 2014년 07월

‘계획’을 삭제했더니 ‘평안’이 오더라
 
2014년의 절반을 살았다. 지친다. 시간은 더욱 빠르게 흐르는데 그 시간 속에서 뭘 했는지 모르겠다. 수업 하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공부 모임 하느라 밤을 새고, 사람들과 만나 밥 먹고 술 마시고 쓰러지고. 그러다보니 한 학기가 지났다. 아! 이렇게 시간이 지났다고 푸념하고 한탄하는 거, 학기마다 테이프를 재생하는 것 같은 느낌. 그래서 그때도 무작정 떠났다. 지난 겨울 방학이 시작될 무렵, 현실의 공간에서는 도저히 내가 시간을 지배할 수 없으므로 판타지의 공간을 찾아서.

사십대 중반의 여자 1인, 사십대 후반의 여자 1인, 오십대 등극한 여자 1인 셋이서 모여 술 한 잔 하던 중 누군가 제주도 갔다 올래, 의견을 냈고 나머지 둘이 동의하면서 일은 시작되었다. 다음날 배편을 예약하고 4박 6일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

셋이 여행을 떠나는 데 쉬이 합의할 수 있었던 데는 이유가 있다. 이번 여행의 최고 목적은 휴식! 나흘 동안 잠을 자고 싶으면 자고, 걷고 싶으면 걷고, 술 마시고 뻗고 싶으면 뻗어 있어도 좋다는 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럴 목적이라면 굳이 제주도가 아니라도 되었건만. 여하튼 홀가분하게 제주도로 떠났다.

첫째 날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숙소를 정하고 가수 임재범을 닮은 주인장과 동네 친구들을 불러 숙소에서 즐기기. 둘째 날, 동네 식당에서 성게죽을 먹고 용눈이 오름에 오르지 않고 무덤 곁에 앉아 바람 맞기. 셋째 날, 비자림 매표소 앞에서 커피를 들고 들어갈 수 없다기에 방향 돌려 김영갑 갤러리 구경. 넷째 날, 마고할미 테마파크 찾아갔다가 굳게 닫힌 문 앞에 서성이다 다른 휴양림 있는 곳 앞에서 오뎅 파는 아줌마와 수다 떨기. 그리고 하이라이트! 밤마다 게스트하우스에 오는 새로운 손님들과 밥과 술과 이야기로 밤을 보냈다.

계획대로 살다가 지쳐서 여행을 갔으니 계획쯤은 던져두고 마음 가는 대로, 순간의 결정대로 해보자고 마음 먹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올레길 몇 번 구간을 걷고 점심은 어디에서 먹고 다음 숙소는 어떻게 정해야 할지 고민하는 건 버리기로 했다. 우리 셋은 숙소 고민이 귀찮아서 한 집에 머무르고, 커피를 다 마시지도 않았는데 갖고 들어갈 수는 없다 하니 휴양림을 포기했고, 오름의 정상에 올라야 할 이유가 딱히 없다며 오름 자락에 앉아 캔 맥주를 마셨다. 참 무계획의 여행이었다. 투자 대비 효율이라곤 전혀 없는 여행이었다. 그런데 마음은 편했다.

우리는 보통 계획성이라는 말은 성실성과 연관어로, 무계획이라는 말은 게으름과 연관어로 생각한다. 이번 주에는 이러이러한 일을 해야 하고, 이달 안에는 이러이러한 일을 해야 한다는 계획이 우리를 긴장하게 하고 어깨를 뭉치게 하고 머리를 지끈거리게 한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계획이라는 낱말을 삭제하고 즐겼다. 그랬더니 구멍 숭숭 파인 돌덩이로 낮은 담을 치고 있는 집들이 정겹고, 조금만 걸어가면 눈이 부실 정도로 맑은 바다와 백사장이 우리 집 앞 같고, 백련초 밭이 바로 이웃집 밭인 듯 낯설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여행을 또 이렇게 하고 싶진 않다. 다음 여행은 중학생 딸과 함께 오붓한 제주도를 즐기고 싶다. 느긋하게 늘어지는 여행은 해 봤으니 이번엔 제주도의 속살을 찾아보는 여행이었으면 해서다. 번드르르한 제주도, 유명한 제주도가 아니라 원래 제주도가 그러했던 모습을 발견하는 여행을 해 보고 싶다. 우선 이 두 권의 책을 읽고 출발!

하나, 제주도다운 그림책

방송작가 허수경이 쓰고 김재홍이 그린 『너, 제주도에 있니?』는 제주도의 속살을 알고 싶어하는 여행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책이다. 테마파크나 박물관 등 유명한 장소가 아닌 제주만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장소를 알려주고 있다. 푸른 바다와 붉은 해가 만나는 성산일출봉, 제주도 아낙이 살아가는 바닷가 마을, 제주도 지학궁전 거문오름과 용암동굴계, 송송 구멍이 뚫린 제주도의 현무암 등을 소재로 하여 자세히 보아야 아름다운 제주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어린이 책 글 작가가 아닌 방송인 허수경이 글을 어떻게 썼을지 궁금했다. 그런데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엄마가 아이에게 아는 대로 느끼는 대로 이야기해 주는 방식이라 편안했다. 해설사처럼 박학한 정보를 들이대며 아이를 억누르는 엄마도 아니고, 그것도 모르냐고 아이를 무시하는 엄마도 아니었다. 엄마는 그걸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네, 이런 일이 있었단다, 하고 아이의 시각에서 조근조근 말해 주는 엄마였다.

그 다음 그림작가 김재홍은 제주도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담아낼까, 이것도 좀 궁금했다. 물론 김재홍의 작품이야 세상이 떠들썩할 정도로 알려진 것들이 많으니 굳이 걱정할 이유가 없지만 내 눈으로 확인한 제주도의 아름다움을 정말 그대로 아름답게 담았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제주도 해안도로를 달리며 해수욕장마다 풍광과 물빛이 제각각인 것을 보고 놀라웠는데 더 놀라웠던 건 협재 해수욕장의 물빛이었다. 새하얀 모래와 하늘색 물빛의 조화. 이건 사진이나 그림으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진과 그림에 담으면 아름다움이 훼손될 것 같았다. 그런데 김재홍 작가의 그림을 보면서 협재 바다의 아름다움을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무척 반가웠다.

둘, 인문학 비슷이 접근하기
 
『주강현의 제주도 이야기』는 『우리문화의 수수께끼』라는 책의 저자로 알려진 민속학자 주강현이 들려주는 제주도의 역사와 문화, 자연과 인간의 삶을 담은 인문서이다. 바람의 섬, 화산과 오름의 섬, 곶자왈의 섬, 풀과 나무의 섬, 표류의 섬, 돌담의 섬, 신들의 섬, 궨당과 삼촌의 섬, 고팡과 정낭의 섬, 귤의 섬, 테우리의 섬 등 제주의 특징을 잡아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어느 곳에서든 사람이 궁금하다. 그 사람이 그곳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것을 확인해야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사는지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자연과 문화, 역사에 대해 알고 나면 그 사람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주강현의 책은 바로 그런 점을 알려주는 책이다. 예로 신들의 섬에서는 영등신, 설문대할망과 같은 신들이 1만8천 명이 있으며, 육지에 비해 무속이 잘 보존되어 올 수 있었던 이유를 소개하고 유교문화 속에서 무속이 받은 탄압을 알려 준다. 조선시대 제주민들의 무속을 막아보려 했던 이형상 목사는 무속신당과 절 130여 개소를 파괴하고 무당 400여 명을 귀농시키기도 했던 역사적 사건이 소개되어 있다.

또 제주도에서 음식점, 과일 가게, 버스, 극장, 학교에서 만나는 남자를 삼촌이라고 부른다. 이는 ‘모두가 궨당’이라는 공동체 의식에서 나왔다고 한다. 아버지 쪽이나 어머니 쪽이나 모두 한 공동체로 여겨 모두가 삼촌이 되는 것이다. 처궨당 시궨당 모두 하나의 궨당이 된다고 한다. 이렇게 되다보니 사돈끼리 또 겹사돈이 되는 경우도 많고 친가와 외가를 구분하지 않는 것이 섬에서의 생존전략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제주도의 겉만 보아서는 알 수 없는 내용들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지난 제주도 여행에서 들었던 이야기다. 제주도 토지의 절반 이상이 중국 부자들에게 매입되었다고 한다. 대자본이 들어오면서 샅샅이 개발되고 있다고 한다. 개발은 경제적 이득을 따르고, 결국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 줄 향락문화만 줄줄이 제주도에 들어설 것이라고 한다. 정부는 전략적 기지로 군사시설을 만들고, 기업가들은 경제적 이윤을 위해 향락문화를 만들고, 사람들은 제주도를 소비한다.
마음으로 간절히 빈다. 바람과 파도가 빚어낸 아름다운 제주를 가만히 둘 수는 없을까?
한양하 | 진주에서 어린이 문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어린이 시도 기웃, 그림책도 기웃. 동화도 기웃. 그러다가 이제 좋은 동화 한 편 쓰고 싶다는 꿈을 꾸며 스스로를 격려하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