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7월 통권 제1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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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함께 읽기]
제주도에는 아파트가 있다

박미연 | 2014년 07월

제주도 가 본 사람 있나?

나의 뜬금없는 질문에 교실이 나지막이 웅성웅성했다. 24명 중의 4명 정도 가족들과 제주도에 가봤다고 한다. 왜 아직 제주도를 안 가봤느냐니까 아이들은 한 입처럼 너무 멀고, 돈이 없어서란다. 아직도 그렇다. 김해에서 자동차로 북쪽을 향해 여러 시간 달릴 수도 있고, 서너 시간 걸리는 바닷가에서 풀 빌라를 빌려 놀 수는 있어도,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제주도는 멀고 비싸서 못 가는 곳이다.

우리 반 아이들은 제주도 하면 떠오르는 게 바람, 하르방, 한라봉, 초콜릿이란다. 생뚱맞게 초콜릿은 왜냐니까 제주도 갔다 오는 사람은 모두 초콜릿을 선물로 들고 온단다. 이긍, 너희한테 제주도 하면 떠오르는 게 다금바리, 옥돔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요 녀석들아!

제주도가 비행기나 배를 타고 가야 한다는 것 때문에 비싸고 멀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편견이다. 꼭 저가 항공이 아니더라도 날짜별로 시간대별로 살펴보면 김해에서 서울까지 가는 기차표보다 저렴한 비행기 표도 있다. 더욱이 제주도는 김해에서 비행기로 삼십 분이면 도착하는 곳이다. 배는 물론 이야기가 좀 다르지만 말이다.
 
우리 아이들과 이야기하면서 수학여행이 경주의 참 멋을 망쳐버렸듯이, 사람들의 편견이 제주도의 참 멋을 망쳐버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이랑 ‘제주도’ 하면 늘 공식처럼 떠올리는 설문대할망이나 김만덕 말고, 좀 다른 제주도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다.

“대한민국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북으론 60만 대군이 버티고 서 있다. 뛰어봤자다.” 이 말은 영화 속 유명한 대사다. 영화 속에서 범죄자를 쫓던 형사가 한 말인데, 그래서 대한민국 안에서는 범죄자들이 결국 잡힐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하물며 제주도는 얼마나 감옥 같은 곳이었을까.

『우리 조상의 유배 이야기』에서는 유배란 무엇인가 하는 정의를 내리는 첫 장에서부터 제주도가 언급된다. 조선 시대에는 주로 제주도로 유배를 보냈는데, 제주도는 한양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고, 사방이 푸른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서 유배지로는 안성맞춤이었다고 한다. 가족이 몰래 가서 멀리서 한번 보고 올 엄두도 낼 수 없는 그런 곳이란 말이다.

지금 우리 반 아이들뿐만 아니라 나조차도 유배지에 대한 감각이 없다. 전라도로 유배 가면 전라도에서 살면 되고, 제주도로 유배 가면 제주도에서 살면 되지, 그게 왜 벌이 되냐는 것이다. 특히 제주도 같은 관광도시에 살도록 해 주면 감사할 일이지. 나와 우리 반 아이들은 『우리 조상의 유배 이야기』를 같이 읽고서야 우리가 얼마나 무식한 소릴 해댔는지 알 수 있었다. 제주도는 한번 들어가면 그 땅에서 쉽게 나올 수 없다. 목숨을 걸지 않으면 탈옥(?)도 쉽지 않은 곳이다. 그래서 가장 무거운 죄를 지은 자들이 가는 곳이 제주도였다.

우리 반은 요즘 새로운 놀이에 흠뻑 빠졌다. 조선 시대 형벌 놀이다. 누가 욕했다는 말이 들리기라도 하면 태형에 처해요, 다른 반으로 유배를 보내버려요, 하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형벌은 다 말한다. 그중 가장 인기 있는 형벌은 자기 자리에서 꼼짝 못 하도록 하는 위리안치에 처하는 것이다.

사람 사는 똑같은 땅입니다

나는 1996년 가을, 고등학교 2학년 때 수학여행으로 제주도에 처음 가 봤다. 가기 전 설레는 마음은 말할 수 없었지만 도착한 후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비행기로 먼저 제주도에 도착한 우리 앞반은 용두암에서 다음 비행기로 올 뒷반 친구들을 기다렸다. 그런데 제주도에 도착하고 보니, 세상에나 제주도에 아파트가 있지 않은가? 긴 머리를 흩날리며 말을 타고 달리면 한쪽은 저 멀리 한라산이 아련히 보이는 드넓은 벌판이, 한쪽은 끝을 알 수 없는 바다가 펼쳐져 있어야 하는 제주도에 아파트라니! 어린 마음에 제주도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정작 보고 나니 내가 사는 중소도시와 다를 게 없어서 무척 실망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선생님이 나의 이런 얘기를 들으시고는 “제주도도 사람 사는 똑같은 땅입니다. 선생님처럼 생각하는 거나 서울 사람들이 서울 아닌 곳을 모두 시골이라 하는 거나 뭐가 다르겠습니까.”라고 점잖게 말씀하시는데 부끄러웠다. 전설, 신화, 인물 말고 뭔가 다른 특별한 게 있을 거라는 생각에 우리는 제주를 환상의 섬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
 
놀멍 놀멍 잘 구경하다 가십시오

옛날부터 유배지였고 오랫동안 고립된 이런 제주도에 사는 사람들은 어땠을까? 『바람을 품은 섬 제주도』는 제목처럼 제주도를 품은 책이다. 제주도의 역사와 문화와 생활, 자연, 정신을 아울러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제주도를 이야기하고 있다. 땅에 난 풀, 무덤을 둘러싼 돌담, 어느 것 하나 그냥 허투루 있는 게 아니다. 그 내용의 방대함에, 그 내용의 귀함에 우리 반 아이들에게 뭐부터 이야기를 끄집어내 줘야 할지 할 말을 잃었다.

제주도 사람들은 섬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오랫동안 폐쇄적인 공간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면서 언어도, 생활도 육지 사람과 약간은 다른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 육지 사람들이라면 언감생심 생각도 못 해볼 안거리, 밖거리라는 집 구조는 남녀구분이 아닌 세대별 구분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생활 방식들은 제주 사람들이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살아오면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합리적인 방식들이다.
책표지에 노랗게 펼쳐진 유채꽃밭 사이의 올레에 짐을 지고 걸어가는 할아버지와 물허벅을 지고 지나가는 비바리들은 더없이 평온함을 준다. 그 긴긴 시간을, 그 많은 이야기를 모조리 감싸 안고 묵묵히 품고 있는 제주도다. 그런 제주를 우리는 유흥 관광지로 즐기기보다 굴러다니는 돌, 풀 한 포기, 바람 한줄기도 꼼꼼히 되새기며 놀멍 놀멍(천천히) 잘 느껴야겠다.

일평생 소원인 제주도 여행


나에게 제주도는 굉장히 마음 아픈 곳이었다. 지금이야 여러 이유로 맞벌이 부부가 대부분이지만, 내 어린 시절 부모님은 넉넉지 않은 형편 때문에 맞벌이를 하셨다. 내가 아직 어렸던 어느 해, 아버지 형제 가족들이 모여 제주도 여행을 갔었다. 내 부모님은 맞벌이 때문에 시간을 못 낼 거라는 이유로 의사를 묻지도 않은 채 그들 가족끼리만 간 것이었다. 그 사건(?) 이후 어머니는 두고두고 ‘제주도’라는 단어만 나오면 그 얘길 하고 또 하시며 섭섭함을 감추지 못하셨다. 그 말을 듣고 자란 우리 남매에게도 제주도는 아무나 못 가는 머나먼 땅이었다.

나도 결혼을 하고 생각이 좀 돌아가게 되자 남편을 부추겼다. 옛날에는 서울사위 보면 서울사위가 라디오도 사 주고 컬러텔레비전도 사 줘 온 동네 자랑거리였다는데, 당신도 서울사위로서 자랑거리가 될 만한 뭔가를 좀 해야지 않겠느냐! 하여 친정 식구 모두가 제주도로 날아가게 되었다.
 
생전 뭔가 하고 싶다, 먹고 싶다, 본인들의 감정을 드러낸 적이 없던 분들이 “바다 밑에 들어가 볼 수 있는 곳도 있다던데….”라 말씀하시고, 관절염으로 아픈 다리를 힘겹게 끌며 한 곳이라도 더 구경하겠다고 다니는 모습에 마음이 짠했다. 그렇게 우리 부모님은 육십이 되어서야 제주도 땅을 처음으로 밟아 보셨다.

이제는 우리 모두 제주도에 대한 환상과 경계를 좀 풀면 좋겠다. 사람들 마음에서 큰 고민 끝에 큰마음 먹어야 다녀올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인접한 시, 도에 쉽게 놀러 갔다 오듯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또 유명한 관광지만 섭렵하고 오는 것이 아니라 좀 더 깊이 제주 생활에 빠져들어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여행지가 되면 좋겠다. 그래야 진정 제주스런 올레길 여행이 되지 않겠는가.
박미연 |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놀고 배우며 지냅니다. 아이들에게 엄마처럼, 언니 누나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편하고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무작정 어린이 문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보다 더, 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