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7월 통권 제1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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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 만드는 이야기]
모든 것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이효진 | 2014년 07월

나는 처음부터 어린이 책을 만드는 편집자가 아니었다. 한림출판사 영문팀에서 성인 대상 책을 주로 만들었는데, 한 지붕 아래 아동팀에서 나오는 책들이 매우 재미있어 보였다. 아기자기한 구성과 친절한 말투의 글, 화려한 그림들이 나를 사로잡았고, 이런 책이라면 만들면서도 신이 날 것 같았다. 특히 어린이 교양 책에 끌리던 중, 좋은 기회로 원하던 어린이 책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서 소개할 ‘질문쟁이’는 아이들에게 철학을 쉽고 재미있게 접하게 하자는 의도로 기획된 7권짜리 시리즈이다. 왜 자칫 어렵다고 느낄 수도 있는 철학이 주제일까?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누구인지 고민하는 것
 

우리 교양팀은 아이들이 궁금할 법한 삶의 전반에 대한 질문과 생각을 책으로 만들고 싶었다. 다소 막연할 수 있지만,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올바른 교훈이나 정답을 제시하고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닌, 아이들이 자유롭게 어떤 질문이든 던지고 자신만의 생각을 표현하게 해 주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철학’을 적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철학은 여러 면에서 굉장히 빈번하게 쓰는 말이지만, 무엇이라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는 쉽지 않다. 국어사전은 ‘철학(哲學)’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 그 정의의 범위가 넓고, 한 손에 잡히지 않아 한없이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는 철학이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철학보다 쉽고 우리 삶과 밀접한 것도 없을 것이다.

철학은 윤리 시간에 외우는 수많은 철학자들의 이름과 사상만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하는 중요한 분야가 철학이다. 대체로 아이들은 학과목을 따라잡고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그 전에 자신과 삶에 대해 잘 알고 시작하는 것이 앞으로 세상을 사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어린이 책과 철학을 어떻게 접목시켜야 할까?

프랑스 철학 교육에서 힌트를 얻다

책을 기획하면서 우리가 주안점을 둔 것은 뭔가를 가르치거나 배운다는 느낌이 들게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철학을 너무 어렵게 느끼게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중심을 잡고, 우선 국내에 있는 어린이 철학 관련 도서들을 조사했다.

프랑스 원서를 번역한 책들이 눈에 많이 띄었는데 우리 대상 독자 연령보다 난이도가 높아 보였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낯설어 할 것 같았다. 특정한 개념에 대해 다소 추상적인 질문과 개념 설명을 하는 책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에 대해 더 고민해 보니 프랑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자유롭게 질문하고 토론하는 문화가 발달해 있어 추상적인 개념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고 자기 생각을 확장하는 것이 우리 아이들보다 익숙한 것 같았다. 프랑스와 우리의 교육 환경이 다르기에 우리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야 했다.

그러던 중 우리 의도와 맞는 프랑스 원서를 찾았다. Les questions des tout-petits sur la mort와 Les questions des tout-petits sur l'amitie였다. 이 책들은 각각 죽음과 우정에 대한 질문을 6가지씩 담고 있다. ‘사람은 왜 죽나요?’ ‘어차피 죽을 텐데 왜 살아야 하죠?’ ‘언제 죽을지 알 수 있나요?’ ‘나만을 위한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요?’ ‘친구의 잘못을 모른 척해도 될까요?’ 등. 아이들이 궁금해 할 만한 질문들을 던지고, 질문마다 관련된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서 아이들이 질문의 답을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구성이었다.
 
더 좋았던 건, 이야기 앞뒤에 한 가족이 등장하는 만화였다. 만화라면 거의 모든 아이들이 좋아하지만 이 책이 만화를 활용하는 방식이 더 좋았다. 이야기의 앞부분 만화에서는 일상에서 충분히 있을 법한 에피소드를 보여 주고, 그 안에서 아이의 질문이 생겨난다. 어른들은 직접적으로 질문에 대한 답을 말하는 대신, 아이의 질문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 뒷부분에 나오는 만화에서는 그 이야기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충분히 나누고, 아이가 또 다른 질문을 할 수 있게 여지를 준다.
 
이런 방식이라면 한국 아이들도 철학을 재미있고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원서 출판사와 바로 계약을 했고, ‘질문쟁이’라는 시리즈 명과 어울리게 본문 안의 여러 개 질문 중에서 제목을 따 『사람은 왜 죽나요?』와 『내 단짝 친구는 누굴까요?』를 출간했다.

『사람은 왜 죽나요?』와 『내 단짝 친구는 누굴까요?』는 기획 의도와 짜임새가 시장의 요구와 맞아 좋은 반응을 일으켰다. 특히 『사람은 왜 죽나요?』는 죽음과 관련한 세계의 흥미로운 이야기들과 멋진 일러스트를 통해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죽음이라는 소재를 낯설거나 무섭지 않게 표현한 점이 좋았다는 평이다.
『내 단짝 친구는 누굴까요?』 역시 ‘왜 아무도 내 친구가 되려고 하지 않을까요?’ ‘친구가 멀리 떠날 때 어떻게 하면 슬프지 않을까요?’처럼 아이들이 현실에서 직면해 있는 ‘관계’에 대한 다양한 문제들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두 권을 모두 읽은 부산의 한 초등학생이 회사로 손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자기와 친구들의 궁금증을 풀어 주어서 매우 좋았고,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때만큼 편집자로서 책 만드는 보람을 느낄 때가 있을까?

창작 도서를 고민하다

삶에는 죽음과 우정 외에도 이야기해야 할 많은 화두가 있다. 원래 의도대로 우리 창작물을 붙여 나가야 했다. 책의 구성이나 형식은 앞의 두 권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아이들이 궁금해 할 만한 주제가 또 무엇일까 고민했다.
여러 가지 주제들 중 ‘거짓말, 욕심, 두려움, 꿈, 규칙’을 골라 5권을 만들기로 했다. 각 주제에 맞게 뽑은 질문들을 4가지씩 추려 목차를 구성했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멋진 그림을 그려 줄 작가들을 섭외할 차례였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작가 섭외는 순탄치 않았다. 이미 출간된 두 권과 형식을 맞춰야 한다는 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인 작가에게도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경험이 많은 작가들은 더 주저했다. 또 그림책 형식의 이야기 부분과 더불어 이야기 앞뒤 만화의 내용 구성과 여러 캐릭터 대사까지 잡아야 하니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다행히도 몇몇 작가들이 시리즈의 기획 취지에 공감해 줘 작업이 진행될 수 있었다.

거짓말, 욕심, 두려움, 꿈, 규칙을 이야기하는 데서도 교훈적이거나 직접적으로 가르치려 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이들 스스로 자연스레 생각을 깨우치게 하는 것이 우리 목표였다. 문제는 그런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꺼내는 일이었다.

작가들이 창작으로 쓴 글은 이야기 자체는 재미있어도 끝 부분에 가서는 교훈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이 한국 제도 교육의 특징인 걸까? 어떤 이는 프랑스나 미국에서는 아이들에게서 무언가를 꺼내려는 교육을 하고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자꾸 넣으려는 주입식 교육을 한다고도 말한다.

어려운 일이었지만 우리 시리즈의 작가들은 오랜 시간 고심 끝에 좋은 글들을 써 주었고, 다양한 이야기들을 찾아 정성스럽게 다듬어 주었다. 몇몇 권의 그림 작업은 스타일이 다른 2명 내지는 4명의 작가를 섭외해 4개 이야기가 독특한 분위기를 내도록 했다. 물론 만화 작가도 따로 섭외해 밝고 재미있는 느낌을 최대한 살리려고 했다.

현재 ‘질문쟁이’ 시리즈는 외서 2권과 창작 5권을 합해 죽음, 우정, 거짓말, 욕심, 두려움, 꿈, 규칙 총 7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제는 우리 창작 도서에 대해 거꾸로 외국 출판사들의 검토 문의가 들어오고 있어 자랑스럽다.

번역서로 시작해 우리 창작물로 시리즈를 이으면서 힘든 점도 많았지만, 아이들이 철학을 쉽고 재미있는 것으로 생각하면 좋겠다는 취지가 오롯이 전달된 것 같아 기쁘다. 세상은 갈수록 어렵고 복잡해지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를 지키는 일은 거침없이 자유롭게 질문하고, 다양한 생각을 표현하며 나누는 일일 것이다.
이효진 | 한림출판사 아동교양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어린이 책 만드는 일이니 마냥 쉽고 재미있을 거라 생각하고 덤벼들었는데… 하루하루 그 어리석었던 생각을 곱씹으며 고군분투 중입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