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7월 통권 제1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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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책 둘러보기]
또 다른 나를 찾는 여행

한미화 | 2014년 07월

호러 작가 스티븐 킹의 작품 중에 「스탠 바이 미」라는 아름다운 단편이 있다. 작은 시골 마을을 무대로 네 명의 십대 소년인 고디, 크리스, 테디, 번을 주인공으로 한 성장 이야기다. 소년들에게는 사연이 있다. 고디는 형이 죽은 후 부모의 무관심 속에 자라고 있고 크리스는 알콜 중독자 아버지와 살고 있다. 테디는 전쟁 영웅인 아버지에게 맞아 귀를 다쳤지만 여전히 아버지를 존경하고 번은 착하지만 겁 많은 뚱보다.

별 볼일 없는 소년들은 우연히 실종된 아이의 시신이 있다는 장소를 알게 되고, 그 시신을 찾으러 모험을 떠난다. 대단한 사건이 일어난 건 아니지만 이 작은 여행이 끝나고 마을로 돌아왔을 때 아이들은 뭔가 달라져 버렸다.

이처럼 가족 문제가 있거나, 방황을 하거나, 소극적인 아이들이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시간을 보내며 훌쩍 커버린 내용을 담은 책이나 영화를 종종 만난다. 구태여 문제가 없더라도 성장기에 부모 곁을 떠나 홀로 있는 경험, 그때 겪고 만난 사람과 자연이 아이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라 계기가 있어야 한다. 청소년의 여행이란 바로 이런 계기가 아닐까 싶다.

청소년이 직접 쓴 여행서

젊은 시절 여행은 세상 공부다. 18세기 영국 상류층은 젊은이들을 교사와 함께 이탈리아와 프랑스로 여행시키는 일명 그랜드 투어를 통해 엘리트로 키웠다. 근대 문물을 수용하기 위해 우리 역시 구한말 일본에 신사유람단을 파견했는데 비슷한 이유였다.

그런데 이런 목적에 맞는 청소년 여행서를 만나기 쉽지 않다. 인문학적 여행서가 많지 않은 까닭도 있고 여행서의 주 독자가 2~30대 여성이라 감성적 여행 에세이만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책은 세계 지리, 한국 지리, 세계사, 한국사를 키워드로 삼아 지식을 전달하는 부교재 같은 책이 대부분이다.
 
우리 청소년의 현실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청소년이 주체가 되는 여행은 『길은 학교다』를 쓴 이보라처럼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고 장기 여행을 떠나지 않는 한 불가능해 보인다.
출간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다영이의 이슬람여행』은 청소년이 주체가 되어 낯선 경험을 하고 견문을 넓힌 여행서로 손꼽을 만한 모범적인 책이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정다영은 겨울방학을 이용해 가족들과 함께 이슬람 지역을 여행하고 책을 썼다.

다영이도 그저 마음이 편한 건 아니어서 친구들은 보충수업을 받고 공부할 시간에 혼자 ‘놀러’ 가도 되나 싶어 내심 불안에 떨었고 사회 과목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고 한다.

『다영이의 이슬람 여행』이 청소년에게 유용한 이유는 단지 팔레스타인, 요르단, 터키, 이집트를 돌아본 여행서가 아니라 이슬람의 역사를 잘 소개한 세계사 책으로도 읽을 수 있어서다. 다영이의 표현대로 우리가 이슬람 역사를 이토록 모르는 건 모두 시험에 잘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유럽에 비해 이슬람에 관해서는 너무하다 싶을 만큼 교과 과정의 비중이 적다. 이러니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거나, 이슬람교가 피정복민들에게 포용적이었다는 사실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세계사는 이슬람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7세기 중엽 아라비아 반도에 이슬람교가 출연한 이래 등장한 셀주크 투르크나 오스만 투르크는 기독교 세력을 위협한 거대 제국이었고 기독교와 이슬람 국가 간의 십자군 전쟁은 중세 암흑기였던 유럽에 큰 영향을 미쳐 훗날 르네상스 운동을 낳았다.

다영이가 여행을 했던 시점은 9.11 테러가 발생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그럼에도 다영이는 이슬람 세계를 편견으로 대하지 않고 균형 잡힌 시선으로 바라보고, 자신이 몰랐던 진실은 관련 서적을 읽으며 꼼꼼하게 살핀다.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의 비극이 태동한 역사적 근원이 무엇인지를 알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여행지의 경험 때문이다.

다영이와 가족들은 버스를 잘 못 타는 바람에 팔레스타인 자치구인 웨스트뱅크에 가게 되었고 거기서 자신들이 살던 땅을 유대인들에게 빼앗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이처럼 여행지에서는 실수조차 경험과 공부로 남는다. 팔레스타인들의 분노와 억울함을 직접 대면한 다영이는 이스라엘 건국이 아랍인과 유대인에게 이중 약속을 한 영국의 얕은 술수 때문임을 알게 되고 이슬람 세계를 바라보는 사고의 폭 자체를 넓힌다.

흔히 여행만 하면 견문이 트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공부가 없으면 보이지도 않고 볼 수도 없다. 이 점에서 책은 제대로 여행하는 법에 관해서도 좋은 교과서 노릇을 한다. 과거보다 청소년들이 세계 여행을 할 기회가 많아졌지만 제대로 보려면 다영이처럼 열심히 참고자료를 읽고, 성실하게 기록하고 탐구해야 한다.

다영이는 여행지에서 보고 느낀 걸 일기 형식으로 매일 기록하고, 더 깊이 알고 싶을 때마다 아버지에게 책을 추천받았다. 여행지에서 느낀 궁금증을 풀기 위해 노엄 촘스키, 이희수, 정수일, 헤르도토스 등의 책을 찾아 읽었고 이를 자신의 여행 일기와 함께 정리하며 사고를 확장해 간 결과물이 바로 『다영이의 이슬람여행』이다.

길 위의 문학

청소년 소설로 눈을 돌리면 여행이란 테마는 주로 길 위의 문학으로 흡수된다. 주인공인 청소년은 피치 못할 이유로 가출을 하거나 방황한다. 그러다 길 위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가족과 학교라는 울타리를 넘어 현실을 경험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것이 가출이든 도망이든 청소년 소설 속의 여행은 일정한 틀 속에서 떠남과 돌아옴을 보여준다.

왜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길 위에서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보았는지, 때로 돌아갈 용기가 없어 자꾸 도망치려 하지만 결국 아이들은 돌아온다. 본디 여행이란 돌아올 것을 기약하고 떠나는 일이다. 청소년 소설 속에 담긴 떠남도 마찬가지다. 떠나는 것이 용기라면 돌아오는 것 또한 용기라는 걸 보여주는 것까지가 청소년 소설의 몫이다.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는 저마다 사연을 지닌 세 명의 청소년이 집을 떠나 겪는 우여곡절을 담았다. 여기에 할아버지 한 분과 개 한 마리까지 합세하여, 이들의 여행은 좀 왁자지껄하고,영화로 치자면 사운드가 빵빵한 로드 무비처럼 읽힌다. 베스트셀러 『7년의 밤』과 『28』로 너무도 유명해진 정유정의 초기작으로 작가 특유의 문체와 힘을 맛보는 재미도 있다.

정유정 작가의 소설 속에 늘 등장하는 요소들, 예를 들면 정신병원, 사이코패스, 무시무시하게 큰 개, 불가항력의 운명, 심지어 지루하다 싶은 도입부까지 이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정유정은 스티븐 킹의 소설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그 흔적 또한 찾을 수 있다. 주인공들이 여행 중 강을 가로지른 기찻길을 걷다가 죽기 살기로 도망치는 긴박한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스티븐 킹의 「스탠 바이 미」와 겹친다.

배경은 1980년대. 중학교 2학년인 준호는 사고를 당한 친구 대신 신안군 임자도까지 은밀한 임무를 띠고 가야 한다. 운동권이었던 친구의 형이 도망치는 걸 도와야 하기 때문이다.

한시가 급한 준호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개장수의 딸 정아, 주조장 집 아들 승주, 은혜 병원을 탈출한 어부할아버지 그리고 루스벨트라는 덩치 큰 개까지 따라붙어 준호의 발걸음을 늦춘다. 설상가상으로 덩치가 큰 개 루즈벨트가 일행을 쫓아 다녀 버스나 기차를 타지도 못하고 국도와 산길을 걸어 죽을 고생을 하며 여정을 이어간다.
 
혈기 왕성한 십대인지라 때로 치받는 일도 생기고 격하게 싸우기도 하지만 서로를 배려하고 종내는 속내도 털어놓는다. 정아는 사이코패스 같은 아버지를 피해, 맞고 사는 엄마로부터 떨어져 자신의 인생을 계산해 볼 시간이 필요했고, 마마보이 승주는 엄마의 억압에서 도망치고 싶었고, 준호는 말없이 떠나버린 아버지가 그립고 재혼한 엄마가 보기 싫어 어디든 가고 싶었다.

십대는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아도 혹은 사랑이 없어도 병들고 아프다. 아이들은 친구를 통해 자신의 처지를 비춰보고, 비바람 부는 황톳길을 걸으며 ‘인생의 뜨거운 맛’을 제대로 맛보았다. 이 여행은 아이들에게 무엇이었을까. 평생을 간직할 인생의 비밀이고 무엇보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믿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다. 이제 아이들은 그 비밀을 떠올리며 그 비밀이 만든 소망을 꿈꾸며 자랄 것이다.

김혜정의 『하이킹 걸즈』 역시 여행을 통해 성장의 메시지를 전한 작품이다. 사고를 친 소녀 두 명이 소년원 대신 청소년 재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실크로드를 도보한다는 설정이다.
 
반 친구를 때려 전치 12주의 부상을 입힌 ‘개주먹’ 은성이와 소매치기를 일삼는 보라, 이 두 소녀의 가이드 역할을 맡은 과거 비행소녀 미주언니가 주인공이다. 아빠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은성이는 놀림 받는 게 싫어서 아이들을 손봐주다가, 보라는 왕따를 당하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으면 물건을 훔치다가 결국 비행소녀가 되었다.

은성이와 보라는 도보여행을 완수하지 못하면 소년원에 가야 한다. 상황은 우울하지만 시종일관 아이들의 입장에서 수다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김혜정 작가 특유의 재담이 살아 있는 작품이다. 다혈질 은성이의 좌충우돌 소동을 따라가다 보면 1200킬로미터 실크로드 여행이 단숨에 끝난다.

미주언니의 말처럼 “실크로드도 걸었는데 앞으로 못 할게 뭐가 있냐” 하는 자신감을 얻은 것만으로도 여행은 값지다.

여행 작가 오소희의 말처럼 “옆집에 놀러 가서 집만 보고 오는 사람은 없다.” 여행지에 가서 사진만 찍는다면 구태여 거기까지 갈 필요가 없다. 중요한 건 삶을 대하는 태도이고 낯선 이들과 만날 줄 아는 열린 자세다. 다영이, 준호, 승주, 정아도, 은성이와 보라도 모두 길에서 이런 걸 배웠다.
한미화 | 출판 칼럼니스트입니다. 책과 출판에 관해 글을 쓰고 방송도 합니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 『책 읽기는 게임이야』 『잡스 사용법』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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