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통권 제1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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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 만드는 이야기]
자연 그림책에 빠져

김명숙 | 2013년 10월

 나는 그림책에 빠져 살다가 그림책을 만드는 기획 편집자가 되었다. 창작 그림책이 아닌 자연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한 건, 대부분 편집자들이 동화나 창작 그림책만 만든다 하여, 3년 넘게 묵힌 글과 그림이 내게 떠밀려진 것으로 시작했다. “선배님, 어려운 숙제 맡으셨네요!”란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만 해도 자연 그림책은 창작 그림책처럼 이야기가 없고 감동도 없고 잡다한 지식만 나열한다고 비난하며 폄하하기까지 했던 때다. 물론 지금도 픽션과 논픽션의 갈래에서 자연 그림책은 늘 혼돈의 지점에 서 있는 듯하다.

 어쨌든 내가 좋아서 하나씩 천천히 만들다 보면 감동이 전해지지 않을까, 생각하며 산으로 들로 늪으로 갯벌로 줄곧 쫓아다녔다. 그러고는 흔했던 생명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걸 절절하게 알면서부터는 점점 마음이 더 급해졌다. 더 이상 볼 수 없어지기 전에 충분히 전하고 싶어서.

 흔하지만 관심을 덜 받는 무지랭이 자연 이야기

 간절하여 두근거리며 기획 사냥을 하며 얻은 것이, 4년 전에 기획한 자연 생명 한살이 시리즈 ‘물들숲 그림책’이다. 백과사전식 말고 종합선물 세트도 말고 가장 기초인 한살이부터 만들어보자, 였다. 사람 둘레에서 더불어 사는 자연 생명도 얼마나 힘들게 살아남아 자기 몫을 다하는가, 또렷이 보여주고 싶었다. 자연 생명도 마찬가지로 우리 곁에서 끊임없이 소리 없는 외침으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며 잘 버티고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소중하고 고맙다는 걸 우리 아이들과 같이 느끼고 싶었다. 성장과정 그림책 출발이 딱 그 마음이었다. 자연이 곧 내 아이들을 살리는 터전이니까.

 키가 크고 덩치가 크고 지식이 남보다 많아지면 성장일까. 키가 크지도 않고 덩치가 더 커지지도 않고 사람이 생각하는 지식도 없는 것 같지만,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잘 먹고 잘 싸며 커가는 자연 생명이 있다. 사람 눈에 그리 좋아보이지도 않고 하찮아 보이는 보잘 것 없는 자연 생명이 스스로 어디에서나 늘 자라고 있다. 벼나 강아지풀 등은 열매를 맺는다. 열매는 다시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다. 자연은 그저 살아남아서 번식을 하고 종족을 이어가가면서 성장함을 보았다. 우리 둘레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은 죽고 살기를 거듭한다. 사람도 매한가지다. 하지만  사람보다 풀, 나무, 곤충, 살 자리를 잃어가는 젖먹이동물이 훨씬 욕심 없고 경건해 보인다. 

 누구나 자란다. 며칠 전 우리나라에서 77Kg짜리 호박을 땄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재미가 있고, 자라는 과정이 한눈에 보이고 변화가 많은 생물이 필요했다. 누구나 잘 아는 것 같지만 속을 보면 잘 모르는 생물을 찾았다. 그래서 누구나 잘 아는 곤충에서 시작했다. 자연에서 곤충은 아이들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니까. 개미를 잡고 놀고 개구리를 보는 아이들 눈은 반짝이다 못해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집중력 최고다.

 완전탈바꿈 하는 무당벌레가 먼저 우리 시리즈 섭외 대상이었다. 사과나무에서 진딧물을 먹는 검정 바탕에 빨강 무늬를 한 멋진 무당벌레, 종류도 그렇게 많은지 놀랍기만 하다. 흔하면서도 잘 모르는 물총새, 물에서 살다 모기 애벌레를 먹고 살다 뭍에서 사는 잠자리, 지천으로 널브러져 하나도 버릴 게 없는 참나무, 궁한 살림에도 가장 영양 으뜸으로 누구나 키우는 덩굴식물의 대표 호박, 벌레가 있으면 반드시 그물을 치며 숨죽여 기다리는 거미, 사람이 일부러 쌓아보아도 다시 무너지고 마는 돌탑을 주둥이로 정교하게 쌓아 자식을 기르는 어름치…. 다 안다고 생각하여 만만하게 보이는 자연 생명들이 놀랍고 신기하기만 하다.

 준비된 책부터 한 권 한 권

 2011년 가을, 권정선 화가의 『참나무는 참 좋다!』 그림이 계기가 되어 비룡소에서 이 시리즈 출간 작업이 시작되었다. 『참나무는 참 좋다!』의 주인공 참나무는 우리나라 산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다. 우리는 그저 도토리묵을 먹을 뿐이다. 하지만 참나무는 성장의 의미를 담고 있는 나무이고 열매인 도토리는 사람뿐만 아니라 다람쥐, 멧돼지와 같은 야생동물을 먹이로 키우는 나무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소나무처럼 대접을 받는 나무도 아니다. 또한 사람들이 정말 나무, 참나무라고 부른다. 그래서 참나무는 아이들에게 볼거리 읽을거리를 무수히 제공한다.



『호박이 넝쿨째』는 그야말로 넝쿨째 굴러온 호박 한살이 이야기다. 호박은 흔히 심어 된장국, 호박죽, 호박떡을 만들어 먹는 덩굴식물이다. 아이들 책에서 덩굴식물 하면, 나팔꽃을 많이 다루었지만 우리는 우리 곁에 가장 흔하고 많이 먹는 호박을 골랐다. 아이들이나 어른이 마트에서 사먹기만 할뿐 정작 호박 씨 하나가 어떻게 자라 얼마나 맺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씨 한 톨이 수많은 호박을 얻게 하고 얼마나 질긴 생명을 가지고 있는지 말하고 싶었다. 화가는 호박을 키워서 기르며 그림을 그렸고 글쓴이나, 화가는 자연그림책 첫 데뷔작이기도 하다.

『알록달록 무당벌레야』는 처음부터 책을 만들려고 일부러 취재한 것은 아니었고 늘 취재를 하던 것 가운데 만난 생명이다. 화가는 살고 있는 뒤뜰에서 무당벌레 성장과정을 모두 보게 되고 사진으로 기록한 것이 책으로 이어졌다. 무당벌레 취재를 보고 성장과정 그림책 기획의도와 가장 걸맞다고 생각했다. 작고 흔하고 색깔이 예뻐서 아이들이 무서워하지 않는 곤충이지만 알고 보면 진딧물을 잡아먹는 육식성동물인 셈이다. 커다란 무궁화나무에 진딧물이 엄청 꼬인 것을 무당벌레 애벌레들이 말끔히 먹어 치워 무궁화나무가 깨끗한 꽃을 피우는 것을 작가와 함께 보았다.

『거미가 줄을 타고』는 아이들의 호기심 대상 우선 순위가 거미임을 알게 돼 진행한 책이다. 풀숲이나 방 안, 공장 한 귀퉁이에서도 볼 수 있는 거미는 독특하게 줄을 타고 옮겨 다녀서 아이들에게는 더 신기한가 보다. 취재를 다니면서 어느 땐가 식당 바깥벽을 무당거미 그물이 온통 둘러싼 것을 보았다. 식당 주인 말에 따르면, 모기향이나 파리를 잡는 끈이나 약이 필요 없다고 했다. 모기를 파리 같은 귀찮은 벌레들이 거미그물에 다 걸려서 식당 안은 벌레가 없다고 했다. 거미는 다리가 여덟 개이고, 거미줄을 타고 옮겨 다니고 아이들이 싫어하는 모기나 파리를 잡아먹어 아이들 눈을 홀리기에 충분하다.

『어흥어흥 어름치야』 오래전부터 산란탑을 쌓는 물고기란 말을 들어왔다. 도대체 어떻게 돌탑을 쌓는지 궁금하여 물고기 박사에게도 물어보고 오래된 필름으로 다큐멘터리도 보았었다. 흔했던 물고기였다. 적어도 동강이 개발되기 전에는. 그곳 사람들을 물고기를 일기예보 보물고기라고 했으니까. 지금은 흔하거나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물고기는 아니지만 아이들에게는 돌탑 쌓는 일이 늘 즐거운 놀이이기에 관심 대상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물고기 전문가가 어름치 이야기를 써 보겠다는 제안을 했기에 예전에 보았던 다큐멘터리 필름을 다시 돌려보며 공부하고 만든 책이다.

『사과가 주렁주렁』은 가을 끝에 곧 나올 책이다. 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 나올 것 같다. 가을에 우리에게 주는 멋진 선물이 될 것 같다. 이어서 ‘새색시처럼 어여쁜 각시붕어’는 윤봉선 화가가 직접 키우며 그리고 있다. 개울가 바위 앞에 파랗게 당당히 서 있는 ‘물총새’ 이야기도 앞으로 나올 기대작이다.

우리 자연 생명을 쓰고 그리는 이의 소중함

 자연 그림책은 취재와 답사를 꼭 거쳐야 한다. 사계절 동안, 한두 번이 아니라 무수히 보고 또 봐야 보인다. 또한 수많은 모습을 잘 간추려 가장 표본으로 나타내야 하는 연출도 필요하다. 자연 생명을 그려내기는 정말 어렵다. 시간도 오래 걸리다 보니, 잘 아는 선배 화가가 후배들을 자주 만나 서로 도와주는 길을 찾는 것이 필요했다. 한 달에 한 번 만나 서로 관찰한 것을 그려오는 일부터 시작해서, 답사를 같이 다니며 어떤 장면을 어떻게 담아 와야 그림 재료로 가능한지, 무엇을 봐야 제대로 그 생명의 특징을 오롯이 그려낼 수 있는지를 서로 전하고 배워야 했다. 10년이 다 되도록 그런 만남을 이어가서 얻은 것 가운데 하나가 ‘물들숲 그림책’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현장에서 온몸으로 뛰어다니며 거의 그 생명과 일체감으로 사는 ‘꾼’들은 말할 것도 없이 소중하다. 어린이 문학을 공부하면서부터 알았던 친구와 어릴 적 자연에서 뛰놀던 기억을 이야기하다 보면 서로 감동으로 마주할 때 글감을 붙잡은 것도 놓칠 수 없다. 무궁무진한 자연의 기획 선물에 내가 발맞추지 못하고 게으름 피우며 살아가는 것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매미가 허물만 남긴 채 뒷산으로 날아가 아직도 울어대고 비비추가 연보랏빛을 쏙 내밀고 남보랏빛 나팔꽃이 뒤꼍에서 나를 기다리고 다홍빛 백일홍 사위질빵이 곳곳에 피어나 이젠 끊임없이 내 곁에서 말을 걸어온다. 나 잘 버티며 살고 있다고, 그러니 눈 맞추자고 한다. 그래서 인사하고 잘 크고 있다고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진한 애정을 보낸다.
김명숙 | 도서관에서, 공부방에서 엄마와 아이들이 모여 동화책을 읽다가, 어린이 문학 공부를 했어요. 동화 습작을 하다 『어린이문학』 잡지를 만들고 어린이 책을 만들었고요. 주로 자연 생명 이야기로 『도시 속 생명 이야기』, 『더불어 생명』, 『아기그림책』을 만들었고, 지금은 ‘물들숲 그림책’에 빠져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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