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05월 통권 제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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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책 이야기]
우리들의 시 요리법
――가족

김미혜 | 2010년 05월

어린이 시를 읽는 기쁨은 무엇일까? 내가 보지 못한 것을 어린 시인의 눈을 통해 보고, 다른 아이들의 삶을 통해 나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힘겹게 살아가면서도 서로 아껴 주고 사랑하는 마음을 만나는 것이다. 마치 우리 이야기를 옮겨 놓은 것 같은 시, 내 마음을 담아낸 것 같은 시를 보면서 우리는 함께 슬퍼하고 함께 웃는 것이다.

이번에 우리는 아이들이 쓴 시 모음집 『아버지 월급 콩알만 하네』 중 식구들 이야기를 중심으로 읽고 우리 식구 이야기를 써 보기로 한다. 시를 더 맛나게 읽기 위해 우리들은 시 요리사가 된다. 책 먹는 여우처럼 시를 읽고 난 뒤 우리의 방식으로 후추도 뿌리고 소금도 뿌리는 것이다. 우리의 시 요리법은 무엇일까?

요리의 첫 순서는 마음에 드는 시 고르기. 한 주일 동안 시집을 읽으면서 마음에 꼭 드는 시 다섯 편을 골라 포스트잇을 붙여 오라는 숙제를 내 준다. 좋은 시를 고르라는 숙제는 너무 부담스러운 숙제다. 마음에 드는 시를 고르라면 아이들은 아주 많이 좋아한다. 너희들에게 엄청난 특권을 주는 거야! 그런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들은 숙제를 받자마자 행복해 한다. 그러니 적극적으로 시를 읽을 수밖에 없다. 어른들이 일방적으로 골라 주는 시를 읽는 기쁨보다 제 손으로 직접 시를 고르는 기쁨을 선물하면서 나도 기쁘다.

아이들이 들고 온 시집에는 노랑 빨강 연둣빛 포스트잇이 깃발처럼 붙어 있다. 시집을 보여 주는 아이들의 얼굴이 의기양양하다. 즐거움이 넘쳐 보인다. 어떤 아이는 여섯 개 뽑았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또 한 편의 시를 골라야 한다. 시간 제약의 문제로 포스트잇이 붙어 있는 시를 모두 발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선을 거쳐 올라온 시 중에서 한 편을 고르는 일종의 본선인 셈이다. 어떤 시를 골라도 좋다, 다만 내가 왜 이 시를 골랐는지, 무엇이 좋았는지 말할 수 있는 것을 고르라고 한다. 좋은 시의 잣대가 무엇인지? 마음을 움직인 시가 좋은 시라고 한다. 아이들은 마치 심사 결과를 발표하는 양 자신이 고른 시를 발표한다. 아이들은 친구가 골라온 시를 보면서 어? 너도 이 시 뽑았니? 나도 이 시 골랐는데! 시를 보는 눈이 같았단 것에 반가워한다. 많이 뽑힌 시 중 하나가 5학년 박영희가 쓴 「아버지」라는 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어머니는 구원투수가 되어 주는 어머니, 동지처럼 함께 낄낄 웃을 수 있는 어머니인 모양이다.

아버지          5학년 박영희

아버지께서는 술을 잡수시고 오시면 / 언니 나 동생을 불러 놓고선 / 먼저 언니를 꾸중하시고 / 그 다음에는 나를 꾸중하신다. / 그럴 때 어머니께서는 나를 불러 / 심부름 좀 갔다 오라고 하신다. / 그래서 밖에 나와 보면 / 어머니는 거짓말이라고 하면서 / 나랑 같이 웃는다.

이제 시를 쪼개 보기로 하자. 시 한 편을 서너 장면의 그림이나 만화로 그릴 거니까 서너 문단으로 나누어 보라고 한다. 이 작업은 글의 구조가 처음─가운데─끝, 혹은 기─승─전─결로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데 더없이 좋다. 시의 짜임을 파악하는 것은 시를 쓸 때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런 과정은 시를 분석하고, 틀에 딱딱 맞춰 시를 쓰자는 게 아니다. 그림이나 만화를 그리기 위해 거쳐야 하는 작업일 뿐이다. 아이들은 그렇게 이해한다. 그러면 된 것이다. 지수는 금교은 어린이가 쓴 「아버지의 마음」을 읽고 네 문단으로 나누고 그림을 그렸다. 

1장면 - 우리 아버지께서는 / 광부이시다.
2장면 - 매일 시커먼 얼굴이 / 되어 오신다.
3장면 - 어떨 때는 / 맛있는 사탕이나 과자를 / 사 오신다.
4장면 - 나는 그럴 때면 / 눈물이 글썽글썽거린다.

시의 내용에 맞게 그림을 그릴 때 아이들은 시 이상의 것을 표현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그런데 만화로 그릴 땐 다르다. 말풍선을 만들어 글을 채워 넣으면서 시를 해석한다. 아이들은 장난스럽게 시 의미를 왜곡하면서 시를 즐긴다. 즐김보다 나은 것은 없으리. 마음대로 졸라맨 만화를 그리고 마음대로 말풍선을 채우게 한다.

이제 시 공부의 마지막 차례는 시 쓰기. 아버지 어머니를 글감으로 한 순간의 일을 잡아서 겪은 일을 생생하게 그려내라고 할 뿐 시는 이렇게 쓰는 거야, 말하지 않는다. 제 또래 아이들이 쓴 시를 읽고 시 쓰는 방법을 충분히 감지했으므로.

싸움         부평서초등학교 3학년 원해주

엄마와 아빠가 싸우시면 / 말리고 싶다. / 그렇지만 못한다. / 엄마가 화내면 나까지 울게 된다. //
그런데 울어봤자 소용없다. / 엄마 아빠는 싸우는데 / 집중해서 울어봤자 / 나를 거들떠보지 않는다. // 그래도 눈물이 찔끔 난다.

열린 일기 문         부평서초등학교 3학년 이지수

엄마가 나의 일기를 보는 것이 싫다. / 보지 말라고 해도 / 몰래 보는 것 같다. / 또 보고 / 또 보는 것 같다. / 일기는 원래 열려 있는 문인가 보다.

고마운 심부름         부평서초등학교 3학년 강지훈

내가 학교에 갔다가 왔는데 / 엄마가 내게 심부름을 갔다 오라고 하셨다. / 엄마가 심부름 시킬 때마다 / 엄마께 고맙다. / 왜냐하면 엄마께 효도를 하지 못해서 죄송한데 / 심부름하면 효도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 그래서 나는 어묵, 떡, 라면을 사러 / 슈퍼마켓에 신나게 갔다.

어머니         부평서초등학교 3학년 박상훈

내가 학교에서 혼나고 오면 / “왜 혼났어?” / 엄마가 물으신다. //
친구하고 싸웠다고 말했다. / “왜 싸웠어?” / 영어시간에 인디안밥 게임을 할 때 /
짝이 반칙을 해서 화가 나서 밀었다고 했다. / 그제야 엄마는 이해를 하신 것 같다. /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들의 하늘에 먹구름이 낄 때가 있지만 아이들이 쓴 시에는 가족의 소중한 모습이 담겨 있다.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아버지 월급 콩알만 하네』에서 윤중원 어린이가 쓴 「달」을 함께 읽고 이런 저런 생각을 나눈다. 그리고 시 속의 중원이 아버지가 딱 하루 돌아오신다면 무엇을 하고 싶을까 10가지를 생각해 보자고 한다.  

달         5학년 윤중원

우리 집은 너무 허전하다. / 작년 추석날에는 / 아버지가 장을 봐 오고 / 또 선물로 허리띠까지 사다 주셨다. / 그런데 올해는 / 추석도 추석 맛이 나지 않는다. / 어제 저녁에 후라쉬로 / 사방을 살피다가 문득 달을 보았다. / 그러자 달의 얼룩점이 / 꼭 아버지 얼굴같이 보였다. / 그래서 나는 아버지 산소에 / 후라쉬를 비치니 / 너무도 쓸쓸히 보였다.

아버지를 안고 있는다, 기뻐서 운다, 아버지에게 약을 주어서 오랫동안 살 수 있게 해 준다, 아버지와 자전거를 탄다, 잠을 잘 때 같이 안고 옛날이야기를 한다, 이제 절대 헤어지지 않는다고 약속한다, 밤새도록 이야기한다, 아버지랑 맛있는 것을 같이 먹는다, 아버지랑 공원에 놀러 간다, 안마해 드린다, 아버지랑 공부한다……. 아이들의 발표를 듣는데 눈물이 왈칵 솟는다. 어쩜, 너희들 마음이 내 마음과 이렇게 똑같은 거니. 지금 이 순간,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 아이들이 쓴 글을 보니 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 보인다.

우리는 공책 한바닥에 휴대폰을 그려 넣고 아버지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휴대폰 화면이 크니까 문자 메시지 내용도 길다. 빨간 하트가 붙은 문자 메시지. 우리 아버지들에게 이보다 힘이 되는 선물은 없어 보인다.   
김미혜 | 자연 속에서 놀기를 좋아하여 사진기를 들고 숲에 자주 갑니다. 아이들과 함께 시를 읽고 시 놀이 하는 것도 좋아하여 도서관 등에서 ‘동시 따먹기’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동시집 『아기 까치의 우산』을 냈고, 김미혜의 자연 이야기 『나비를 따라갔어요』와 『우리 집에 직박구리가 왔어요』, 그림책 『그림 그리는 새』, 『저승사자에게 잡혀간 호랑이』 등의 글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