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05월 통권 제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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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세상 이야기]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조상의 흔적 ― 두려움 이야기

윤소영 | 2010년 05월


아직 엄마 손길이 가야 하는 첫째 보살피랴, 갓 태어난 둘째한테 젖을 먹이랴, 너무 피곤했던 모양이다. 다른 어른들이 모두 먹이를 구하러 보금자리를 떠난 사이, 난 단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세상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소리에 잠이 깼다. 아이 울음소리였다. 겁에 질려서 울어대는 첫째 아이의 모습이 열린 눈꺼풀 사이로 들어왔다. 첫째 아이가 바로 옆에 있는 나뭇가지 쪽을 보면서 마구 소리를 지르며 울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자 정신이 또렷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온몸의 털이 쭈뼛 일어섰다. 뱀이었다. 지금까지 배운 것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뱀은 독이 있다. 그리고 저렇게 큰 뱀이라면 갓난아기를 훔쳐갈 수도 있다.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

난 즉시 두 아이를 팔에 안았다. 내 발가락은 넓게 벌어져 있어서 나뭇가지를 짚기에 좋다. 나는 나뭇가지 위를 거의 뛰다시피 해서 땅으로 내려섰다. 다행히 그리 높지 않은 곳에 잠자리를 만들어서, 별 무리 없이 아이들을 안고 뛰어내릴 수 있었다.

도망치면서 참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이 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힘을 합쳐 그 뱀을 잡을 수만 있다면 오늘 하루 배불리 먹을 수 있을 테니까. 뱀고기는 정말 맛있다. 게다가 뱀고기를 먹으면 보통 때 먹는 나무열매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기운이 난다.

아무리 뱀고기가 좋은 먹잇감이라고 해도 나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뱀을 잡을 수는 없는 일이다. 가장 위대한 사냥꾼만이 혼자서 뱀을 잡을 수 있다. 남자와 여자들이 돌아오면 우리 보금자리에 커다란 뱀이 나타났다고 말해 줘야겠다. 그리고 뱀을 찾아내야지. 하지만 뱀은 분명히 그 전에 몸을 숨길 것이다. 그러고는 다시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안전한 나무 위로 올라가 가만히 앉아서 쉬노라니 쿵쾅쿵쾅 뛰던 가슴이 서서히 고요해진다. 다시 생각해 보니 아쉬운 게 아니라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첫째가 울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지난번에 아기를 잃어버린 여자가 생각났다. 여자는 먹잇감을 구하러 잠깐 아기 곁을 떠났다가 아기를 잃어버렸다. 얼마나 슬프게 울면서 아기를 찾아 헤매던지, 그 여자를 보면서 나도 자꾸만 눈물이 났다. 일이 조금만 잘못되었으면 나도 그 여자처럼 아기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나나 아이가 뱀에 물려 죽거나 죽을 고생을 했을 것이다.

나는 첫째 아이를 꼭 안아 주었다. 여전히 무서운지 울음을 그치지 못하던 아이가 겨우 울음을 그쳤다.
“이제 괜찮아! 정말 잘했다. 네 덕에 우리 모두 살았어.”
덩달아 울던 둘째도 울음을 그쳤다.

참 이상한 일이다. 아이는 뱀이 무섭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지금까지 뱀한테 물린 적도 없고, 뱀을 보면 울어야 한다고 가르친 적도 없는데……. 그러고 보니, 나도 어릴 때 뱀을 보고 깜짝 놀라 앙앙 울어댄 적이 있었다.

우리 종족과 뱀 종족은 철천지원수라서 이렇게 뱀만 보면 털이 곤두서고 가슴이 뛰는 것일까?



지금으로부터 약 440만 년 전, 아프리카에 살던 한 아기 엄마의 생활 장면을 상상해 본 거예요. 주인공은 아르디피테쿠스! 아프리카 말로 ‘땅’이라는 뜻의 ‘아르디’에 ‘원숭이사람’이라는 뜻의 ‘피테쿠스’를 붙여 ‘땅에서 사는 원인’이라는 뜻의 이름이 붙은 원시 인류지요. 아르디피테쿠스는 흔히 ‘아르디’라고 줄여 부르는데,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마찬가지로 사람속(Homo)에는 속하지 않지만, 사람과에 속해요.

아르디는 1994년에 처음 발견되어 15년에 걸친 발굴과 분석, 복원 작업을 거쳤어요. 그 과정에서 아홉 개국의 과학자 수십 명이 협동 연구를 했지요. 그 결과 아르디 연구는 『사이언스』 지에서 2009년 최고의 과학적 성과로 선정되었어요. 가장 오래된 두 발로 걷는 원시 인류의 발견으로 과학계가 다시 한 번 들썩들썩한 거예요.

이야기에 등장한 아르디피테쿠스 여자는 자기 아이가 뱀에 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서워하는 것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여러분은 어떤가요? 뱀을 좋아하나요, 아니면 싫어하거나 무서워하나요? 뱀을 좋아한다면 처음부터 좋아했나요, 아니면 뱀에 관해 알게 된 뒤에 좋아하게 되었나요? 또 뱀을 무서워한다면 처음부터 무서워했나요, 아니면 뱀에 관해 알게 된 뒤에 무서워하게 되었나요? 답은 사람마다 다를 거예요.

하지만 뱀을 접해 보지 않은 만 두 살 정도의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조사해 보았더니 대부분의 아이가 뱀을 찍은 비디오만 보고도 불안해했어요. 하지만 꽃을 찍은 비디오를 보고는 기분 좋아했지요. 그리고 뱀에 관해 잘 알고 뱀을 그렇게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어른 중에도 여전히 뱀을 심하게 무서워하는 사람이 많아요.

과학자들에 따르면 많은 사람이 선천적으로 뱀을 무서워하는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어요. 우리 조상이 살아온 과정을 살펴보면, 뱀을 두려워하는 조상이 뱀을 두려워하지 않는 조상들보다 살아남는 데 유리했을 거예요. 그래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뱀을 두려워하는 유전적 특징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예요.

생물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얘기지만, 실은 저도 뱀을 무서워해요. 다양한 뱀이 우리 지구의 생태계를 풍요롭게 하고, 균형 잡힌 생태계를 이루는 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무섭기는 해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산에 갔다가 뱀을 만나면 애써 태연한 척하지만, 사실은 등줄기 밑의 꼬리뼈가 시큰시큰하면서 식은땀이 나지요. 혼자 있다가 뱀을 만나면 무조건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을 쳐요. 어릴 때는 더 심했어요. 풀숲에서 뱀을 보고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한참을 번개처럼 달리면서 꺅꺅 소리를 질렀으니까요.

화재 사고를 한 번도 본 적 없고 화재의 의미를 모르는 아기가 불이 난 것을 보고 무섭게 울어 대는 것은 본능적인 공포예요. 우리 조상들은 환경에 적응하다가 이런 본능적인 공포를 갖게 되었을 거예요. 뱀, 악어, 거미, 곤충, 높은 곳, 피처럼 위험한 상황과 관계가 있는 것을 빨리 파악해서 피하면 목숨을 부지하기가 쉬웠을 테니까요. 한편 개한테 물린 경험 때문에 개를 무서워하는 것은 학습된 공포예요. 사람은 저마다 다른 경험을 갖고 있으므로, 학습된 공포는 사람마다 다르지요.

공포를 느낄 때 우리 몸에서는 특별한 반응이 일어나요. 스트레스 호르몬이 혈액 속으로 흘러들어 온몸을 돌면서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하지요. 판단을 내리는 뇌와 움직임을 책임지는 근육에 더 많은 피를 제공하기 위해서 혈압은 높아져요. 적혈구도 더 많이 만들어 내요. 음식물의 소화는 거의 중단되지요. 간에 저장되어 있던 탄수화물이 흐르는 혈액 속으로 쏟아져 나와서, 필요한 부분에 많은 포도당을 제공해요. 호흡은 빨라지고 거칠어지지요. 더 잘 보려고 눈동자는 커지고, 열을 식히려고 땀이 나기 시작해요.

두려움을 피해 ‘도망치거나’, 아니면 두려움에 맞서 ‘싸우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거예요. 적당한 스트레스는 건강, 정신 발달과 신체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실이에요. 우리 몸을 활기차게 만들어 주니까요. 하지만, 과도한 스트레스는 병을 일으키지요. 우리가 이런저런 것들을 두려워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너무 두려움이 없다면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겠지요. 앞뒤를 가리지 않고 행동하다가 위험에 빠질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두려움이 너무 심해서 일상생활에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어요. 이를 공포증이라고 해요.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증의 대상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뱀, 벌레, 새, 거미 같은 동물일 수도 있고, 높은 곳이나 넓은 곳 같은 공간일 수도 있지요. 사람 대하기를 두려워하는 대인공포증도 있고, 비행을 두려워하는 비행공포증, 피를 무서워하는 혈액공포증도 있어요. 경우에 따라서는 어떤 대상을 두려워하는 공포증과 그 대상을 극도로 싫어하는 혐오증이 뒤섞여 나타나기도 해요.

간단히 피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공포증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일상생활을 하면서 피할 수 없는 것에 공포증이 있다면 정말 괴로울 거예요. 그래서 공포증을 치료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어요. 최근에는 과거의 기억을 희미하게 하고 새로운 기억을 활성화하는 약을 이용해서 공포증을 치료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어요. 그런데 사람의 정신은 매우 미묘한 것이라, 공포증을 치료하려다가 뇌에 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사람도 많아요.

여러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처지에 따라 아주 다양한 대답이 나올 거예요.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큰 두려움으로 다가올 수도 있어요. 시험이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인 사람도 있고, 부모님이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인 사람도 있을 거예요. 전쟁, 큰 소리, 높은 소리, 일, 시금치, 범죄, 신, 주사, 거미, 병균, 학교, 비만, 암, 귀신, 선생님, 치과, 부인, 남편, 불, 부조리, 늙어감, 무기, 영어, 교통사고, 지구 온난화, 실업, 학교선배, 운동, 돈, 여자친구, 남자친구, 죽음, 벌레, 변비, 사람, 병원, 친구, 출산, 직장, 외계인, 고양이, 비둘기, 사춘기, 물가, 군대, 공부, 굶주림, 무지, 미래…… 또 뭐가 있을까요?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의 목록을 보면, 옛날 우리 조상이 두려워하던 것보다 우리가 훨씬 더 많은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대 사회가 그만큼 복잡해졌다는 뜻이겠지요. 이 모든 것에 대한 적당한 두려움은 어쩌면 우리의 삶을 훨씬 더 풍요롭고, 깊고, 넓고, 높게 만들어 줄 거예요. 하지만 우리 조상이 우리에게 물려 준 두려움에 비해 너무 많은 두려움을 갖는 것은 아무래도 자연스럽지가 않아요.

그러니까 맞서야 할 것은 맞서고, 잊어 버릴 것은 잊고 하면서, 우리는 좀 더 용감하고 대범해질 필요가 있어요. 맞아요, 말은 참 쉽지요.
윤소영 | 대학에서 생물교육학을 전공하고 『과학세대』 기획위원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과학 도서를 집필, 번역, 감수하는 일을 통해 과학의 재미를 전하고 있습니다. 쓴 책으로 『종의 기원, 자연선택의 신비를 밝히다』 『한자만 좀 알면 과학도 참 쉬워, 생물』 『넌 무슨 동물이니?』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