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7월 통권 제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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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책 이야기

[작품 읽기, 작가 읽기]
‘개뻥도사’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 ― 이현론

김서정 | 2009년 07월

이 현의 작품들에서 내가 받은 가장 강력한 인상은, 진폭이 크다는 점이었다. 그의 첫 책 『짜장면 불어요!』(창비, 2006)에서부터 그랬다. 아이들의 성 문제, 가정환경이 다른 세 친구들 사이의 미묘한 갈등 문제, 실직 가장과 아들의 문제 같은 리얼리즘 동화의 정도(?)에서부터 SF 성격을 띤 파격적인 판타지까지, 이야기들의 소재는 광범위했다. 날카로운 메스로 해부하듯 아이들 마음을 파헤치는 심리 묘사에서부터 글로브 낀 주먹으로 날리는 연속 잽 같은 무게감과 속도감을 지닌 입담까지, 문장도 종횡무진이었다. 쉴 새 없이 떠벌이면서도 ‘나비같이 날아 벌같이 쏘는’, 그러다가 결정적인 케이오 펀치를 날리는 무하마드 알리를 나는 『짜장면 불어요!』를 읽으면서 떠올린 적이 있었다. 이 작가가 다음에는 어떤 판을 벌일지가 흥미로웠다. 두 번째 나온 『우리들의 스캔들』(창비, 2007)은, 내게는 솔직히 힘겨운 책이었다. 숨 막히게 억압적이고 부조리한 학교 환경에서 미혼모, 따돌림, 폭력, 배신 같은 문제들이 연이어 쏟아져 나오고, 거기에 얽힌 사이버 공간에서의 폭로, 모반, 추적 등의 에피소드들은, 정신을 바짝 차려도 따라가기 어려운 궤적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이 현을 이해하는 일을 잠시 뒤로 미루기로 했다.

그러나 세 번째 책 『장수 만세!』(우리교육, 2007)는 다시 내 구미를 바짝 당겼다. 『장수 만세!』는 내가 읽은 ‘한국적 판타지’ 중에서도 최상급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학벌지상주의 교육 환경과 가정환경 속에서 고통 받는 아이라는 우리의 가장 절박한 문제는, 수많은 판타지에서 그렇듯 단순히 단초 역할만 하다가 흐지부지 꼬리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중심 주제로서 심지를 끝까지 잃지 않고 있었다. 충분한 생기를 갖춘 캐릭터들은 제 역할을 제대로 해냈고, 판타지 공간과 인물들은 낯설지 않으면서도 개성이 있었으며, 현실의 인물들과 겉돌지 않고 재미있는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중학생 아이의 자살기도, 초등학생 아이의 추락사, 저승과 저승사자, 저 세상으로 가지 못한 채 이 세상에서 떠도는 생령 같은 으스스한 소재를 담고 있었지만, 이야기에는 분위기를 우중충하게 끌어내리지 않는 밝은 부력 같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무거운 책임감과 걱정 대신 유머와 탄력을 담은 문체 덕분이었을 것이다. 전작들에서 살짝 엿보였던 천방지축성을, 이 작품에서는 단단한 중심과 균형이 잡힌 넓은 시야로 바꾸어 말해도 좋을 듯했다.

‘작가가 되고 싶은 아이에게 주는 책’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얘들아, 정말 작가가 되고 싶니?』(풀빛, 2008)는 창작동화가 아니니 논외로 치자. 그러나 한 마디만 하자면, 별명이 ‘개뻥도사’인 작가가 ‘말도 못하게 위대하고 꿈도 못 꾸게 인기 있는 작가가 되는 법’에 대해서 설레발을 쳐놓은(나는 ‘설레발’이 속어인 줄만 알고 있었는데, 이 대목에서는 아무래도 이 용어를 써야만 할 것 같아 사전을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글쎄 의젓하게 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가!) 이 글은 상당히 계몽적이다. 거짓말쟁이에 허풍쟁이인 위인이 오지랖 넓게 이것저것 참견하고 산전수전을 다 겪으면서 제멋대로 삐딱한 글을 써놓고는 인세로 벼락부자가 되는 꿈에 부풀어 있는 꼴을 본 적이 있는가? 그것이 바로 작가다! 라는 진실을 널리 유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나온 작품집 『영두의 우연한 현실』(사계절, 2009)로 이 현은 다시 나를 롤러코스터에 올려놓았다. 표제작인 「영두의 우연한 현실」은 『장수 만세!』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판타지였지만 다른 작품들 중에는 여전히 『우리들의 스캔들』처럼 따라가기 힘겨운 이야기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진폭을 만들어내는 동력은 무엇일까? 나의 호기심이 발동되었다.

어느 토요일 오후, 일산에서 나는 이 현을 만났다. 나는 그의 작업실을 보고 싶었다. 『얘들아, 정말 작가가 되고 싶니?』에 의하면 이 ‘개뻥도사’의 작업실이 있는 빌딩에는 그 책에 일러스트를 그린 ‘말도 못하게 산만한 화가’의 작업실도 있으며, 그 근처에는 ‘별 일 없네 직업소개소’, ‘쓸 거 없네 마트’ 같은 가게들이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접선한 곳은 살벌한 경찰서 건너편, 각 잡힌 재벌 빌딩 앞이었다. 중간 길이의 뽀글뽀글 파마머리에 모자를 눌러(썼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썼어야 했을 것 같다)쓴 이 현이, 김서정 선생님이시죠? 하면서 겅중겅중 다가왔다. 겅중겅중. 그는 키가 컸고 팔다리가 길었다. 그래서인지, 그냥 걷는데도 겅중겅중이라는 표현이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우리는 청국장 집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숍으로 갔다. 나는 그가 나중에 혹시라도 이 장면을 묘사할 일이 생길 때 ‘사장 대행 청 국장’ 식당과 ‘엎지르자 커피’ 숍 이라는 제호를 붙이지 않을까 하는 싱거운 상상을 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나눈 대화는, 산만한 뻥이 아닌 아주 단정하고 공식적인 대담이었다. 그의 언어는 침착했고, 질서정연했고, 절제되어 있었다. 내가 그 동안 이 연재를 하면서 만난 작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온 인상은 ‘꼭 저같이 썼구나.’였다. 그만큼 글과 사람이 겹치며 만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현은 그 교집합 부분이 가장 적은 작가였다. 그것은 그가 그만큼 층이 두텁거나, 내가 그를 제대로 파악해내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어쩌면 둘 다라는 게 맞을 것이다.

책을 좋아했고, 작가가 되고 싶었고, 아버지가 문학청년이었다는 것이 어린 시절에 대한 그의 회상의 전부였다. EBS 구성작가 노릇을 잠시 했지만 재미가 없어서 그만뒀고, 서른다섯 살이 됐을 때 글을 써보고 죽어야겠다, 안 그러면 후회할 것 같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 그가 털어놓은 글을 쓰게 된 이유의 전부였다. 왜 동화였냐고? 소설을 써서 전태일 문학상을 받았는데, 아는 편집자가 동화를 쓰라고, 어울릴 것 같다고 한 말이 발단이라면 발단이었다. 그러면서 그 편집자가 챙겨준 동화책을 일 년 정도가 지나서야 읽기 시작했고, 그 때 읽은 린드그렌과 뇌스틀링어와 권정생이 재미있었다, 정도였다. 그러다가 그는 중요한 단서를 던졌다. 그건, 소통이었다.

처음에는 동화 자체의 장르적 양식이 흥미로웠어요. 그런데 지금 나에게 중요한 건 소통의 문제예요. 나의 화두, 내가 세상에 던지는 질문들이 어른보다는 아이들과 공유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어요. 내 생각을 어른들과 소통하려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게 되는데, 아이들하고는 친구처럼 참 편하게 말을 주고받을 수 있더라고요.

죽기 전에 글을 써보아야겠다는 결심은, 아마도 누구에게든 내 마음을 털어놓고 생각을 나누고 싶다는 열망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 소통에의 열망이 십대의 아이들에게 가서 제대로 이루어진 셈이다. 어른들과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고, 저학년 동화나 유아 동화는 ‘손도 못 대겠더라.’는 형편이니, 그는 자신의 소통 상대를 확실히 알고 그들과 나눌 이야깃거리를 자기 안에서 어렵지 않게 퍼낼 수 있는 운 좋은 작가로 보인다. “학교에 강연을 가서 『우리들의 스캔들』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학생들이 그걸 어떻게 취재했느냐고 물어요. 하지만 취재한 적은 없어요. 마을버스 안에서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귀담아 들은 것밖에는요. 내 정신연령이 아마 십대에 머물러 있는 모양이에요.” 하며 그는 웃는다. 십대에 머물러 있는 자신의 정신연령을 그렇게 기분 좋은 얼굴로 털어놓는 사람이라면 청소년 소설 작가라는 타이틀을 기꺼이 달아 줘도 괜찮을 것이다.

삼십 년 전과 똑같이 고집불통인 학교를 보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이런 것은 옳지 않다고,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책을 쓴 그는, 동화가 가진 넓은 의미의 계몽성을 믿는다고 말한다. 문학이 사람 마음을 움직여 세상을 나아지게 할 수 있다, 동화를 통해 아이들 마음에 질문과 화두를 던져주면 아이들이 그걸 건강하게 성숙시킬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제 문학관이 좀 구식이죠?” 하고 그는 묻지만, 그런 ‘구식’ 문학관을 『장수 만세!』 같은 판타지나 「짜장면 불어요!」 같은 너스레를 통해 구현해 내는 실험정신과 뚝심, 삐딱이 정신과 유머 감각은 그야말로 초현대적이니, 이 작가의 다음 설레발을 흥미롭게 기대해 봐도 괜찮을 듯하다.

아차, 그 롤러코스터 태우는 듯한 설레발에 대한 질문을 지나칠 뻔했다. 별렀던 질문이지만, 우문에 현답이라고, 돌아오는 대답은 싱거울 정도로 명쾌했다.

“그냥 재미있게 썼어요.”

‘책 읽기는 유희’라고 그는 잘라 말한다. 아이들이 책을 유희로 읽을 수 있는 상황을 막고 있는 이 교육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한다. 이 답답한 현실에 대한 구체적 해법은 없다는 것을 그는 안다. 그러나 좀 더 본질적인 대안에 대해 고민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마당은 있지 않을까. 그는 그것을 판타지로 잡는다. 판타지는 우리 현실의 상징이자 거울이며, 우리 무의식의 반영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의 이런 문학관과 현실관은 로봇의 인권에 대한 SF를 쓰겠다는 계획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우리 아이들이 로봇 취급을 당하는 게 현실이지만, 그 현실에 비탄하거나 비분강개하며 속수무책으로 얽혀들기보다는 박차고 올라 한바탕 속 시원한 놀이판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그의 계획대로 ‘넓은 배경에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다.

※ 이 글에 실린 그림은 『짜장면 불어요!』(윤정주 그림) 『장수 만세!』(오승민 그림) 『얘들아, 정말 작가가 되고 싶니?』(김준영 그림) 『영두의 우연한 현실』(송호은 사진)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 편집부
김서정 |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독일 뮌헨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 지금은 김서정동화아카데미에서 어린이 문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두로크 강을 건너서』 『나의 사직동』 『어린이문학 만세』 『옛날 옛날에, 끝』 등 저서와 역서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