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4월 통권 제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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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책 이야기

[작품 읽기, 작가 읽기]
내가 만들고 내가 믿는 거짓말, 동화 - 최나미론

김서정 | 2009년 04월

내가 최나미라는 작가를 주목한 것은 『엄마의 마흔번째 생일』(청년사, 2005)을 읽고서였다. 철없는 남편, 치매 시어머니, 이기적인 두 딸들을 뒤로하고 나서서 자기 삶을 찾을 것을 선언하는 엄마를 그린 이 이야기는 기존 동화의 통념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발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도전하고 뒤집고 실험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눈이 반짝 뜨이는 작품이었다. 모든 것을 내주고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고향 같은 엄마와 윽박지르고 몰아붙이는 억압적인 엄마, 이 두 극 사이에서 그다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 같던 엄마 상에 새로운 좌표가 하나 생긴 것이 흥미로웠던 것이다.

화자가 초등학교 6학년인 여자아이이고 그 아이를 둘러싼 인물과 사건이 많음에도 제목이 드러내는 것처럼 초점이 ‘엄마’에게 맞춰져 있다는 사실은, 이 이야기가 ‘동화’의 카테고리에 오롯이 들어갈 수 있는가, 오히려 페미니즘 소설로 간주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토론거리를 주기도 했다. 나는 이런 토론거리를 만드는 작품이 반갑다. 그것은 어린이 문학과 어른 문학 사이에 물길을 만들고 간단없이 물을 흘려보내 풍성한 문학 생태계를 만드는 데 한몫을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생각은 엄마와 화자인 둘째 딸 가영이가 둘 다 어떤 억눌림 상태에 있다는 점에서 서로 겹쳐 있다는 것, 그럼으로써 동화와 소설의 공통분모 하나를 만들어 냈을지도 모른다는 쪽으로 뻗어갔다. 선머슴처럼 설치며 돌아다니지만 사실은 ‘운동 빼놓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마음대로 해 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가정의 평화를 위해 내 의무를 다’한다고 생각하는 가영이와 ‘이 다음에 어머니처럼 마음의 병으로 지난 일들을 원망하며 살고 싶지 않’은 엄마는, ‘당신 위해서 산 시간이 없으니, 지금 와서 세상 모든 게 다 서럽고 억울’한 할머니와 함께 엄마의 그림에 나오는 얼굴 세 개짜리 자화상의 한 인물로 보인다.

철없고 이기적인 소리를 평소에도 거리낌 없이 꺼내놓는 아빠와 큰딸과 달리 이 세 여자는 말을 삼킨다. 자신을 누르는 어떤 힘 앞에서, 적을 만난 고슴도치처럼 동그랗게 옹송그리고 있던 그들은 그러나 할머니의 치매를 기폭제로 무의식 속에, 마음속에, 머릿속에 묻어 두었던 억눌린 말들을 차례로 터뜨린다. 그리고 터져 나온 이 말들이 이제 엄마와 가영이의 삶을 바꾸고 인간관과 인생관을 바꾼다.

양상과 강도는 다르지만 살면서 어떤 억눌림을 겪는 이 삼 대에 걸친 여자들의 이야기는 작은 연대기 소설처럼 읽히기도 한다. 딸이 비난하던 엄마를 결국 이해하고 바뀐 제 삶을 담담히 받아들인다는 결말은 소설 속에 최선을 다해 침투한 동화적 장치로 보이기도 한다.

동화 속 그 인물들처럼 작가 최나미는 묻어둔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손자 타령이 심했던 할머니 아래 세 딸 중 첫째였던지라 아들보다 나은 딸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엄격한 교사였던 엄마는 지나친 겸손과 책임감을 심어 주었고, 지방에서 근무했던 아버지는 실체가 아닌 허상 같아서 부성 실종의 상태였다고 그는 털어놓았다. 굴곡 없고 모범적이었던 서울 중산층 가정에서의 삶이었지만, 그런 삶의 폐해를 전형적으로 받았던 게 자신이라면서 그는 웃었다.

자신감 없고, 이분법적으로 사고하고,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죄책감 갖고요. 헤맬 게 두려워서 모르는 길은 단 한 발짝도 못 나가요. 생각 속에 가둬 놓기만 한 말도 너무 많고요.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그에게서 자주 나왔던 단어는 죄책감과 두려움이었다. 애증이 교차했던 할머니, 무서웠던 엄마, 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내는 모습이 오히려 낯설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최나미의 작품이 가족관계에 집중되도록 만든 동인으로 보인다. 그는 엄격한 가부장, 청교도적 가치관에 억눌린 가족관계를 풀어내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모색하고 싶어 한다. 그 시도는 어린 시절의 이유 없는 죄책감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의 한 줄기일 것이다.

말썽이 일어나면 무조건 책임이 자기에게 돌아오면서 야단맞아야 했던 어린 시절에 삼켜졌던 자기변명을 그는 동화로 바꿔 내놓았다.

꼭 동화를 써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소설을 쓰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요. 다만 뭔가 몰두할 일이 필요했을 때 친구가, 너 출석은 꼬박꼬박 잘 할 테니까 여기라도 다녀 봐라 하고 등록해 준 데가 동화 쓰는 수업이었던 거였어요. 출석은 진짜 착실하게 했어요.

작가는 희미하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홍대입구의 한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고, 근처에 있는 그의 작업실로 들어간 참이었다. 그 착실함을 증명해 준 것이 책장이었다. 방이 너무 어지럽다며 그는 낭패스러운 얼굴을 해보였지만, 내 기준으로 보자면 그건 엄청나게 깔끔한 서재였고, 그중에서도 출판사별, 시리즈별, 번호순으로 가지런히 꽂혀 있는 동화책들에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도 다 저거 보고 한마디씩 한다고, 책 저렇게 다듬어 놓는 게 자기 버릇이라며 작가는 또 웃는다. 이런 정리 버릇이 있으니 인물들의 생각과 마음을 정리하고 또 정리하는 깊은 심리묘사가 가능했을 것이다.

글을 쓰겠다는 생각이 없었다고는 했지만, 중학교 때 교지를 만들고 연극 대본을 쓰면서 행복했던 기억을 그는 숨겨 놓은 보석처럼 꺼내 보여주었다. 하지만 중학교 때 문학소녀 아니었던 사람 있느냐, 미래를 위해 공부에만 몰두해야 한다는 말 한 마디에 그는 글쓰기의 행복을 두말없이 밀어냈다. 그리고 이제 와서 확고하게 잡은 생각은,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나중에도 절대 행복이란 없다는 것이다.

그는 그 미래 운운이 ‘거짓말’이라고 여긴다. 그 거짓말을 깨부수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글 속에는 누군가를 위해서, 언젠가를 위해서 뭘 참거나 희생하고 싶지는 않다는 말이 어른 아이의 입을 가리지 않고 자주 나온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기가 ‘거짓말’을 잘 했노라고 배시시 웃으며 고백한다. 어떤 위기 상황이 있으면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해 엉뚱한 소리를 했고, 재미있는 모티프가 있으면 거기에 살을 붙여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게 취미였다는 것이다. ‘자기도 믿게 되는 거짓말이 동화잖아요.’ 하고 그는 말한다.

서로 대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엄마와 딸의 삶과 심리가 사실은 겹쳐 있음을 말하듯, 그는 기만적인 비전과 위무하는 허구를 한데 몰아 거짓말이라고 이름 붙인다. 그러니 그의 동화에 기만과 위무가 함께 들어가 있는 것이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실, 어린 아이들 사이의 애증 뒤섞인 인간관계를 그처럼 깊이 파고들어가는 작가는 흔치 않다.

한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서로 대등하지 않은 환경에 있는 두 아이가 우정을 쌓아가는 어떤 동화를 읽으면서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저버리고 돌아설 거라고 예상했는데 그렇지가 않아서 당황했다, 곰곰 생각해 보니, 네 동화 때문이었다, 네 동화에서는 으레 애들 사이가 어긋나지 않으냐고요.

최나미의 작품들을 통상적인 동화의 세계를 살짝 벗어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요소로 인물들 사이의 그런 관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다른 책들, 『진휘 바이러스』(우리교육, 2005), 『걱정쟁이 열세 살』(사계절, 2006), 『셋 둘 하나』(사계절, 2007), 『단어장』(사계절, 2008) 등에는 대체로 생각은 많지만 말은 삼키는 주인공과, 그 옆에서 거침없고 거리낌 없이 할 말을 툭툭 해대는 시원스러운 주변 인물이 나온다.

그런데 이 주인공과 주변 인물 사이에는 미묘한 애증 관계가 형성된다. 그들이 서로 밀고 당기고, 다가가고 돌아서면서 벌이는 감정의 줄타기가 이야기의 주된 흐름을 이룬다. 그래서 사건이 없는 것은 아닌데(부모의 별거, 아이의 가출 같은 심각한 사건이 다루어지기도 하는데), 그의 책들을 읽고 나면 사건은 희미해지고 인물들의 심리나 그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인상이 또렷이 남게 되는 것이다. 그것도 화해롭고 건강하기보다는 위태롭고 불안한 관계에 따르는 긴장과 걱정이 깊이 찍힌 인상이다.

이런 친구관계도 가족관계와 마찬가지로 작가의 자기성찰, 자기고백에서 나온 결과물인 듯하다. 최나미 작품의 한 특징은, 어른들이 아이들 세계에 존재한다고 인정하기 어려워하는 배신과 따돌림과 상호기만이 탐구된다는 것이며, 이 점이 그의 동화를 새롭고 실험적인 것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한다. 그러나 그의 새로움과 실험성은, 기존의 것을 넘어서자는 목표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충실함으로써 생성된 형질이었다.

나는 그가 그의 작품에 대한 ‘도무지 착한 인물이 없다.’는 평에 위축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는 나를 만나자마자 마치 『걱정쟁이 열세 살』의 성우처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어린 독자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얘기에 우선 몰두하는 것이 동화 작가의 태도로서 적절한지를 물었다.

적절하다뿐이냐,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고 나는 내 의견을 말해 주었다. 독자용 틀 다듬기는 그 다음 문제이며, 그렇게 써나가다 보면 그 두 태도가 일치할 때가 올 것이다. 가장 최근의 작품인 『단어장』을 보면 이 작가에게 그 때가 더욱 바짝 다가온 듯하다.

※ 이 글에 실린 그림은 『셋 둘 하나』(정문주 그림)와 『엄마의 마흔번째 생일』(정용연 그림), 『진휘 바이러스』(홍선주 그림)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 편집부
김서정│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독일 뮌헨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 지금은 김서정동화아카데미에서 어린이 문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두로크 강을 건너서』 『나의 사직동』 『어린이문학 만세』 『옛날 옛날에, 끝』 등 저서와 역서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