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4월 통권 제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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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책 이야기

[그림책 읽어 주는 의사 선생님]
터널 같은 긴 그림자를 지나가려면

이나미 | 2009년 04월

수잔 발리의 『오소리의 이별 선물』(신형건 옮김, 보물창고, 2009)에는 오소리가 긴 터널을 지나가는 꿈을 꾸고 난 후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며 친구들에게 이별을 고하는 편지를 쓰는 대목이 나온다. 실제로 임사(臨死) 체험을 한 많은 사람들이 컴컴한 터널을 지나간 후 밝은 빛을 본다는 고백을 하기도 한다. 그래선지 사람들은 죽은 다음, 천국과 지옥으로 가는 갈림길 직전, 긴 터널을 지난다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물론, 사후 세계로 건너가기 위해 정말로 그런 과정을 거칠 수도 있겠지만, 아직 죽어 보지 않은 우리들로서는 알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런데 꼭 임사 체험이 아니라도 마치 죽음으로 가까이 가는 것처럼 긴 터널을 지나는 듯한 상황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정말 열심히 공부해도 여러 해 동안 제대로 된 직장을 잡지 못하는 경우, 심각한 질병에 걸려 온 힘을 다해 병과 싸워도 차도가 없는 경우, 배우자가 도박이나 술에 빠져 온 재산을 탕진한 후에도 그 버릇을 못 고쳐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경우, 자녀가 비뚤어져서 갖은 사고를 다 치고 다니며 부모에게까지 패륜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 정말 견디기 힘든 일들이 아주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고 괴롭힐 때, 사람들은 도대체 이 길고 긴 터널이 언제 끝나는지 모르겠다는 표현을 한다.

『호랑이 뱃속 잔치』는 그와 같은 힘든 과정을 견디는 이들에게 영감과 힘을 줄 수 있는 민담이다. 주인공은 금강산 기슭에 사는 소금장수다.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면서 한 푼이라도 벌어 보려 애쓰지만, 한 푼 벌기는커녕, 그만 해가 지고 만다. 앞에 큰 동굴이 나타나 무심히 다가갔지만, 사실은 큰 호랑이였던 것이다. 호랑이에게 통째로 먹힌 것!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 상황인가. 그러나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처럼, 소금장수는 호랑이 뱃속으로 더듬더듬 들어가는 배짱을 보인다. 그리곤 아직 살아 있는 다른 사람 둘을 만난다. 하나는 경상도 태백산의 숯장수이고 또 하나는 충청도 속리산의 대장장이. 신출귀몰 하는 호랑이가 각 지방을 돌며 사람들을 잡아먹은 결과이다.

불안과 공포만으로도 기절할 만한 상황인데, 뜻밖에 그 세 사람은 당황하지 않고 모여 앉아 살 길을 모색한다. 우선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호랑이 뱃속 고기를 먹기로 한다. 조금만 떼어 먹어도 호랑이 뱃속이 출렁거려 난리가 날 만한 일인데 그 와중에 대장장이는 낫으로 호랑이 모양, 소 모양, 멧돼지 모양으로 도려내, 각기 다른 맛을 음미하며 먹는다. 소금장수는 소금을 뿌리고, 숯장수는 숯불까지 피워 근사한 바비큐 파티를 하는 것이다. 세 사람을 먹은 호랑이는 살점이 떨어져 나갔으니 아파서 동해로 서해로 펄쩍펄쩍 뛰다가 고꾸라진 후 죽을 똥을 싸게 된다. 그 똥 덩어리에 묻혀 세 사람이 떨어진 곳은 전라도 김제 만경. 생명을 구하고 호랑이 고기와 가죽까지 얻고, 땅이 비옥한 너른 들에 도달하게 되는 이야기다.

필자의 연재를 계속 읽어 온 독자 중에는 ‘아, 호랑이에게 잡혀 먹었다는 설정은 엄청나게 무서운 존재에 통째로 먹히는 큰 불행이 닥쳤다는 뜻이구나,’ 하고 짐작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옛날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 고을 저 고을 다니면서 소금을 파는 사람에게 깊은 숲속에서 만나게 되는 가장 무서운 상황은 바로 호랑이나 멧돼지 같은 맹수와의 조우다. 지금으로 치자면 강도 강간 살인범의 피해자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호랑이 상징에는 단순히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하는 폭력적인 가해자나 불운 이상의 매우 복잡한 뜻이 담겨 있다.

우선 한국인들의 정서에서 ‘호랑이’가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지를 보자. ‘해님과 달님이 된 오누이’ 민담을 보자. 호랑이는 엄마를 잡아먹은 후 아이들까지 해치려 하지만, 아이들의 기지와 하늘의 도움으로 퇴치되고 만다. 엄청난 힘을 갖고 있는 데다가 어머니로 위장하는 등, 나름대로는 잔머리도 굴리지만 결국 미련하게 죽고야 마는 조금은 바보 같은 존재다. 이 민담 속에 나온 부정적인 어머니 상으로 이미 분석해 놓은 바도 있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 속에 숨어 있는 포악하지만 미련한 악(惡)의 존재도 같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즉, 우리 마음속 악한 부분이 어떻게 우리를 파괴적인 상황에 몰고 가는 것인지, 또 그 악을 어떻게 잘 다루고 퇴치해야 하는지에 대한 상징적 해석이 가능하다.

두 번째로는 각지에 퍼져 있는 전설이나 신화 속에 등장하는 호랑이의 긍정적 의미를 보아야 한다. 은혜를 갚거나, 삼국유사에서처럼 훌륭한 사람이 될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또 효자도 돕고 하는 등의 때론 어머니같이 돌보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중국의 남방 지역이나 동남아시아에서는 호랑이가 신령한 존재로 존경 받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호랑이 뱃속 잔치』의 호랑이는 그런 긍정적인 의미는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호랑이란 이미지 속에 내재한 모성 본능은 고려해 보아야 한다. 즉, 힘든 위기의 상황에서 우리는 누군가 우리를 도와줄 대모(大母)같은 존재가 나타나길 바란다. 때로는 대모의 이미지를 국가, 회사, 혹은 위대한 특정 인물에게 투사하는데, 현실에서는 매번 그런 기대가 어그러진다. 곤경에 빠져 있을수록, 나를 구해 줄 어머니 뱃속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지 말고, 오히려, 그 속에서 탈출해 나와, 혼자 설 궁리를 해야 한다.

세 번째로는 ‘호랑이와 토끼’나 ‘호랑이와 곶감’ 민담처럼 힘은 세지만 미련해서 사람이나 꾀 많은 토끼에게 당하는 설정이다. 이 때 호랑이는 인간이 갖고 있는 본능적인 측면, 특히 완력만 쓰고 지혜롭지는 못한 미련퉁이에 대한 비유처럼 보인다. 이 민담 속 주인공들이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것도, 어쩌면 그들의 미련한 선택 때문일 수 있다. 밤이 깊었는데도 숲속을 혼자 돌아다니고, 호랑이를 동굴로 착각해 자진해서 들어가는 바보 같은 행동을 가리킨다.

호랑이라는 동물에게 투사하는 위와 같은 상징을 요약해 보자. 소금장수가 호랑이 뱃속으로 들어간 상황은 단순히 불운이 닥쳐 생긴 것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갖고 있는 본능이나 악 때문에 불행을 초래하기도 하고, 또 그 불행을 극복해 나가기도 하는 것이다. 실제로, 어렵고 고통스런 일이 닥치면 많은 이들이 ‘나는 왜 이리 운이 없는가.’ 하는 생각을 하며 팔자 탓, 부모 탓을 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런 상황까지 몰고 간 데는 스스로의 책임이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똑같이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라 똑같이 가정폭력에 시달리며 성장한 이들이 있는데, 어떤 이는 위험한 범죄자가 되어 버리지만, 어떤 이는 역경을 딛고 일어나 성공한다. 후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스런 상황과 맞서 싸워 이길 의지와 희망이 있었지만 전자는 자포자기해 버리고는 자신에게 위해를 끼친 사람과 그대로 동일시해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불행의 원인을 다 개인에게 돌리는 것처럼 무책임한 일은 없다. 아무리 능력이 있고 머리가 좋아도 짐바브웨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면 뜻 한번 펼치지 못하고 굶어 죽고 말겠지만, 특출한 재능이 없고 공부도 많이 하지 않아도 핀란드나 스웨덴 같은 나라에 태어났다면 세상이 불평등하다는 생각 없이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모든 책임을 구조와 정치에서만 찾고 개개인이 노력하지 않는 사회 역시 발전은 없다고 본다. 호랑이에게 먹힌 세 사람이 만약 그런 위험한 숲을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던 자신들의 운명이 무능한 나랏님과 부패한 양반님들의 책임이라고만 생각하고(물론 일정 부분은 그런 생각이 옳다.) 원망만 하고 있었다면, 호랑이 뱃속을 탈출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호랑이를 보통 사람의 인간 본성에 숨어 있는 ‘악’으로 생각해 보아도 이 민담의 뜻이 새롭다. 누가 극단적인 분노에 사로잡혀 매우 파괴적인 행동을 하면, 주위 사람들은 “그 사람, 악에 받쳐서 그래.” 하는 말을 하게 된다. 남편이 바람난 것을 알고 숨겨 놓은 애인 집을 찾아가 닥치는 대로 부수는 본처, 사기를 치고 돈을 떼먹은 당사자를 만나 늘씬하게 두들겨 패는 사람, 또 최근처럼 졸지에 평생 모은 재산을 날리고 길거리에 나앉게 될 상황이 되어 졸지에 목숨도 잃고 테러리스트란 오명까지 뒤집어쓰게 된 철거민 등등. 억울하게 몰리고, 배신 당하고, 치욕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면, 마음속에 억압되어 있던 파괴적인 성향이 그대로 뛰쳐나올 수 있다. 살인자, 테러리스트, 사기꾼들도 자세히 그 살아온 과정을 들여다보면 태어날 때부터 흉악한 악인인 경우는 없다. 다만 이런저런 좌절 끝에 세상에 대한 실망과 분노로 잘못된 길로 들어서다 보니 나중에는 악의 구렁텅이로 빠져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호랑이에 잡아먹힌 세 사람 역시 막다른 상황에서 그런 악의 세력에 잡아먹힌 것 아닐까.
신동근 그림(『호랑이 뱃속 잔치』, 신동근 글, 사계절, 2007)

불행이든, 악의 구렁텅이든, 일단 그 터널과 같은 긴 그림자를 빠져나오는 비밀이 『호랑이 뱃속 잔치』라는 민담에 숨어 있다. 그 첫째 단계는 당황하지 말고 무서워하지도 말고 일단 ‘더듬더듬’ 하더라도 움직여 보는 것이다. 사방이 꽉 막힌 것 같고, 도대체 희망이 없을 때, 사람들은 무력감에 빠져 우울증 환자처럼 도시 아무 일도 하지 않으려 한다. 가난해서 쌀이 없다면 나가서 뭐라도 해서 벌어 와야지, 그냥 누워 굶고 있으면 해결이 되지 않는다. 민담 속의 영특한 며느리처럼 쌀독에 쌀이 떨어져 가더라도, 일단 아끼지 않고 배부르게 밥을 해 먹고 일하러 나가야 하는 것이다. 한국 전쟁 이후 보릿고개로 많은 이들이 굶어 죽던 시절, 우리 부모님 세대는 독일로, 베트남으로, 중동으로 달랑 몸뚱이 하나만 가지고 건너가 눈물 젖은 돈을 벌어 왔다. 젊은 세대라고 그렇게 하지 못하라는 법은 없다. ‘더듬더듬’ 하건, ‘좌충우돌’ 하건, 일단 손과 발을 움직여야 산다.

두 번째 덕목은 협동이다. 호랑이 뱃속에서 처음 만난 세 남자는 극한상황에서 서로 헐뜯지도, 싸우지도 않고 각자가 갖고 있는 자원인 소금, 낫, 숯을 한데 모아 기지를 발휘해 호랑이를 퇴치한다. 현실에서도 부도 위험에 처한 회사를 노사가 협동해서 잘 살려 놓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세 번째로는 여유와 유머를 통한 승화다. 그대로 죽어 버릴 수도 있는 호랑이 뱃속에서도 기왕이면 다양한 고기 모양을 그려서 맛까지 음미한 사람들이다. 특히 호랑이 뱃속을 똥과 함께 탈출하는 장면이 백미다. 똥은 가장 더럽고 하찮은 것처럼 보이지만, 만약 짐승이 똥을 누지 않으면 죽게 될 것이고, 그 똥은 아주 좋은 거름이 된다. 우리가 겪는 여러 인생의 애환 역시 마찬가지다. 한참 당하고 있을 때는 “참 똥같이 더러운 인생이다.”라고 한탄할 수 있지만, 그 어려움을 이겨 내고 나면 “그때 경험이 내겐 참 좋은 거름이 되었지.”라고 말하지 않는가. 요즘, 경제 위기로 모두 다 죽겠다 한다. 참 힘들고 속상하고 위험한 세상이다. 그러나 이런 시절도 서로 힘을 모아, 웃음과 사랑으로 잘 견디면, 언젠가는 김제 만경 너른 들판에서 숯장수, 소금장수, 대장장이 할 것 없이 함께 태평성대를 누릴 날이 꼭 올 것이다.
이나미 | 서울대학교에서 정신의학을, 뉴욕에서 분석심리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강의도 한 정신과 의사입니다. 단편 소설 「물의 혼」으로 『문학사상』에서 등단하였고 2002년에는 『때론 나도 미치고 싶다』를 펴냈습니다. 꿈과 신화, 우리 사회에 대한 관심을 분석심리학 측면에서 연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