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1월 통권 제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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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함께 그림책 읽기]
지금은 안 하면서 자꾸 나중에 나중에 그러네?

최은희 | 2009년 01월

중학교 때까지 그런 대답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네 꿈이 뭐니?” 혹은 “커서 뭐가 될래?” 하고 누가 물으면 거침없이(겁도 없이) “노벨문학상을 받는 소설가가 될 거예요.”라고 고개 빳빳이 들고 말했다. 내 능력에 대한 냉정한 판단 따위는 없었다. 십 리 길을 걸어 학교에 갈 때 삭아서 자꾸 풀리는 낡은 운동화 끈을 바투 매야 했던 산골 아이는 그렇게 야문 꿈을 꾸었다. 노벨이라는 사람이 누군지, 또 그 상을 받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알지 못한 채.

그렇게라도 꿈을 꾸고 싶었다. 그게 가난한 현실을 견딜 수 있는 유일한 힘이었다. 이루지 못할 꿈일지라도 저 멀리 오를 깃발을 꽂아 두고 이 정도의 팍팍한 현실쯤은 너끈히 견뎌야 한다고 스스로 주문을 외웠던 듯하다. 그런데 그런 거창한 꿈을 가진 소녀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지금 해야 할 일은 게을리했다.

책을 많이 읽지도 글을 쓰지도 않았다. 고작해야 어두컴컴한 학교 도서실에서 빌린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의 낡은 책을 읽지도 않으면서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걸로 만족했다. 그리고 글 쓰기는 학교에서 때마다 치르는 반공 글짓기나 무슨 무슨 글짓기대회 때 쓰는 게 전부였다. 그렇게 한 삼사 년 노벨상 운운하며 폼을 잡았던 것 같다.

그런 내게 『나는 노벨상을 받을 거야』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지금으로부터 스물 몇 해 전, 얼굴에 마른 버짐이 하얗게 핀 산골 계집애의 이야기였다. 거창한 미래를 꿈꾸는 머리와 전혀 움직이지 않는 몸이 따로따로 작동하던 과거의 내가 거기 있었다.

새해가 되고, 새 학년이 될 때 우리는 종종 굳은 결심을 한다. 올해에는 꼭, 또는 이번 학년에서는 꼬~옥! 그 결심이 여러 가지 상황을 겪으며 봄눈 녹듯 사라진다 해도 새 일기장에 또는 새 달력에 큼지막한 글씨로 새로운 다짐을 하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결심조차 하지 않는 것에 견주면 말이다. 자, 이제 머릿속 생각이나 결심을 몸으로 옮기는 데 지난한 어려움을 겪는 우리 모두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나러 가자.

『나는 노벨상을 받을 거야』를 읽기 전에 아이들과 함께 노벨상과 노벨이라는 사람에 대해 찾아보았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여 많은 돈을 번 노벨이 사회를 위해 공헌한 이들에게 상을 줄 수 있게 기부했다는 말에 아이들이 ‘와~아’ 하고 탄성을 지른다. “왜?” “돈을 벌어서 자기 혼자 안 쓰고 다른 사람들한테 주니까요.” 용준이가 코를 발름거리며 대답한다. “그래, 그럼 니들도 자기 것을 다른 사람한테 나눠 줄 수 있으려나?” “나중에요, 돈 많이 벌면.” “어른이 돼서 돈을 벌어야지요. 그 때 가난한 사람들한테 줄 거예요.”

“돈을 많이 못 벌면 다른 사람에게 내 것을 나눠 줄 수 없나?” 내가 묻자 아이들이 머뭇거린다. “어……, 그게…….” 석규가 머리를 긁적인다. “그래, 고민이 되지? 그럼 우리 이 책에 나오는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 한 번 찾아보자.”

월계수 잎을 입에 물고 있는 아이. 등에는 자유를 찾아 날고 싶은 욕망을 드러낸 새하얀 날개가 달려 있다. 그러나 아이 옷차림을 보면 웃음이 난다. 군복 같은 옷에 허리에는 총을 꽂고 있다. 오른쪽 아래에는 총을 겨누고 있는 군인이 보인다. 평화를 갈구하는 아이의 내면과 권총을 차고 있는 외면이 갈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들이 손가락질을 하며 웃는다. 왜 웃느냐고 물으니 “이상해서요.”라고 답한다. 어색하다는 것은 톱니바퀴가 맞물려지지 않는다는 거다. 도망가는 계집애를 쫓아가며 총을 쏘는 사내 아이. 우리 반 사내애들이 신 났다. 입으로 총소리를 내며 동무들에게 손가락을 겨눈다. 내가 책장을 넘기지 않고 가만히 있자 지원이가 머쓱해 하며 “야, 책 안 볼 거야?” 하며 도리어 큰소리를 친다.

크면 이웃을 사랑할 거라 말하는 아이. 하지만 그림은 글과 전혀 다르다. 여동생은 끈으로 꽁꽁 묶인 채 침대 밑에 매달려 있고 방에는 온통 전쟁놀이에 쓰이는 도구들이 널브러져 있다. 그림이 글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이들은 진술과는 다른 그림을 보며 키득거린다. 그림책이 가지고 있는 묘미가 잘 드러나 있다. 글이 하고 있는 이야기를 그림이 반복해서 보여 주는 것보다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 그림책을 한층 풍요롭게 해 준다. “에헤~헤! 쟤 좀 봐. 동생을 막 괴롭히면서 이웃을 사랑한대.” 목소리 큰 지원이가 손가락질을 하며 낄낄거린다. 사내 녀석 몇이 덩달아 비웃는다.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고, 사람들이 사이좋게 지내도록 하고 싶다는 아이의 갸륵한 소망. 그러나 아이는 자를 들고 책상 위를 넘나들며 싸움 놀이를 하고 있다. 물론 아이의 표정은 해맑지 않다. 머리와 몸이 함께 가지 않으니 즐거울 리 있겠는가? “근데, 쟤는 개구쟁이에요. 말로만 착하고…….” 윤진이가 눈살을 찌푸린다. “저기 선생님, 쟤는 머리로만 공부해서 그런 거지요?” 보연이가 나를 쳐다보며 동의를 구한다. “글쎄 말이야.”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보연이가 환하게 웃는다.

동물을 괴롭히지 못하도록 하고 싶다는 아이는 무얼 하고 있는가? 생쥐를 축음기 위에 올려놓고 괴롭히고 있다. 그 뒤 벽에 걸린 비둘기 그림은 평화를 상징하고 있다. 아울러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은 의자 끝에 앉은 아이의 모습이 위태로운 내면 심리를 드러내는 듯하다. 장면마다 굳은 결심을 내뱉는 아이의 의지가, 실은 금방이라도 우당탕하고 넘어질 것 같다는 것을 그림으로 보여 주고 있다.

가난한 사람에게 내가 가진 걸 나눠 주겠다는 결심은 또 어떤가? 옆에 있는 동무의 가난한 도시락을 보면서도 음식이 가득 든 자신의 도시락을 함께 나눠 먹는다는 생각조차 전혀 없어 보이는 아이. “쟤 봐요. 혼자 큰 거 다 먹으려고 욕심내니까 눈이 사나워 보여요. 욕심쟁이 같아요.” “근데도 가난한 사람한테 나눠 준대. 순 거짓말만 한다.” 준혁이가 입을 내밀며 한 마디 뱉는다. “그래, 그렇게도 볼 수 있겠다. 근데 얘는 마음이 뭔가 좀 꺼림칙하지 않을까?”

내 눈에는 주인공 아이가 안쓰럽게 보인다. 머리로는 그렇게 해야 된다는 걸 알고 있기에 반복하여 미래를 운운하며 스스로를 다그치는 것이 안타깝다. “선생님, 쟤는 머리로만 공부하고 몸으로는 공부를 안 해서 그래요. 선생님이 진짜 공부는 몸으로 해야 된다고 했잖아요.” 영특한 녀석들. 무얼 배우든지 머리에만 넣어 두지 말고 몸으로 옮겨야 한다는 평소의 가르침을 이렇게도 잘 알고 있구나! 여덟 살짜리 꼬맹이들이 내뱉는 말이 마음 한 켠을 쿵! 하고 울린다.

“글쎄 말이다. 말로만 하지 말고 쪼금이라도 몸으로 실천하면 좋을 텐데 그치? 근데 그게 쉽지는 않으니까 얘도 아마 괴롭지 않을까?” “맞아, 나도 우리 엄마가 말할 때 끼어들지 말아야지 그러면서도, 음…… 나도 모르게 또 막 끼어들어서 혼나.” “그래 그럴 수 있어.” 소명이 말에 내가 맞장구를 쳤다. 말과 행동이 다른 아이는 지구 환경을 보호해 줄 거라며 나무에 올라타고 심지어는 가지를 꺾어 칼싸움까지 한다. ‘아, 마음먹은 대로 살기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럼에도 아이는 계속 되뇐다.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옳지 않음을 알기에 갈등한다. 그래서 남에게 도움을 주고 힘이 되고 싶다면서도 무거운 짐을 든 노인 곁을 무심히 지나친다. 도덕적인 무게를 짊어지기에 아이는 아직 너무 어리다.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몸으로 실천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한 법. 몇 년 동안이나 환경교육을 하면서, 일회용품이나 종이컵을 쓰지 말자고 교사들끼리 굳게 약속을 했다. 그러고도 이 핑계 저 핑계로 실천을 못하다가 오 년이나 지나서야 비로소 종이컵을 사용하지 않게 된 우리 학교만 봐도 앎을 실천하기는 만만치 않은 일임을 알고 있다. 어른도 이럴진대 아이들은 오죽하랴. 그런데도 우리는 머리의 앎이 몸으로 옮겨 오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꾸짖고 닦달한다. 무릇 때가 되고 무르익으면 저절로 바뀌게 될 터인데……. 그래서 나는 책 속 아이에게 차마 손가락질은 못하겠다.

책 속 아이는 그렇게 끊임없이 갈등하고 고민한다. 마음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면서 불의에 맞서는 사람이 되고 싶고, 위대한 일을 하고 싶어 한다. 지금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하니까 자꾸자꾸 뒤로 미룬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그렇게 현재의 갈등을 잠재우고 싶어 한다. 어린 시절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쟤는 지금은 안 하면서 자꾸 나중에 나중에 그러네?” 어렵게 말문을 뗀 근우 얼굴이 빨갛다. “너희들도 그러잖아.” “우리가 언제요?” “어~ 아까도 그랬잖어. 나중에 돈 많이 벌면 그 때 다른 사람한테 기부할 거라고.” “지금은 돈이 없으니까 그렇지요.” 기훈이가 소리를 빽 지른다.

“지금 돈이 없으면 다른 걸로 어려운 사람 도와줄 수는 없냐?” “뭘로요?” “아니 뭐, 꼭 돈이 아니어도 남을 도와줄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잖아. 없어?” “아~ 친구가 지우개 없을 때 빌려 주는 거?” 재민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한다. “야, 너는 지우개 안 갖고 다니잖어.” 세운이 한 마디에 재민이 얼굴이 구겨진다. “재민이가 깜빡 잊어서 그렇지. 지난번에 보니까 친구들한테 공책도 빌려 주던데?” 내가 얼른 재민이 편을 들었다.

“나중에 돈 많이 벌고 힘이 세지면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을 거야. 그렇지만 지금도 할 수 있는 일이 무지 많어. 음……, 예를 들면 우리 학교 어떤 형이 유치원 동생들을 괴롭힐 때 도와줄 수도 있고, 맛있는 거 있으면 같이 나눠 먹어도 돼. 찾아보니 많지? 근데 솔직히 말하면 선생님도 어렸을 때 책 속 이 아이처럼 매일 나중에 나중에 한 일이 많다.”

내 고백에 몇 아이들이 빙그레 웃는다. “그래도 얘가 지금 당장 시작한다고 하니까 참 잘한 것 같아요.” 바른생활 희진이답다. “희진이 말처럼 나도 참 다행이다 싶어. 또 미루지 않고 지금 가위 들고 동생부터 구하러 가잖어.” “생쥐도 안 괴롭혀요. 저 봐요. 껴안고 있잖아요.”

용준이 말처럼 제 몸에 맞는 소파에 앉은 아이는 비로소 편안해 보인다. 제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실천하는 아이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편안한 얼굴이다. 무언가 목표를 세우고 거기로 나아가기 위해 지금 한 발자국을 내딛는 아이는 자신감에 차 있다. 그러니 동생과 감격적인 포옹을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섣부른 기대는 말길. 언제 또 아이는 놀이와 호기심에 빠져 나중에 나중에 하며 몸으로 옮기는 공부를 게을리할지 모르니.

설혹 그렇더라도 어른의 몫은 기다림이다. 스스로 다짐하는 아이는 언젠가는 제 몫의 짐을 당당히 질 날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어른은 아이 앞에 놓인 무수한 길을 보여 주기만 하면 된다. 만약 우리 둘레에 있는 아이가 머리로 알고 있는 것을 몸으로 실천하길 바란다면 아무 말 없이 새해 첫 날, 아이 곁에 이 그림책 한 권을 놓아두면 어떨까? 조바심을 버리고 느긋한 마음을 가진 채로. 아이의 자생적인 힘을 믿으면서.
최은희│열다섯 살까지 충북 청풍에서 영혼을 살찌우며 살았습니다. 공주교육대학교에서 공부를 했고, 1990년에 ‘오월문학상’을 받으며 시인으로 등단했습니다. 현재는 공교육 안에서 대안을 모색하는 아산 거산 초등학교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며 공주교육대학교에서는 어린이 문학을 가르칩니다. 지은 책으로 『그림책을 읽자 아이들을 읽자』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