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1월 통권 제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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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서평]
당당하고 거침없이 꿈을 꾸어라!

서윤정 | 2009년 01월

손자의 손을 잡고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는 할아버지, 감기 걸린 손녀를 병원에 데리고 온 할머니……. 요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조부모, 부모, 자녀가 한 집에 사는 ‘3세대 가정’이 점점 줄고 있다고는 하지만, 일하는 엄마 아빠를 대신해 아이를 돌보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많아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아침저녁 잠깐씩 얼굴을 볼 수 있는 바쁜 엄마 아빠보다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고, 따로 살지만 그 어느 때보다 조부모와 손자, 손녀의 관계가 밀접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요.

자연히 어린이 책에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자주 등장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치매에 걸려 기억을 잃거나 삶의 끄트머리에서 인생을 돌아보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물론 나이가 든다는 것과 질병, 죽음은 떼어놓을 수 없겠지만, 노년의 삶이 그저 회색빛이기만 한 걸까요? 여기, 우리의 고리타분한 상식을 뻥~! 차서 날려 버리는 할머니가 있습니다. 『위풍당당 심예분 여사』의 주인공  개성 만점 심예분 여사님을 소개합니다.

얼굴이 ‘심하게 예뻐’이름도 심예분. 꽃피는 예순다섯. 전직 ‘심예분 흑돼지 삼겹살’집 사장님. 가게를 딸에게 넘겨주고 딸과 사위, 손녀 미강이를 위해 집안 살림을 꾸려 오던 할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집안일에서 손을 떼겠다고 폭탄선언을 하고는 마술을 배우러 다닙니다. 할머니는 ‘은파 봉사단’에 들어가 복지관이나 보육원을 다니며 마술 공연을 합니다. 그리고 다시 ‘위풍당당’에서 이름을 딴 ‘위당 봉사단’을 새로 꾸리는가 싶더니, 봉사단에서 만난 ‘오다리 할아버지’와 불타는 연애 끝에 결혼에 이르지요. 그리고 할아버지와 모나코에서 열리는 ‘세계마술대회’를 보기 위해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납니다. 돌아와서 ‘노부부 유럽 여행 사진전’을 열고, 언젠가는 세계마술대회에 나가겠다는 꿈을 간직한 채 말이지요.

심예분 할머니는 ‘모르면 가만히 있어라.’, ‘할머니는 몰라도 돼.’, ‘고작’이라는 말을 가장 싫어합니다. 사위가 집에서 편히 쉬시라고 하자 “내가 쉴 때라니! 내 나이가 몇인데. 앞으로 20년은 거뜬히 살 텐데 벌써부터 쉬어?”라며 펄쩍 뛸 정도로 삶에 대한 에너지가 넘칩니다.

할머니는 별명 짓기와 이름 붙이기 천재입니다. 딸의 이름을 평범한 ‘김숙희’보다는 좀 더 특별해 보이는 ‘김숙히’로 지었고, 사위인 봉만석 씨는 ‘만돌이’, 손녀 미강이는 ‘요강단지’, 유오달 할아버지는 ‘오다리 할아버지’라고 별명을 붙입니다. 하지만 ‘지영이 할머니’, ‘과일 가게 할아버지’는 꼬박꼬박 ‘김덕순 여사님’, ‘이만호 선생님’이라고 부르지요. 사람을 좋아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한 존재로 제대로 배려할 줄 아는 심예분 할머니의 넉넉하고 깊은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전 작품들에 이어 이번에도 유쾌함과 건강함, 삶을 바라보는 긍정적 시선으로 생생한 캐릭터를 만들어낸 작가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이 ‘현재’와 ‘미래’를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안으로 안으로만 움츠러들지 않고, ‘할머니’뿐만 아니라 엄마, 여자, 인간으로서의 역할을 모두 끌어안을 수 있는 여유와 지혜, 그리고 자신감. “나는 늙지 않는 내 마음이 참 기특하다.”며 마술, 봉사 활동, 결혼, 세계 여행 등 새로운 것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심예분 할머니의 모습에서 우리는 ‘꿈꾸는 사람’만이 내뿜는 눈부신 빛을 보게 됩니다. 알록달록 총천연색으로 빛나는 심예분 할머니의 이야기에, 아이들은 이제 주위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조금은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삶을 제대로, 멋지게 사랑할 줄 아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반해 충성을 맹세! 할지도 모르지요. 미강이가 그랬듯이 말이에요.
서윤정│오픈키드 컨텐츠팀. 책을 좋아합니다. 어린이를 좋아합니다. 책 읽는 어린이를 가장 좋아합니다. 부지런히 수련을 쌓아 소리 없이 강한 할머니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